이정은

이정은 부국장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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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정책의 흐름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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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94%
선거3%
미국/북미3%
  • [횡설수설/이정은]美의 틱톡 경계령

    “중국에서는 모든 게 들여다보입니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미국 직원들이 2021년 9월 내부 회의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한 회의 참석자는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엔지니어를 “모든 접근권을 가진 마스터 관리자”라고 불렀다. 틱톡의 모(母)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에서 미국 서버에 담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음을 사실상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는 최근 이런 내용이 담긴 14개의 틱톡 내부회의 녹음파일을 입수, 공개했다. ▷중국의 30대 인터넷 사업가 장이밍이 개발한 틱톡은 15초∼1분가량의 동영상을 공유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다. 댄스, 음악, 패션 등을 동영상으로 쉽게 편집해 올릴 수 있어 젊은층에 큰 인기다. 전 세계 사용자 수는 10억 명, 1인당 월평균 사용시간은 23.6시간으로 유튜브를 추월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해외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빼내 악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보안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정치권의 틱톡 규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상원의원들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틱톡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워싱턴의 대중 강경파들은 틱톡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부른다. 중국공산당이 틱톡 앱에 ‘백도어’를 심어 사용자들의 전화번호와 생년월일은 물론 지문, 홍채 같은 생체정보에 접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보가 유출된다고 국가안보 위협까지 될까 싶지만 타깃이 연방정부 직원이나 고위 관료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들의 정보를 해킹에 이용하면 주요 부처나 정보기관의 서버 침투까지 이론상 가능해진다. 틱톡을 사용하는 주요 인사들의 휴대전화가 도청 장치로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미국 내 틱톡과 중국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위챗’ 사용을 중지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없었던 일이 됐지만, 안보위협을 둘러싼 논쟁은 오히려 가열되는 분위기다. 미국뿐 아니다. 영국과 뉴질랜드 의회는 틱톡 계정을 닫거나 사용 중단을 권고했고, 인도는 틱톡을 포함한 59개 중국 앱 사용을 금지시켰다. 호주에서는 틱톡, 위챗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안업체의 보고서가 나왔다. ▷틱톡 이슈는 결국 SNS를 이용한 중국과 미국 간의 정보보안, 이를 넘어 국가안보와 연관된 기술전쟁으로 봐야 할 것이다. 틱톡이 사용자 정보를 미국과 싱가포르 서버에 저장하고, 미국 업체 오러클에 보안을 맡기겠다지만 개별 업체의 몸부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첨단기술이 가능케 한 침투력은 틱톡이 아닌 다른 앱을 통해서도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동영상 속 댄스와 노래, 코미디를 마냥 즐기기만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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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한글 잃어가는 조선족

    ‘옌볜(延邊)에서는 중국어를 못해도 괜찮다.’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거리에는 포차, 노래방, 숯불구이 등 한글로 된 대형 간판이 즐비하고 ‘가리봉’, ‘미아리’ 같은 한국 지명을 딴 식당 이름들도 눈에 들어온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조선족들은 중국 내 거주지역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사투리까지 구별한다. 170만 명의 조선족이 거주하는 이곳은 한국 내 차이나타운보다 더 한국 같다. ▷앞으로는 조선족 자치주에서 한글 간판이나 광고를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정부가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되 한자를 우선 표기하는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규정에 맞지 않는 현판이나 표지판은 모두 교체해야 한다. 간판뿐 아니다. 조선족 학교에서 교과서는 이미 2020년부터 한글로 된 교과서 대신 중국어 국정 교과서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내년부터는 대학 입시에서 소수민족 가산점이 없어지고 역사, 정치, 어문 과목 시험은 중국어로 치러야 한다. ▷북간도로 불리는 백두산 이북 지역에 터 잡은 조선족은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13번째로 수가 많다. 중국 국적이지만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갖고 한국 문화와 전통을 살려온 사람들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한글로 된 책들이 불태워지고 한국말을 가르치던 조선족 교사들이 홍위병들에게 탄압받은 아픈 기억도 갖고 있다. 그래도 소수민족 중에서는 최초로 민족대학을 설립하는 단결력도 보였다. 그런 조선족도 ‘중화민족 공동체론’을 앞세우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한화(漢化) 정책은 피할 수 없게 된 모양이다. ▷“문화 말살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중국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이들을 한족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은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다. 2017년 신장위구르 자치구, 2018년 티베트 자치구, 2020년에는 네이멍구 몽골족 자치구에서 중국어 교과서 사용 의무화 등을 밀어붙였다. 항의 시위에 나선 주민들은 분열선동 혐의로 검거하고, 거리에는 탱크를 내보냈다. 특히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자치구에는 가차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7년 만에 열린 소수민족 정책 회의에서 “사상적 만리장성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족 분열의 독소’를 숙청해야 한다고도 했다. 소수민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발전의 동력이 아닌 분열의 뿌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민족의 말과 글, 그것이 지켜내는 정체성은 억지로 빼앗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위적으로 약화시킨다고 해서 ‘사상의 만리장성’이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되레 문화적 역풍만 불 가능성이 높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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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임금피크제 소송 봇물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다.” KB국민은행 직원 41명이 최근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삭감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르노코리아자동차는 전현직 노조원 50여 명이 법률대리인을 선임했다. 포스코는 임금피크제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냈고, 현대차와 삼성전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노조도 소송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줄소송 움직임은 5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퇴직자인 A 씨가 “정년이 그대로 유지되는데도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깎은 것은 부당하다”고 낸 소송에서 그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다.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연령 차별이라고 봤다. ‘합리성’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 근로자가 받는 불이익의 정도, 이들에 대한 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각 회사가 개별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구할 여지를 열어 놓은 것이다. ▷소송을 냈거나 낼 예정인 노조들은 회사가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의 업무량이나 강도를 줄여주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임금 삭감 폭도 과도하다고 본다. 고령의 근로자를 퇴출시키려고 임금피크제를 악용한다는 의구심도 거두지 않고 있다. 경영계는 “노조도 합의했던 내용들”이라고 반박한다. 인력 관리의 어려움도 호소한다. 2003년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신용보증기금은 최근 시행 대상자가 300명을 넘어서면서 고령 인력의 적체 문제에 직면했다. ▷임금피크제는 2016년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시행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임금은 줄어들지만 일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해볼 만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삭감되는 고령층 근로자의 임금으로 청년층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적잖았다.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300인 이상)은 54%로 절반을 넘는다. 시행 방식과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애초에 고용노동부의 권고에 따라 각 회사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졌을 뿐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고용과 임금 체계는 고령화 흐름과 맞물려 있다. 100세 시대에 정년은 앞으로 더 연장될 수 있다. 일본은 65세 정년을 의무화하면서 70세까지 연장을 권고하고 있고, 미국이나 영국은 아예 정년이 없다. 성과에 따른 연봉제가 대부분이어서 굳이 임금피크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해고가 어려운 호봉제 위주의 한국에 맞는 해법은 다를 것이다. 임금피크제가 차선책이 될 수 있다면 그 기준과 이행 규정들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게 첫걸음일 수 있다. 노사정 협의도 필요하다. 노사가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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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용 피해자 모독한 99엔 [횡설수설/이정은]

