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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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07-12~2025-08-11
문학/출판31%
역사17%
칼럼13%
인사일반10%
문화 일반10%
미술10%
요리/음식3%
음악3%
기타3%
  • [책의 향기]‘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아시나요

    애기여새는 날개 끝이 빨간 조류다. 미국에선 이 새들이 대낮에 날다가 담이나 아크릴 유리, 창문에 충돌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여러 차례 보고됐다. 과학자들이 부검해 보니 새들 대다수가 지나치게 익은 브라질후추나무 열매를 대량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 파열이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인(死因)은 “에탄올에 취한 상태로 날아가던 도중에 단단한 물체와 충돌하여 유발된 외상”으로 추정됐다. 새들이 음주 비행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던 것이다. 새도 사람처럼 취하면 혀가 꼬인다. 연구에 따르면 금화조는 알코올이 섞인 주스를 마시자 노래가 살짝 엉성해지고, 구성이 어지러워지고, 감상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취한 사람이 특정 단어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새도 음절마다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달랐다. 동물들 사이에서 흔한 약물 도취 행위와 진화와의 관계를 소개한 교양 과학서다. 무척추동물부터 영장류까지 수많은 생물 종이 의약용이건 기분 전환용이건 일부러 향정신성 물질을 섭취한다고 한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진화학자인 더들리 박사는 원숭이가 발효돼 알코올 성분이 섞인 과일을 그냥 과일보다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알코올의 냄새와 맛을 향한 강렬한 끌림은 완전히 무르익어서 영양분이 풍부해진 과일을 찾도록 도와줌으로써 영장류 조상에게 선택적 이익을 선사한다”는 이른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세웠다. 향정신성 물질을 향한 인간의 친화성이 인류 이전부터 이어졌다는 것이다. 곤충도 약을 사용한다. 제왕나비는 금관화에서 카데놀라이드라는 화합물을 섭취한다. 독성이 있는 이 화합물을 몸속에 저장해 포식자나 기생충으로부터 자신과 알을 보호한다. 마약에 취한 동물의 움직임도 소개한다. 문어는 원래 고립적인 동물이지만 실험에서 마약 엑스터시에 취하게 만들면 다른 문어의 몸을 마구 휘감았다. 벌은 코카인에 노출되면 인간처럼 내성과 금단 현상을 보였다. 저자는 “합법이든 아니든 마약 소비를 지지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며 “마약 중독과 그와 관련된 행동의 원인에 대해 많이 알수록 부작용을 완화하기가 더 유리해진다”고 말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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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마음의 병 앓는 내 아이를 위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나는 흐트러진 머리로 아이의 짧은 삶 속 여러 순간들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자는 딸 안나의 팔목에서 자해한 자국을 목격한다. 안나는 흔히 ‘조울증’이라고 알려진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는다. 조증과 울증이 교차하며 반복되는 병으로 치료받지 않으면 질환이 없는 이들에 비해 자살률이 30배나 높다. 돌이켜보면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괜찮은 척하는 데 선수’였다. 저자는 대학병원 류머티스내과 교수고, 남편도 병원에서 일한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가족을 이해하는 건 전문지식이 있는 부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은 진솔하다. 저자는 부부가 각자 근무하는 병원은 일찌감치 치료할 곳에서 지웠다는 것, 딸이 입원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격성이 드러나면서 힘들었다는 것, 아이가 병 때문에 힘들어할 때 대마초라도 흡입해서 고통을 잊기를 바라는 마음에 해외에 거주하는 것을 고려했다는 것 등 딸과 함께한 7년의 투병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저자는 입원에 대해 불필요하게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여러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고, 때에 따라 일생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다면 미리 입원하는 편이 낫다는 것. 치료와 일상 생활을 병행하며 스스로 제동을 걸기 어려울 때가 있기에, 삶에 이따금 브레이크를 잡아 주는 수단으로 입원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과 가족들에게 “이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여느 신체질환과 다를 바 없는 질환임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의 질곡에서 고통을 덜 수 있을지, 그리고 가족 간에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손잡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이 책을 쓴 이유다. 저자는 묻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적 없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 데는 일이 얼마나 많나. 정신질환자라고 낙인찍지만 낙인이 없다고 정상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우울 증상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도 거의 없다. 어디까지가 질병인가? 누가 환자이고 누가 정상인가? 많은 이들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이 아닐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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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친일파 박춘금으로 드러난 대일본제국의 자가당착

