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변영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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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영욱 기자입니다.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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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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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찍혔다!

    초대형 카메라입니다. 셔터를 한 번 누르면 웬만한 피사체는 다 찍힐 것 같습니다. 카메라 위에는 옛날에 있었던 마그네슘 플래시를 본떠 만든 대형 플래시도 있습니다. 플래시가 한 번 터지면 어마어마한 섬광이 터져 나올 것만 같네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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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다시 자란 삶

    손바닥만 한 등걸에 가느다란 새 가지가 자라났습니다. 언제 잘린 흔적인지, 많이 아팠겠네요. 그래도 삶은 계속 이어지기 마련. 새 가지와 초록빛 새싹이 자라난 모습이 대견합니다. 따스한 봄볕, 촉촉한 봄비 맘껏 머금고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길, 우리 삶도 씩씩하게 자라길 소원합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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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기자의 ‘사談진談’]‘위성의 눈’ 말고 사진가의 눈으로 北 보고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진기자가 북한을 방문하면 안내원들이 여럿 붙었다. 보통 기자 한 명당 3, 4명의 안내원이 붙는데 이들은 서로 소속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로 따지면 경찰과 국가정보원 등에서 따로 나오는 셈이다. 그 이유는 기자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이 원하지 않는 장면을 촬영할까 봐서다. 굳이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을 찍으려 드는 남쪽 기자들과 북한 안내원의 신경전은 남북 관계에서 항상 존재했던 갈등이다. 북한은 남쪽에서 온 기자들이 ‘세팅된 장면’만을 기록해 돌아가길 기대한다. 기자로서는 그런 장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내원의 눈을 피해 높은 건물이나 달리는 버스 위에서 바닥 쪽을 찍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진기자들이 찍은 북한 주민의 배경은 건물이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이다. 어색한 인물사진이다. 북한이 원하지 않지만 북한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 위성사진이다. 북한 내부의 이미지가 한정된 상황에서 위성사진은 북한의 현재를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특히 북한이 핵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이어가던 시절 미국 정보기관과 한국 언론들은 북한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 내부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위성사진은 매우 비인간적인 앵글이다.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떠 있는 위성이 ‘나’를 지켜보는 게 유쾌할 리 없다. 정상적인 국가 간의 보도에서 상대방 국가의 모습을 위성으로 독자에게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기 파주시 도라산전망대 등에서 4km 떨어진 북한 선전마을을 망원렌즈로 찍은 이미지도 정상적인 앵글이 아니다. 위성이나 망원렌즈로 어떤 지역을 본다는 것은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위성과 카메라 대신에 무기가 위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의 영어 단어가 같이 ‘shoot’이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 사진기자들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을 함께 넘고 백두산을 배경으로 악수를 하는 환상적인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근접해서 찍은 사진은 두 정상의 얼굴에 나타난 상기된 표정뿐만 아니라 백두산 천지의 흙과 나무의 디테일까지 담고 있어서 현장의 감동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우리 대표단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북한 주민들의 표정과 패션도 고스란히 기록됐다. 하지만 북-미 정상 간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영향으로 남북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취재 방식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조짐이다. 북한은 또다시 위성에서 감시해야 하는 대상이고, 주민들의 모습은 접경지역에서 초망원렌즈로 기록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방식이 아닌 앵글로 기록된 풍경은 낯설다. 사실 민족의 반쪽이라고 하는 북한은 주로 부정적이거나 흐릿한 이미지였다. 잡힐 듯 말 듯 흐릿하게 포착된 접경지역 주민, 하늘에서 본 위성사진에서 점으로 표시된 주민은 북한의 비정상성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으로 북한이 기록되고 전달된다면 보는 사람의 뇌리에 또다시 비정상적 국가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북한 사람들이 이상한 존재로 기억되는 것, 한반도의 평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은 보는 이에게 친근함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북한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변화가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멀리서 훔쳐보는 듯한 앵글이 아닌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앵글로 북한을 담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몇 발자국을 내디뎠던 북한은 이제 더 국제사회의 관심 대상이 됐다.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는 계속 특별한 렌즈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m 앞에서 볼 수 있었던 북한 지도자와 북한 주민. 