    ‘내 목숨 값 99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인 정신영 할머니(92)가 이 한 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할머니의 통장에는 일본 돈 99엔, 한국 돈으로 931원의 입금 내역이 찍혀 있었다. 과거 일본에서 강제노동을 할 당시 받아야 했던 후생연금을 일본 측이 77년 만에 액면가 그대로 보낸 것. 할머니는 “애들 과자값도 아니고… 이걸로 일본 사람들 똥이나 닦으라고 해라”며 분개했다. ▷정 할머니는 1944년 만 14세 나이에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사로 끌려갔던 강제징용 피해자다. 배가 고파 쓰레기통에서 밥을 주워 먹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1년 넘게 노역에 시달렸지만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노역 기간에 가입했던 후생연금(근로자 연금)의 탈퇴 수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자료가 불에 탔다며 확인조차 거부하던 일본 후생성은 정 할머니가 내민 연금번호를 받고 나서야 마지못해 가입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보낸 연금탈퇴 수당이 단 99엔이었다. ▷일본의 개정 후생연금보험법에는 연금탈퇴 수당을 지급할 때 화폐가치 변동에 따른 차액을 보전해 주는 규정이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모두 적용되는 이 규정이 유독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예외다. 처음도 아니다. 일본은 앞서 2009년에도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99엔, 2014년에는 ‘연금 가입 기간이 좀 더 길다’며 4명에게 199엔을 보냈다. 그나마 당시 환율로 1000원대를 넘었던 99엔은 이젠 정말 껌 값도 안 된다.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자 우롱이나 다름없다. ▷성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의 기계적인 대응은 피해자들을 할퀸 또 다른 상처였다. 이들은 주한 일본대사관에 동전을 던지며 항의했고, 재심사 청구를 비롯한 법정 싸움에도 나섰다. 오랜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은 이제 전범기업들의 실질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강제징용 피해자 중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인 이들은 유족을 포함해 1000여 명. 고령의 피해자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은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한일 관계의 핵심 뇌관이다. 정부는 해법을 찾기 위해 ‘대일 저자세 외교’ 비난을 감수하면서 일본과의 외교적 협의를 시도하고 있다. 반발하는 피해자들을 설득하느라 쩔쩔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막상 책임을 져야 할 일본은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99엔 송금’을 반복하며 공분과 반발만 부추기고 있다. 이래서야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어떻게 일본에 보낼 수가 있겠는가. 8·15 광복절이 다가온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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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깨주의가 잘못된 인식 불러” “거칠어진 中이 반중정서 자초”[지상 대담]

    《한국과 중국은 이달 24일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30년을 다져온 이웃 관계지만 양국 관계는 요즘 살얼음판이다. 중국의 한류 금지령과 경제 보복 여파가 이어지며 한국인의 중국 비호감도는 사상 최악 수준인 80%대로 치솟았다. 중국은 한국의 ‘칩4 동맹’ 참여를 견제하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정상화 움직임에도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중국-러시아 대 서방으로 양분되는 신냉전 구도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동맹 중심의 대외 정책도 한중 관계에 적잖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향후 대중 정책 방향을 놓고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중국 때리기’에 맞서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반박도 나온다. 결국 핵심은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것.동아일보는 그 해답을 모색하고자 김희교 광운대 교수와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간 지상 대담을 진행했다. 인터뷰는 교수실과 본사 회의실에서 각각 이뤄졌다.》김희교 광운대 교수 “中에 서구 기준 적용은 무리… 대중 봉쇄정책과 억압이 문제”―저서 ‘짱깨주의의 탄생’에서 중국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비판했다. 중국에 대한 현재 한국의 인식이 잘못됐다고 보는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공포심, 경계심 같은 것은 다른 국가에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반중 감정이 다른 국가보다 20% 정도 더 높게 나타난다. 안보적 보수주의자들이 신냉전 구도에 올라타 동맹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짱깨주의를 이용한 탓이 크다고 본다. 중국인에 대한 유사인종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비판적 대중 인식이 중국이 가진 문제 자체로 야기된 결과는 아닌가.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 무역관행, 국제규범과 질서 훼손, 인권 침해 등은 국제적으로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200년 넘게 발달해온 서구의 자본주의와 달리 중국은 이제 겨우 40∼50년 된 단계인데 이를 똑같이 비교, 비판하는 건 맞지 않다. 중국도 이젠 덩치가 커지고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에 맞는 국제적 룰에 따르려는 노력들을 해오고 있다. 서구의 시각에서는 아직 미흡하지만 중국은 굉장히 발전해왔다. 인권의 경우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인 중국이 서구의 완벽한 인권 수준을 다 충족시키는 게 가능할까. 중국이 강대국이라지만 여전히 개인소득 1만 달러 수준에 지역 빈부 격차가 엄청나다. 신장위구르에서는 잦은 테러를 방지할 필요성도 있다.” ―중국이 최근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적 비난과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도덕적 관점에서는 안 될 일이지만 국제정치학적 측면이나 힘의 논리로 볼 때 중국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미국이라는 거대 패권국이 중국을 작심하고 봉쇄하려는 것에 대해 중국이 느끼는 위협 수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중국이 미국의 억압을 견딜 방법을 다방면으로 모색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해 서구와 같은 입장을 취하기는 어려울 거다.” ―중국을 정당화해주는 논리 아닌가.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평가받는다. “당연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짱깨주의의 탄생’을 쓴 뒤 중국에서 돈 받아먹었냐는 비난도 받았다. 그래도 중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내에 짱깨주의가 급속히 퍼지는 것이 걱정스럽고, 자꾸 20세기적 냉전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에도 위기감을 느낀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문제 삼아 다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이미 배치된 사드의 기지 정상화 수준으로는 중국이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스탠스를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추가 배치의 경우 수사적인 반발을 넘어 전면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다. 중국 견제용 반도체 동맹에 가입하는 문제는 ‘한국이 중국을 적으로 돌리려 한다’고 판단할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군사적으로 한미일 3각 동맹 체제를 맺으려는 것에도 중국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대중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힘이 있다. 삼성이 지금 메모리반도체의 60% 이상을 생산하는데 그 힘만으로도 굳이 미국이 강요하는 ‘칩4 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버텨낼 힘이 충분하다고 본다. 중국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충돌하던 초기에는 겁먹은 듯 수세적이었는데 이제는 자신감이 보인다. 3년째 당하면서 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도 이제 안미경중(安美經中)이 아니라 안세경세(安世經世)로 가야 한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 시스템도 다변화시키는 다자주의 다극 체제가 답이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인권과 불공정 문제 제기하되 中 인한 손상과 비용 고민을”―한중 수교 30주년이 됐지만 중국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더 냉담해진 것 같다. “한중 관계는 단순히 양자 차원에서만 보기 어렵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가 중요한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양국 경제관계가 상호 보완적인 것에서 경쟁적으로 바뀌는 것 또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느끼는 위협 의식이 그만큼 커진 거다. 또 한 가지, 중국공산당 정부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정통성 강화를 시도하면서 자국 중심적 언행을 보이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역사적 피해와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 입장에서는 반발과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편견과 오해 등으로 한국이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한국은 중국과 이념, 정치 체제, 역사적 기억이 모두 다르다. 과거 강대국-약소국 관계였기 때문에 한국이 느끼는 중국은 위협, 두려움이다. 굴욕적인 역사적 경험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 반면에 중국은 과거 주도했던 동아시아 국제 질서, 즉 주종적이고 위계적인 질서 속에서의 한반도를 생각하고 있다. 국가정체성도 다르다. 한국의 정체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산업화를 이루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것에서 온다. 중국과는 근원적으로 차이가 있다.”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 후 중국의 경제보복은 관계 악화를 가속화시켰다. 사드는 또다시 양국 관계의 뇌관이 될까. “중국은 이른바 ‘3불(不) 협의’ 이후 사드 언급을 자제해왔는데, 이제 그 봉인이 해제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기지 정상화를 도발로 간주할 거다. 그리고 반드시 보복할 거다. 중국은 역사, 문화적으로 보복의 나라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중국 속담이 있을 정도다. 중국은 다양한 보복 옵션들을 패키지로 준비해 놨을 것이다. 시기와 수위는 중국이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칩4 동맹’ 가입도 보복을 불러올 정도의 파급력이 있다고 보나. “반도체 기술의 향상이나 공급망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당연히 해야 된다. 다만 미국도 아직 구체적인 복안이 없어 보이고 복잡한 실행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충분한 공론화를 거친 뒤 참여해도 늦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반도체 협력을 이끌어내면서도 중국을 적으로 돌리지 않을 공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세계 어느 국가도 중국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봉쇄정책으로 휘청거리긴 했지만 중국은 또한 놀라운 회복탄력성도 보여줬다.” ―중국은 불공정 무역관행, 인권 침해 같은 문제로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데….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시장주의에 기반해 번영해온 통상국가다. 국제 규범에 위배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정확히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신장위구르나 홍콩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당연히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다만 그로 인한 외교적 충돌과 비용을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국가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나 전문가 그룹이 나서고 국제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게 방법일 수 있다.” ―향후 대중정책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과거 중국에서 얻을 혜택을 바탕으로 한중 관계를 논했다면 이제는 중국이 우리에게 입힐 손상, 치르게 할 비용을 더 고민하면서 대중 정책을 세워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 조화롭게 이익을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게 핵심이다. 최소한 중국을 적대적으로 돌리지는 말아야 한다. 최대 효과보다는 최소 비용을 추구하는 것, 위기관리를 하는 것, 여지를 두는 외교공간을 확보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김희교 광운대 교수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푸단대에서 중미관계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간지 ‘역사비평’ 편집위원을 지냈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해 화제가 된 ‘짱깨주의의 탄생’을 썼다.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만정치대와 홍콩 중문대 방문연구자로 활동했다. 외교부 혁신위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니어(NEAR)재단이 선정한 2014년 외교안보부문 학술상 수상자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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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프렌드 쇼어링’에는 친구가 없다

