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변영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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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영욱 기자입니다.

cut@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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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합니다]성균관대 연탄 나눔 봉사

    성균관대학교 (총장 유지범)는 19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골목에서 차상위, 기초생활수급자, 독거 어르신 등 15가구를 대상으로 연탄 3천 장을 전달하는 ‘2023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를 진행했다. 유 총장과 교직원, 외국인 학생을 포함한 재학생 등 70여명이 참여했다. 고원물산(주) 박상조 회장이 연탄을 기부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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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전 오늘, 종로 체육관에 모인 청년들 [청계천 옆 사진관]

    [백년 사진]을 시작하며도처에 사진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불과 70년 전에는 라이카 카메라 한 세트를 살 돈이면 서울 강북의 작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사치품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어낼 수 있는 일상 용품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대부터 시작한 사진기자라는 직업이 어느덧 30년에 가까운 경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사진기자라는 직업을 택했던 이유가, 세상에 대한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신우일신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연하지만, 계속 탐구하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직업 말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금 찍고, 고르고 신문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과 공유하는 사진의 원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는지도 살펴보고 싶습니다. 1842년에 발명된 사진술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00년대 후반이라지만 대중매체인 신문에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들어서입니다. 일제시대 민간 신문이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 1920년이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식과 다른 나라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일 것입니다. 지금 사무실의 제 컴퓨터를 통하면 10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불과 20년 전만이라고 해도 아마 옛날 사진을 찾으려면 국회 도서관 수장고에 일일이 열람신청을 했어야 했고, 그렇게 발견한 보물을 인터넷에 올리기 위해 스캐너라는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수고를 덜 수 있도록 놀랍도록 간편한 PDF 방식을 개발한 누군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00년 전 동아일보 지면이 모두 디지털 파일로 저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는 2023년 1월 현재 약 200만 장의 인화된 사진과 약 400만 장의 디지털 사진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 오늘과 소통할 수 있는 사진들을 찾아 독자 여러분들과 나눠보려 합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글 한자 한자를 선택하고 사진 한 컷 한 컷을 정성들여 찍고 선택했던 한국 신문의 아버지들의 흔적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보고자 합니다.▼ 100년 전 이 번 주 사진 중에 가장 눈에 띈 사진입니다서울 종로의 청년회에서 실내운동경연을 했다고 합니다. 악단이 분위기를 띄운 후 유도 야구 철봉 종목의 실력을 겨루었는데 저녁 7시 45분부터 3시간 가량 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부언모두들 생업에 바빴던 시절 탓이었을까요? 밤 8시에 가까운 시간에 모여 밤 11시까지 운동회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전기가 부족한 시절 실내에 조명을 밝혔다는 건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낮에 바쁘게 일하고 밤에 모여 축제를 즐긴 건 아니었을까요?신문의 특성상 사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딱 한 장이 실립니다. 그런데 왜 스포츠 경기 경연대회를 했는데 스포츠 액션이 아니라 삼각탑을 만드는 묘기 사진을 신문에 썼을까요? 유도의 한판승 순간이나 블로킹을 뚫고 슛을 성공시키는 선수의 모습은 스포츠 사진의 묘미일텐데 말이죠. 아마도 카메라 기술력 때문이었을 겁니다.당시 실내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움직임을 포착할 만큼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사진기자들이 이른바 스포츠 액션을 포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셔터 스피드는 1/500 초 보다 빠릅니다. 1/2000초 정도로 셔터 스피드를 설정해 놓고 촬영하기도 합니다. 1초를 500 조각으로 나눈 순간 또는 1초를 2000 조각으로 나눈 순간의 표정을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100년 전 사진가들은 실내에서 그렇게 빠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고 사양이었던 코닥 베스트 포켓 카메라에는 1/25초와 1/50초와 B셔터 그리고 T셔터 등 4단계의 셔터 단계만 있었습니다. 가장 빠른 셔터 스피드라고 해야 1/50초라는 겁니다. 스포츠 액션의 순간을 포착하기엔 너무 느렸던 겁니다. 벌브 플래시를 터뜨려야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데 그런 방식은 선수들의 시선을 방해하기 때문에 경기 중에는 사용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삼각탑 묘기가 정지되는 순간으로 행사를 표현했을 겁니다.1934년도에 들어서 라이카가 오늘날 쓰는 35미리카메라를 출시하면서 비로소 1/300초의 고속 스피드 촬영이 가능했다는 게 정설입니다(박주석, “한국 사진사” 저자). -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선수들의 윗옷에 크게 쓰여진 영어 알파벳 S입니다. Sports의 약자였을까요? 이 복장은 며칠 후인 1923년 1월 26일자 신문에 다시 실립니다. 선수들 가슴의 알파벳 “S“자가 어떻게 보면 영화 슈퍼맨의 망토와 비슷하기도 합니다.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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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메라 뒤에서 관조한 삶의 이치 [청계천 옆 사진관]