    “2000만 명(의 조선인)이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이다. … 내선(內鮮·일본 본토와 조선) 간에 유혈 참사를 보는 일이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 “우리들은 식민지가 아니다. 일본이 강하기 때문에 잡은 것도 아니고, 조선이 약하기 때문에 잡힌 것도 아니다.” “같은 국민이면서 차별적으로 다루는데, 야마토혼을 심어준다는 논리는 통할 수 없는 일이다.” 퀴즈 하나. 일제강점기 제국의회를 향해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누구일까. ①독립운동가 여운형 ②아나키스트 박열 ③친일파 박춘금. 뜻밖에도 정답은 ③이다. 오해가 있을까 싶어 미리 말하지만 박춘금(1891∼1973)은 명백한 반민족행위자다. 그는 친일단체를 육성하던 총독부의 원조를 받아 폭력단체 상애회를 조직하고 일본의 조선인 노동자를 착취했다. 동아일보가 총독부의 친일 폭력단체 구성을 비판하자 사장이었던 고하 송진우 선생 등을 유인해 폭행한 이력도 있다. 1924년 하의도 소작쟁의가 일어나자 상애회원을 동원해 농민들을 습격하는 등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노동쟁의, 소작쟁의, 반일운동 등 집회 때마다 깡패들을 동원해 탄압했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그를 ‘일본인의 집을 지키는 개’라고 불렀다. 역사가이며 사회학자인 오구마 에이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교수는 최근 국내 번역된 저서 “‘국민’의 경계: 오키나와·아이누·타이완·조선”(소명출판·원제 “‘일본인’의 경계”)에서 한 장을 할애해 그의 행적을 재조명했다. 저자가 특히 초점을 맞춘 건 박춘금의 제국의회 활동이다. 박춘금은 1932년 중의원 선거에서 도쿄 니시구에 입후보해 적지 않은 돈을 뿌리며 당선됐다. 현재까지도 조선인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유일한 인물이다. 박춘금은 그해 6월 첫 의회 등단을 시작으로 조선인에게 참정권과 병역의무 부여, ‘내지(일본 본토)’와 조선 간의 도항(渡航) 제한 철폐 등을 요구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했다. 조선이 식민지가 아니고, 조선인도 똑같은 제국의 신민이라면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근본적으로는 이의가 없다”면서도 시기상조를 내세우며 요구를 거절하거나 묵살했다. 일제가 내건 ‘내선융화’와 ‘일시동인(一視同仁·조선인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천황의 동일한 신민이라는 것)’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박춘금의 당선부터가 일제로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일본 본토의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차별을 공공연하게 공언할 배짱도 없던’ 법의 공백 상태에서 예상치 못하게 조선인 의원이 출현했던 것. 책은 이처럼 일제가 동화를 표방했지만 차별한,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닌’ 존재들을 탐구하면서 ‘탈식민’의 길을 찾아간다. 저자는 조각난 팩트를 현재적 관점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물의 복합성을 드러내면서 마침내 감춰졌던 체제의 맨얼굴을 까발린다. 박춘금을 두고는 “그의 궤적엔 제국의 마이너리티들의 굴종과 저항의 양가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한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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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세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 1위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14·사진)이 2일 스위스 시옹에서 폐막한 2023 티보르 버르거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와 주니어 심사위원상, 위촉곡 최고 해석상을 수상했다. 김서현은 1위 상금 2만 스위스프랑(약 2984만 원)과 특별상 상금 3500스위스프랑(약 522만 원)을 받는다. 이번 콩쿠르의 최연소 본선 진출자인 김서현은 “콩쿠르에 만 26세 이하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 도전하게 됐다. 훌륭한 음악가들을 만나고 함께 연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예원학교에 재학 중인 김서현은 2022년 토머스 앤드 이본 쿠퍼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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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니체와 사르트르가 자전거 경주서 만난다면

    “니체의 페달링은 민첩했고 공중을 부양하는 듯하면서도 명료했다. … 이 등반가 철학자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그가 느낀 고통의 독특한 신호였는데, 너무나 존재감이 있다 보니 고통을 겪은 게 아니라 고통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니체는 자전거와 놀고 있는 듯했다. 고통과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고통을 의지로 승화시켰던 철학자 니체가 자전거 경주에 나갔다면 이렇게 페달을 밟았을까. 손꼽히는 철학자들이 프랑스의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다는 설정의 픽션과 철학 에세이가 섞인 책이다. 사르트르는 선수들에게 ‘앙가주망’(현실 참여)을, 마르크스는 단결을 촉구한다. 파스칼은 공허감과 무의미에 대항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나치의 편을 들었다는 논란이 있는 하이데거는 ‘(유대인인) 프로이트에게서 폴크스가이스트(민족정신)를 느낄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독일 팀 코치는 과학자인 아인슈타인. 그는 말한다. “자전거는 간단해요. 거리가 줄도록 가속을 하면 됩니다.” 저자는 올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10위를 기록한 프로 사이클 선수이면서 철학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사이클 선수에게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떤 엑스터시 같은 것이 찾아온다. 내가 나 밖으로, 아니면 내 정신 밖으로 빠져나가 어딘가로 들려 나가는 기분. 스포츠 지구력의 엑스터시는 몸과 현재로의 회귀이다. 니체가 말하기를, 이것은 디오니소스적인 체험, 즉 영원한 회귀이다.” 철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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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홍범도, 독립군 몰살 ‘자유시 참변’ 연관 의혹”… 학계 “확인 안돼”

