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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무당 경력 30년 차에 돌연 신기(神氣)를 잃어버린 주인공 문수. 신기 들린 연기를 하면서 애써 ‘니세모노(にせもの·가짜)’ 처지를 부정하는 그의 앞집에 에코백에 무령을 매단 ‘신애기’가 이사 온다. 문수는 앳된 무당을 업신여기지만, 신애기는 이내 오금이 저리게 하는 눈빛으로 독침을 쏜다.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혼모노’) “바나나맛이 나지만 바나나는 아닌 우유.”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놓인 것들로 가득한 오늘날의 세태를 예리하게 포착한 단편들이 수록된 책이다. 저자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뒤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등을 펴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표제작을 비롯해 대규모 집회 한복판에서 혼란을 겪는 재미교포를 그린 ‘스무드’ 등 블랙코미디 같은 소설 7편이 담겼다. 수록작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누가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당황하며 마블… 정도를 꼽고, 멜론 순위권에 있는 노래만 듣던” 평범한 주인공이 문제적인 영화감독의 팬클럽에 가입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취향이랄 게 별로 없다가 논란이 많은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된 주인공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맹목적 팬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심리적 혼란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잉태기’는 임신한 딸을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출가한 성년의 딸에 대한 엄마와 할아버지의 과도한 애정 혹은 집착은 원정출산을 하느냐 마느냐부터 사사건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을 향해 가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딸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개성 넘치면서도 핍진성 높은 서사와 등장인물은 독자로 하여금 현실의 여러 문제를 반추하게 만든다. 이야기 속 허구와 진짜 세상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간명한 문체를 타고 빠르게 질주하던 이야기가 은유하듯 따끔한 문장으로 매듭지어질 때 독자의 마음에 “펑, 무언가 터지던 순간”을 남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넷플릭스 한국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면서 작품에서 언급한 ‘장자제(张家界·장가계)’ 시 당국이 이를 이용해 관광지 홍보에 나서고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에 대해 “중국이 드라마를 몰래 훔쳐보고 있단 걸 공개적으로 시인한 꼴”이라고 지적했다.‘폭싹 속았수다’는 지난달 28일 공개된 마지막회에서 “내년 가을엔 장가계에 가서 단풍 구경하자”는 대사가 나온다. 이에 장자제 시는 기관지인 장자제일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장자제를 언급해줘 감사하다”며 “가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바로 출발하라”고 게재했다. 아울러 김원석 감독과 임상춘 작가 등을 초청하겠단 의사도 밝혔다.서 교수는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오징어게임 시즌2가 공개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선 ‘도둑 시청’이 일상”이라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더 기막힌다. 중국 지방자치단체마저 훔쳐본 영상을 홍보에 버젓이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현재 중국은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지 않아 드라마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중국평점사이트 ‘도우반’에서 평점 9.4점을 기록하는 등 버젓이 불법 시청하는 행태가 만연하다. 서 교수는 “이젠 우리 정부가 나서야만 할 때”라며 “중국의 도둑 시청을 묵과하지 말고 강하게 어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에 대해 종교계가 “결정을 존중하고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잇달아 밝혔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4일 재판관 8인의 일치로 파면이 결정된 데 대해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수호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역사적 결정을 환영한다”고 입장을 냈다. 협의회는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공정한 법리와 상식에 따라 판결에 이른 것에 경의를 표한다. 탄핵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떠나,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한국교회총연합은 “욕설과 비방과 폭력은 복음적 행동이 아니다. 깊은 통찰과 절제된 언어와 행동으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힘쓰기 바란다”고 당부했다.한국천주교회의는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이자 국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하는 권력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든지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정치의 근본임을 깊이 인식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어 “국가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한다”고 했다.원불교는 “헌법에 기초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세운 결정”이라고 했다. 이어 “성숙한 시민의식과 우리나라의 삼권분립 원칙이 굳건히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했다”며 “정치권은 이번 사태에 대해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며 깊이 반성하고 자성하는 시간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6일 중국 홍콩에서 열리는 한 대형 경매에 지금까지 확인된 고구려 인장(印章) 가운데 최상급인 ‘황금 인장’(사진)이 출품된다. 진품이라면 한반도 삼국시대를 포함한 고대 국가의 금인(金印)으로는 최초로 확인된 국보급 유물이다.3일 경매회사 차이나 가디언에 따르면 해당 금인에는 ‘진고구려귀의후(晉高句驪歸義侯)’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높이가 2.8cm인 인장은 말로 추정되는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글자가 새겨진 면은 가로세로 2.4cm 안팎이다. 현지에서 경매 추정가는 15만3800∼28만2100달러(약 2억2400만∼4억1200만 원)이다. 과거 진(晉)나라가 고구려의 왕족이나 귀족에게 수여한 관인(官印)으로 추정된다. 익명의 일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구체적인 출처 및 수집 경위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유물 개요를 작성한 돤카이(段凱) 중국미술학원 한자문화연구소 부연구원은 “음각된 필획이 균일하고 정돈돼 있으며, 선은 직선으로 시작하고 끝난다”며 “맑고 정교한 필치가 전형적인 서진(西晉) 시대 인장 양식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인장은 우리나라와 고대 중국 간의 외교 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다.