이들이 다시 위성사진과 초망원렌즈로 흐릿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면 한다. 북한이 우리의 카메라 앞에 다시 서서 정상국가의 보여주기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위성으로 본 북한 주민보다는 신경전을 펼치더라도 남쪽 카메라 기자들의 시선이 훨씬 인간적이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cut@donga.com}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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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훔쳐보는 앵글’ 아닌 일상적 느낌의 북한을 담는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진기자가 북한을 방문하면 안내원들이 여럿 붙었다. 보통 기자 한 명당 3, 4명 정도 안내원이 붙는데 이들은 서로 소속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로 따지면 경찰과 국정원 등에서 따로 나오는 셈이다. 그 이유는 기자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이 원하지 않는 장면을 촬영할까봐서다. 굳이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을 찍으려 드는 남쪽 기자들과 북한 안내원의 신경전은 남북 관계에서 항상 존재했던 갈등이다. 북한은 남쪽에서 온 기자들이 ‘세팅 된 장면’만을 기록해 돌아가길 기대한다. 기자로서는 그런 장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내원의 눈을 피해 높은 건물이나 달리는 버스 위에서 바닥 쪽을 찍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진기자들이 찍은 북한 주민의 배경은 건물이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이다. 어색한 인물사진이다. 북한이 원하지 않지만 북한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 위성사진이다. 북한 내부의 이미지가 한정된 상황에서 위성사진은 북한의 현재를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였다. 특히 북한이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어가던 시절 미국 정보기관과 한국 언론들은 북한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 내부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위성사진은 매우 비인간적인 앵글이다.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떠 있는 위성이 ‘나’를 지켜보는 게 유쾌할 리 없다. 정상적인 국가간의 보도에서 상대방 국가의 모습을 위성으로 독자에게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기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 등에서 4km 떨어진 북한 선전마을을 망원렌즈로 찍은 이미지도 정상적인 앵글이 아니다. 위성이나 망원렌즈로 어떤 지역을 본다는 것은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위성과 카메라 대신에 무기가 위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의 영어 단어가 같이 ‘shoot’이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 사진기자들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을 함께 넘고 백두산을 배경으로 악수를 하는 환상적인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근접해서 찍은 사진은 두 정상의 얼굴에 나타난 상기된 표정뿐만 아니라 백두산 천지의 흙과 나무의 디테일까지 담고 있어서 현장의 감동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도 전달됐다. 우리 대표단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북한 주민들의 표정과 패션도 고스란히 기록됐다. 하지만 북미 정상 간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영향으로 남북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취재 방식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조짐이다. 북한은 또 다시 위성에서 감시해야 하는 대상이고, 주민들의 모습은 접경지역에서 초망원렌즈로 기록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방식이 아닌 앵글로 기록된 풍경은 낯설다. 사실 민족의 반쪽이라고 하는 북한은 주로 부정적이거나 흐릿한 이미지였다. 잡힐 듯 말듯 흐릿하게 포착된 접경지역 주민, 하늘에서 본 위성사진에서 점으로 표시된 주민은 북한의 비정상성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으로 북한이 기록되고 전달된다면 보는 사람의 뇌리에 또다시 비정상적 국가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북한 사람들이 이상한 존재로 기억되는 것, 한반도의 평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은 보는 이에게 친근함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북한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변화가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멀리서 훔쳐보는 듯한 앵글이 아닌 일상적인 느낌을 주는 앵글로 북한을 담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몇 발자국을 내딛었던 북한은 이제 더 국제사회의 관심 대상이 됐다.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는 계속 특별한 렌즈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m 앞에서 볼 수 있었던 북한 지도자와 북한 주민. 이들이 다시 위성사진과 초망원렌즈로 흐릿하게 기록되지 않았으면 한다. 북한이 우리의 카메라 앞에 다시 서서 정상국가의 보여주기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위성으로 본 북한 주민보다는 신경전을 펼치더라도 남쪽 카메라 기자들의 시선이 훨씬 인간적이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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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마트, 취약계층 아동에 미세먼지 마스크

    11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회의실에서 이갑수 이마트 대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왼쪽부터)이 취약계층 아동 1만 명에게 미세먼지 마스크 100만 개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한 후 활짝 웃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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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천 옆 사진관] 여의도에 공항이 있었다고? ‘여의도 비행장의 추억’