    김경훈 기자는 한국인 사진기자로는 처음으로 퓰리쳐상을 받은 재원이다. 로이터 통신 소속 으로 2018년 11월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캐러밴 가족이 미국 국경 장벽 앞에서 최루탄 연기에 쫓겨 달아나는 모습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의 스포츠 신문 사진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로이터로 이직했고 중국 근무에 이어 지금은 일본 지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꼼꼼하고 다양한 앵글로 현장을 기록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로이터 본사에서 그를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슈에 많이 파견한다. 미국 국경으로 들어오는 캐러밴들을 취재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 역시 한국인 사진기자로 평생을 살아왔고 김경훈 기자와 현장에서 꽤 많이 만났다. 같은 현장에도 있었다. 2002년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에서 유족의 절규에 사진기자로서 부끄러웠었다는 그의 기억. 죄송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슬그머니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진기자 중 한 명이다. 한국으로 가끔 올 때마다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보며 십 수년간 지내온 사이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 인문 에세이를 묶어 책으로 펴냈다. 그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삶에 대해, 세상의 이치에 대해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이야기꾼인 줄 이제 알았다. 사진기자들은 보통 자신의 사진에 사진 설명을 붙이는데 200자 원고지 한 장 분량 정도를 쓴다. 카메라 뒤에 숨어 세상을 살펴볼 뿐 무대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사진기자들에게는 그것도 쉬운 작업이 아니다. 원고지 500장 정도의 에세이 책이니 다른 사진기자들보다 500배 정도 수다스럽다고나 해야 할까.그는 책을 통해 인생을 얘기하면서도 직업으로서의 사진기자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일, 그리고 사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하는 것”을 사진기자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상이 대중화되고 그만큼 쉬워진 만큼 직업인으로서의 사진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근본 문제제기를 해 온 것 같다. 그리고 그 답을 구한 것 같다. 이미지는 허상일 수 있어 본질을 찾는다는 게 이율배반일 수 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스스로 하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어제는 만찬장의 미국 대통령을 취재하고, 오늘은 깡통을 모으며 살아가는 노숙자를 취재하고, 내일은 레드카펫을 걷는 할리우드 스타를 취재하기도” 하는 게 사진기자의 일상이다. 그는 사진기자 생활을 통해 터득한 ‘이치’로 세상을 보고 있다. 사진집이라고 이름붙이지 않고 책의 성격을 에세이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에 실린 ‘사진’ 만큼이거나 그 이상으로 ‘생각’이 곱씹어볼 만하기 때문이다.이 책은 경어체로 되어 있다. 평소 김경훈 기자의 성격이기도 하다. 아무에게도 쉽게 반말하지 않고 큰소리치지 않는. 그가 한국 사진기자인 나에게 준 큰 인사이트는 ‘저는 보도 뒤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나쁜 영향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 했고’라며 일본의 가정폭력 피해자 사진 취재의 경험을 설명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그 문장 앞에는 “언제나처럼”이 있었다. 그의 책이 나의 루틴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감히 자신있게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진을 사랑하고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그의 인생 수다가 많은 공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독을 권해드린다. 도서출판 다산초당. (2022년 10월 30일. 한국의 이태원에서 153명의 젊은이들이 압사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날 외국 언론 소속 한국 사진기자들과 한국 언론 소속 사진기자들의 사진은 무척이나 달랐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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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위 식힌 장대비, 휴일 고궁에는 문화행사 가득[청계천 옆 사진관]

    9월 말까지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서울에 연휴 마지막날인 3일 많은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수요일 오전까지 내리는 비가 그치고 나면 전국은 본격 가을 날씨로 들어선다고 예보했다. 이날 오전 국군의 날을 기념해 여의도 상공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던 육군 항공대와 공군 블랙이글팀의 전투기 축하비행은 취소되어 가족 나들이를 계획했던 동심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기획한 수문장 임명의식 특별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수문장이 시민들에게 처음 재현되어 보여진 것은 1996년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처음이며, 수문장 임명의식은 2002년 처음 재현되었다. 임명식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행사에는 제주도와 인천공항을 비롯해 전국에서 온 240여 명의 수문장이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국왕의 임명을 받는 모습을 재현했다. 수문장은 조선 시대 궁궐과 도성 출입문을 지키던 관직이다. 임명의식은 조선 예종 1년인 1469년 처음 시행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서울 4대궁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 사직단에서는 ‘2022 가을 궁중문화축전이 열리고 있다. 조선 궁중의 다양한 문화를 즐기면서 오늘의 눈으로 고궁의 의미를 살펴보자는 축제다. 2015년 시작한 궁중문화축전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고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은 경회루 내부에서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건물을 살펴보고 국악 공연을 관람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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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차례 퓰리처상’ 사진기자, 한국의 문화를 앵글에 담다[청계천 옆 사진관]

    그는 한 때 한국 사진기자들의 롤모델이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사진의 전성시대를 만끽하는 미국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이었다. 그는 미국 LA타임즈와 AP통신과 로이터 통신에서 활동했으며 기자들이 노벨상으로 생각하는 퓰리쳐상을 2번 받았다.LA폭동과 9.11 테러 등 미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을 지켜보며 기록했고, 백악관을 출입하며 미국 대통령을 촬영했다. 중학교 시절 이민을 가, 미국 UCLA에서 정치학과 국제외교학을 전공한 후 현지에서 33년간 사진기자 생활을 마친 그가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세계의 중심인 미국과 국제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건에만 카메라를 들이대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고국과 레거시(legacy)에 대해 포커스를 맞춘다. 한국의 삽살개, 진돗개, 독도, 정치인, 청년, 공동체문화 등이 요즘 그의 작품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의 렌즈를 통과한 한국의 풍경과 에피소드들은 아무래도 독특한 느낌을 준다. 한국 사진기자들보다 미니멀리즘에 익숙한 작풍 때문일 수도 있고, 색에 대한 감각도 서로 차이가 있어서 일수도 있다. 어찌됐건 독특할 수밖에 없는 그의 작품들은 또 한번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에 오픈된다. 그가 사진집을 냈다. 지난 몇 년간의 기록이다. ‘Visual History of Korea’(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도서출판 알에이치코리아. 2022년 9월 20일 인터넷과 서점에서 살 수 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인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진가’라는 특징 때문에 그의 사진 밑에는 영어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은 만국의 공통어고, 국경이 없는 언어이며, 그래서 말이 필요없다곤 하지만, 사진 작품 중에 ‘무제(無題)’의 제목은 다큐멘터리나 정보를 다루는 사진에서는 적절하지 않아 꼭 설명이 들어간다. 하지만 한국어 사진 설명은 아무래도 우리를 세상에 알리는 데 한계를 갖는다. 문화 강국으로 자리 잡은 한국에 대한 세계의 관심에 비해 정작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외국에 제대로 소개하는 자료는 여전히 미흡하다. 미국에서 활동한 사진가 강형원의 스토리텔링은 한국의 이미지를 영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귀한 방식이다. 그가 기록한 한국의 문화유산 사진은 우리가 숱하게 보아왔던 기존의 사진과 조금씩 다르다. 4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아오며 ‘외부인의 눈’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면서도 ‘내부인의 눈’으로 고국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갖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기록이나 작업이 끝나면 내 주변, 작지만 더 소중한 것을 기록하고 싶다는 꿈. 미국 무대에서 젊은 사진기자들의 부러움을 샀던 그가 환갑을 넘은 나이에 다시 한번 중년의 사진기자들에게 롤 모델로 변신 중이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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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득점할 수 없는 슛