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고대 중국은 주변 이민족에게 ‘국왕인’(군주), ‘귀의왕후인’(내부 지배층), ‘솔선읍군장인’(하위 수장) 등 3등급으로 분류된 관인을 주면서 외교 관계를 맺었다”며 “현존하는 고구려 인장 6점이 모두 구리로 만들어진 ‘솔선’계인 것과 달리, (진품이면) 순금으로 제작된 ‘귀의후’ 인장의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인장 중에도 중국이 수여한 금인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이 금인이 북방 민족에게 밀려난 진나라가 317년 강남에서 새로 터를 잡았던 동진(東晉) 시기에 보낸 것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서에 동진과 고구려의 외교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수세에 몰린 동진이 고구려 등 주변국을 포섭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관인을 분급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고구려 인장은 6점이 공식적으로 확인됐지만, 우리나라에서 관리되는 건 하나도 없다. 중국역사박물관 등 중국 기관이 3점을 소장하고 있고, 나머지 3점은 소장처가 불분명해 중국에서 개인이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또다시 중국 소장가의 손에 들어가면 외부로 공개되지 않아, 우리로선 연구 조사조차 이뤄지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우리 문화유산 당국도 해당 금인의 경매 출품 사실을 인지하고 진품 및 구입 여부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는 “중국에서 고구려 인장이 몇 차례 소개됐으나 가품인 경우가 적지 않아 추가 검증이 꼭 필요하다”며 “금으로 된 유물은 과학적으로 분석해도 진위 파악이 쉽지 않아 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일제강점기에 반포됐던 한글점자에 관한 기록물이 원모습에 가깝게 복원됐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3일 “국가등록문화유산인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 일부를 보존 처리했다”고 밝혔다. 훈맹정음은 1926년 교육자 박두성(1888∼1963)이 우리 실정에 맞게 제작한 6점식 한글점자다. 관련 유물 8건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이번에 보존 처리된 유물은 ‘맹사일지’와 ‘일지’(사진)다. 두 유물은 훈맹정음 제작과 관련된 수기 및 여러 자료를 엮어 놓은 기록물이다. 훈맹정음 제작을 위한 기계의 차용증, 당시 한글 정책에 관한 신문기사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낱장의 종이를 여러 장 겹쳐 접착제로 붙이거나 곳곳에서 찢김, 접힘 등이 확인됐다. 센터는 2023년 1월부터 약 2년간 ‘맹사일지’의 표지를 새로 만들어 붙이고 종이의 산성화를 예방하는 처리를 했다. ‘일지’는 결실된 부분을 복원해 원래 모습과 가깝게 만들었다. 보존 처리를 마친 유물은 소장처인 송암점자도서관으로 돌아가 전시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내릴 때 인근 안국역 일대와 광화문은 경찰버스 ‘차벽’과 기동대로 촘촘히 둘러싸여 통제될 예정이다. 안국역을 비롯한 인근 지하철역도 열차가 서지 않고 통과해 직장인들은 출근길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 찬반 시위가 곳곳에서 격화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경찰은 양쪽 시위대의 충돌을 막는 데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불상사를 대비해 의료진과 소방 인력도 곳곳에 배치된다. ● 1일 안국역 출입구 먼저 폐쇄… 선고일 갑호비상 경찰은 선고 사흘 전인 1일부터 24시간 상황관리 체제에 돌입하고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재동초등학교까지 약 200m 구간에 경찰 차벽이 설치됐고,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도 통제됐다. 경찰은 헌재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 시위대에도 철수를 요청했다. 낮 12시부터는 안국역 2∼5번 출입구가 모두 폐쇄됐다. 경찰은 2일 지휘관 화상회의를 열고 경비 대책을 최종 점검할 계획이다. 선고 당일 경찰은 예고한 대로 ‘갑호비상’을 발령하고 헌재 반경 약 100m 이내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철저히 출입을 통제한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사거리 일대는 경찰버스 차벽이 둘러싼다. 안국역은 모든 출입구 이용이 전면 통제되고 열차도 서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내렸던 직장인들은 경복궁역이나 종로3가역에서 내려 걸어와야 한다. 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광화문역, 경복궁역, 종로3가역, 종각역, 시청역, 한강진역도 무정차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당일 상황에 따라 출근길 혼란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헌재 주변 학교들은 모두 임시 휴업에 들어간다. 인근 교동초, 운현초, 중앙중, 중앙고 등 학교와 유치원 11곳이 문을 닫는다.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의 한남초와 병설유치원도 휴업한다. 헌재 주변 궁궐과 박물관 등 문화유적 시설도 하루 문을 닫는다.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창덕궁, 덕수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모두 휴관한다.● 기동대 1만4000명 투입하고 차벽, 집회 대응 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탄핵 촉구 진영 사이의 격렬한 집회가 예상되는 가운데 경찰은 이날 전국 가용 경찰력을 총동원한다. 전체 기동대 338개 부대 2만여 명 중 210개 부대 1만4000여 명을 서울에 집중 배치한다. 전국 가용 기동대의 60%가 서울에 투입되는 셈이다. 서울경찰청 기동대는 안국역과 광화문 일대를, 그 외 지방에서 상경한 기동대는 대사관 경비 등을 맡는다. 경찰은 양측 집회 참가자들이 충돌하지 않도록 미리 구역을 나눠 놓을 방침이다. 안국역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탄핵 찬성 집회가, 동쪽과 남쪽에는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헌재에서 다소 떨어진 광화문 역시 이날 하루 종일 집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광장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탄핵 촉구 집회가, 남쪽에는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다. 경찰은 그 사이를 차벽으로 막을 예정이다.● ‘헌재 난입’ 가장 우려… 의료진도 곳곳 배치 경찰은 집회 격화가 불상사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장 경계하며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1월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난입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경찰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시위대가 헌재로 난입하는 상황이다. 선고 당일 경찰은 형사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물론 경찰기동대도 가까운 곳에 대기시킬 예정이다. 시위대가 헌재에 난입하면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시위에 동원될 수 있는 위험한 물품, 물건이 많은 헌재 주변 주유소, 공사장은 이날 하루 문을 닫는다. 경찰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기름이나 장비 등이 시위대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물을 투척할 가능성이 있는 인접 건물 22곳의 옥상 출입도 제한된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헌재 반경 1㎞에 있는 노점상에 선고 당일 휴무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인근 상가에는 입간판, 화분, 유리병 등을 모두 치워 달라고 부탁했다. 