    1919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오늘 저녁 여의도에서 열린다.1945년 서울진입 작전에 투입된 한국광복군과 미국 저략첩보국 요원 4명이 C-47 수송기를 타고 광복군이 한반도로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이 여의도 비행장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여의도에 공항이 있었다고? 동아일보 DB를 찾아봤더니 재미있는 사진 몇 장을 찾을 수 있었다. 여의도 공항은 1916년부터 1958년까지 서울 여의도에 있던 공항이다. 일제가 만들었고 활주로와 격납고가 있었다. 1953년에는 국제공항으로 승격하기도 했고 1958년 김포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이후에는 공군 기지로 쓰였다가 1971년 폐쇄되었다. 최초로 한반도 하늘을 비행기로 날았던 사람은 일본 해군 중위 나라하라 산지였다. 1913년 8월 29일. 우리로서는 치욕스러운 경술국치 3주년에 맞춰 일본이 벌인 이벤트였다. 1921년 일본에서 한국인 최초로 안창남 선생이 1등 비행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국내로 전해졌고 안창남 후원회가 조직되었다. 비행기 구입을 위한 2만원 모금 운동이 벌어졌으나 실패했다. 이듬해인 1922년 12월 10일 동아일보사 주최로 안창남 고국방문 비행이 성사됐다. 안창남이 비행기 ‘금강호’가 여의도 비행장을 이륙해 하늘로 치솟았다. 한강의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였던 구경꾼 5만 여명이 함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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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천 옆 사진관] ‘소방관 이재정’ 명찰 달고 현안 질의하는 의원