    국방부는 28일 “홍범도 장군은 1921년 6월 러시아(소련)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시베리아)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키로 결정한 주된 이유로 들었다. 국방부는 “홍 장군이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인 행적과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자유시에서 소련 적군(赤軍)이 일제에 쫓겨 모여든 독립군 부대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며 전투가 벌어진 사건이다. 홍 장군과 부대가 적군 편에 서서 독립군 공격에 가담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 국방부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공산당의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되는 등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그의 공산주의자 행적을 뒷받침할 소련 정부문서를 인용하면서 “(당시) 홍범도 장군은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는 평가”라며 “이때 독립군 측이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했고 약 500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라고 했다. 홍 장군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소련의 지도자 레닌으로부터 권총과 상금 등을 받았고, 1927년엔 정식 소련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이력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선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홍 장군 부대가 전투에 가담했다는 기록 자체가 확인되지 않았고 오히려 홍 장군이 휘하 장교들과 인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했다는 증언이 당시 병사 회고록에 나와 있다는 것. 자유시 참변이 시베리아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계열 독립군 세력 사이의 주도권 다툼인 만큼 간도에서 투쟁을 벌인 홍 장군은 이해관계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유시 참변을 연구한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자유시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독립군에 대한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배경에 대해서도 “독립군의 어른인 홍 장군이 재판에 회부된 독립군 부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판관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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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엇을 위한 반일인가

    “중국은 20세기에 일본과 14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갔으며 자국의 수도 한복판(당시 중화민국의 수도는 난징이었다)에서 일본군에 의한 학살을 경험한 나라다. … 그러나 그들은 천황을 굳이 일왕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욱일기를 매단 자위대 함대 입항을 취소하지도 않는다. … 오히려 일본을 연구하고 또 관찰한다. 저 큰 나라가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들이 신친일파라거나 토착왜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토착왜구’ 같은 단어를 정치권에서 쓰는 걸 보면 거부감이 들 때가 많다. 실력은 없으면서 반일 감정에 편승해 한몫 보려는 얄팍한 속셈이 빤하기 때문이다. 조선이 반일 감정이 모자라서 망했을까. 저자는 조선에 진짜 없었던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 40여 년간 일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게 우리 운명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일본 근대사를 오래 연구해 온 저자의 칼럼을 묶은 책이다. 저자는 묻는다. ‘무엇을 위한 반일인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1941년 12월)을 넉 달 앞두고 출간한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를 읽고 저자는 감탄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드넓은 국제정치적 시야다. … 일본의 대륙 팽창이란 게 미국에 장차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한국 독립이란 게 어떤 인류사적 의미가 있는지를 웅장한 어조로 갈파한다.” 이승만은 그저 일본이라서 증오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일본이 자유와 민주, 인권과 평화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했던 것이었다. 저자는 강조한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다만 그것의 목적은 한국과 일본이 자유와 민주, 법치와 평화의 세계로 가기 위한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 자기 비즈니스를 위한, 혹은 정치적 이득을 위한 일본 비판은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 일본과, 자유 민주 법치 평화 인권 복지의 경쟁을 벌이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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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무형유산축전’ 내달 1일 전주서 개막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무형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2023 무형유산축전’을 다음 달 1∼10일 전북 전주시 무형유산원에서 개최한다. 무형유산원은 “올해 개원 10주년과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 20주년을 맞아 그간 따로따로 개최되던 무형유산대전과 세계무형문화유산포럼,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등을 확대·통합해 축전을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전승의 향연, 창조의 기록’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전에는 기획초청공연 ‘품다’(5, 6일)와 제작공연 ‘탈생’(7∼10일) 등이 열린다. ‘품다’는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융합을 시도하는 공연이다. 이생강(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보유자), 문정근(전북무형문화재 전라삼현승무), 김선이(광주무형문화재 판소리) 등이 출연하고 전통악기와 건반, 드럼, 기타 등 서양악기가 함께 연주된다. ‘탈생’은 최고의 탈을 만들기 위해 장인들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로 재담과 춤,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이다. 개막 공연으로는 인류무형유산 탈춤 고성오광대보존회와 현대적 탈춤 연행자들이 어우러지는 ‘모던연희’(1∼3일)가 펼쳐진다. 한국과 중국, 일본 3개 도시(전주, 청두, 아타미)의 대표적 예능 종목을 만날 수 있는 ‘동아시아 무형유산 초청공연’(8, 9일), 어린이 대상 공연·전시, 체험 행사인 ‘세계 어린이 무형유산 축제’(8, 9일)도 이번 축전을 통해 처음으로 진행된다. ‘한국 전통 줄다리기 한마당 축제’(9일)도 즐길 수 있다. 축전 기간 내내 국가무형유산 전승자 100명의 작품 196점을 전시하는 보유자 작품전과 1930년대 이후 무형유산 여러 종목의 기록 영상을 주제별로 재구성해 역사를 보여주는 미디어 파사드 전시 ‘기록의 정원’도 열린다. 해외 무형유산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계무형문화유산포럼은 1, 2일 열릴 예정이다. 안형순 국립무형유산원장은 “국립무형유산원 10년 동안의 성과를 발판 삼아 우리의 무형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다음 세대에 온전하게 전승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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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 땅에 민주주의를”… 너무도 짧았던 ‘베이징의 봄’

