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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생머리를 검은색 핀으로 묶은 그가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아멜리 노통브(49)였다. 파리 알뱅 미셸 출판사에서 17일(현지 시간) 만난 그는 검은색 치마와 재킷을 입고 있어 화장기 없는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이어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한국에서 근무했고 삼촌이 6·25전쟁에 참전했어요. 한국 식당에서 김치를 자주, 많이 먹는답니다.” 1층 로비를 지나자마자 왼쪽에 있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두 평(6.6m²)이나 될까.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전화기 한 대가 전부였다. 편지와 서류, 각국어로 번역된 책이 위태롭게, 사람 키 높이만큼 여러 줄로 쌓여 있었다. 벨기에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라오스 등에서 자랐다. 글은 프랑스어로 쓴다. 1992년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그는 ‘시간의 옷’으로 공쿠르상 후보에 올랐다. ‘두려움과 떨림’은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을 받았다. 속도감 있는 대화체에 잔인함과 냉소, 유머가 어우러진 작품은 45개 언어로 번역돼 모두 1600만 부가 판매됐다. 매년 책을 낼 정도로 글쓰기광이다. “매일 오전 4시부터 오후 1시까지 써요. 지금까지 85편을 썼는데 24편만 출간됐어요.” 그 비결을 물었다. “글쓰기는 극한 스포츠와 같아요. 운동선수가 하루 쉬면 근육이 달라지듯 하루라도 글을 안 쓰면 다음 날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작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것이기에 글쓰기는 제게 부여된 ‘의무’예요.” 체력은 타고났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당시 벨기에 지역 사람을 ‘거대한 바바리아인’이라고 불렀는데 진짜 딱 맞는 표현이에요.(웃음) 나이가 들수록 기운이 떨어지는 게 두렵지만 현실은 직시해야죠.” 그는 오후 1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연인과 지낸다. 인터뷰 중 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오전에는 터프하게, 오후에는 달콤하게, 매일 두 가지 인생을 산다”며 깔깔 웃었다. 때마침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화제였다. 알파고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화 분야까지 인공지능이 점령한 데 경악했어요. 나는 ‘기계치’라 휴대전화도 없고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는걸요.” 이어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지혜, 직관력, 인간미 등 인간만의 특성을 공고히 하려면 신문과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연처럼 직원이 문을 열고 신문을 건넸다. 하반기 국내에 출간될 예정인 ‘페트로니’는 작가를 꿈꾸던 페트로니라는 여성을 1997년 만나 나눈 우정과 질투를 그렸다. ‘푸른 수염’을 통해 샴페인을 예찬했던 그에게 페트로니는 샴페인 친구였다. “샴페인은 진심을 나눌 친구와 꼭 함께 마셔야 해요. 파리지앵은 늘 화가 나 있고, 공격적이라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데 페트로니가 다가왔죠.” 그는 아직 한국에 온 적이 없다. 지난달 브뤼셀도서전에서 그를 봤다는 한국 팬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노통브를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썼다. 이를 알려주자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어머나!”를 연발했다. “핑계 같지만 정말 바빠요. 프랑스를 포함해 세계 46개 출판사와 일해요. (또 전화가 왔지만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죽기 전에 한국에 꼭 갈게요. 약속해요!”:: 아멜리 노통브는… ::―1967년 일본 고베 출생―벨기에인, 프랑스에서 활동―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1992년) 발표―‘적의 화장법’, ‘시간의 옷’(공쿠르상 후보), ‘두려움과 떨림’(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 ‘오후 네 시’(파리 프르미에르상) 등 매년 한 작품씩 발표―45개 언어로 번역, 1600만 부 판매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담담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함께 후보에 오르게 돼 기뻤고요.” 파리도서전이 열린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18일(현지 시간) 만난 소설가 한강 씨(46)는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 후보에 한국인 최초로 오른 소감을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후보작은 ‘채식주의자’. 어릴 적 자신을 문 개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본 여성이 육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간다고 여기는 내용이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씨(77)의 반응을 묻자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재차 물었지만 끝내 웃음으로 답을 피했다. 그러고는 번역자에게 공을 돌렸다. 번역을 맡은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는 자발적으로 ‘채식주의자’의 20쪽을 번역해 영국 유명 출판사인 포르토벨로에 보냈다. 작품성을 알아본 출판사가 그 후 한 씨와 출간 계약을 맺었다. “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없잖아요. 번역이 그 장벽을 넘게 해주죠. 번역 작업을 지켜볼 때마다 경이로워요.” 프랑스의 대표 서점인 ‘지베르 조제프’에서 한국 작가 책 가운데 ‘채식주의자’가 가장 많이 판매된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처음 듣는 얘기예요. 놀라워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극단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건데, 프랑스 독자들은 일종의 우화로 여기는 것 같아요.”