부상자를 대비해 안국역, 청계광장, 한남동, 여의대로 등 4곳에는 현장 진료소가 세워지고 의사와 간호사가 배치된다. 서울시는 상황실과 연결된 교통·방범용 폐쇄회로(CC)TV를 통해 집회 지점을 주시하며 대응할 방침이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내릴 때 인근 안국역 일대와 광화문은 경찰버스 ‘차벽’과 기동대로 촘촘히 둘러싸여 통제될 예정이다. 안국역을 비롯한 인근 지하철역도 열차가 서지 않고 통과해 직장인들은 출근길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 찬반 시위가 곳곳에서 격화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경찰은 양쪽 시위대의 충돌을 막는데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불상사를 대비해 의료진과 소방 인력도 곳곳에 배치된다.● 1일 안국역 출입구 먼저 폐쇄…선고 당일 갑호비상경찰은 선고 사흘 전인 1일부터 24시간 상황관리체제에 돌입하고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재동초등학교까지 약 200m 구간에 경찰 차벽이 설치됐고,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도 통제됐다. 경찰은 헌재 앞에서 천막농성 중인 시위대에도 철수를 요청했다. 낮 12시부터는 안국역 2~5번 출입구가 모두 폐쇄됐다. 경찰은 2일 지휘관 화상회의를 열고 경비 대책을 최종 점검할 계획이다.선고 당일 경찰은 예고한대로 ‘갑호비상’을 발령하고 헌재 반경 200m 이내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철저히 출입을 통제한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사거리 일대는 경찰버스 차벽이 둘러싼다. 안국역은 모든 출입구 이용이 전면 통제되고 열차도 서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때문에 이곳에서 내렸던 직장인들은 경복궁역이나 종로3가역에 내려 걸어와야 한다. 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광화문역, 경복궁역, 종로3가역, 종각역, 시청역, 한강진역도 무정차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당일 상황에 따라 출근길 혼란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헌재 주변 학교들은 모두 임시 휴업에 들어간다. 인근 교동초, 운현초, 중앙중, 중앙고 등 학교와 유치원 11개곳이 문을 닫는다.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의 한남초와 병설유치원도 휴업한다. 헌재 주변 궁궐과 박물관 등 문화유적 시설도 하루 문을 닫는다.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덕수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모두 휴관하고 서울공예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도 휴관을 검토 중이다.● 기동대 1만4000명 투입… 차벽-기동대로 집회 대응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탄핵 촉구 진영 사이의 격렬한 집회가 예상되는 가운데 경찰은 이날 전국 가용 경찰력을 총동원한다. 전체 기동대 338개 부대 2만여 명 중 210개 부대 1만4000여 명을 서울에 집중 배치한다. 전국 가용 기동대의 60%가 서울에 투입되는 셈이다. 서울경찰청 기동대는 안국역과 광화문 일대를, 그외 지방에서 상경한 기동대는 대사관 경비 등을 맡는다.경찰은 양측 집회가 충돌하지 않도록 미리 구역을 설정해 나눠놓을 방침이다. 안국역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탄핵 찬성 집회를, 동쪽과 남쪽에는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헌재에서 다소 떨어진 광화문 역시 이날 하루 종일 집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광장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탄핵 촉구 집회가, 남쪽에는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다. 경찰은 그 사이를 차벽으로 막을 예정이다.● ‘헌재 난입’ 가장 우려… 의료진도 곳곳 배치경찰은 집회 격화가 불상사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장 경계하며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1월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난입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경찰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시위대가 헌재로 난입하는 상황이다. 선고 당일 경찰은 형사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물론 경찰기동대도 가까운 곳에 대기시킬 예정이다. 시위대가 헌재에 난입하면 그 자리에서 현행범 체포한다.시위에 동원될 수 있는 위험한 물품, 물건이 많은 헌재 주변 주유소, 공사장은 이날 하루 문을 닫는다. 경찰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기름이나 장비 등이 시위대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물을 투척할 가능성이 있는 인접 건물 22곳의 옥상 출입도 제한된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헌재 반경 1㎞에 있는 노점상에 선고 당일 휴무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인근 상가에는 입간판, 화분, 유리병 등을 모두 치워 달라고 부탁했다.부상자를 대비해 안국역, 청계광장, 한남동, 여의대로 등 4곳에는 현장 진료소가 세워지고 의사와 간호사가 배치된다. 서울시는 상황실과 연결된 교통·방범용 폐쇄회로(CC)TV를 통해 집회 지점을 주시하며 대응할 방침이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짙푸른 배경의 서가에 즐비하게 놓인 책과 붓, 벼루, 세밀한 문양의 화병 등을 담은 그림. 단정히 놓인 물건들은 또렷한 색감과 재치 있는 배치 덕에 따분하기보다 활기찬 느낌을 선사한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27일 개막한 ‘조선민화전’ 도입부를 장식하는 조선시대 궁중 화원 이택균(1808∼1883 이후)의 작품 ‘책가도10폭’이다. 이택균은 ‘책가도의 대가’로 잘 알려진 인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이 작품을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손에 넣었다. 경쟁 끝 낙찰가는 64만2600달러(약 9억4500만 원·수수료 포함). 뉴욕의 저명 미술품 수집가이자 디자이너였던 미카 에르테군이 집에 걸어뒀던 그림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소장품 외에도 전국 19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받은 109점의 민화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 민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을 아우른다. 도자기와 직물, 목가구 등 민화가 그려진 공예품도 선보인다. 전시에선 궁중 화풍으로 시작한 민화가 민간에 확산하면서 다채롭게 변화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책가도10폭’ 옆에는 작자 미상의 8, 12폭 책거리 병풍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림에서 서가는 사라지고 여러 물건만 남았다. 현문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학예팀장은 “궁중 회화였던 책가도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책장이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며 “천장의 높이가 낮은 민가에 놓이면서 병풍의 크기도 그에 맞춰졌고, 그림 속 물건도 점차 (외래품에서) 토착품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책가도 외에도 문자도, 화조도, 산수화 등을 폭넓게 아울렀다. 