    “진정 민주란 무엇인가? 인민이 직접 뽑은 대리인이 인민의 의지에 따라서 인민의 이익에 복무해야만 민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민은 반드시 수시로 대리인을 파면하고 교체할 권력을 가져야 한다. … 서구 각국의 인민이 누리는 민주가 바로 이것이다. … 중국 인민은 이미 죽어버린 마오쩌둥을 두고 몇 마디만 해도 감옥으로 끌려가서 갖은 수난을 겪는다.” 1978년 12월 5일 중국 베이징 시단(西單)의 벽에 28세 노동자 웨이징성이 실명으로 써 붙인 대자보 내용이다. 독재자를 물리치고 정권을 교체하자는 주장이 담겼다. 덩샤오핑이 실사구시의 기치를 올리고, 후야오방이 사상혁명을 시작하자 중국 인민들은 문화혁명의 오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대자보를 통해 인민이 정치적 요구를 개진하는 이른바 ‘민주장(民主墻·민주의 벽) 운동’이 활발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봄’은 짧았다. 그해 12월 말 최고영도자로 추대된 덩샤오핑은 이듬해 3월 민주장의 투사들을 잡아넣기 시작했다. 민주장 운동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인 웨이징성 역시 당시 체포된 뒤 국제인권단체의 압박으로 가석방되기까지 18년 동안 반혁명 정치범으로 복역해야 했다. 캐나다 맥매스터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슬픈 중국’ 3부작의 마지막 권이다. 1부 ‘인민민주독재 1948∼1964’와 2부 ‘문화대반란 1964∼1976’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인민 통제의 기원을 분석했던 저자는 3부에서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거쳐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간 중국의 궤적을 탐구한다. 중국 현대사에서 구체제가 막을 내리고 신체제가 도래하는 분기점인 이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의 사상과 행적을 추적했다.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도 조명했다. 중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독일 인류학자 아드리안 첸츠는 중국이 2017년 이래 신장 지역에 대규모 강제수용소를 설치해 위구르족 100만 명을 격리수용하고 있다는 걸 밝혔다. 이후 해마다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 2만5000명 이상이 강제로 장기를 적출당하고 있다는 보고도 나왔다. 저자는 “현대 중국의 슬프고도 슬픈 역사”라며 “중국은 세계질서를 이끌 인류적 보편 이념을 창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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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이범석 한국광복군 장군의 미국인 형제 사전트 대위