    9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강원도 지역 산불 피해 현황 과 복구 지원과 관련한 현안보고와 질의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 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이 의원은 실제 소방관들이 입는 소방복에 명찰까지 달고 질의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현안보고를 듣는 틈틈이 인터넷에 본인 관련 기사가 뜬 것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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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천 옆 사진관]정치인이 왜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에 들어가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재보궐 선거 유세 지원을 위해 3월 30일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가 열린 경남 창원 축구센터를 방문했다. 이 지역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와 관중석 안으로 들어가 시민들에게 인사를 했는데 ‘자유한국당’ 당명과 기호 2번이 선명한 붉은 점퍼를 입은 게 화근이었다. 선거법 위반은 아니지만 축구계의 관행에는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는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원칙에 따라 ‘경기장내 선거운동 관련 지침’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경기장 안에서 정당이나 후보의 이름, 기호가 노출된 의상을 착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를 어기면 홈팀이 10점 이상의 승점을 뺏기거나 2천만원 이상의 제재금을 내야한다. 경남 FC는 승점 감점과 제재금의 징계가 우려된다며 자유한국당에 공식 사과와 법적인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무심결에 입고 다닌 정당 유니폼이 체육계와 팬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정치인들이 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지 언제부터 이런 식의 선거운동이 생겼는지 한번 알아봤다. 한국 정치에서 점퍼가 처음 동원된 것은 최소한 1992년 12월 이전이다. 14대 대통령 선거전이 막판에 접어들면서 민자, 민주, 국민 등 3당은 타당에서 뿌리고 있는 각종 금품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이 때 국민당이 유권자들에게 뿌린 것으로 추정되는 오리털 파카를 다른 당 관계자들이 폭로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1992년에 등장했던 오리털 파커가 정치인들의 유니폼처럼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은 전통적으로 양복을 입어왔고 설령 선거철이 되더라도 어깨띠를 두르는 방식으로 당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만 해도 노무현과 이회창의 점퍼는 일반 점퍼였다. 정치인들이 유니폼 형식의 점퍼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2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란 저금통과 빨간 목도리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팀웍을 상징할 수 있는 소품의 힘을 확인한 여당에서 아예 유니폼을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의 전신이었던 당이 점퍼를 입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뒤로 추적된다. 2012년 1월 한나라당은 광고계에서 평생 활동해온 조동원씨를 신임 홍보기획 본부장으로 영입해 당의 로고를 바꾸고 슬로건을 짜도록 역할을 맡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로 유명한 조 본부장은 당의 컬러를 붉은색으로 잡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깜짝 제안을 했다. 결국 2012년 이후 한국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모두 각당의 상징색으로 만든 점퍼를 입고 유권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정치인에게 옷은 그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이다. 또한 색깔을 통해 당의 정체성을 유권자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파랑, 자유한국당=빨강, 바른미래당 = 민트, 민주평화당=연두, 정의당=노란색으로 선명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게다가 점퍼는 서민들이나 일하는 사람들의 복장이니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준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이것저것 복잡한 정강이나 정책을 비교하지 말고 점퍼 색깔로 후보자를 뽑으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가져본다. 그래서일까 국제사회에서 선거운동기간 동안 같은 당 사람들이 유니폼처럼 점퍼를 입고 돌아다니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는 없다. 필리핀 선거에서 가끔 본 것 같긴 하다. 한 때는 참신해보였던 선거기법이지만 이번 ‘야구장 난입 사건’을 계기로 정치인 유니폼에 대한 시선이 계속 고울 것 같지는 않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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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기자의 ‘사談진談’]‘주는 사진’과 ‘찍는 사진’ 사이에서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면담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동계가 참여해 현안을 풀고 경제 안정에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였다. 본보와 몇몇 매체의 경우 생동감은 떨어지지만 무표정하게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선택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 신문들은 양대 노총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실었다. 이때만 해도 대타협이 이뤄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사흘 후 민노총은 난상토론 끝에 대화기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청와대가 제공한 ‘서로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이 무색해졌고 국민은 실망했다. 청와대는 면담 전날 출입기자단에 비공개 행사라고 통보했다. 실제 80분간의 면담은 취재기자와 카메라기자들의 접근이 차단된 채 진행됐다. 면담 후 청와대는 총 6장의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다. 방송사들은 동영상 없이 6장의 사진을 편집해 뉴스로 내보냈다. 다음 날 신문에 실린 사진 밑에는 ‘○○○ 기자’나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신 ‘청와대 제공’이라는 바이라인(기자 이름)이 실렸다. 대통령의 행사를 찍는 이들 중에는 신문사 사진기자 외에 대통령 전속 사진사가 있다. 이들은 대통령 공식 행사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까지 기록한다. 다만 청와대 입장에서 난처할 가능성이 있는 사진은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에도 전속 사진사가 있다. 애견과 달리기를 하거나 머리를 숙여 어린아이에게 머리를 만지게 한 버락 오바마의 모습은 ‘친근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양 노총 비공개 면담 사진은 전속 사진사가 찍었다. 출입 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에서 청와대 본관이나 대통령 관저로 가는 문은 닫혀 있다. 의전비서관실과 춘추관실의 사전 조치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대통령의 일정이 있더라도 허락이 없다면 누가 왔다갔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취재가 불가능하다. 만약 국회의장이 비공개로 노총 위원장을 만난다면 국회 본관으로 드나드는 모습이라도 찍을 수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날 면담을 비공개하기로 정한 게 청와대의 결정인지 아니면 노총의 요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노동 문제는 민감한 이슈인 데다 강건파와 온건파로 의견 대립이 심한 상황 때문에 청와대는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언론이 ‘화합보다는 갈등을 강조한 사진을 내보내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처럼 만든 이벤트를 언론이 부정적인 면만 부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접근을 차단했다고 이해한다. 출입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중앙회 임원들과 송년회를 비공개로 열어 기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유족과의 면담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정치권력과 사회단체가 협상을 하는 과정은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 기자가 그날 청와대 면담을 기록하는 역할을 했다면 악수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문 대통령과 두 위원장의 무거운 어깨와 표정을 노렸을 것이다. 또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 보려는 청와대의 노력이 꼭 깔끔한 사진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고민하는 대통령과 위원장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더 많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사진이 해결의 에너지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설령 사진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역사, 갈등의 과정 그 자체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정치 사진의 인기가 점점 없어지는 이유는 뭘까? 사진기자들이 찍을 수 있는 정치 현실이 점점 세트 속에 갇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카메라는 훨훨 날아 더 많이 담고 싶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cut@donga.com}

    •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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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기자의 ‘사談진談’]임아, 그 선에 서지 마오