단아하고 정교한 작품과 화려하고 익살맞은 작품을 리듬감 있게 구성함으로써 ‘질박하거나 촌스럽다’는 민화에 대한 편견도 깬다. 조선 말기 화가 윤오진(1819∼1883)이 그린 ‘어해도(魚蟹圖)12폭병풍’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물고기 묘사가 돋보인다. 작자 미상의 ‘금강산도8폭병풍’은 금강산 명승지를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자유분방한 민간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보물찾기하듯 화폭 곳곳에 숨은 도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교의 여덟 가지 덕목을 한 글자씩 쓴 뒤 그림으로 글자를 장식한 ‘문자도8폭병풍’에는 열심히 방아를 찧는 달나라 토끼가 숨어 있다. 6월 29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그림은 짙푸른 배경을 뒤로 하고 서가에 즐비하게 놓인 책과 붓, 벼루, 세밀한 문양의 화병 등을 담았다. 단정히 놓인 물건들은 또렷한 색감과 재치 있는 배치 덕에 따분하기보다 활기찬 느낌을 선사한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27일 개막한 ‘조선민화전’ 도입부를 장식하는 조선시대 궁중 화원 이택균(1808~1883이후)의 작품 ‘책가도10폭’이다. 이택균은 ‘책가도의 대가’로 잘 알려진 인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이 작품을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손에 넣었다. 경쟁 끝 낙찰가는 64만2600달러(약 9억4500만 원·수수료 포함). 뉴욕의 저명 미술품 수집가이자 디자이너였던 미카 에르테군이 집에 걸어뒀던 그림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이번 전시는 미술관 소장품 외에도 전국 19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한 109점의 민화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 민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을 아우른다. 도자기와 직물, 목가구 등 민화가 그려진 공예품도 선보인다.전시에선 궁중 화풍으로 시작한 민화가 민간에 확산하면서 다채롭게 변화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책가도10폭’ 옆에는 작자 미상의 8, 12폭 책거리 병풍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림에서 서가는 사라지고 여러 물건만 남았다. 현문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학예팀장은 “궁중 회화였던 책가도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책장이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며 “천장의 높이가 낮은 민가에 놓이면서 병풍의 크기도 그에 맞춰졌고, 그림 속 물건도 점차 (외래품에서) 토착품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전시는 책가도 외에도 문자도, 화조도, 산수화 등을 폭 넓게 아울렀다. 단아하고 정교한 작품과 화려하고 익살맞은 작품을 리듬감 있게 구성함으로써 ‘질박하거나 촌스럽다’는 민화에 대한 편견도 깬다. 조선 말기 화가 윤오진(1819~1883)이 그린 ‘어해도(魚蟹圖)12폭병풍’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물고기 묘사가 돋보인다. 작자 미상의 ‘금강산도8폭병풍’은 금강산 명승지를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자유분방한 민간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보물찾기하듯 화폭 곳곳에 숨은 도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교의 여덟가지 덕목을 한 글자씩 쓴 뒤 그림으로 글자를 장식한 ‘문자도8폭병풍’에는 열심히 방아를 찧는 달나라 토끼가 숨어 있다. 6월 29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인간과 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대상이 괴물이 된다. 이 만화는 판타지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비유다.” 구독자 96만 명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작가 이연이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대해 남긴 감상평. 그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콘텐츠’를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이 작품을 꼽겠다고 했다. 유튜버로서 ‘질문하는 콘텐츠’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진격의 거인’은 “모두가 들어 봤을 주제를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한순간도 주입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9명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제각기 선정한 ‘인생 만화’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8∼12월 이들이 한 온라인 플랫폼에 연재한 에세이 27편을 엮었다. 웹툰 화제작 ‘며느라기’를 그린 만화가 수신지, SF(공상과학) 소설가로도 알려진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책 리뷰 유튜버 겸 작가 김겨울 등이 집필에 참여해 다채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소설 ‘딜리터’의 저자 김중혁은 스누피 캐릭터로 유명한 ‘피너츠’를 소개하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마크 트웨인을 이야기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정모는 ‘오디세이’를 두고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색하는 과학적 시도인 ‘SETI 프로젝트’를 말한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가 ‘머글’(‘해리 포터’에서 ‘보통의 인간’을 뜻하는 말. 특정 문화의 팬이 아닌 경우도 뜻한다)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어릴 적 한 번쯤 봤을 법한 명작이 추억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명대사 “초밥은 마음이었던 게야”로 심금을 울렸던 ‘미스터 초밥왕’도 그중 하나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학생 시절 읽은 이 만화를 나중에 다시 봤을 때의 소회를 적었다. “내 나약함과 죄책감 때문에 몰래 눈물 흘리던 시절. 아무리 만화라지만,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한다면 언젠간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그 메시지를 막연하게 믿고 싶었다.” 순수함과 열정, 선의로 가득한 만화 속 풍경은 나이가 들어서도 꿈꾸고 싶은 세상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경북 안동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등 주요 문화유산 코앞까지 번졌던 산불이 밤새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언제 다시 튈지 모르는 불씨에 관련 당국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27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전날 밤 직선거리 약 3km까지 산불이 접근했던 병산서원은 외곽 지역을 경계로 산불 확산이 잦아든 상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오전 9시 기준 시야가 개선됐으며 바람은 잦아들었다”며 “유사 시에 대비해 병산서원에는 진화차 2대, 하회마을에는 10대가 집중 배치돼 있다”고 말했다. 시야가 확보되면서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주변에는 헬기를 투입해 산불 접근을 저지할 방침이다.