    1953년 6·25전쟁이 끝난 뒤 장년의 한국인이 바다를 건너 미국에 있는 아홉 살 아래 친우의 집을 방문했다. 이 한국인은 미국인 친우의 취향을 고려해 휴대용 금속제 술병을 선물했다. 병엔 각각 자신과 친우를 상징하는 용과 올빼미가 사이좋게 장식됐다. ‘이범석이 미국인 형제에게’라는 글씨도 새겼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철기 이범석 장군(1900∼1972)이 구미 각국의 정세를 시찰하러 순방길에 나섰다가 옛 친구인 클라이드 사전트 전 미국 전략사무국(OSS) 비밀첩보과 대위(1909∼1981)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독립기념관과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의 연구를 통해 ‘독수리작전’의 미군 측 지휘관 사전트 대위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는 원래 중국학을 연구한 학자였다. 중일전쟁 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국의 대학에서 외국어학과 과장으로 일했다. 중국 전문가가 된 데엔 미국 지질조사국 소속 지형학자로 중국 내륙을 가로질러 여행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OSS가 그를 영입한 것은 1943년경이고, 이듬해 4월 미국 육군 대위로 임명됐다. 이 장군과의 첫 만남은 1944년 10월이다. 한국광복군 제2지대장이던 이 장군이 광복군과 미군의 연합작전을 제안하며 OSS를 찾아온 것. 이 장군의 초청으로 사전트 대위는 일본군에서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조선인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의 사기와 역량, 단결심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OSS의 훈련을 받은 광복군이 한반도에 침투해 정보 수집, 파괴 공작 등을 벌이는 ‘원조 한미동맹’ 독수리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전트 대위는 종전 뒤 중국 북부 지역에서 한국인의 귀환을 도왔고, 미소 공동위원회 고문으로 일하며 한국 정치인과 미국 사이에 교섭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48년 전역했고, 미국으로 돌아가 1981년 7월 27일 숨을 거뒀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일생에 있어 큰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의 아들 로버트 사전트 씨는 지난해 독립기념관이 주선한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동맹 한국의 승리에 기여한 것은 가족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이 장군과 사전트 대위는 나란히 72세까지 살았고,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각각 회고록을 남겼다. 중미 양국은 모두 일제에 맞선 한국의 항전을 지원했지만 이 장군과 사전트 대위의 회고록을 보면 살짝 느낌이 다르다. 임정은 훙커우공원 의거 이래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지만 때로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이 장군의 표현을 빌리면 ‘객군(客軍)’의 설움이 있었다. “중국 당국에선 작은 인사 문제까지 간여했다. 자기네가 누구를 지명해서 중국 사람으로 무슨 참모장을 내겠느니, 처장을 내겠느니 등등 협정 아닌 협정을 제시하며 압력을 가했다. … 그래서 어려운 일들이 자꾸 발생하곤 했다.”(이 장군 회고록 ‘우둥불’에서) 미군과의 합동작전은 달랐다. 사전트 대위는 “이범석과 사전트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조성한 평등, 존중, 협동의 분위기 속에서 뛰어난 정신을 지닌 하나의 군단이 힘을 얻었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성격의 문화적 차이가 여기서도 엿보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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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원조 ‘훔무스’ 보유국은 어디?

    흰강낭콩과 토마토, 양파, 마늘, 올리브유, 물, 소금, 후추. 시리아의 토마토 스튜 ‘파술리야’에 들어가는 재료다. 한국의 된장찌개 격인 이 요리는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 지중해 주변 국가에서는 다 즐겨 먹는다. 근래엔 독일 등 중부 유럽의 식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내전을 피해 정착한 시리아 난민이 식당을 차려 메뉴에 올렸기 때문. 음식은 시리아 출신 난민 여성이 상품화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이다. 유럽에선 난민의 전통음식을 먹고, 이를 통해 난민과 교류하며 소통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유로메나는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Middle East·North Africa)를 의미하는 메나(MENA)를 합친 말이다. 통합유럽연구회와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의 기획으로 유로메나의 각종 음식에 관련된 인문학을 풀어낸 책이다. 갈등이 끊이지 않는 아랍과 이스라엘은 음식을 두고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훔무스’는 병아리콩 또는 이 콩으로 만든 소스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서로 ‘훔무스 원조’라고 주장하기 위해 2008∼2015년 ‘가장 큰 훔무스 요리’ 기네스 기록 경쟁을 벌였다. 아랍 국가들은 훔무스가 이스라엘 수립 훨씬 전부터 아랍인의 식탁에 빠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유대교 율법서 토라에 훔무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걸 근거로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훔무스를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교류와 갈등의 역사가 음식을 매개로 흥미롭게 펼쳐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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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산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책”