    일본 경제계 거물이 전격 체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외신에 따르면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회장(64)은 일본 검찰에 체포돼 현재 도쿄 인근 수감시설에 머물며 추가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많은 이들의 궁금증 한 가지. ‘왜 곤 회장의 체포 구속 사진과 영상이 없을까?’ 우리 같으면 거물이 검찰청사에 들어서고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기자들이 몰려드는, 흔히 보아온 그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다. 검찰청이나 경찰서 ‘포토라인’(기자들이 취재 편의를 위해 접근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진 촬영지역)에 선 장면 말이다. 일본 신문과 방송은 곤 회장의 구속 장면을 촬영하지 못했다. 포토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사진기자들은 피의자가 검찰에 들어가는 시간 등에 관한 정보를 거의 받지 못한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현장에서 마냥 기다린다. 그러다가 수상한 차가 나타나면 대형 플래시를 딱 한 번 터뜨린다. 그만큼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해두어야 하고 고성능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한 번 실수하면 사진은 없다. 한국에서 포토라인은 일상화된 풍경이다. 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안의 관련자들이 수사를 받을 경우 검찰은 일정을 미리 공개한다. 기자들은 검찰이 공개한 소환 시간보다 한두 시간 앞서 검찰청사로 출동해 노랑 테이프로 취재진의 출입 한계선을 표시한다. 1995년 노태우 전두환, 2009년 고 노무현, 2017년 박근혜,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전직 대통령 5명이 포토라인에 섰다. 한국의 포토라인 앞에 성역은 없다고 봐도 좋다. 포토라인에 서서 ‘얼굴이 팔리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추락’을 의미한다. 수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거침없이 몰려드는 취재진과 시위대 앞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카메라는 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배우가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이를 겨냥하고 있다. 식은땀이 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포토라인에 서는 이들은 철저하게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컨설팅 업체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어떤 복장과 표정으로 나타나 어떤 얘기를 할지 각본을 짠다. 포토라인을 피하는 방법도 진화해 왔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때 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부인은 대역을 세워 기자들을 완벽하게 피했다. 정경유착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하던 대기업 총수들은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반사판을 대는 방식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피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질문하는 취재기자를 향해 레이저 눈빛으로 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준비가 덜 된 아마추어다. 포토라인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콩글리시’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카메라맨을 위해 촬영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촬영 기회(photo opportunity) 또는 촬영 장소(photographers‘ area) 정도로 불린다. 국내에서 포토라인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 당시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정 전 회장은 검찰청에 소환됐다가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이듬해 기자들이 질서 유지와 피소환인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검찰 공보관과 협의해 포토라인을 설정하기 시작했다는 게 유래에 관한 정설이다. 포토라인을 위해 바닥에 테이프를 붙이는 사람들은 사진·영상기자들이지만 포토라인 설치 가능 여부는 검찰과 법원, 그리고 경찰의 판단이다. 사법·행정기관의 취사선택에 따라 포토라인이 결정된다. 최근 송인배 대통령정무비서관의 경우 검찰이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토요일에, 그것도 비공개로 소환해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다. 포토라인의 기준이 없으면 자칫 언론 플레이로 비칠 위험도 있다. 검찰 입장에서는 공개적으로 불편부당한 수사를 시작했다고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지만 법의 심판을 받으러 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보다 먼저 여론의 심판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쩍 늘어나는 포토라인 빈도와 시위대 피켓을 보며 든 생각이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cut@donga.com}

    •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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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눈/사진 칼럼]한국은 처음이지?

    아빠 품에서 단잠 자고 일어나니 낯선 곳이네요. 그래도 든든한 아빠와 곰돌이 친구가 있어 무서울 게 없어요. 한국의 푸근한 가을도 반겨주네요. “웰컴 투 코리아!”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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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실 ‘사선녀’ 입상자 본사방문

    전북 임실·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가 주최한 제32회 사선녀 선발 전국대회 수상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희지(선) 김고은(진) 권은진(미).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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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당신 같은 향기

    땅에 떨어진 모과 삼형제. 흙 묻고 썩어 볼품없습니다. 하지만 따가운 햇볕과 비바람 견뎌내 꽉 찬 속에서 나는 향이 일품입니다. 외모보다 마음이 고와야 향기롭습니다. 내 곁의 누구처럼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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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무임승차