    “중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경쟁자임이 분명하다. 미국은 중국의 폭력적이고 불법적이며 불공정한 관행들에 대응해야 한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대중관은 그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분명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자신의 인사 청문회에서 중국 관련 언급에 거침이 없었다.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이도 옐런 장관이다. ‘우방국들이 생산을 분담한다’는 뜻의 이 단어는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직면한 백악관의 대응 보고서에 언급됐을 때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다. 옐런 장관이 올봄부터 싱크탱크 연설과 국제 회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총대를 멘 그가 최근 LG화학의 연구개발(R&D)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프렌드 쇼어링을 강조하리란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옐런 장관의 행보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연대 구축의 일부분일 뿐이다. 미국 상원은 이르면 이번 주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산업 육성법안’ 처리에 나선다. 미국의 지원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대중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의회는 그대로 밀어붙일 태세다. 미국은 아시아의 반도체 강국을 묶는 이른바 ‘칩4(Chip4) 동맹’ 결성도 추진 중이다. 한미일 외에 대만이 멤버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보다 민감도가 훨씬 높다. 프렌드 쇼어링 대상 국가들의 반응 속도와 수위는 다르다. 그러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같은 전략물자의 확보를 위해 미국과 한 배를 타겠다는 목표는 같아 보인다. 동참 결정에는 각국의 이해득실 분석이 깔려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연대가 중국과의 마찰로 인한 손실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계산, 공동전선에서 홀로 떨어져 나갈 경우 산업은 물론이고 안보 측면에서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전략적 결정이라고 보는 게 맞다. 대만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당연히 ‘칩4’에 들어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IPEF 가입도 희망한다”고 귀띔했다. 미국과의 우호 관계가 이런 결정에 중요한 검토 요인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초기 ‘동맹 쇼어링(ally-shoring)’이라고 불리던 단어를 ‘프렌드’로 바꾼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포석 아니었을까. 그러나 국익을 앞서는 우정은 없다. 친구 국가들의 선택은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굳어지는 신냉전 구도 등의 국제 흐름까지 주도면밀히 살피며 뽑아낸 손익계산서의 결과다. 한국도 ‘칩4 동맹’의 가입 여부에 대해 8월 말까지 답변을 내놔야 한다. 고심을 거듭하는 상황이지만 정부가 선택할 여지가 크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3%에 그치는 후발주자다. 한국을 뺀 나머지 국가들이 ‘그들만의 리그’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가 기술 경쟁에서 설 자리는 급속도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반발과 보복조치 가능성에 정부가 대응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국익의 관점에서 최종 판단이 섰다면 결정을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5월 IPEF 가입을 발표하면서 “초반에 들어가야 기존의 규칙을 따라가는 룰 테이커(rule taker)가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룰 메이커(rule maker)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판단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해야 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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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보수당의 대변신[횡설수설/이정은]

    “변화는 거대하고 속도는 놀랍게 빠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후임을 뽑기 위한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신진 후보들의 돌풍이 거세다. ‘명문대 출신의 부유한 백인 남성’이라는 기존 보수당 리더의 틀을 깨는 파격의 드라마가 한창이다. 2차 경선에 올라간 6명 중 3명이 인도와 아프리카계 이민 가정 출신의 비(非)백인이었고, 여성도 절반이다. 존슨 총리가 당선됐던 3년 전만 해도 후보 10명 중 단 1명만이 비백인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후보 중 한 명인 케미 베이드노크 전 평등 담당 부장관은 나이지리아인 부모와 함께 나이지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흑인 여성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16세 때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경선 1위를 달리고 있는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은 케냐와 탄자니아 출생의 인도인 부모를 둔 이민 2세대다. 1차 경선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초기 8명의 후보 명단에 들어있던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은 이라크 쿠르드족 난민 출신이다. ▷영국의 인구 구성은 백인이 전체의 87%에 이르고, 흑인과 아시아계를 합쳐도 10%가 되지 않는다. 보수당 당원으로만 따지면 백인 비중이 95%까지 늘어난다. 당 대표 후보자의 구성이 이를 넘어서는 것을 놓고 “영국의 탈인종주의 신호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후보들은 인종에 근거한 정체성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민자 출신임에도 정부의 강경한 이민자 정책을 지지하고 있고, 불법 이민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방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백인보다도 더 하얗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출신이 곧바로 정책적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후보들의 다양성 뿌리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2005년 당 대표에 선출된 지 일주일 만에 “보수당의 얼굴을 바꾸겠다”고 한 선언이 시작이었다. 그는 백인 남성 중심의 고루한 당 이미지에서 탈피하겠다며 다양성 확보를 위한 5가지 단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여성과 흑인, 장애인, 소수인종의 비중을 확 늘린 후보자 명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보수당의 색채를 바꾸고 있는 이번 경선의 역동성은 20년 가까운 투자의 결과인 셈이다. ▷캐머런 전 총리는 2005년 연설 당시 “정부의 다양성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국가 효율성의 문제”라고 했다. “(다양성의) 균형을 갖추지 못하고 어떻게 국가가 오늘날 영국인 전체의 열망을 다 반영할 수 있겠느냐”고 일갈했다. 정부라면 마땅히 각 그룹의 대표성을 인정하고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 툭하면 ‘서오남’ 소리를 듣는 정부가 면밀히 지켜봐야 할 지도자 인선 작업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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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에어마겟돈’