    왜 높은 산을 힘들여 오르는가 하는 물음에 ‘그저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멋지기는 하지만 사실 좀 허탈한 구석이 없지 않다. 메디치상 등을 받은 프랑스의 저명 소설가이자 철학자이면서 등산과 등반을 사랑하는 저자(75)의 이 에세이는 어느 정도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등반을 시작하기 전날 밤은 묵묵한 몽환적 세계입니다. 멀리에서는 와지직 하고 빙하 갈라지는 소리와 돌이 굴러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우리는 강한 힘에 사로잡혀 깊은 침묵에 잠깁니다.…우리는 정상에서의 경건한 감동을 예견하는 존경과 두려움이 섞인 어떤 경외감 속으로 나아갑니다.” ‘산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책’ ‘몸의 고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건 산이 지닌 수수께끼’ ‘산에서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등 산에 깊이 빠진 문장가의 표현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산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마치 낙원을 본 것처럼 사로잡히고 빨려든다. 그 농밀함이 우리를 삼켜버린다”고 했다. “공포와 아름다움이 뒤섞여 우리에게 말을 거는, 보다 높은 곳에 있는 힘일까요?” 한국어판 서문엔 “길 하나를 돌기만 하면 당신은 자연의 광활함을 홀로 마주하고 그 수수께끼 앞에서 숨이 턱턱 막힐 것”이라며 “산은 자신의 방법으로 당신은 먼지 알갱이일 뿐이고, 하찮은 원자, 입자로서 경외심과 겸손함을 느끼는 거라고 말한다”고 썼다. “산은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지만, 당신이 산에게 질문을 하는 순간 침묵을 지킵니다. 겨울의 혹독함이나 여름의 온화함 속에서 우리는 백일몽, 기다림, 황홀경으로 이 침묵을 채웁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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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행동하는 양심’ 오에 겐자부로의 유작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전후 일본의 양심’으로 불렸던 작가의 마지막 소설이다. 소설은 오에 작가의 분신과 같은 캐릭터인 ‘조코 코기토’를 주 화자로 진행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너진 서고에서 빈 노트를 발견한 코기토는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만년의 양식에 대해서(On Late Style)’에서 착안해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여동생과 아내, 딸은 코기토의 소설에서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묘사되어 온 사실에 불만을 품고 있다’며 반론 글을 보내온다. 코기토는 지진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우 소리를 내면서’ 운다. 소설은 여러 사람의 시선이 중첩되면서 오에 작가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형상화한다. 작가는 일본 사회가 2011년 ‘3·11’(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2012∼2013년 문예지에 이 소설을 연재했다. “원숙한 노작가로서가 아니라 파국에 내몰리는 심정으로 썼다”고 했다. 소설 속 코기토는 노구를 이끌고 원전 반대 집회에 나선다. 맨 앞줄에 섰다가 커다란 유세차 스피커 소리에 노출되는 통에 괴로워하지만 휘청거릴지언정 끝내 낙오하지는 않는다. 평생 반전과 반핵 운동에 앞장섰던 저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오에 작가는 이 작품을 쓰고 10년이 지난 올 3월 88세로 별세했다. “내가 열 살이 될 때까지/온 나라가 다 같이 전쟁을 했다/…/나라님이/인간의 목소리로/전쟁에 졌다고 통고한 날/라디오 앞에서 교장이 서서 외쳤다./우리는 다시 살 수 없다!/…/그 어떤 절망에도 동조하지 않는 일이다…/…/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시다. ‘노년의 곤경’에 처한 화자는 첫 손주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했던 수수께끼 같은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 상상력이 쓴 소설 따위가 어느 만큼의 영향이 있었나, 싶어” 괴로워하다가 다시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가” 있다고 희망을 품는다. 작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라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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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KBS 이사 해임 둘러싼…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5일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 건의 절차에 착수하자 더불어민주당 추천 김현 방통위 상임위원이 이를 성토하는 입장문을 냈다. 김 위원은 “KBS 이사진 구도를 개편한 후 김의철 KBS 사장을 해임하려는 일련의 과정”이라며 “정치 권력 유지를 위한 방송 장악 야욕이 낱낱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정권이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 국가기록관리위원장)를 KBS 이사 자리에서 해임할 때는 입장이 달랐다. 방통위의 해임안 의결 다음 날인 2017년 12월 28일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김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KBS 이사 해임안 재가를 환영한다”며 “비리 이사를 해임한 만큼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소신 있는 학자로 살아온 강 교수에게 ‘비리 이사’라는 거짓 낙인까지 찍은 것이다. KBS 이사 해임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가 뭔지 묻고 싶다. 강 이사의 해임은 고대영 당시 KBS 사장을 해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그건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가 아니었나. 혹시 강 교수는 ‘네 편’이고, 남 이사장은 ‘내 편’이기 때문인가. 2017년 당시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온 뒤였고, 지금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감사가 무리한 표적 감사였다는 건 누구나 안다. 주지하다시피 2021년 9월 대법원은 강 교수의 KBS 이사 해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지난달에는 고대영 사장의 해임이 위법하다는 판결도 최종 확정했다. 강 교수가 해임 무효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고 약 한 달 뒤 당시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방통위가 반성하고 강 전 이사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김 위원은 “(해임 건의가) 방통위의 재량권 남용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나. 해임 과정과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최근 입장문에서 “공영방송 이사를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기는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했다. 김 위원의 방통위원 임명은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 정권에서 김 위원이 임명될 당시 진보 성향의 전국언론노동조합조차 이같이 반대했다. “김현 전 국회의원의 약력 어디를 봐도 전문성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앞세운 방통위원 내정을 철회하라.” 김 위원은 또 “방송을 길들이고자 한다면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다. 역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길들여보니 역효과가 났더라는 뜻인지 알쏭달쏭하다. 최근 KBS 관련 기사에 한 독자가 “적어도 공영방송이라면 어느 편도 들지 말아야 한다”는 댓글을 올렸다.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경영진에 대한 고발과 감사, 사장 교체가 되풀이되고, 정권에 편향된 방송이 이뤄지는 건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국민에게만 충성하는 KBS와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해 사장 선출 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방안을 검토하자. 방송 정책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과가 될 것이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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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혈액 항응고제는 쥐약에서 개발됐다?