    공처럼 생긴 천장의 동그란 전등. 위치가 절묘해 림을 맞고 바로 농구대에 골인할 것만 같네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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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진귀한 구경일세!”

    리모델링을 하는 한 건물 외벽, 로봇이 새 건물 모습을 보여주네요. 세종대왕님도 손을 들어 관심을 보이십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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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蓮)꽃에 숨겨진 생명의 이야기를 담다[청계천 옆 사진관]

    여기, 도시와 도시 사이에 있는 저수지 연꽃들에서 생명과 우주를 발견하는 작가가 있다. 살아서는 화려하게, 죽은 것 같지만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연꽃에 대한 기록이며 찬사다. 코로나19로 세상이 힘들 때 작가는 집에서 8km 떨어진 저수지(시흥 관곡지)를 찾았다. “지난밤 밤새도록 퍼부은 폭우로 인해 하룻밤 사이에 노랑어리연이 몰살당했다… 가뜩이나 시국이 어수선하고 살아가기가 힘겨운데 왜 이렇게 물 폭탄으로 절단 내는지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듬성듬성 비를 피해 숨어있는 연꽃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줄었다. 하지만 꽃이 없으면 잎이 있으며 연밥, 연대가 있다. 모두 하나의 연으로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다. 연꽃이 사라졌다고 해서 모두 사라진 게 아니며 부활은 계속 진행 중이다. [‘부활은 계속 진행 중’에서]밤과 낮 그리고 새벽에 그곳으로 간다. ‘일년 열두 달 공휴일이나 쉬는 날, 휴가도 없다’. 깜깜한 새벽 4시 30분까지는 촬영 장소에 가야 하기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난다.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농부에게 작가는 사진 찍는 것도 농사일처럼 참 고단하다고 말을 건넨다. 끈질기게 매달려야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하늘도 그런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가 보다“라고 혼자 되된다. 많은 자연의 피사체 중에 연꽃에 천착하게 된 이유는 뭘까. ”오래도록 연꽃을 집중적으로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신비로움을 연에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연꽃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말라죽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라죽은 연꽃 자리에는 또 다른 형체가 생겨나고 꽃 외의 연대, 연잎, 연밥은 여러 모양의 디자인 예술품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죽은 게 아니었다. 그런 연꽃을 찍으면 찍을수록 점점 더 깊게 연꽃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 같았다. 연꽃의 신비로움에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볼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아하면서 도도한 것 같아도 겸손하게 다가오는 연꽃,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연꽃을 찍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엄숙해지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지은이의 말’에서] 지은이 최병관은 인천시 남동구 소래포구 근처에서 태어나 사라져 가는 고향 풍경을 비롯해 주제를 선정해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는 작가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필터도 쓰지 않고, 원래 찍은 프레임을 자르거나 색을 조정하는 후작업은 최대한 피한다. 피사체를 존중하고 작심(作心)을 숨긴다. 시인이라고 하기엔 글이 길고 소설가라고 하기엔 담백하다. 글쪽으로 따지자면 수필가 쯤 될까? 그러기엔 그의 사진과 그의 시선은 독창적이고 아름답다. 사진찍는 철학가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싶다.1996년에는 육군본부 DMZ 사진작가로 선정되어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 최초로 1997~1998년 동안 DMZ의 서쪽 끝 말도부터 동쪽 끝 해금강까지 ‘휴전선 155마일’을 3차례 횡단하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이 사진들는 2010년 뉴욕 유엔본부에서도 전시됐다. 사진 책 28종, 포토시집 2종 등을 출간했으며, 국내외에서 45번의 초청 개인전을 열었다. 이 시대의 큰 사진가가 피사체에 접근하는 방법을 궁금하다면, 일상과 자연에서 미를 어떻게 찾아내서 포착해 사진으로 표현하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이미지에 언어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범벅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일독해볼 만하다. 미리 작가의 접근법을 스포일링 하자면 ‘사진을 찍을 때도 머릿속으로 편집을 해가며 찍어야 한다’. 출간이나 전시라는 사진의 목적을 갖는 대가의 꿀팁이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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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어디에서 사진 찍을지 막막하다면…여기가 포토존! [청계천 옆 사진관]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청와대는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청와대 방문은 많은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추첨을 통해 청와대 나들이 순서가 되었다면 어디 어디를 볼 것인지 동선을 짜고 사진 촬영 계획을 세우게 된다. 청와대는 생각보다 광활해서 막상 들어가면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 막막할 수도 있다. 청와대를 출입해본 동아일보 사진기자들과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전속 사진가의 경험에 비춰 앞으로 사진 명당이 될만한 청와대 포토존을 제안해 본다. 1. 본관을 배경으로전직 대통령들이 주요 문서에 서명을 하거나 주요 회의를 했고, 외국 손님을 만났던 본관은 청와대의 가장 상징적인 곳. 건물이 크다보니 너무 가까이 가서 촬영하면 건물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본관 앞 콘크리트 도로 맨 끝까지 나오거나 그 앞 대정원으로 내려가 본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게 좋다. 건물에서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앵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핸드폰 카메라를 광각 모드로 설정해 정면에서 로우 앵글(허리를 최대한 굽혀서 아래에서 위로 건물을 찍는 방식)로 찍으면 어렵지 않게 웅장함을 담을 수 있다. 2. 상춘재와 녹지원상춘재는 외국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만찬을 하거나, 국내 정치가 난항에 빠졌을 때 야당 대표를 불러 담소를 나누던 곳이다. 전통 양식의 한옥 앞에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일품이다. 상춘재로 올라오는 길은 언덕이기 때문에 앵글을 건물에서 잔디밭을 향해 잡으면 파란 잔디 위에 피사체만 깔끔하게 위치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녹지원은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낙도 어린이와 사회적으로 역할을 한 가정의 자녀들이 선발되어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과 공연을 보며 기념 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단체로 간다면 수건 돌리기를 해본다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3. 영원히 늙지 않는 문 “불로문‘과 아메리카노 담소문재인 전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며 참모들과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아메리카노를 들고 담소를 나눈 장면은 유명하다. 소정원 주변의 불로문(不老門)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의미다. 2017년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멜라니아 여사도 이곳을 걸었다. 3. 관저역대 대통령 내외가 기거했던 관저는 청와대 본관에서 한 참 떨어진 언덕 위에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출근길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집무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연출해 보는건 어떨까4. 경비대원들청와대가 공원이 되면서 가장 바빠진 사람들은 아마도 청와대를 지키고 있는 경찰일 것이다. 흰색 정복으로 엄숙하게 시민들을 지켜보던 이들이 이제는 영국 근위병처럼 시민의 친근한 동반자로 돌아왔다. 다만, 초상권이 있으니 ’찍어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시는 것은 필수과정. 5. 대정원대정원은 본관 앞에 있는 큰 잔디밭이다. 외국 손님이 오면 여기서 사열 행사와 공연이 펼쳐졌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잔디밭에 앉아 본관을 바라보던 소나무 두 그루가 핵심 포토존이 되지 않을까 싶다. 6. 정문의 봉황에 가까기 가서 찍어보자정문의 봉황과 무궁화는 대통령의 상징 문양이다. 함부로 가까이 가서 찍을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는 바로 앞에 가서 찍어도 된다. 와이드렌즈 기능을 이용해 최대한 가까이 가서 찍어보면 색다른 조형미를 발견할 수 있다. 7. 하늘에서 본 청와대를 찍고 싶다면5월 11일자 동아일보 A8면에는 ’드론으로 촬영한 청와대‘ 사진이 게재되었다. 청와대는 군사 보안시설이라 항공 촬영과 드론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비행 금지구역이라 일반인들의 드론 촬영은 어렵다. 일반인들의 드론 촬영이 앞으로 허락될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정부 청사 등 중요 국가 시설들이 광화문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8. 사진기자들도 아직 담지 못한 비경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들이라고 해도 청와대 경내를 종횡무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준비된 행사만 촬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봤지만 사진으로는 담지 못한‘ 비경은 상춘재와 본관 사이의 개천 주변이다. 대통령의 관저로 올라가는 길인데 개천가에서 산쪽을 바라보면 계곡의 풍경이 펼쳐진다. 커다란 잉어들도 많이 살고 있다. 여지껏 보지 못한 사진이 나올 수 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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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의 포토저널리즘 역사 속 50년의 현장 기자 경험[청계천 옆 사진관]