    이달 중순 미국 디트로이트 공항에 델타항공 9888편 비행기가 도착했다. 영국 런던발 여객기에는 승객이 한 명도 타고 있지 않았다. 대신 여행용 트렁크 1000개가 빼곡히 들어찼다. 과부하가 걸린 런던 히스로 공항의 수하물 시스템 결함으로 주인을 찾지 못한 여행가방들이었다. 전례 없는 ‘수하물 운송 작전’을 놓고 델타 측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했다. 실상은 공항에 나뒹구는 분실 수하물 처리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해외 주요 공항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히스로 공항에서는 인력 부족과 관제 시스템 오류 등 때문에 하루 최대 4000명의 승객이 제때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 공항에서는 길게 늘어선 승객 줄이 바깥 주차장까지 이어지면서 텐트가 등장했다.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에서는 7월 첫 주말에만 가방 1500개가 분실됐다. 미국에서도 독립기념일 연휴에 하루 600편이 결항되고 4300편의 운항이 지연됐다. ▷“여긴 완전히 지옥이야!” SNS에는 혼잡한 터미널에 늘어선 수백 m의 줄과 켜켜이 쌓인 미처리 수하물 사진이 쏟아진다. 난장판이 된 공항은 ‘에어마겟돈(airmageddon)’으로 불린다. 공항(airport)과 종말의 대전쟁(armageddon)을 합친 조어로 외신들이 쓰기 시작했다. 히스로 공항은 결국 “하루 10만 명 이상은 수용이 어렵다”며 항공사들에 티켓 판매 중단을 요구했다. 36시간 내에 응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그러나 일부 항공사가 ‘용납할 수 없는 불합리한 요구’라고 반발하면서 법정 싸움까지 벌어질 판이다. ▷에어마겟돈은 2년 반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공항 및 항공사 인력이 줄어든 게 주요 원인이다. 반면 방역조치 종료 후 ‘보복 여행’ 수요는 폭발했다. 현재 항공업계 부족 인력은 7200명으로 추산된다. 환승이 많은 주요 거점 공항들이 직면한 연쇄적 피해는 심각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하늘길에 제한이 생기면서 병목현상이 심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공항들이 낡은 시스템과 비효율성 책임을 항공사에 떠넘긴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해외 공항 대란은 초가을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히스로 공항이 항공권 판매 제한을 요구한 시기가 9월 11일까지다. 항공사들은 증원은커녕 닥쳐오는 파업 시즌에 기존 인력마저 더 줄어들 상황이다. 그래도 여행자들은 “최소 5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정보를 교환하며 공항에 몰려오고 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공격적인 확산세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코로나 재확산에 물가와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해외여행에 신중해진 한국인에게는 낯설고도 불안한 풍경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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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코로나19 재유행 ‘비상’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여, 아직은 손을 뗄 때가 아니다.” 지난달 중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코로나19에 재감염됐다는 소식에 한 캐나다 언론이 내놓은 경고다. 트뤼도 총리는 올해 1월 감염된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백신에 부스터샷까지 모두 3차례 접종을 완료했지만 재감염을 피해가지 못했다. 캐나다 전체의 일간 신규 확진자 수 또한 최근 1만 명대로 껑충 늘어났다. 한 달 전의 10배다. ▷국내외 코로나19 반등세가 심상치 않다. 국내 신규 확진자 수는 5일 1만8147명으로 40일 만에 가장 많았다. 주간 단위로 봐도 15주 만에 다시 증가세로 반등했다. 일주일 전에 비해 21% 늘어난 수치다. 방역당국은 “예측을 상회하는 수준의 재확산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지난달 넷째 주 신규 확진자가 428만 명(세계보건기구 집계)으로 3주 연속 증가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등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백신 접종이나 감염 후 면역력은 6개월 정도 지속된다. 하루 확진자 수가 60만 명에 달했던 3월 정점을 기준으로 할 때 9월이면 면역력을 유지하는 사람이 급감하게 된다. 겨울로 접어들 즈음엔 하루 확진자 수가 20만 명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기존 백신은 현재 우세종이 되어가는 오미크론의 하위 변이 BA.5.에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변이 바이러스를 타깃으로 한 업그레이드 백신은 빨라야 9월에나 나온다고 한다. 제때 개발되더라도 국내에 들어와 배포될 때까지 한동안 백신 공백기가 불가피하다. ▷반등하기 시작한 국내 확진자 수는 방역당국 집계보다 실제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입원, 격리 기간에 지급되던 생활지원금이 사라지고 재택치료비와 유급 휴가비 지원이 축소되면서 확진돼도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치명률이 0.13%까지 낮아졌다는 점도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고령자와 감염 취약층에는 여전히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바이러스가 코로나다. 롱코비드 같은 후유증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확진자 증가로 의료체계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2020년 발병 이후 5번의 주요 변이를 일으키며 5번 확산한 코로나는 앞으로도 진화를 거듭하며 인류의 면역력을 공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3년째를 맞는 올해 여름의 방역은 어느 때보다 느슨해져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고 일상생활이 정상화되는 시점에 휴가지에는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장 코로나 종식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잘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 마스크 속 열기까지 함께 견뎌야 하는 이유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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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의전 실수 논란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 기간에 불거진 외교 결례와 의전 실수 논란이 시끄럽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눈길을 마주치지 못한 채 이른바 ‘노룩 악수’를 당했다. 나토 공식 홈페이지에는 윤 대통령이 눈을 감은 사진이 게재됐고, 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은 30분 지연되다가 결국 당일 열리지 못했다. 만찬장 입장 시 윤 대통령 부부는 남성의 오른쪽에 여성이 선 다른 정상 부부들과 정반대로 섰다. “의전팀은 뭐 하고 있느냐”는 말이 나왔다. ▷아무리 작은 행사도 단체사진을 올릴 때는 참석자들의 표정을 꼼꼼히 살펴서 가장 좋은 한 장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주요 국제회의의 공식 웹사이트에 한국 정상만 눈을 감은 사진이 올라가 국내 언론까지 퍼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노룩 악수’의 경우 원인 제공은 바이든 대통령이 했지만, 윤 대통령이 인사를 건네는 식으로 매끄럽게 대응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SNS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의전 실수 모음’ 콘텐츠가 돌아다닌다. 누리꾼들은 “중세시대 기사가 왼쪽에 칼을 차고 여성은 오른쪽에 서는 유럽의 에티켓을 몰랐느냐”며 윤 대통령 내외의 위치 같은 미세한 부분까지 문제 삼고 있다. ▷대통령실은 “작은 행정상의 미스”라고 했다. ‘찰나의 사진’으로 전체를 판단하지 말라고도 했다. 다소 억울하다는 뉘앙스다. 회의 일정이 밀린 것은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확정짓는 협상이 길어진 탓이니 의전팀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온정적인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야당은 윤 대통령의 귀국 비행기가 땅에 닿기도 전부터 “의전 실패”라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행사보다 못한 의전”이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외교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예상치 못한 의전 실수와 결례를 완전히 피해가기는 어렵다. 국기를 거꾸로 걸거나 브로슈어 자료를 잘못 표기한 사례들은 해외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튀르키예(터키)는 EU 정상회담에서 여성인 EU집행위원장의 좌석을 따로 마련하지 않아 성차별 논란까지 불렀다. 유독 의전이 까다로운 영국 왕실에서는 해외 정상들의 결례와 실수가 속출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몇 년간 어이없는 의전 실수가 이어지면서 외교부가 감사까지 받았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총리가 움직이는 외교 무대는 수많은 변수가 실시간 작용하는 예측 불가능한 전장이다. 돌발 상황까지 감안해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 게 외교 현장이다. 의전 논란 때문에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성과에 결과적으로 흠집이 나는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외교 행사의 꽃’이라는 의전을 얼마나 치밀하고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지 새삼 되새겨야 할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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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제2의 낙태 전쟁[횡설수설/이정은]