전날 경북 청송군 주왕산 국립공원으로 번진 불은 천년고찰 대전사에서 직선거리로 약 4㎞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 다행히 사찰까지 옮겨붙진 않았다. 사찰 내에는 17세기 조선의 목조 건축물인 보물 ‘보광전’이 있다. 당국은 보광전을 포함한 주요 문화유산을 전날 방염포 등으로 감싸 보호해뒀다. 옮기기 어려운 석탑을 제외한 문화유산은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산불이 확산하는 지역에서 멀지 않은 사찰들은 서둘러 방재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대구의 천년고찰인 용연사에선 소장 보물인 ‘금강계단(戒壇)’에 밤새 방염포 작업이 이뤄졌다. 용연사는 신라신덕왕 3년인 914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한 곳으로, 금강계단은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수여하는 식장이다. 17세기 초 조선 광해군 대에 만들어졌다. 또 다른 17세기 보물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복장유물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상태다.27일 오전 11시까지 문화유산에 발생한 누적 피해는 하루 새 3건 늘어난 총 18건으로 집계됐다. 안동 용담사의 무량전과 금정암 화엄강당이 전소됐고, 의성 관덕동 석조보살좌상도 불타 사라졌다. 앞서 26일에는 고택과 숲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청송 송소 고택과 서벽고택은 건물 일부가 소실됐고, 사남고택은 전소됐다. 안동에서는 명승 만휴정 원림 중 전면에 있는 소나무 숲 일부가 피해를 입었다. 천연기념물인 안동 구리 측백나무 숲은 0.1ha가 불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마음이 참담합니다. 사찰을 지키지 못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운사 보장 스님) 26일 오후 1시 반경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 어제까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사찰이 있던 자리는 시꺼먼 잔해와 재만 가득했다. 대웅전과 명부전은 불길을 피했으나 국가유산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가운루 건너편엔 범종만 금이 간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주변도 참혹했다. 나무들은 검게 타 쓰러졌고, 남은 잔불들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운루 자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있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어제 오후 4시쯤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씨가 날아왔다”며 “급히 피했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는데,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한숨지었다.피해 소식에 달려온 신도들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한금 씨(60)는 “산불이 걱정돼 24일부터 와 있었다”며 “절에 있던 보물 옮기는 작업도 도왔는데 다 지키지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운사에서 30년 동안 석축 공사를 했다는 70대 김모 씨는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승격돼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운사 앞 최치원문학관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19년 세운 문학관 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다행히 지하 방화문을 닫아둬 수장고 유물들은 손상되지 않았다. 고운사가 무너지자 인근 국가유산이 있는 지역들도 초긴장 상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0시 현재 병산서원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지역까지 산불이 근접했다. 만일에 대비해 서원에 물을 계속 뿌리고 있으며, 류성룡 선생 위패 등을 옮길 준비도 하고 있다. 앞서 이날 오전 찾아간 안동하회마을은 밤새 서풍이 불어준 덕에 산불이 비켜 갔다. 하지만 멀리서 넘어온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북 청송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은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산불이 퍼지고 있는 안동과 의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 5건과 보물 50건이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봉정사의 국보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대웅전도 국보이며, 보물인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나무로 지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전날 사찰의 주요 유물을 긴급 이송했으며, 극락전 등엔 방염포를 씌워 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입구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진다. 발열과 연기량도 많아 진압하기가 특히 까다롭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도 안심할 순 없다. 2005년 강원 양양 화재 당시 보물 ‘낙산사 동종’은 쇠인데도 녹아내렸다. 인근의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등도 위험하다. 한 박물관 방재전문가는 “금속보다 내열성이 강한 석조조차 고열이 지속되면 터질 수 있다”며 “운 좋게 형태를 유지해도 돌의 경도가 떨어져 결국 부서진다”고 했다. 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방염포가 있어도 겨우 30분가량 시간을 번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엔 소용없다”며 “문화유산 주위에 폭 1m 이상 해자(垓子)를 파두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의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
‘6·25전쟁의 영웅 기관차’로 알려지며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가 17년 만에 등록 취소될 상황에 놓였다. 최근 보물 ‘대명률(大明律)’은 국가지정유산 사상 처음으로 취소가 결정돼 부실 심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는 129호는 “6·25전쟁 중 북한군에 포위된 윌리엄 F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적진으로 돌진한 기관차”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작전에 투입된 기관차는 129호가 아니라 219호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심지어 구출 작전도 없었다는 논란까지 일며 결국 재심의에 착수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근현대 문화유산분과위원회에서 안건으로 논의 중”이라며 “전쟁사 전문가 의견을 추가로 듣기 위해 섭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분과위원은 “당시 129호를 등록한 건 ‘딘 소장 구출에 투입됐고, 기관차를 몬 김재현 기관사가 전사했다’는 이유였다”며 “하지만 관련 문헌과 증언을 보면 129호는 그런 용도로 쓰이지 않았고 김 기관사가 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20년 전쟁기념관 ‘호국인물총서’에도 “김 기관사에게 부여된 수송 임무는 딘 소장 구출과 무관했다”고 나온다. 