    어디로 가나요? 벌레 잡으러? 기쁜 소식 전하러? 가끔은 바쁜 날갯짓을 내려놓고 편하게 가도 좋겠네요. 차비는 사람들에게 선사할 미소로 대신할게요. ―서울 남영역 지하철을 탄 휘파람새.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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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기자의 ‘사談진談’]‘셀카’가 진짜 인민이다

    카메라는 특권이고 권력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1980년대, 카메라는 소풍처럼 특별한 날 선생님이 어깨에 메고 폼을 잡던 진귀한 물건이었다. 귀한 카메라를 아이들이 망가뜨릴까 봐 조심성 있던 어른들은 장롱이나 다락 깊숙이 숨겼다.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주머니 속에 하나씩 가지고 다니지만 말이다. 권력이 있건 없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마찬가지. 순백 드레스, 공들인 헤어스타일로 카메라 앞에 서는 웨딩 촬영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정점을 고정시켜두고 싶어서일 것이다.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유명 인사를 만나면 셔터를 누른다. 요즘은 어딜 가나 자기를 주인공으로 찍어 간직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그러다 보니 정작 행사나 의식의 주인공이 덜 부각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돌 그룹의 국내 공연장에는 스마트폰을 갖고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획사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매체와 인터넷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관리한다. 추석 직전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는 정·재계와 대중 문화인 등 수백 명이 동행했다. 하지만 이들이 북한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을 내놓았다는 말은 별로 없다. 방북단 중 일부는 통신기능이 없는 스마트폰이나 조그만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이들이 찍은 사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걸러지지 않은 이미지가 모처럼의 평화 무드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다들 자제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한 방문단도 그렇지만 북한 인민들도 카메라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영빈관으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주민 10만 명이 한복과 양복 차림으로 꽃술을 흔들며 ‘조국통일’을 연호했다. 하지만 TV 화면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이 장면을 찍는 이들을 볼 수 없었다. 환영 인파 속에서 누군가 셀카를 찍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 ‘그림이 안 되었을’ 것이다. 허나 완벽한 화면이 오히려 불편했다. 1% 부족한 사진이 진짜 현장이라는 것을 경험에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순간을 남겨두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는지, 행렬 가운데 검은 양복의 지도원들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화면을 보면 남북 정상 부부가 함께 식사했던 대동강수산물식당의 북한 주민들은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스마트폰으로 식당 여기저기를 찍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등장 이후에는 모두 카메라를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김여정 부부장을 비롯해 평양 주민들 중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150만 대가 보급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500만 대가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북한에서도 카메라와 사진이 이제는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북한에서도 주민들이 자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진을 찍어서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인민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겠다며 체제를 구축한 북한에서 인민의 모습은 대중매체에서 주인공으로 드러난 적이 별로 없다. 1950, 60년대에는 노동신문과 잡지에 인민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이 꽤 실렸다. 러시아의 사진촬영법이 전파된 이유도 있었겠지만 체제의 중심을 인민에 둔 분위기도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유일사상 체제를 선택한 1960년대 말 이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보다 큰 인민의 얼굴이 실리지 않게 됐다. ‘1호’ 이외의 얼굴을 클로즈업 촬영하면 곤욕을 치른다고 배웠다는 탈북 영화감독의 이야기도 있다. ‘왜 인민의 얼굴은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이 부분이 항상 아쉽게 느껴졌었고 의문이었다. 과도기인 지금이 지나고 나면 북한 주민의 일상이 대중매체에 보도되고 그들의 스마트폰 속의 사진들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전파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비로소 진정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외부에서도 느낄 것 같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cut@donga.com}

    •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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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카’가 진짜 인민이다