    불과 6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는 피임이 금지돼 있었다. 부부가 피임기구를 쓰거나 피임약을 먹어도 처벌받았다. “침실 생활은 프라이버시”라고 인정한 1965년 ‘그리스월드 대 코네티컷’ 판결이 나오고 나서야 법의 족쇄가 풀렸다. 법에 반대하던 산부인과 전문가가 일부러 피임약 처방을 해주고 체포된 뒤 소송을 통해 얻은 결과였다. 몸과 성(性)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치열한 법정 투쟁을 거쳐 얻어진 것들이 적지 않다.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미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여성들이 지난한 법정 싸움을 거쳐 얻어낸 낙태권이 49년 만에 다시 법정에서 뒤집힌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여성 활동가들은 “되돌리는 데 평생이 걸릴지라도 포기할 수 없다”며 결사항전 태세다. 분노와 눈물, 한탄으로 범벅된 연방대법원 앞 반발 시위 현장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라는 결기 어린 목소리가 쏟아진다.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지키려는 싸움은 결국 여성의 낙태권을 넘어 몸의 자유, 선택할 권리를 지키겠다는 이들의 몸부림이다. 낙태가 수정헌법 14조에 규정된 ‘사생활 권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연방대법원의 논리도 이들의 반발을 키웠다. 보수화된 대법원이 수십 년간 유지돼온 헌법의 해석을 흔들어 19세기로 돌리려 한다는 위기의식이 높다. 이번 판결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3명 중 2명이 이번 판결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제2의 낙태 전쟁’은 정치와 사법, 민간단체, 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총력전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낙태권리 옹호단체들은 11월 중간선거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정치인을 낙선시키는 캠페인에 돌입했다. 최소 1억5000만 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에 앞장서는 민주당에도 벌써부터 후원금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이번 판결을 “신의 결정”이라고 반기는 종교계와 보수 공화당 인사들은 낙태가 금지되는 26개 주뿐 아니라 50개 주 전체의 낙태 시술을 막아버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세계적 흐름과 거꾸로 가는 미국의 판결이 여성의 자기결정권 제한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낙태를 허용해온 유럽 국가들은 낙태 조건을 완화해달라는 목소리를 되레 높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후속 입법이 공백 상태다.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 임신 주수 등에 대한 종교계와 여성계, 정치권의 입장이 모두 다르다. 국회가 논의조차 밀쳐놓은 사이 음지의 불법 시술과 부작용 사례만 쌓여 간다. 여성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직무유기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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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美 국무부 첫 인사 다양성책임자 “정부 조직은 인구 구성 반영해야”

    《30여 년 전 미국 국무부의 신입 직원 오리엔테이션. 젊은 흑인 여성이 검은색 바지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복장 규정이 ‘치마 혹은 드레스’로 돼 있던 시절이었다. 국무부의 오랜 드레스 코드를 과감히 깨버린 이 여성 외교관은 이제 조직 내 성별, 인종, 학력 등의 차별과 맞서 싸우는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and inclusion)’ 전담 부서의 수장이 돼 있다. 지나 애버크롬비-윈스탠리 국무부 ‘다양성·포용성 최고책임자(CDIO)’다.국무부는 지난해 4월 이 조직을 신설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이 우리를 더 강하고, 똑똑하고, 창조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외교관과 본부 직원 등 2만4000명의 소속 공무원은 물론이고 공직사회 전체에도 파급력이 적지 않은 상징적 조치다. 미국 정부 부처의 이런 시도가 ‘서오남’ 지적을 받은 한국의 새 정부에도 시사점을 던질 수 있을까.최근 첫 방한을 한 애버크롬비-윈스탠리 다양성·포용성 최고책임자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조직에서 모든 국민이 (성별, 직종별, 지역별) 대표성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며 “다른 관점과 생각으로 서로의 빈틈을 채워 주는 것이 성공을 위한 대안들을 넓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성별-직군-지역 대표성 필요”―‘다양성·포용성 최고책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권한을 갖는가. “(성별, 인종, 직군별) 대표성을 키우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일들, 이를 위한 문화를 개선하는 일들이다. 이를 위한 예산과 인력 확보, 조직 구축 등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 업무는 스타트업이다. 나는 (채용, 인사 관련한) 권고가 차관보 레벨에서 흐지부지되지 않을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직보한다.” ―다양성이라는 성과를 측정할 수 있을까. 특정 목표가 있는가. “(인사) 쿼터를 설정해 놓지는 않았다. 목표치 자체가 없다. 그 대신 우리는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조직을 추구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구성을 보라. 여성이 50%라면 조직 내에서도 여성 비율이 그에 근접하게 나와야 한다. 정부 조직은 인구 구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다양성 증진이 결국 능력주의” ―능력주의를 다양성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다양성 증진) 그 자체가 미국의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내 이웃이고, 같이 있으면 편하고 서로를 잘 알고… 이런 미러링(mirroring) 수준을 넘어서고자 한다. 국가로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최대한 대표할 사람들을 찾고자 한다. 이런 선택이 때로 편하지 않은 도전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더 낫게 만든다. 일단 다양성을 확보하면 그때부터 철저히 능력과 조건에 따라 평가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부책임자만 해도 인종과 고향, 가정환경, 교육 과정이 모두 다르다. 그는 업무에서 나와는 매우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을 내놓는다. 서로의 빈틈을 채워 줄 수 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한 대안들을 그렇게 확장시켜 나간다.” ―특정 엘리트 집단의 순혈주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사람들은 그게 나쁜 것이라는 인식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일터에 오면 대다수가 비슷한 사람들이다. 평소에 보던 대로 이를 바라볼 뿐 그 자리에 여성이 있는지 없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수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를 지적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인구의 절반을 놓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도록 하는 게 해결의 첫 번째 단계다. 예를 들어 국무부에서 고위직의 84.5%가 백인이라는 수치를 들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막연히 ‘많다’가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가 있으면 그제야 ‘정말 많다’고 느끼는 것이다. 84.5%라는 수치가 괜찮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히스패닉이 17%이고 흑인이 14%이고 아시아인이 8%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를 구성할 때 다양성은 어떻게 확보해야 하나. “정부에서 다양성은 특별히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부는 시민들을 대표하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특정 그룹만을 쓴다면 다른 그룹의 수요가 뭔지조차 알 수 없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이 어떻게 적합한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나. (정부) 참여는 국민의 권리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결정, 정책에 대표자로서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새 정부에 검사 출신이 대통령실에 포진했다. 여성 장관 비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받았다. “우리가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의 범위는 넓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인종, 성별, 종교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근본 바탕이다. 그러나 미국도 ‘Yale, pale, male(예일대, 창백한, 남성·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의 백인 남성들이 요직을 독차지하는 현상을 꼬집는 조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실현이 힘들었다. 경험의 다양성과 함께 지역 다양성도 중요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과거에는 미시시피, 테네시 같은 남부 출신 공직자가 많지 않았다. 이제는 지역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애를 쓰고 있다. 성별 대표성과 관련해서는 여성이 인구의 51%를 구성한다는 점을 다시 언급하겠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부통령을 여성으로 하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그가 흑인 여성을 선택한 것은 매우 대담하고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한국은 단일 민족으로 강한 유교주의 사상이 지배해 왔다.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성이 아직도 기대에 못 미친다.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개선하려고 애쓰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모든 국민의 기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과제다. 방향과 목표는 알지만 결국 어떻게 해내느냐의 문제다. ‘데이아(DEIA·다양성 공평 포용성 접근성을 의미하는 영어 첫 자를 딴 조어)의 렌즈’로 세상을 봐야 한다.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 ―한국은 젠더 갈등도 심하다. 특히 젊은층 남녀 간의 갈등을 풀 해법을 조언한다면…. “(남녀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는 서로를 경청해야 한다. 부차적인 이슈들은 내려놓고, 관계는 강하게 유지하며, 서로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해놓고 대화로 해법을 찾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젠더 갈등은 아니지만 분열이 심화돼 있다. 한국만큼 심각한 문제로, 국가에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주변과 연대 통해 힘 키워야” ―미국에서도 인종 갈등과 함께 아시아 혐오 범죄가 잇따랐다. 개선책은 있는가. “어느 한 그룹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주변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내 고향인 클리블랜드에서 아시아인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가 벌어졌을 때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나도 여기 참가했다. 흑인으로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모든 그룹에 중요하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 그 어떤 그룹도 혼자서 완벽할 수 없다. 나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 ―흑인 여성 대사까지 오르는 길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여러 장벽들을 어떻게 깼나. “정말로 많은 경우에 나는 내 그룹에서 유일한 흑인, 유일한 여성이었다.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이런 경우 나를 지지해줄 우군 동료를 찾거나, 아니면 혼자서도 목소리를 낼 만큼 용감해져야 한다. 이런 경험들을 겪으면서 나는 다른 관점과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대외정책을 다루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다양성이 중요한가. “외교는 결국 전쟁을 피하는 것이다. 군사적 방법이 아닌 외교적 해법을 찾는 일에는 더 넓은 관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여성과 소수자는 이런 일을 잘한다. 이들은 애초부터 파워를 갖지 못한 위치에서 출발해 무언가를 억지로 강요할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군을 만들고 관계의 연결고리와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야 한다. 이런 훈련이 된 사람들이 일도 잘한다.”미 국무부 ‘다양성·포용성 최고책임자’ 지나 애버크롬비-윈스탠리는…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국무부에서 외교관 업무를 시작해 이라크,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등지에서 근무했다. 200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국 총영사로 재직할 당시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공격에 용기 있게 대처한 공을 인정받아 공훈상을 받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방부, 상원 외교위원회 파견 근무를 거치며 중동 외교와 대테러, 입법 자문 등을 맡았다. 몰타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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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담배꽁초 채운 젖병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려는 청소년이 돈을 내려다 “(값이) 충분치 않다”는 주인의 말에 멈칫한다. 그는 펜치를 꺼내 스스로 치아를 뽑은 뒤 이를 비용으로 치르고 담뱃갑을 받아 든다. 같은 상황에서 또 다른 10대는 얼굴 피부를 쭉 벗겨내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2014년 미국에서 방영된 금연광고 시리즈 장면들이다. 제목은 ‘진짜로 치러야 할 대가’. 흡연이 치아와 잇몸, 피부를 손상시킨다는 경고를 담았다. ▷흡연의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의 금연 캠페인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주기적으로 진행 중이다. 주요 국가들이 내놓는 금연 동영상 광고와 담뱃갑 위의 경고 그림 및 문구는 상당수가 섬찟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보건복지부가 어제 발표한 새 경고 그림도 일부 수위가 더 높아졌다. 그림 속 변색 치아는 더 시커멓고 누렇게 바뀌었고, 흡연으로 망가진 폐와 뇌는 상태가 심각하다. 새로 바뀐 11종의 사진 중에는 담배꽁초가 가득 찬 젖병을 빨고 있는 아기의 그림도 있다. ▷금연광고 중에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경고하는 내용도 많다. 연간 800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흡연 사망자 중 간접흡연 피해자는 100만 명. 특히 임신부 흡연과 어린이 간접흡연은 심각한 피해로 꼽힌다. 칠레의 한 금연 캠페인은 ‘흡연은 살인’이라는 문구와 함께 어린 소년이 얼굴에 씌어진 투명 비닐봉지 속에서 숨막혀하며 울부짖는 그림을 담았다. 자세히 보면 비닐이 아닌 하얀색 연기다. 임신부가 피우는 담배 연기가 배 속 태아에게 옮겨가는 경고 그림의 제목은 ‘이동식 (살인)가스실’이었다. ▷금연 캠페인의 충격요법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목에 구멍이 뚫리고 발성 보조 장치에 의존해 로봇 같은 기계음을 내는 흡연 피해자들의 모습이 보는 이를 경악시켰다. 호주에서는 구강암 환자의 썩은 잇몸과 입이 TV 광고에서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영상에 불편한 장면이 포함돼 있다’는 안내문이 붙는 경우도 적잖다. 한국에서 “폐암 하나 주세요” 멘트와 함께 ‘흡연은 질병’이라는 문구가 공개됐을 때는 “흡연자를 환자로 매도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각종 금연 캠페인 속에 한국의 흡연율은 꾸준히 감소하는 그래프를 그려 왔다. 그러나 가향(加香) 전자담배가 인기를 끄는 추세로 볼 때 흡연자가 줄어드는 추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10여 년 전만 해도 3억 갑 미만이었던 국내 가향담배의 판매량은 2020년 14억 갑에 육박한다. 흡연자들은 자신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자신의 건강은 물론 남의 건강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소 섬뜩하더라도 금연 캠페인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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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재산 빼앗기는 노인들