    언론사 소속 사진기자들이 “사건을 보도하거나 기사를 보충하려는 목적으로 촬영”하는 활동을 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진기자를 포토저널리스트(photojournalist)라고 한다. 한국의 포토저널리즘은 민간 자본에 의해 일간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처음 선보인 192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러면 올해로 한국의 포토저널리즘 역사는 100년쯤 된다. 그리고 사진기자는 한국 포토 저널리즘 역사의 중심이다. 사진기자들은 입사 후 퇴사까지 거의 같은 일을 한다. 취재기자가 정치부, 산업부, 문화부, 레저부 등으로 부서와 출입처를 옮기는 것과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보통 사진기자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일을 할까? 20대 후반에 입사해 정년퇴임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30년 정도 사진기자로 포토저널리즘에 매진한다. “나는 사진기자입니다”라는 사진집을 출간한 박태홍 기자의 이력 중 가장 특이한 것이 사진기자로 그가 지낸 시간이다. 1970년 한국일보 사진부에 입사해 2020년 뉴시스에서 퇴사할 때까지 정확히 50년간 사진기자로 살았다. 그가 젊음을 바친 1970년대와 1980년대는 한국 보도사진의 성장기였고 그 때 정립된 틀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완성해 후배 사진기자들에게 전해 준 포토저널리즘의 정수 110여 점의 사진을 엄선해 책으로 엮었다. “나는 사진기자입니다”이다(도서출판 눈빛, 2021년 5월, 156쪽). 100여 년의 한국 포토저널리즘 역사에서 50년을 포토저널리스트로 살았으니 그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게 1980년 광주 민주 항쟁 발생 3일 후인 5월 21일부터 현장에 들어가 촬영한 사진들이다. 흥분한 군중들에게 프락치로 오해받고 카메라를 압수당했다 돌려받는 우여곡절 끝에 그는 광주의 참상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건물 위에 숨어서 거리를 몰래 훔쳐보듯 찍었고, 차츰 시민군의 눈높이로 내려와 항쟁을 기록했다. 진압군의 총탄에 맞아 생을 달리한 시민군의 시체도 필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어떤 말로 그 시간을 윤색하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군대가 국민을 향해 발포를 하고 죽임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그의 사진이 증명하고 있다. 사진기자 박태홍의 필름 속 어린이들은 이제 환갑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1978년 5월 전라남도 여천군 둔병도에서 흑백 TV를 함께 보고 있는 초등학생들 사이로 파리를 잡기 위해 메달아 놓은 ‘찍찍이’도 보인다. 사진설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많은 것을 뽑아낼 수 있는 게 보도사진의 묘미이기도 하다.박태홍 기자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사진은 “기적의 소녀, 조수아 양”이다. 1972년 12월 2일, MBC 개국 11주년 기념 ‘남녀 10대 가수 청백전’이 열린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폐막 직후 무대장치 합선으로 불이나 53명이 사망하고 76명이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사진기자를 시작한 지 만 3년이 안된 박 기자는 많은 관람객이 한꺼번에 탈출하여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조수아(당시 6세)어린이의 왼발이 3층 회전 창문 틀에 걸려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을 단독 촬영해 한국보도사진전 금상을 받았고, 국제 콘테스트인 세계보도사진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 사진은 당시 언론 검열을 하던 공무원들에 의해 “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하지만 박태홍 기자는 조수아 양의 입원과 퇴원,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 및 20년 후 결혼식 모습까지 기록했다. 토속적인 정감은 박태홍 기자의 사진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현란한 기교를 통한 시각 충격보다는 대상 그 자체에 충실한 사진. 그래서 그의 기록은 우리가 지내온 시대와 일상을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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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니문의 추억, 힐튼호텔 사라지나…[청계천 옆 사진관]