물론 취소 처분이 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손길신 전 철도박물관장은 “단지 보급품 후송용이었다 해도, 129호가 미 특전단을 태우고 전쟁에서 활약했단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등록 내용을 수정하고 등록문화유산으로 유지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당초 첫 심의에서 진위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8년 심의에 참여한 위원에 따르면 여러 문헌에서 다르게 기록된 미카형 증기기관차의 ‘번호’를 두고 당시에도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물로 밝혀져 현재 지정 취소 절차를 밟고 있는 대명률 역시 이를 사들인 소유자가 보물 신청을 하기 2년 전에 국가유산청 누리집에 도난 사실이 공지됐었다. 2016년 심의 과정에서 유물 입수 경위 등을 파악할 여지가 있었단 뜻이다.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 교수는 “지정 예고제 등 현재 형식적으로 처리되는 절차의 실효를 높여야 한다”며 “관계 기관, 전문가에게 적극적으로 지정 예고 사실을 알려 오류를 잡아낼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안건별로 분야를 세분화해 외부 전문가 영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마음이 참담합니다. 사찰을 지키지 못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운사 보장 스님)26일 오후 1시 반경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 어제까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사찰이 있던 자리는 시꺼먼 잔해와 재만 가득했다. 대웅전과 명부전은 불길을 피했으나 국가유산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가운루 건너편엔 범종만 금이 간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주변도 참혹했다. 나무들은 검게 타 쓰러졌고, 남은 잔불들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다. 가운루 자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있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어제 오후 4시쯤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씨가 날아왔다”며 “급히 피했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는데,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한숨지었다.피해 소식에 달려온 신도들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한금 씨(60)는 “산불이 걱정돼 24일부터 와 있었다”며 “절에 있던 보물 옮기는 작업도 도왔는데 다 지키지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운사에서 30년 동안 석축 공사를 했다는 70대 김모 씨는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승격돼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고운사 앞 최치원문학관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19년 세운 문학관 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다행히 지하 방화문을 닫아둬 수장고 유물들은 손상되지 않았다.고운사가 무너지자 인근 국가유산이 있는 지역들도 초긴장 상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0시 현재 병산서원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지역까지 산불이 근접했다. 만일에 대비해 서원에 물을 계속 뿌리고 있으며, 류성룡 선생 위패 등을 옮길 준비도 하고 있다.앞서 이날 오전 찾아간 안동하회마을은 밤새 서풍이 불어준 덕에 산불이 비켜 갔다. 하지만 멀리서 넘어온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북 청송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은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산불이 퍼지고 있는 안동과 의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 5건과 보물 50건이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봉정사의 국보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대웅전도 국보이며, 보물인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나무로 지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전날 사찰의 주요 유물을 긴급 이송했으며, 극락전 등엔 방염포를 씌워뒀다.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입구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진다. 발열과 연기량도 많아 진압하기가 특히 까다롭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도 안심할 순 없다. 2005년 강원 양양 화재 당시 보물 ‘낙산사 동종’은 쇠인데도 녹아내렸다. 인근의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등도 위험하다. 한 박물관 방재전문가는 “금속보다 내열성이 강한 석조조차 고열이 지속되면 터질 수 있다”며 “운 좋게 형태를 유지해도 돌의 경도가 떨어져 결국 부서진다”고 했다.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방염포가 있어도 겨우 30분가량 시간을 번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엔 소용 없다”며 “문화유산 주위에 폭 1m 이상 해자(垓子)를 파두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의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
22일부터 발생한 경북 의성군 산불이 번지며 경북 지역을 대표하는 천년고찰인 의성 ‘고운사(孤雲寺)’가 25일 전소됐다. 이 과정에서 고운사의 국가유산 보물인 목조건축물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도 모두 불에 탄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유산청과 대한불교조계종 등에 따르면 고운사는 밀려든 산불로 이날 오후 4시 50분경 전소됐다. 산림 당국 측은 “사찰 내 전각까지 불이 붙으며 진화대와 승려 모두 대피했다”며 “공중진화대가 사찰 전소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다. 창건 당시엔 ‘고운사(高雲寺)’로 이름 지었으나, 신라 말기 문신 최치원이 자신의 호인 고운(孤雲)에서 따와 현재 이름으로 바꿨다. 고운사가 소장한 보물은 3점인데, 이 중 가운루와 연수전이 화마에 스러졌다. 가운루는 1668년 세워져 큰 훼손 없이 원형을 유지해온 팔작지붕 형식의 누각이다. 연수전은 1904년 고종의 기로소(耆老所·연로한 고위 관료를 예우하고자 세운 기구) 입소를 기념하고자 지어졌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도상이 풍부해 역사적 가치가 컸다. 두 전각은 방염포로 덮고 물을 뿌리는 등 방재 작업을 했으나, 거센 불길을 버텨내지 못했다. 고운사에 있던 불상과 불화, 고서 등은 화재에 앞서 경북 영주 부석사 성보박물관 등으로 옮겨졌다. 또 다른 보물인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도 방염포를 씌워 인근으로 보내졌다. 산불로 인한 문화재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다. 강원 정선 명승인 ‘백운산 칠족령’과 천연기념물 울산 ‘울주 목도 상록수림’ 등 또 다른 국가유산 5건도 피해를 입었다. 국가유산청은 “전국에서 동시다발 산불로 피해 우려가 커져 국가유산 재난위기경보의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했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2일 발생한 경북 의성군 산불이 사흘째 번지며 29km 떨어진 안동까지 확산했다. 영남 지역 산불로 축구장 1만4823개 크기의 산림이 피해를 입었다. 주민뿐만 아니라 산불 진화대원에게도 대피 명령이 떨어질 정도로 상황이 급박한 가운데 27일 전까지 비 예보가 없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경북 의성, 경남 하동, 울산 울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중·대형 산불을 진화 중인 곳은 경남 산청과 의성, 울주, 경남 김해 등 4곳이다. 