    미국에서는 60대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재산을 빼앗기거나 경제적 거래, 계약 시 명의를 도용당한 경험이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매년 피해 규모가 365억 달러에 이른다. 캐나다의 경우 이런 피해를 당한 사례가 25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식에게 주택 명의를 넘겨준 뒤 쫓겨나 쉼터나 친척집을 전전하는 노부부들의 사연도 있었다. 노인들을 상대로 한 ‘경제적 학대’의 사례들이다. ▷1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이런 날을 제정할 필요가 있을 만큼 노인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는 물론이고 경제적 학대, 유기, 방임도 노인학대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도 매년 증가 추세로, 2020년 한 해에만 6259건의 학대 사례가 발생했다. 이 중 경제적 학대 피해는 연평균 400건을 넘는다. 노인 연금과 복지 지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와 관련된 사기, 절도 피해가 늘어났다. ▷자식이 부모의 연금이나 임대료를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처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이는 벌금 혹은 징역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경제적 학대’ 행위다. 부모의 동의 없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유언장을 허위로 작성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올해 4월 경기 수원에서는 치매를 앓는 80대 노모의 연금보험료를 1억 원 가까이 가로채 생활비, 유흥비 등으로 쓴 50대 딸과 20대 손녀들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경제적 학대의 징후들은 다양하다. 노인들이 갑자기 평소보다 큰 씀씀이를 보이거나 거액을 인출하는 경우, 강요당하듯 귀중품을 파는 경우, 재산 명의나 유언장을 변경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 노인 복지 기관들은 “주의를 기울이라”며 이런 징후들을 상세히 나열하고 있다. 미국의 로펌과 금융회사들은 방지, 대응책을 홍보하고 세미나도 연다. 치매나 기억 감퇴 등을 겪지 않은 경우에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족뿐 아니라 친구, 간병인 등도 경제적 학대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한국에서 노인학대의 문제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노인 부양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도 무너지고 있다. 받기는커녕 남은 돈마저 억지로 내줘야 하는 부모들의 사례도 늘어날 것이다. 6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식에게 재산을 미리 상속해 주지 말라”는 말을 자못 진지한 조언처럼 주고받는 세태에는 이런 불안이 깔려 있다. 관리할 노후 자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기초생활연금조차 빼앗기는 노인들의 삶은 처연하다. 한 세대를 살아낸 어르신들의 말년이 경제적 학대의 피멍으로 얼룩지고 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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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영원한 국민 MC 송해