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도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이날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사인회에는 독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한 프랑스 여성은 “잡지에 실린 한국문학 기사를 통해 ‘채식주의자’를 알게 됐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호기심이 생겼다”며 사인을 받았다. 아내에게 선물하겠다며 책을 산 남성도 있었다. 한 씨는 올해 6월 시, 에세이가 결합된 형식의 새 소설을 출간한다. 제목은 미정. “삶과 죽음, 도시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속에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이 있고요.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4개월 동안 머물렀는데요, 소설에는 바르샤바와 서울이 교차하며 등장해요.” 새 소설은 내년에 영국에서도 선보인다. 지난해 발표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의 2, 3부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완성할 예정이다. “하루하루 글을 쓸 때마다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써요. 지금은 다음 달에 마감하는 계간지 원고를 무사히 쓰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웃음)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 머물며 글을 썼던 곳이다. 영화 ‘비포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나왔다. 16일(현지 시간) 희귀본 코너에 들어서자 영문판 ‘이방인’이 보였다. 가격만 물었을 뿐인데 직원은 벌떡 일어나 유리문을 열고 책을 꺼내 빛바래 누런 페이지를 조심스레 넘기며 “850유로(약 112만 원)”라고 답했다. ‘동물농장’은 3000유로(약 396만 원)란다. 서점을 나서자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이곳 2층 벽에 쓴 유명한 글귀가 그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이방인을 홀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 수 있으니.” 책을 사면 셰익스피어 얼굴 도장을 찍어주는 곳, 작은 침대를 여기저기 놓아 마음껏 머물게 만드는 곳. 책이 어떤 보석보다 더 빛날 수 있음을, 자석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음을 이곳은 증명하고 있었다. 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케이팝,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책 판매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제일 많이 팔리고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도 반응이 좋습니다.” 프랑스 대표 서점인 ‘지베르 조제프’의 리샤르 뒤부아 총괄지배인은 최근 케이북의 약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16일(현지 시간) 열린 2016 파리도서전 개막식에서는 한국 책에 대한 프랑스인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은 처음 주빈국으로 초청됐다. 공식 행사는 17일부터 나흘간 열리는데도, 16일 주빈국관을 찾는 프랑스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 20대 여성은 한국 고전소설인 ‘수궁가’의 앞뒤 표지에 그려진 한국화를 한참 살펴봤다. 50대 여성 두 명도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 정유정의 ‘7년의 밤’을 각각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주빈국관을 방문해 “한국과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고 협력을 공고히 하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협의했다”며 “한국이 파리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참여한 것은 양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올랑드 대통령은 방명록에 ‘문화를 향해 같은 열정을 나누는 프랑스와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글을 남겼다. 함께 주빈국관을 찾은 오드레 아줄레 프랑스 문화장관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한국 작품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책이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리도서전에는 황석영 이승우 한강 정유정 이수지 한성옥 윤석남 등 한국 작가 30명이 초청됐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그린 문정희 시인의 시집 ‘찬밥을 먹던 사람’은 프랑스의 문학 채널에서 특집으로 소개했다. 문 작가는 “조금 전 출판사 부스에 갔는데 프랑스에서 시집이 800권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미소 지었다. 한국 만화에 대한 열기는 특히 뜨겁다. ‘나쁜 친구’의 작가인 만화가 앙꼬 씨는 “한국의 전형적 집과 풍경을 사람들이 매우 흥미로워했다”고 전했다. ‘러브 이즈’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의 만화가 퍼엉 씨는 “댓글 중에 ‘나를 스토킹하는 거 아니냐’는 글도 있다.(웃음) 캐릭터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평범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데 채색이 안 된 스케치 같은 작품에 독자들이 자기 이야기라고 여기며 스며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석영 작가는 “프랑스 출판사에서 ‘장길산’ ‘한씨연대기’를 만화로 만들기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아동도서관에는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작품 130종이 전시됐다. 한국 그림책에는 삶에 대한 모성적 본능이 많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영수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파리도서전을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한국 출판의 진면목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파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익숙한 대상의 낯선 면모를 접할 때가 가끔 있다. 