    오늘 출근하면서 조간 신문에 난 기사를 하나 봤습니다. 서울 남산에 있는 힐튼 호텔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힐튼호텔서울의 대주주는 싱가포르계 CDL코리아입니다. 1983년 대우그룹이 호텔을 완공했지만 경제 위기 여파로 1999년 CDL에 매각됐습니다. 지금 힐튼호텔 서울 인수에 나선 곳은 이지스자산운용인데 이지스는 호텔을 헐고 오피스 빌딩을 지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동아일보 DB에 힐튼호텔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봤습니다. 모두 3238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여러분께 추억의 사진 몇 장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힐튼호텔. 여러분은 어떤 추억을 갖고 계신가요? 궁금합니다. 서울시경이 서울올림픽 대회 참가 외국인의 신변 안전을 위해 힐튼 호텔 출입구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 출입자의 검색을 하고 있습니다.(1988년 9월 2일 동아일보 김녕만 기자).제 1차 남북 고위급 회담 본회담이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북측 대표단과 기자단이 만찬장인 서울 힐튼호텔로 가는 시내 연도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1990년 9월 5일. 동아일보 DB)“여성만 주차하세요”. 힐튼 호텔이 지하 2층 주차장 전체를 여성전용으로 꾸며 여성 운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보도가 있네요. (1998년 10월 21일.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호텔 마케팅팀에서 월드컵 승리 기원 칵테일을 기획해 판매했었네요. 칵테일을 마신 후 축구공 모양의 컵은 가져갈 수 있었다고 사진에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힐튼 호텔의 홍보 담당이 곽** 라는 분이셨는데 아주 발군의 실력으로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를 잘 하셨습니다(1998년 5월 9일. 동아일보 김경제 기자)‘새천년 운세를 봐 드립니다.’ 밀레니엄이 바뀐다는 건 당시로서는 한 해가 바뀐다는 것 이상의 특별한 의미였을테지요. 일류 호텔에서도 토정비결을 보는 코너를 만들었었네요. 설 명절을 앞두고 고객들에게 토정비결과 사주를 봐주는 행사를 열었었군요. 가격은 얼마였을까요? 한 번 보는데 1만원이었군요.(2000년 1월 26일. 동아일보 안철민 기자)결혼 시즌을 맞아 서울 힐튼호텔은 항공 스케줄 때문에 결혼식 당일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신혼부부들이 신혼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 ‘로맨틱 허니문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는 기사에 함께 실렸던 사진입니다. 신혼부부들의 특성(?)을 고려해 체크아웃시간은 2시간 연장된다는 설명도 함께 붙어 있네요. 가격은 26만원~39만5000원 이었답니다.(2001년 3월 28일. 힐튼호텔 제공)MS 오피스2003 시절 사진입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의 사무용 소프트웨어인 오피스 2003 출시 행사장에서 참가자들이 체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MS 오피스 2003에는 기업용 정보 수집 공유 프로그램과 태블릿 PC를 종이공책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추가됐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가격은 허덜덜… 60만~70만원대. 2003년 10월 22일.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이종격투기 추성훈(34. 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 선수가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에서 UFC 진출 기자회견을 열고, 진출 소감과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2009년 3월 4일. 동아일보 양회성 기자)월드컵 트로피 한국나들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우승국이 품에 안게 될 트로피가 국내에서 공개되는 행사가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허정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2010년 4월 21일.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힐튼 호텔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25일, 서울에 새롭게 탄생한 호텔 소식도 들립니다. 정용진 신세계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 자회사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옛 르네상스 호텔 자리에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을 열었습니다. 국내외 예술 작품 400점을 전시한 최고급 호텔이라고 합니다. 사진제공 조선호텔앤리조트.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이제 이 곳에서 추억을 쌓아가시겠군요. 아듀 힐튼. 봉쥬르 조선팰리스서울강남.변영욱 cut@donga.com}

    •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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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 한파 언제 끝날까…일자리 박람회 찾은 중장년들[청계천 옆 사진관]

    코로나 19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2021 수원시 일자리 박람회’가 열렸다. 방역규칙을 지키기 위해 체육관 입구에서 구직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손에 비닐 장갑을 낀 채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수원시와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이 주최한 이날 박람회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을 찾았다.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가 전월대비 1.7포인트 상승한 102.2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 19가 우리나라에 본격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1월 (104.2)에 근접한 수치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28일 한국의 장기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 등급인 ‘AA’로 유지면서 “지난해 한국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인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이내 성장세로 돌아서는 등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에 비해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 걸까? 일자리를 찾아 박람회 현장에 나온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쓰는 모습에서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모습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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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지한 사진, 툭 찍은 사진[사진기자의 ‘사談진談’]