    카리브해의 살리나스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일부 아이들은 여성의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사춘기에 들어서면 남자아이처럼 남성 생식기가 드러나고 목소리가 굵어졌다. 1970년대 한 연구자가 이 아이들이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돌연변이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더 강력한 분자로 전환하는 효소의 양을 줄여 사춘기가 될 때까진 남성의 특징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은 전립샘(전립선)의 크기가 작았다. 전립샘비대증 치료제를 개발하던 거대 제약회사 머크는 이 연구를 본 뒤 해당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찾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피나스테리드라는 물질을 찾아냈다. 머크는 이 물질이 탈모를 멈추는 효과도 있다는 걸 발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바로 남성 탈모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약 ‘프로페시아’다. 남성 호르몬 억제와 관련된 이 약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만져서도 안 된다. 미국의 과학 칼럼니스트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약 가운데 15가지를 골라 개발 과정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혈액 항응고제인 와파린은 20세기 초 북미에서 소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데에 기원이 있다. 죽은 소들은 내부 출혈로 고통받았는데, 알고 보니 곰팡이가 핀 건초를 먹인 것이 문제였다. 건초에서 혈액 응고를 방해하는 디쿠마롤이라는 분자가 만들어졌던 것. 연구진은 이와 비슷한 분자인 와파린으로 설치류를 방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와파린은 쥐약으로 상품화됐다. 한데 1951년 한 미국 해군 신병이 6·25전쟁에 파병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자살을 시도하려고 이 쥐약을 먹었다. 병사는 죽지는 않았고, 출혈로 병원에 이송됐다. 이 사건을 접한 연구진은 와파린을 인체 혈전 생성을 막는 약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항생제 페니실린, 말라리아 치료제 퀴닌, 우울증 치료제 이프로니아지드, 보톡스, 비아그라 등 여러 약의 개발 과정에 얽힌 노력과 좌절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제 ‘세상을 뒤흔든 15가지 약의 결정적 순간’.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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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는 만큼 보이는 ‘앨리스’ 다시 읽기

    “‘모자장수처럼 미쳤다’와 ‘삼월 산토끼처럼 미쳤다’는 말은 캐럴 당시에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캐럴이 이 두 캐릭터를 만든 이유도 물론 그것이다. …모자장수들이 최근까지 실제로 미쳤다는 사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페놀 수지를 경화시켜 펠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수은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셔 고양이가 근처에 모자장수와 삼월 산토끼가 산다고 소개하는 대목에 달린 주석이다. 여러 수수께끼와 말장난, 상징이 숨어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루이스 캐럴(1832∼1898) 전문가인 마틴 가드너(1914∼2010)가 370개의 주석을 달았다. 가드너는 “‘앨리스’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건과 관습을 반영한 위트가 많다. 옥스퍼드 주민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농담도 많다”며 “그 모호함을 최대한 명료하게 밝히고자 했다”고 했다. 원저가 나오기까지 수십 년에 걸쳐 세 번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1960년 처음 ‘주석 달린 앨리스’를 낸 가드너는 30년이 지난 1990년 ‘더 많은 주석 달린 앨리스’를 펴냈다. 1999년에는 ‘최종판…’을 냈는데 그의 사후인 2015년 추가 작업을 담은 ‘앨리스 출간 15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주석 달린 앨리스’가 다시 나왔다. 이 책을 번역한 책이다. 문학평론가인 역자의 주 386개도 추가됐다. 존 테니얼(1820∼1914)의 오리지널 삽화를 비롯해 전 세계 작가들의 삽화 400여 컷도 눈길을 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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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해 대한민국 건국 기리자[광화문에서/조종엽]

    많은 이들이 거론했던 죽산 조봉암(1898∼1959)과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서훈 필요성을 최근 이 지면을 통해 다시금 촉구한 바 있다. 이달 초 국가보훈부는 두 인물의 서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환영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목의 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국가 정체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다. 푸대접받는 제헌절을 제대로 기리는 일이다. 75년 전인 1948년 단군 이래 처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제헌국회는 7월 12일 전문과 10장, 103조로 구성된 대한민국 헌법을 통과시키고 17일 공포했다. 아직 정부 수립은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헌법이 마련된 이상 한국인은 이날부터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에 살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것 하나 제헌헌법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당대의 학자로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낸 위당 정인보 선생(1893∼1950)은 제헌절 기념곡 가사를 지으며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라고 했다. 그러나 5대 국경일 가운데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닌 날이 제헌절이다.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그렇게 바꿨다. 주 5일 근무제 시행에 따른 근로시간 감소 우려 때문이었다지만 당시 대통령의 헌법 경시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15년이 지난 지금 제헌절은 거의 잊힌 날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과 학교에 가야 하는 이들에게 정부와 국회의 제헌절 기념행사는 딴 나라 얘기인 게 당연하다. 과거에도 제헌절의 의미를 모르는 청소년이 적지 않았는데, 15년 새 그런 학생들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헌절의 위상 하락은 또 다른 문제도 낳았다. 국경일이 5개나 있는데, 대한민국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은 대체 언제인가. 8·15 광복절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1948년 정부 수립을 동시에 경축하는 날이지만 다수 국민이 가진 광복절의 심상은 해방의 의미가 9할 정도다. 과거 일각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리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논란만 낳았다. 3·1절은 거족적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고, 개천절과 한글날 역시 거리가 멀거나 무관하다.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탄생과 관계됐다고 인식되는 날은 사실상 제헌절뿐인 것이다. 근로시간 감소 우려 역시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근거가 되긴 약하다. 최근 빠른 속도로 줄긴 했지만 한국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2021년 기준 연간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많다. 하루 쉬어 8시간 노동을 덜 한다고 해도 5위인 건 그대로다.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 놀아야 이날이 뭔가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국경일이 뭔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니 의미를 되새기면서 축하하고 놀자는 날이다. 해마다 제헌절에 서울 여의도 등에서 불꽃 축제가 펼쳐지고, 공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함께 즐기며 민주공화국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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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파트 단지의 매미가 더 시끄러운 까닭