    “전구우우욱∼ 노래자랑!” 경쾌한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MC 송해의 오프닝 멘트는 매주 일요일 아침을 깨우는 일성이었다. 진행 횟수 1700여 회. 무대 출연자 3만 명. 관객 1000만 명. ‘국민 MC’ 송해가 향년 95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세운 기록들이다. 스스로를 ‘딴따라’로 불렀던 그는 “어원인 프랑스어 ‘팡파르(fanfare)’는 스타의 등장을 알리는 나팔 소리”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송해가 이끄는 전국노래자랑 무대가 열리면 온 마을이 들썩였다.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르는 꼬마부터 랩송을 부르는 어르신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잔치였다. 송해는 ‘땡’ 소리에 탈락한 출연자들을 정겨운 입담으로 격려하고, 흥겨운 공연에는 어깨춤 장단을 맞췄다. 맛깔스러운 만담을 통해 출연자들의 인생 스토리에 색을 입혔다. 때로 구수한 사투리, 때로 망가지는 몸 개그를 섞은 능청스러운 진행에 객석에서는 수시로 폭소가 터졌다. 한껏 무르익은 무대 위에서 숨겨져 있던 스타들의 끼는 아낌없이 폭발하며 ‘딩동댕동’을 이끌어냈다. ▷송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34년간 한결같았다고 주변인들은 전한다. 녹화를 갈 때면 꼭 하루 전에 그 마을에 도착해 1박을 했다. 목욕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동네 구석구석을 살폈다. 녹화 당일에도 3시간 전에는 행사장에 도착해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멀리 지나가는 소달구지를 보고 동네 아낙을 보고 하늘도 올려다본다”고 했다. 현지 분위기에 푹 빠져들 때까지 공감과 소통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전국 팔도를 웃기고 울린 진행 솜씨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70년 가까이 현역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최장수, 최고령 MC로 남은 송해의 기록은 한동안 깨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권태는 절대로 느끼지 말라. 여러분이 하는 일에서 도태되지 말라”는 조언을 자주 했다. 고령임에도 “나는 BMW(Bus, Metro, Walking)만 탄다”며 검소하게 몸을 움직였다. 코로나19로 인한 활동 중단과 건강 악화만 아니었으면 100세 MC 기록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연예계 후배들은 안타까워한다. ▷6·25전쟁 당시 혈혈단신 월남한 뒤 생계에 몸부림쳤던 삶의 역정 때문이었을까. 어려운 이들에게 장학금을 쥐여주고, 늘그막의 동료들을 살뜰히 챙긴 그의 향기는 무대 뒤에서 더 짙다. 지인들은 그의 단골집이었던 종로 낙원상가 앞의 2000원짜리 국밥집을 찾고 인근 ‘송해길’을 거닐며 그를 회고한다.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을 꼭 진행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라면 하늘에서라도 고향 사람들과 흥겨운 한마당을 풀어내고 있을 것만 같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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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우리는 칠면조가 아니다”

    알록달록한 열기구가 가득한 카파도키아의 하늘, 하얀 치마가 활짝 펼쳐지도록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세마춤, 고대 하드리아누스 신전…. 터키 유적지와 문화가 소개될 때마다 관광객들은 “헬로 튀르키예”를 외친다. 터키 공영방송에서 방영 중인 이 1분짜리 동영상의 홍보 대상은 관광지가 아니라 ‘튀르키예’라는 이름이다. 터키의 영문 국명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정부 캠페인이다. ▷터키 정부가 최근 영문 국호를 ‘T¨urkiye(튀르키예)’로 변경해 달라고 유엔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등에서는 앞으로 터키의 정식 국호를 튀르키예로 쓰게 된다. ‘터키인의 땅’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터키가 1923년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을 때부터 써온 국호다. 문제는 영어식 국명인 ‘터키(Turkey)’가 칠면조와 스펠링이 같다는 것. 일반명사로 멍청이, 패배자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도 터키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국가가 개명하려는 목적은 다양하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통용되던 ‘홀란트(Holland)’라는 이름을 폐기했다. 마리화나와 성매매가 합법화된 북홀란트 지역의 퇴폐적인 이미지가 국가 전체로 확대된다는 이유였다. 체코는 형용사 ‘Czech’에 ‘공화국’을 붙여 사용하는 국호가 너무 길다며 ‘Chechia’라는 이름을 만들어 병용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식민지 시대에 사용됐다는 이유로 ‘실론’이라는 기존 국호를 버렸고, 스와질란드(Swaziland)는 ‘Switzerland(스위스)’와 헷갈리지 않겠다며 독립 50주년이 되던 2018년 ‘에스와티니’로 새 국호를 달았다. 이미지를 바꾸는 리브랜딩 작업이다. ▷터키의 대외 이미지 개선 시도는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마주보는 터키는 러시아-우크라 간 평화협상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나토(NATO) 회원국으로 목소리도 키워가는 중이다. 그런 터키로서는 추수감사절의 칠면조 요리를 연상시키는 국명이 달가울 리가 없다. 터키 정부는 영문 국호 변경으로 무역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출품에 ‘메이드 인 튀르키예’ 표기를 시작했다. ▷터키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못마땅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불만을 대외 캠페인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2003년부터 19년째 장기 집권 중인 그는 최근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환율 하락으로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호를 바꾸면서 “문화와 문명, 국가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했다. 나라의 가치는 이름뿐 아니라 실제 국력과 국격이 뒷받침될 때 올라간다는 점도 함께 되새기면 좋겠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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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초등생 별명 금지 [횡설수설/이정은]

    학창 시절 별명 하나 갖지 않은 이는 찾기 어렵다. 키가 작으면 ‘땅꼬마’, 얼굴이 사각형이면 ‘도시락’, 얼굴이 까무잡잡하면 ‘시커먼스’ 같은 별명이 따라붙었다. 장점을 추켜세우는 것보다는 외모 특징이나 신체적 약점을 잡아서 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문제의식이 약했던 과거에는 장난처럼 넘어갔지만 요즘은 학교폭력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대구에서는 동급생을 ‘진지충’, ‘설명충’이라고 불렀던 중학생이 법정에까지 섰다. ▷최근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끼리 별명을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성 뒤에 존칭인 ‘상(さん)’을 붙여 부르도록 교칙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뉘앙스가 다르긴 하지만 한국식으로 하자면 초등학생들끼리 서로 ‘○○ 씨’에 가까운 존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학생들이 별명을 부르는 게 ‘이지메’(집단 따돌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42만여 건의 ‘이지메’ 사례 중 60%가 ‘친구들의 놀림’이었다. ▷별명 금지 교칙을 놓고 일본 내에서는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상대에게 모욕이나 상처를 줘서는 안 되겠지만, 별명 자체가 사라지면 학교가 너무 삭막해지는 게 아니냐는 항변이 나온다. 금지를 명문화해 놓으면 아이들이 오히려 더 별명을 부르고 싶어지는 역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는 교사들도 있다. 학교 밖에서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일본의 한 리서치 회사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별명 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의견이 27.4%로 찬성(18.5%)보다 많았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은 과거부터 집단 따돌림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돼 왔다.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 소수자에 대한 배척 현상이 두드러진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감염자가 나온 학교를 상대로 “불 질러 버리겠다” 같은 공격이 이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사이버 따돌림 등으로 일본 초중학생의 자살 건수는 역대 최고치까지 늘어났다.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상’ 존칭을 붙이도록 한 데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교육당국의 절박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 추세인 학교 사이버폭력 중 언어폭력은 42.7%로 가장 많다. ‘이백충’(부모 월수입이 200만 원)처럼 가정형편을 가지고 놀리는 저급한 별명까지 생겨났다. 거주하는 아파트 종류나 평수를 조롱하는 별명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사용되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별명 금지 교칙을 수입해야 할 판이다. 꼭 ‘님’이나 ‘씨’ 같은 존칭을 붙일 필요도 없다. 상대의 소중한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게 존중과 존경의 시작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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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美 10대의 총기 난사