    올해 5월 미국에서 흑인이 경찰에 의해 목이 눌려 사망하자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됐다. 현지에서 가게를 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걱정이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SNS에는 ‘루프 코리안(roof Koreans)’이라는 설명과 함께 다수의 사진이 유행했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당시 총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자신들의 가게를 지키는 교민들의 모습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완벽한 구도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사진의 질 때문에 출처가 궁금했다. 본보 사진기자들의 인터넷 블로그에 사진을 소개하겠다는 후배에게 원작자를 찾는 노력을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후배는 사진 중 일부의 원작자가 강형원 사진기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e메일을 통해 사진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세상의 결정적 순간을 기록하고자 했던 사진기자 초년 시절 미국 신문사와 통신사에서 활동하는 강 기자는 나의 롤모델에 가까웠다. 강 기자는 후배로부터 안부를 전해 들었다며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해왔다. 그는 요즘 포토저널리즘을 어떻게 즐기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전통적인 개념의 보도사진을 찍어 보도하는 일이야 특별한 게 아닐 것 같아 ‘고양이눈’이라는 칼럼 연재를 총괄하고 있다고 답했다. 막상 이렇게 답하고 나니 ‘고양이눈’이란 게 과연 중요한 사진은 맞는지, 강 기자의 루프 코리안 사진처럼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다시 소환될 수 있는 기록인지 궁금했다. ‘고양이눈’은 2018년 3월부터 본보 지면에 매주 5번씩 연재되고 인스타그램에도 꾸준히 업로드되는 사진 칼럼이다. 신문의 1면이나 사회면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세상의 단면이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격렬한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진기자들이 취재 중간중간 찍거나 가족 여행 등에서 발견한 장면 등으로 채워진다. 아예 시간을 내서 소위 그림이 될 것 같은 현장으로 가서 취재하기도 하고 가끔 독자들이 보내준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신문 뉴스 사진으로는 어색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시각의 사진을 보여주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춘다. 세상의 이면을 때론 봄날 고양이처럼 여유 있게, 때론 날카롭게 응시하는 사진 칼럼이라는 취지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정된 지면에 특별한 메시지도 없는 사진을 그렇게 크게 쓰냐면서 어색해하는 사진기자들도 꽤 있었다. 신문사에서 칼럼이 흥망성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 코너가 2년 이상 이어진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진설명을 다는 기자, 지면을 편집하는 기자들의 노력을 독자들이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트렌드에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진기자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툭 찍는 사진’이 왜 독자들의 호응을 받는지 생각해봤다. 회사 근처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붙은 한 외국 스마트폰 광고판을 보면서였다. 울트라와이드 렌즈 기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애완견, 자전거 몸체보다 큰 타이어. 그야말로 어색한 사진이지만 왜 저 회사는 저런 기능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사람들의 지갑을 노리고 있는 걸까. 우리 눈은 보통 고개를 돌리지 않은 상태에서 46도 각도로 세상을 보는데 와이드 렌즈들은 100도로 세상을 본다. 그만큼 넓게 보는 반면 만약 피사체의 일부에 근접한다면 그 부분이 어마아마하게 커져서 실제와는 다른 왜곡된 화면이 만들어진다. 예전에는 어색했을 시각과 장면에 사람들은 오히려 친근감을 느낀다. 요즘 사람들은 어쩌면 이제 자신들만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대통령을 봐도, 풍경을 봐도 모든 사람이 같은 곳을 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뭔가에 집중한다. 직장생활을 바라볼 때 누군가에게는 돈이 우선일 거고 누군가에게는 워라밸이 중요할 수도 있다.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서 마주치는 특별한 숙제를 크게 느끼는 것이다. 최근 정치인들이 지하철을 타거나 라면을 먹는 이벤트를 하다 예상치 못한 디테일을 지적받아 곤욕을 치르는 걸 본다. 이제 국민들의 눈에 포착될 디테일을 챙기지 않으면 실패할 수도 있는 대중 정치인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고양이눈’의 장수 비결은 세상의 이런 변화를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 20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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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앵글 속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사진기자의 ‘사談진談’]