    옛날에 지은 아파트는 같은 평수라도 왜 좁아 보일까? 실제로 좁기 때문이다. 1998년 이전에는 벽체 중심선을 기준으로 전용면적을 측정했지만 이후 벽의 안쪽 선으로 기준이 변경됐다. 벽 두께만큼 이득을 보게 된 것. 관련 연구에 따르면 기준 변경 뒤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경우 실제 면적이 전보다 평균 6.7㎡ 증가했다. 우리나라 아파트 수명이 왜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짧은지부터 층간소음의 원인까지, 한국인들이 유난히 사랑하는 아파트와 관련된 과학을 과학 칼럼니스트가 알기 쉽게 풀어 썼다. 저자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새집증후군’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아이러니하게도 당시부터 집을 지을 때 빈틈없이 외풍을 막은 탓이다. 전에는 의도치 않게 실내 공기가 외부로 순환했는데,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단열과 기밀 성능을 강화하자 실내 공기 오염이 심각해진 것이다. 공기청정기도 가스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환기가 최고다. 최근엔 아파트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고강도 콘크리트의 수요가 늘고 있다. 2016년 완공된 롯데월드타워에 쓰인 초고강도 콘크리트는 1㎠가 1.5t의 하중을 견딘다. 성인 손바닥 넓이에 중형 승용차 100대를 쌓아 올려도 버틸 수 있는 강도다. 아파트 단지에서 매미가 유독 시끄럽게 우는 까닭, 아파트 평면도에서 ‘X’자로 표시된 공간의 정체, 한국인의 남향 선호가 아파트에 미친 영향 등 매일같이 보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아파트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 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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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자유주의의 빈곤 탓에 민주주의 후퇴”

    중국은 미국을 따돌리고 21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하게 될까?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인 저자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정치·사회학적 요인 때문이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소수민족 문제, 인권 문제 등을 안고 있다. 창조나 혁신을 이끌지도, 다른 나라의 롤 모델이 되지도 못하고 있다. 성공한 중국인들은 여전히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역시 패권주의나 제국주의적 DNA를 갖고 있지만 옛 소련이나 중국보다는 세련된 제국을 운영하고 있다.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고대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보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줄타기 전략은 시효가 지났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한다. 미국 민주주의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을 거치며 퇴보했듯이 우리 민주주의 역시 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후퇴했다고 본다. 정치가 진영 논리에 따른 선과 악의 진흙탕 싸움터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의 빈곤과 포퓰리즘화 탓이다. 지난해 봄부터 올봄까지 ‘신동아’에 연재한 글을 토대로 ‘민주주의와 리더십’, ‘자유주의와 안보’, ‘다양성과 혁신’, ‘문화와 미래’ 등으로 나눠 민주주의의 의미와 전망을 탐구했다. 부제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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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루마기 테너’ 김성호, ‘BBC 카디프’ 가곡부문 우승

    테너 김성호(33·사진)가 15일(현지 시간) 영국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3’에서 가곡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김성호는 영국 웨일스 카디프 세인트 데이비드 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채 무대에 올랐다. 이번 콩쿠르에서 그는 랠프 본 윌리엄스의 ‘렛 뷰티 어웨이크(Let Beauty Awake)’, 김성태의 ‘동심초’ 등을 불렀다. 상금은 1만 파운드(약 1700만 원)이다. 이 대회는 1983년 세인트 데이비드 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돼 2년마다 열린다. 아리아와 가곡 부문의 우승자를 각각 뽑는다. 한국인 중에서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이 처음 우승(가곡 부문)했다. 김성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와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2018년 벨베데레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20년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 앙상블 멤버가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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