    미국 공화당의 거물 정치인인 밋 롬니 상원의원은 최근 텍사스주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가 역풍을 맞았다. 마지막에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한마디 덧붙인 것이 빌미가 됐다.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이 “배은망덕하다” “겁쟁이” 같은 비난을 쏟아내며 집중포화에 나선 것. 이들은 롬니 의원이 전미총기협회(NRA)에서 지금까지 1300만 달러(약 165억 원)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까지 공개했다. NRA는 총기 규제에 반대해온 미국 내 최대 총기 옹호 단체다. ▷19명의 초등학생 희생자를 낸 이번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범인이 18세 청소년이라는 사실도 미국인을 경악시켰다. 얼마나 총기 규제가 느슨하면 10대 청소년까지 총을 손에 넣어 범죄에 사용하느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텍사스주에서는 21세 이상이면 전과나 법적 제한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권총을 소지할 수 있다. 라이플총의 경우 허가증 없이도 구매가 가능하다. ▷총기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들끓고 있지만 실제 전망은 어둡다. 20명의 어린이 희생자를 낸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의 총기 규제 시도가 이어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NRA가 로비력을 총동원해 의회의 총기 규제 관련 입법을 막아온 것은 이미 악명이 높다. NRA의 자금력이 최대 무기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지원한 선거 자금만 70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NRA만 탓하기도 어렵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로 여겨진다. 이를 규제하는 것은 ‘무기 소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2조 위반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규제 여론이 높아질 때마다 NRA로 되레 후원금이 몰리는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상당수 교외지역에서는 아직도 야생동물의 위협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는 경찰 공권력이 닿기를 기다릴 틈 없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사람보다 총이 더 많은 나라가 됐다. 인구 100명당 총기 수가 120.5개로 전 세계 1위다. FBI에 따르면 인구밀집지역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은 지난해에만 61건. 2020년에는 교통사고가 아닌 총기 관련 사건사고가 10대와 어린이 사망 원인 1위가 됐다. 그래도 정치권은 “정신병 환자 관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해법으로 변죽만 울리고 있다. 로비 자금에 파묻힌 워싱턴 정치의 한계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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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대만은 미국이 지킨다”

    2020년 8월 미 국방부에서 진행된 미중 간 시뮬레이션 전쟁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정된 상황은 대만해협에서의 무력 충돌. 펜타곤과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군사작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국 쪽 ‘블루팀’은 중국 쪽 ‘레드팀’에 참패했다. 역내 가용 전함과 전투기, 잠수함, 지상병력을 모두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존 하이튼 미 합참차장은 이후 한 행사에서 이 결과를 “비참한 실패”라고 불렀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미국이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내 안보 위협이다. 펜타곤의 고위 장성들은 2027년이 되기 전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미국이 대만 지원에 나선다고 해도 격퇴를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대만의 거리는 불과 145km. 워게임 결과에 따르면 대만 공군은 몇 분 만에 전멸해 버린다.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등 무서운 속도로 군사력을 증강해온 중국이다. 섣불리 나섰다간 중국과의 전면전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것도 미국에는 부담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군사 개입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매번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화들짝 놀란 백악관 대변인실과 펜타곤이 부랴부랴 진화에 나서는 패턴도 반복되고 있다. 첫 발언 때만 해도 “고령의 바이든 대통령이 말실수를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이쯤 되면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게 맞다. 호시탐탐 대만 공격 기회를 엿보는 중국을 향해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막상 대중 견제를 위해 출범시킨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는 대만을 끼워주지 않았다. 중국 눈치를 보던 아세안(ASEAN) 10개 회원국 정상들은 백악관까지 불러 참여를 설득하면서 참가를 원했던 대만은 배제시켰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는 미국이 중국과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내린 결정일 것이다. 쓰린 속을 달래고 있을 대만을 향해 바이든 대통령이 말실수 형식을 통해서나마 ‘든든한 뒷배’ 역할을 자임한 것은 아닐까. ▷미국은 대만에 ‘MQ-9 리퍼’ 같은 최신무기 판매를 허용하고, 대만군의 훈련을 도우면서 대만관계법에 따라 가능한 군사적 지원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 파트너 국가의 안보 위협을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런 지원을 이끌어내는 힘은 대만이 보유한 첨단 반도체 기술력과 TSMC 같은 대만 기업들이다. 국력을 결집해 키워낸 ‘실리콘 방패’의 힘이 전투기와 탱크 못지않음을 대만이 보여주고 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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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美中 간 선택, 이젠 한국의 몫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관련된 내용과 표현 수위는 몇 년 전부터 최대 조율 과제였다. 공동성명에 ‘중국’이 명시된 적은 없지만 대만해협, 인권, 5G 기술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내용을 놓고 한미 양측은 매번 적잖은 물밑 신경전을 치렀다. “이러면 우리는 중국한테 죽는다”는 읍소부터 낯을 붉혀가며 내놓는 항의까지 한국 외교관들이 구사한 ‘밀당’ 방식은 다양했다. 공동성명에 대만해협 언급이 처음 들어간 건 지난해 5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였다. ‘문재인 정부=친중(親中)’으로 인식하고 있던 워싱턴의 싱크탱크 인사들은 문 정부가 이에 합의했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싱가포르 선언’과 ‘판문점 선언’의 계승을 공동성명에 담는 대가로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 동참 요구를 덥석 받아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청와대와 주미대사관 인사들은 부인한다. 초안에서 미국이 요구한 내용은 훨씬 많았는데, 그나마 그 수준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중국 견제의 성격을 띤 내용들이 확 늘어났다. 윤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공동성명에서 확인한 일부 내용은 벌써부터 실제 이행 단계로 진입했다. 경제안보 협력과 기술동맹을 통해 한미 관계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모호함은 없어 보인다. 출범 후 11일 만에 이런 결단을 내놓기까지 주저한 흔적도 없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주미대사의 발언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동맹인 미국을 상대하는 현장에서조차 중국의 눈치를 봤던 게 한국 외교의 실상이었다. 이제 윤 정부의 대외 지향점이 분명해진 만큼 앞으로 최소 5년간은 이런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은 사라졌다. ‘안미경미(安美經美)’ 식의 지나친 편중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같은 핵심 산업 분야에서 한미가 밀착하는 만큼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은 존립 근거부터 약해진 게 사실이다.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한 한국의 걱정을 미국도 모르는 게 아니다. 미 당국자들은 사석에서 “걱정 마, 우리가 지켜줄게”라며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구체적인 방어책이나 지원 방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대신 미국은 한국이 동맹 관계를 더 단단히 할수록 대중국 파워가 커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윤 대통령의 당선 직후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 취임식에 2인자인 왕치산 국가부주석을 보낸 것을 근거로 든다. 지난해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이 언급됐을 때 중국의 반발이 우려만큼 거칠지 않았다는 점 또한 미국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당시 한미 양국은 중국의 반응 강도가 10점 척도로 따졌을 때 3, 4점 정도에 그쳤다는 평가를 공유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식의 이분법적 질문은 당초 접근법부터 틀렸던 측면이 없지 않다. 현재의 외교 진영 싸움은 특정 국가라기보다 자유, 인권, 공정 같은 가치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IPEF만 해도 ‘조세와 반(反)부패’ 같은 4가지 분야별로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어느 국가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은 한국이 아닌 중국의 몫이다. 글로벌 규범과 시장경제의 룰을 지키며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할지 여부에 대한 선택 말이다. 한국에 으름장을 놓으며 또 다른 보복에 나설 것인지, 동반성장의 공통분모를 찾아 협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중국이 답을 내놔야 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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