    사진기자가 피사체를 괴롭힐 때가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집 앞이나 모임이 이뤄지는 식당 밖에서 취재원을 장시간 기다리는 이른바 ‘뻗치기’는 당사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궁금증에 대해 취재원들이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을 때 사진기자는 피사체의 의중을 표정으로라도 포착해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벌써 1년 넘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0개월 넘게 사진기자로부터 이런 취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추 장관의 경우 특유의 웃는 모습을 요즘 신문에서 보기는 어렵다. 분노에 찬 모습이 많다. 장관이 국회나 외부 행사에 나가는 날은 그나마 낫지만 아무 일정이 없는 날 두 사람의 대립이 격화되면 사진기자들은 정부과천청사로 가서 장관의 출퇴근을 기다린다. 장관은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뒷문으로 퇴근하기도 한다. 급기야 장관이 아파트 입구에서 출근 장면을 기다리는 사진기자의 얼굴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상황도 벌어졌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미국 주류 언론에서 33년간 활동한 한 한국계 사진기자는 “주변 행인들의 통행이나 법무장관의 출근 차량을 몸으로 막으며 촬영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달 12일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나온 추 장관이 여당 의원과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이 찍혀 보도됐다.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가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과정에 대해 진상 조사를 하라고 지시하고 한동훈 검사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제재할 법안이 있는지를 검토하라고 한 날 모습이다. 일련의 정책이 무리수라는 비판이 있던 시점에 나온 사진이라 당사자는 웃는 표정을 연출한 듯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런 표정의 사진을 어색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윤 총장의 사진은 더 힘들게 보도되고 있다. 본인이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데다 올 6월까지 보였던 구내식당행 구름다리 유리창이 가려지면서 대검찰청 지하주차장 입구만이 유일한 촬영 포인트다. 윤 총장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사진기자들은 대검 지하주차장 입구 옆에 대기한다. 검정 필름으로 선팅된 승용차 뒷좌석을 향해 감(感)으로 포커스를 맞춘다. 운칠기삼의 순간이다. 찍는 데 성공해도 표정이 엉망이거나 블랙박스에 얼굴이 반쯤 가려지기 일쑤다. 지방 순시를 가면 멀리 뒷산이나 건물 위에서 초대형 망원렌즈로 그를 찍는다. 동아일보의 경우 800mm 렌즈를 준비해서 충북 진천군의 법무연수원으로 갔었다. 이 렌즈는 북한과 중국 접경 지역에서 북한 꽃제비를 찍을 때 쓰는 것이다. 프로야구나 축구 A매치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초망원렌즈다. 이 렌즈를 꺼내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비상(非常)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뿌연 금단의 땅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윤 총장의 사진을 지면에서 보는 독자들의 마음도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윤 총장이 처음 언론사 기자들의 카메라에 기록된 건 2013년 6월 즈음이다. 오늘까지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는 모두 2100장 정도의 윤 총장 사진이 저장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3년 가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때 외압을 받았다는 사실을 국정감사장에서 폭로할 때 그의 사진을 찍었다. ‘세상에 이렇게 기개 넘치는 검사가 있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선배 검사를 울게 만들었던 그 검사가 나중에 검찰총장으로 임명된다는 소식에 ‘특별한 상황은 특별한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원칙이 우선인 사람이 과연 한 지붕 아래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추 장관은 1985년 8월 1일 ‘여성 판사 추미애의 웃는 모습’이 첫 사진이고 모두 8200여 장의 사진이 DB에 등록되어 있다. 5번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여당 대표까지 지냈으니 뉴스를 몰고 다녔다. 개인적으로 2010년 제18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국회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할 때 여성 정치인의 소신 있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셔터를 눌렀던 경험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을지 모른다. 합쳐서 1만 장이 넘는 사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카메라에 기록되고 있는 두 고위공무원의 모습에서 국민은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두 사람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과 활동비를 받는 공복(公僕)이다. 사진기자들이 두 사람을 추적하지 않는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두 사람의 이미지는 이미 충분히 비정상이다. 게다가 지금은 국민들이 전염병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와중이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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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지로 짓다’ 무료 전시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용산공예관 4층 다목적실에서 팔도공예전 강원도편 ‘한지로 짓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다음 달 13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회에서는 사단법인 한지개발원이 보유한 ‘대한민국한지대전’ 수상작 등 다양한 한지 공예품 22점이 전시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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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근길 한 컷]종이로 가구를 만들 수 있다고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용산공예관에서 12월 13일까지 팔동공예전 강원도편 '한지로 짓다'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단법인 한지개발원이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한지대전' 수상작 등 22점이다. 가구에서 베개, 재떨이 등 한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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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합니다]인천시설공단, 제설기 활용한 거리 청소 시연회

    인천시설공단(이사장 김영분)은 17일 공단 학습동아리의 창의연구 성과보고회에서 최우수제안으로 선정된 ‘기존 제설기를 개조한 낙하물 수거장치의 성능 검증’ 시연회를 열었다. 낙하물 수거장치는 동절기 폭설 상황에서만 사용하던 제설기를 개조해 사계절 활용이 가능하게 했으며 지하차도 작업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사진제공 인천시설공단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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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호보다 행동, 국민은 ‘진짜’를 찾아낸다[사진기자의 ‘사談진談’]