그때의 신선함은 강렬하게 각인된다. ‘심청전’ ‘홍길동전’ ‘허생전’…. 동화책으로, 문학 수업에서 자주 접했기에 줄거리는 물론이고 인물과 의미까지 다 파악했다고 자신했던 작품들이다. 이 책은 이런 생각에 펀치를 날린다. 대학 새내기의 교양입문서로 유명했던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비롯해 ‘맑스주의와 근대성’ ‘철학의 모험’ 등을 쓴 저자는 고전소설을 레고 다루듯 조각조각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심청은 효녀였을까. 저자는 “아니다”고 말한다. ‘효(孝)’라는 절대적인 명령에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복종함으로써 명령의 황당함을 온몸으로 항의했다는 것. 용궁에서 살아났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순간 명령에 복종하던 심청은 죽었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난 심청은 자신이 따랐던 효가 맹목적인 효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홍길동은 체제에 철저히 순응한 인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병조판서까지 올랐지만 신분제를 철폐하지 않았다. 율도국을 세우고 왕이 됨으로써 신분제 사회의 정점에 선다. 홍길동이 원한 건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할 수 있는 지위일 뿐 이를 불가능하게 한 제도를 혁파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유에 천착했던 저자의 특기는 허생과 놀부에 대한 분석에서 여지없이 발휘된다. 인간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더 많은 걸 손에 쥐려 아등바등한다. 돈은 이런 욕망을 가속화시켰다. “쌀이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노적을 헐며 … 큰 농우가 네 필이니 너 주자고 소를 굶기랴”며 흥부를 내쫓는 놀부의 말은 이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허생이 은화 50만 냥을 바다에 쏟아버린 건 재앙의 원천이 되는 돈의 속성을 꿰뚫어본 것이다. 고전소설 사이사이에 녹아든 철학적 분석은 샐러드에 골고루 버무려진 드레싱 같다. 고전소설을 디테일하게 뜯어보는 재미도 적잖다.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창작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자라면서 자주 듣던 말이다.(결혼한 여성들은 ‘어른’ 대신 ‘여자’라고 바꿔 남편에게 말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고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있다.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 옛글 나들이’(한희철 지음·꽃자리)는 우리 속담 197개를 정리했다. ‘어머니는 살아서는 서푼이고 죽으면 만 냥이다’는 눈물겹다. 자식들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 어머니가 철없던 시절에는 초라하게 보이지만 어머니가 떠난 후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분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요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다’는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는 걸 절묘한 운율로 표현했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는 비우는 삶을 강조한다. 오랜 세월의 경험과 생각이 곰삭은 말은 정겹고 포근하다. 다가온 봄처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이 들어서 돈 있고 건강하면 최고, 돈 없어도 건강하거나 아파도 돈 있으면 보통, 돈 없는데 아프기까지 하면 최악.” 은퇴 후 삶을 평가한 말이다. 해고되는 순간 중산층에서 추락하는 한국에서 노후는 공포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노후파산: 장수의 악몽’(NHK스페셜제작팀 지음·김정환 옮김·다산북스)은 큰 걱정 없이 노후를 맞을 것으로 믿은 일본 노인들의 참담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착실히 회사를 다녔고, 집도 있으며 예금과 연금도 준비했지만 노후에 파산은 막지 못했다. 몸이 아프거나,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거나 자녀가 취업을 못해 기대는 등 당초 계획에서 한 가지 요소만 어긋나도 파산에 빠졌다. “오래 살면 예금도 바닥날 테니 그 전에 죽어버렸으면 좋겠네요”라는 절규가 강 건너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공포는 일상에서 천천히 옥죄어 올 때 가장 치명적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5년 전 3월 11일, 동일본을 덮친 쓰나미는 모든 것을 쓸어갔다. 남은 건 일본 사회의 벌거벗겨진 몸뚱이였다. 두 책은 그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다시…’는 정주하 사진작가가 2011년 11월부터 피해 지역을 촬영한 작품을 후쿠시마, 도쿄, 오키나와 등 일본 여섯 곳에서 순회전시를 하며 서경식 도쿄케이자이대 교수를 비롯한 한일 지식인, 일본 시민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사진전은 2012년 서울에서도 열렸다. 전시회 제목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에 신음했던 이상화의 시에서 따왔다. 식민지 조선에서, 후쿠시마 일대에서 개인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후쿠시마에서 80km 떨어진 료젠 산의 단풍은 찬란하다. 미야기 현 남부 지역의 감나무는 빨갛게 익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매년 그랬듯이. 하지만 오색 낙엽을 밟아서도, 감을 먹어서도 안 된다. 방사능에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오염된 흙을 파란색 비닐로 덮어놓은 조선학교는 일본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절반의 보상금만을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식민지배,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 모두는 대제국이 되기 위해 폭주했던 일본이 초래한 결과라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부국강병을 앞세운 일본은 아시아를 침략했고, 패망 후 산업화를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군사대국을 향한 열망이 반영돼 있다. ‘죽은…’은 동일본 대지진 후 일본 사회에 빠르게 퍼져 나가는 균열에 주목한다.