    카메라는 특권이고 권력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1980년대, 카메라는 소풍처럼 특별한 날 선생님이 어깨에 메고 폼을 잡던 진귀한 물건이었다. 귀한 카메라를 아이들이 망가뜨릴까봐 조심성 있던 어른들은 장롱이나 다락 깊숙이 숨겼다. 지금은 초딩들도 주머니 속에 하나씩 가지고 다니지만 말이다. 권력이 있건 없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마찬가지. 순백 드레스, 공들인 헤어스타일로 카메라 앞에 서는 웨딩촬영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인생의 정점을 고정시켜두고 싶어서 일 것이다.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유명 인사를 만나면 셔터를 누른다. 요즘은 어딜 가나 자기를 주인공으로 찍어 간직하거나 SNS에 올린다. 그러다 보니 정작 행사나 의식의 주인공이 덜 부각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돌 그룹의 국내 공연장에는 스마트폰을 갖고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획사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매체와 인터넷에 배포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관리한다. 추석 직전 열린 남북정상회담에는 정재계와 대중문화인 등 수백여 명이 동행했다. 하지만 이들이 북한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을 내놓았다는 말은 별로 없다. 방북단 중 일부는 통신기능이 없는 스마트폰이나 조그만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이들이 찍은 사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걸러지지 않은 이미지가 모처럼의 평화 무드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다들 자제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남한 방문단도 그렇지만 북한 인민들도 카메라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영빈관으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주민 10만 명이 한복과 양복 차림으로 꽃술을 흔들며 ‘조국통일’을 연호했다. 하지만 TV 화면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이 장면을 찍는 이들을 볼 수 없었다. 환영인파 속에서 누군가 셀카를 찍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 ‘그림이 안 되었을’ 것이다. 허나 완벽한 화면이 오히려 불편했다. 1% 부족한 사진이 진짜 현장이라는 것을 경험에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순간을 남겨두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는지, 행렬 가운데 검은 양복의 지도원들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화면을 보면 남북 정상 부부가 함께 식사했던 대동강수산물시장 식당의 북한 주민들은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스마트폰으로 식당 여기저기를 찍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등장 이후에는 모두 카메라를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김여정 부부장을 비롯해 평양 주민들 중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150만대가 보급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500만대가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북한에서도 카메라와 사진이 이제는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북한에서도 주민들이 자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진을 찍어서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인민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체제를 만든 북한에서 인민의 모습은 대중 매체에서 주인공으로 드러난 적이 별로 없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노동신문과 잡지에 인민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이 꽤 실렸다. 러시아의 사진촬영법이 전파된 이유도 있었겠지만 체제의 중심을 인민에 둔 분위기도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유일사상체제를 선택한 1960년 대 말 이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보다 큰 인민의 얼굴이 실리지 않게 됐다. ‘1호’ 이외의 얼굴을 클로즈업 촬영하면 곤혹을 치른다고 배웠다는 탈북 영화감독의 이야기도 있다. ‘왜 인민의 얼굴은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이 부분이 항상 아쉽게 느껴졌었고 의문이었다. 과도기인 지금이 지나고 나면 북한 주민의 일상이 대중매체를 통해서 보도되고 그들의 스마트폰 속의 사진들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전파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비로소 진정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외부에서도 느낄 것 같다. (사진부 차장. 김정은.jpg 저자)}

    •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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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가을의 여유

    전기 계량기들의 수다. “올여름 모두 고생들 많았다.” “집주인이 처음 에어컨을 사서 정말 바빴어.” “겨울 되면 난방을 하니 또 할 일이 많겠지.” “아, 한가한 가을 뭉게구름이 좋아.”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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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합현실 기술 적용해 만든 어린이 축구장

    KT는 20일 경기 부천시 롯데백화점 중동점에 혼합현실(MR) 기술을 적용해 만든 어린이용 실감형 스포츠 체험공간 ‘K-live X’를 오픈했다. 평일(월∼목) 100분 이용요금은 1만5000원, 주말(금∼일)은 1만8000원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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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어제와 오늘

    빗장이나 자물쇠와 벗하던 나무 대문. 새 친구가 생겼어요. ‘덜커덕’ 대신 ‘삐삐삐’가 집주인을 맞이합니다. 대문에 들어서던 주인은 그대로인가요? 세월은 추억만 남기겠죠.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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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선물세트 최대 30% 할인

    10일 홈플러스 서울 강서점에서 모델들이 추석선물세트 본판매 시작을 알리고 있다. 홈플러스는 그동안 예약판매를 진행했다. 1900여 종의 추석선물세트는 12종류의 행사 제휴카드로 결제하면 최대 30% 할인된다. 전체 선물세트의 91%가량이 5만 원 이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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