    세상을 기록하러 다니는 사람이 사진기자다. 불이 나도 달려가고, 축구 경기가 열려도 달려가고, 정치인들이 말싸움을 해도 달려가 사진을 찍는다. 사진기자들은 현장에 가서 얼마나 오랫동안 사진을 찍는 걸까? 불이 완전히 꺼지고 피해자의 슬픔이 최고조로 표현되는 시간까지, 축구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사진기자는 취재한다. 정치인들을 기록할 때는 ‘그림이 될 때까지’ 취재를 한다. 그래서 청문회에 나온 후보자들이 물을 마시거나 땀을 흘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잡지 않으면 계속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정치 사진에서 제일 어려운 현장 중 하나가 회의장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양복 차림으로 앉아서 하는 회의는 단조로움 그 자체다. 회의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공개 회의로 전환되면 기자들은 신문에 쓸 만한 순간을 포착하지도 못한 채 현장을 떠나야 한다. 그런 날이면 마감시간 신문에 쓸 사진이 없어서 곤혹스럽다. 그런데 요즘 정치 현장에선 홍보 담당자들의 노력 덕에 사진기자들의 고민이 훨씬 덜하다. 사진이 잘 나오도록 조명을 설치하고 색깔을 신경 쓰고 포즈도 취해줄 뿐만 아니라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구호나 메시지를 사진 앵글 속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장면을 보자. 대통령 뒤에 설치된 백드롭(배경 현수막)에는 ‘나라답게 정의롭게’라는 흰색 글씨가 파란 바탕을 배경으로 쓰여 있다. 비슷한 색깔의 더불어민주당 회의실 백드롭에는 ‘일하는 국회, 코로나 경제 위기 극복’의 구호가 쓰여 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경우 “OFF 정치공세, ON 위기극복”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유권자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설득을 통해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과제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여야 모두에 합리적인 정치 행위다. 정당의 입장에서는 과학자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복잡한 사실관계나 논리를 통한 설득보다는 간결한 구호와 그래픽으로 시선을 끄는 게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차별성이 거의 없는 정치 세력들을 비교하기보다는 자기 정서를 파고드는 간단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보고 입장을 정리하는 독자나 시청자들의 ‘인지적 구두쇠 전략’(최소한의 정보로 결정하려는 성향)이 문제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어떤 프로세스가 작동하는지와 상관없이 한국 정치에서 간결한 구호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54년 이승만 정권에 반대한 민주당의 구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고, 1987년 민주화 세력은 ‘독재타도 호헌철폐’라는 8자 구호로 국민들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집권세력은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 구호로 다시 대통령 선거를 이겼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때 시민사회단체들은 기가바이트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게 무능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2메가바이트(2MB)로 표현했고 이 표현은 사람들의 귀에 쏙쏙 박혔다. 검색을 해보니 최근 여야 회의실 백드롭의 교체 시기는 보통 한 달쯤 되는데 야당이 훨씬 자주 바꾸는 것으로 확인된다. 7월에만 백드롭을 3번 바꿨고, 8월 들어서도 현재까지 3번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데도 자주 바뀌는 여야의 메시지 사진을 보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과제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다양한 구호는 아직 다양한 정책이 구현되어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숙제가 남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볼썽사나운 몸싸움보다는 구호 싸움이 훨씬 점잖다. 하지만 혹시 정치권이 바라보는 국민의 수준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본다. 잘 준비된 정책보고서와 숫자로 표현되는 성과보다는 선악 구분이 분명해 보이는 구호로 지지자들을 결속시키고 정치적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중도층을 끌어오는 데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 새로워지고 화려해지는 정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는 국민들의 예리한 시선이 아직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해 복구 작업 봉사 모습 사진을 SNS에 올렸던 정치인들 중에 누군가는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오히려 오물을 묻힌 채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 의원은 박수를 받았다. 탁상에서 만들어 낸 구호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국민이 꽤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 앞에 사진을 내놓는 일은 두렵다. 이러고 보니 글과 사진 그리고 똑똑한 독자들의 취사선택을 통해 진실이 완성되는 것 같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 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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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을 불러 주세요[고양이 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구처럼 ‘저기요’ 말고 이름을 불러주세요. 친절은 손님께로 가서 다시 ‘친절’이 됩니다.―서울 충정로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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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김정은의 인스타그램[사진기자의 ‘사談진談’]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달 12일 미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북한을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으로서는 한때 정상회담까지 했던 미국이 자신들을 보통 국가가 아닌 특이한 국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국제사회의 오해를 해소시키기 위해서일까. 최근 북한은 영상 정보를 외부에 많이 노출시키고 있다.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 외국으로 전해지는 김정은의 사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 비해 많고 빈도도 잦다. 또 북한은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친숙한 매체인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 위주, 유튜브는 동영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조선중앙통신에서 촬영한 사진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계정(northkorea_dprk-newssite)은 북한 당국이 공식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권력을 잡은 직후인 2012년 5월 시작된 이 계정에는 현재 누적합계 2100여 개의 피드(글)가 게시돼 있다. 전 세계에서 2만9000명이 팔로잉을 하고 있는데 이곳은 마치 유명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처럼 김 위원장 개인의 활동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가득하다. 글에 붙는 설명은 주로 영어로 되어 있다. 이달 1일 사망설을 일축하며 비료 공장 준공식에 등장해 빨간 리본을 가위로 자르는 김정은의 인스타그램 사진에는 ‘좋아요’가 900개 이상 달렸고 1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좋아요와 댓글의 아이디는 한국이나 북한 사람은 거의 없고 남미와 아프리카 출신 또는 비공개 계정이다. 북한의 디지털 선전 활동이 북한 내부 주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목적보다는 외부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최근 유명해진 유튜브 채널(Echo DPRK)에 올라온 영상들이다. 기존 북한 관영 매체들의 보도로 채워졌던 외국어 유튜브 계정과 달리 이 채널은 주인이 개별 시민인 것처럼 연출되고 있다. 2017년 8월 개설된 이 채널의 주인은 자기 소개 글에 ‘북한의 일상생활에 대한 영상을 공유하고자 한다’며 개설 취지를 밝히고 있다. 구독자는 7000명이 조금 넘고 현재 149개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로 평양 시내 상점에서 사재기가 횡행한다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가 나오자 ‘은아’라는 젊은 여성이 유창한 영어로 평양 시내 상점을 돌며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은아라는 개인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드론 촬영과 배경 음악, 그래픽 등이 수준이 높아 전문가 팀이 만드는 작품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전문가 냄새가 나는 화면은 이미지 뒤에 권력 또는 권력을 옹위하려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래서 이 영상에는 10% 정도의 ‘싫어요’가 있다. 확증 편향을 갖는 추종자들이 주로 보는 유튜브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결코 적지 않은 비율의 반대 표명이다. 자유로운 언론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콘텐츠는 중요한 볼거리이고 정보원이다. 북한을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전 세계 누리꾼들은 북한이 제공하는 이미지로 그 사회를 본다. 북한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하는 전 세계를 향해 북한이 활용하는 디지털 선전법은 일견 성공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게다가 노동신문이나 우리민족끼리 등 전통적 방법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국내에서 접속이 안 되는 것과 달리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는 현재 누구나 접속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에도 자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주입할 수 있는 채널인 셈이다. 이런 완벽한 선전의 장에서, 그것도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영상을 통해 최고 지도자의 이미지를 선전할 수 있다는 것에 북한은 희열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중요한 현대 사회에서 국가 홍보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감수성과 미디어 해석 능력을 고려한다면 뉴미디어를 활용한 북한의 선전 효과는 높지 않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젊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과 능력을 자유롭게 공유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 중 ‘은아’처럼 개인의 계정과 채널을 열고 평범한 일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사람은 없다. 인터넷 시대지만 북한 주민들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고 권력을 가진 특권층만 첨단 기술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시민의 일상은 보이지 않고 권력의 화려함만 보이는 북한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과연 세계의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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