이날까지 피해를 본 산림 면적은 1만584ha(헥타르·24일 오후 9시 기준)로 집계됐다. 해당 지역 주민 4650명이 임시 주거시설로 대피했고 주택과 사찰 등 건물 134곳이 피해를 입었다. 처음 산불이 가장 거센 곳은 산청이었지만 현재는 의성의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의성 산불은 사흘째 타오르며 피해 면적도 8490ha로 확대됐다. 산불이 빠르게 확산하자 인근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진화대원에게도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의성군은 24일 오후 2시 34분 발송한 재난 문자에서 “현재 산속에 있는 진화대원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간판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인 초속 15m 이상의 강풍을 타고 불길이 퍼진 가운데 바람이 더 세진다는 예보까지 이어지자 대피를 명령한 것이다. 전날과 이날 의성의 낮 최고기온이 각각 26도, 24도로 초여름 날씨까지 오르면서 산불을 더 키웠다. 산불 확산 탓에 산림청이 현장에 꾸렸던 산불현장지휘본부에도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6m 높이까지 타오른 의성 산불은 오후 4시 6분경 서산영덕고속도로 영덕 방면 점곡휴게소 화장실과 편의점에도 옮겨붙었고, 이후에는 29km 떨어진 안동시 길안면으로까지 번졌다. 안동시는 오후 4시 39분경 재난 문자를 통해 길안면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6m 높이 불기둥, 강풍 타고 안동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불 옮겨붙어[동시다발 산불]의성 산불 사흘째 확산21일부터 나흘째 이어지는 산청군 시천면 산불도 강풍을 타고 25km 떨어진 하동군 옥종면 야산까지 번졌다. 이 지역은 근처에 딸기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어 재산 피해가 우려된다. 산림당국은 헬기 36대와 특수진화대 등 1599명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이날 오후 9시 기준 진화율은 85%로 전날 71%보다는 다소 올랐지만 강풍 탓에 주불은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시천면에선 주민 대피를 돕기 위해 이동하던 산불진화차가 경사로에서 넘어져 소방대원 2명이 다쳤다. 울주군에서는 22일 발생한 산불의 피해 면적이 전날 192ha에서 이날 오후 9시 기준 405ha로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진화율은 95%다. 관계당국은 울주와 의성 산불의 실화자를 각각 특정했다. 울주군 특별사법경찰은 60대 남성을, 의성군 특별사법경찰은 50대 남성을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울주 산불 실화자는 야산에 있는 농막에서 불씨가 튀는 용접 작업 도중, 의성 산불의 실화자는 야산 정상에서 묘지를 정리하던 중 산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유산 피해도 잇따랐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울산 산불로 천연기념물인 ‘울주 목도 상록수림’ 일부와 약 1km 길이의 산성인 ‘운화리 성지(城址)’ 일부가 소실됐다. 신라 681년 의상대사가 지은 경북 의성군 고운사에 있던 일부 불화와 불상 등은 영주 부석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5일 동해안을 중심으로 강풍특보가 발효되면서 의성 산불은 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북 영덕과 울진 포항 경주에는 25일 낮 12시부터 강풍특보가 내려질 예정이다. 특히 경북에는 순간풍속 초속 19m를 넘는 강한 바람이 예상된다. 27일 전국에 비 소식이 있지만 기압의 영향에 따라 산불 지역을 비켜 서쪽 중심으로 내릴 가능성도 있다.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의성=장영훈 기자 jang@donga.com울주=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약 2000년 전 변한의 소국에서 지도자급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고급 칠기가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됐다.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24일 언론공개회를 열고 “지난해 발굴조사 결과 금관가야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봉황동 생활유적에서 1∼4세기 변한의 고급 의례용 옻칠 제기 15점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밝혔다.출토품 가운데 지름 1cm의 가늘고 긴 목이 달린 정교한 형태의 ‘옻칠 굽다리 접시’는 당시 목공예 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명품’으로 꼽힌다. 물에 강해 오늘날 제사용품에도 흔히 사용되는 오리나무를 물레로 회전시켜 가며 깎은 것으로 추정된다.가야사 연구자인 이영식 인제대 인문문화학부 명예교수는 “이번에 출토된 옻칠 유물은 가야에선 ‘왕궁’의 지위를 상징한다”며 “봉황동 일대에 있던 변한 소국이 금관가야의 전신이었다고 볼 수 있는 자료”라고 했다.대규모 취락의 흔적인 구상유구(溝狀遺構·배수로나 도랑으로 사용된 유구) 근처에선 생활유물도 다수 출토됐다. 물레와 베틀로 추정되는 직기(織機)용 부속물품, 주걱과 그릇을 비롯한 생활 목기류, 농공구 등 300여 점이 나왔다. 변한의 무덤이 아닌 생활유적에서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유물이 확인된 사례는 드물다. 이인숙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이곳에 일찍이 대규모 생활지가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며 “변한 수장급의 거처로 시작한 공간이 점차 성장해 금관가야의 왕궁지로 자리매김했음을 방증한다”고 했다.경남 함안군 가야리 아라가야 왕성에서 2주 전 새로 발견된 ‘집수지’(성안 물을 모으는 시설)도 이날 공개됐다. 아라가야 왕성은 성벽 길이가 약 2.4km로, 경북 경주에 있는 신라 월성에 버금가는 규모다.오춘영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장은 “가야 토성에서 집수지가 발견된 건 처음”이라며 “집수지는 당대 사용된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목간 등이 발견되는 주요 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가야리에서 출토된 유물 일부는 영남권역 유물 수장고이자 전시 공간인 함안 ‘예담고’로 옮겨져 관람객과 만나게 된다.창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2일 발생한 경북 의성군 산불이 사흘째 번지며 29km 떨어진 안동까지 확산했다. 영남 지역 산불로 축구장 1만4823개 크기의 산림이 피해를 입었다. 주민뿐만 아니라 산불 진화대원에게도 대피 명령이 떨어질 정도로 상황이 급박한 가운데 27일 전까지 비 예보가 없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경북 의성, 경남 하동, 울산 울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오전 9시 기준 중·대형 산불을 진화 중인 곳은 경남 산청과 의성, 울주, 김해 등 4곳이다. 이날까지 피해를 본 산림 면적은 1만584ha(헥타르·24일 오후 9시 기준)로 집계됐다. 해당 지역 주민 4650명이 임시 주거시설로 대피했고 주택과 사찰 등 건물 134곳이 피해를 입었다.처음 산불이 가장 거센 곳은 산청이었지만 현재는 의성의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의성 산불은 사흘째 타오르며 피해 면적도 8490ha로 확대됐다.산불이 빠르게 확산하자 인근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진화대원에게도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의성군은 24일 오후 2시 34분 발송한 재난 문자에서 “현재 산속에 있는 진화대원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간판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인 초속 15m 이상의 강풍을 타고 불길이 퍼진 가운데 바람이 더 세진다는 예보까지 이어지자 대피를 명령한 것이다.전날과 이날 의성의 낮 최고기온이 각각 26도, 24도로 초여름 날씨까지 오르면서 산불을 더 키웠다. 산불 확산 탓에 산림청이 현장에 꾸렸던 산불현장지휘본부에도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의성 산불은 오후 4시 6분경 서산영덕고속도로 영덕 방면 점곡휴게소 화장실과 편의점에도 옮겨붙었고, 이후에는 29km 떨어진 안동시 길안면으로까지 번졌다. 안동시는 오후 4시 39분경 재난 문자를 통해 길안면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21일부터 나흘째 이어지는 산청군 시천면 산불도 강풍을 타고 25km 떨어진 하동군 옥종면 야산까지 번졌다. 이 지역은 근처에 딸기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어 재산 피해가 우려된다. 산림당국은 헬기 36대와 특수진화대 등 599명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다. 이날 오후 9시 기준 진화율은 85%로 전날 71%보다는 다소 올랐지만 강풍 탓에 주불은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시천면에선 주민 대피를 돕기 위해 이동하던 산불진화차가 경사로에서 넘어져 소방대원 2명이 다쳤다. 울주군에서는 22일 발생한 산불의 피해 면적이 전날 192ha에서 이날 오후 9시 기준 405ha로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진화율은 95%다.관계당국은 울주와 의성 산불의 실화자를 각각 특정했다. 울주군 특별사법경찰은 60대 남성을, 의성군 특별사법경찰은 50대 남성을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울주 산불 실화자는 야산에 있는 농막에서 불씨가 튀는 용접 작업 도중, 의성 산불의 실화자는 야산 정상에서 묘지를 정리하던 중 산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국가유산 피해도 잇따랐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울산 산불로 천연기념물인 ‘울주 목도 상록수림’ 일부와 약 1km 길이의 산성인 ‘운화리 성지(城址)’ 일부가 소실됐다. 신라 681년 의상대사가 지은 경북 의성군 고운사에 있던 일부 불화와 불상 등은 영주 부석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25일 동해안을 중심으로 강풍특보가 발효되면서 의성 산불은 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북 영덕과 울진 포항 경주에는 25일 낮 12시부터 강풍특보가 내려질 예정이다. 특히 경북에는 순간풍속 초속 19m를 넘는 강한 바람이 예상된다. 27일 전국에 비 소식이 있지만 기압의 영향에 따라 산불 지역을 비켜 서쪽 중심으로 내릴 가능성도 있다.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의성=장영훈 기자 jang@donga.com울주=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인공지능(AI)에 ‘한국 전통 문양 연꽃무늬 쿠션’을 디자인해 달라고 하자 빨강, 초록 등 색색깔 이파리가 수놓인 둥근 쿠션(사진)이 화면에 순식간에 출력됐다. 여러 겹으로 표현된 꽃잎 둘레로 알알이 구슬을 꿴 듯한 장식은 마치 통일신라 시대의 연화문(蓮花紋) 수막새를 연상케 했다. 이번엔 ‘한국 전통 문양 매화무늬 병풍’ 디자인을 보여 달라고 하자 조선시대 화가 조희룡의 ‘홍백매화도’와 닮은 매화가 금세 그려졌다. 국가유산진흥원이 개발 중인 전통 문양 생성형 AI 모델을 최근 시연한 모습이다. 이 AI는 전통문양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을 뚝딱 그려냈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정보원 등이 제공한 방대한 전통 문양 자료를 학습한 결과다. AI가 크기나 세부 모습을 달리해 생성할 수 있는 문양의 가짓수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AI를 개발한 건 ‘생성형 AI의 전통문화 왜곡’을 막기 위해서다. 요즘 생성형 AI에 ‘한복의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 중국의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등이 뒤섞인 ‘동아시아풍’ 의복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심정택 국가유산진흥원 데이터팀장은 “우키요에 판화 등 일본 전통 예술은 서구권의 데이터에도 흔히 있고, 중국은 인구가 많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유통되는 데이터 자체가 많지만 한국의 시각 자료는 현저히 적어 불균형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AI의 학습을 위해 국보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보물 금동여래입상 등 실제 우리나라 문화유산, 건축물, 생활소품에 사용된 문양 데이터 총 2만4536개를 수집했다. 이를 인물, 동물, 문자 등 8종으로 분류한 뒤 다시 용도와 재질, 시대에 따라 세분화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구축된 전통 문양 데이터는 콘텐츠 개발, 제품 디자인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올해 상반기 중 온라인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연구개발에 참여한 양정석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전통 문양을 공식적으로 데이터화한 첫 시도”라며 “계속 AI를 학습시켜 오류를 최소화하고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인공지능(AI)에 ‘한국 전통 문양 연꽃무늬 쿠션’을 입력하자 빨강, 초록 등 색색깔 이파리가 수놓인 둥근 쿠션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여러 겹으로 표현된 꽃잎 둘레로 알알이 구슬을 꿴 듯한 장식은 마치 통일신라 시대의 연화문(蓮花紋) 수막새를 연상케 했다. 입력 내용을 바꿔 ‘한국 전통 문양 매화무늬 병풍’을 써넣으니 조선시대 화가 조희룡의 ‘홍백매화도’와 닮은 매화가 금세 병풍에 그려졌다.국가유산진흥원 등 4곳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근 시범 개발한 전통 문양 생성형 AI 모델을 활용하자 이렇게 손쉽게 한국 전통 문양을 다양하게 얻을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정보원 등에서 제공받은 방대한 전통 문양을 학습한 결과다. AI가 문양의 크기, 개수, 디테일을 달리해 생성할 수 있는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다.연구진은 AI 학습을 위해 국보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 보물 금동여래입상 등 실제 우리나라 문화유산, 건축물, 생활소품에 사용된 문양 데이터 총 2만4536세트를 수집했다. 이를 인물, 동물, 문자 등 총 8개 형태로 분류한 뒤, 다시 용도와 재질, 시대에 따라 세분화해 메타데이터(유물이나 문양을 설명·묘사하는 언어 데이터)를 구축했다.이번 전통문양 생성형 AI는 꾸준히 논란이 된 ‘생성형 AI의 전통문화 왜곡’을 막기 위한 취지로 기획됐다. 예컨대 AI에 ‘한복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면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등이 뒤섞인 ‘동아시아풍’ 의복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심정택 국가유산진흥원 데이터팀장은 “AI는 웹사이트상 데이터를 자동 수집하면서 학습하는데, 영어권 및 서구권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고 한국의 시각 자료는 현저히 적다”며 “우키요에 판화 등 일본 전통 예술은 오랜 시간 잘 알려져 서구권 데이터에도 흔히 등장하고,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시중 유통되는 데이터 자체가 많아 불균형이 심하다”고 설명했다.구축된 전통 문양 데이터는 콘텐츠 개발, 제품 디자인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올해 상반기 중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다. 이번 연구개발 과정에 자문한 양정석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전통 문양을 공식적으로 데이터화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AI를 끊임없이 학습시킴으로써 오류를 최소화하고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