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 보상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고향을 떠난 사람과 떠날 수 없는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가족을 잃은 사람 중에는 감각이 마비된 채 살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잊으려 한다. 한 스님은 말한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심장이 멈출 때,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때.” 많은 피해자들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모순의 덩어리는 커져만 간다. 피해 지역인 아오모리 현은 역병을 몰아내는 네부타 축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해자인 도호쿠전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바다 건너도 다르지 않다. 독일은 원자력발전소를 순차적으로 모두 없애겠다고 발표했지만, 부족한 전력은 프랑스에서 수입한다. 그 에너지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든다. 키우던 채소를 뽑아 건네는 일도, 이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돼 버렸지만 더 편하고, 물질적으로 더 잘살길 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다. 주변 국가에 준 고통에 대해, 전 세계를 오염시킨 방사능 재해에 대해 침묵한다. 오직 자신이 입은 피해만을 호소할 뿐이다. 대지진은 어쩔 수 없는 재앙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간이 초래한,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참사다. 학생 78명 가운데 4명만 살아남은 오카와 소학교의 교정에는 아이들이 손 글씨로 쓴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계가 전부 행복해지지 않으면 개인의 행복은 얻을 수 없다.” 행복의 실현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편하게’를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물음을 던지는 데서 시작한다. 에너지에 삶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얼마만큼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가.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몸과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젊음은 오직 너만이 가지고 있는 보물이다. 그런데 왜 이 보물을 써먹지도 못하고 낭비하고 있는 거냐?”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해 주는 듯하다. 앞 문장은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수오서재)에, 뒤 문장은 취업준비 요령을 소개한 ‘본부장이 말한다: 네가 지난 면접에 떨어진 이유를 말해주마’(시담)의 일부다. 구어체가 출판계를 지배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에세이, 자기계발 등 분야에서 ‘말하듯 글쓰기’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위로하듯, 논쟁하듯 때로 독설을 퍼붓듯 구어체의 형태도 방식도 다양하다. ‘완벽하지…’와 ‘인성이 실력이다’(조벽 지음·해냄)는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쓴 것이 특징이다. 혜민 스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과 칼럼 등을 엮었고, 조벽 교수는 강의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와 실제 마주하며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말하는 방법을 그대로 글로 옮겼다. 최장기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운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는 철학자와 청년이 논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구성돼 희곡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대화를 담은 ‘설전: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책읽는섬)는 두 스님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본부장이…’의 저자 정민우 알리안츠생명 본부장은 현실을 직시하라며 독설을 퍼붓는다. 그는 “강남 출신이 4대 그룹 직원 중에 많은 건 자격지심이 별로 없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라며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은 사고 칠 확률이 높은 만큼 네 일을 해내며 당당해지라”고 일갈한다. ‘커리어코치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라이온북스)은 직설적인 조언과 함께 위로를 덧붙인다. 구어체 글쓰기가 확산되는 것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책을 선호하는 경향과 무관치 않다. 트렌드를 반영한 책을 재빨리 선보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박신애 해냄출판사 기획편집팀장은 “유명 강사의 강연 내용을 풀어 정리하면 짧게는 6개월 안에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구어체 글쓰기는 말의 시대에서 문자의 시대를 거쳐 영상의 시대로 바뀌는 흐름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대화가 주인 영상의 시대에 소설도 대화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고 현재 베스트셀러 가운데 구어체가 아닌 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구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최근 1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소설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소설 분야 누적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개미’ ‘뇌’ ‘나무’ 등 베르베르의 책이 가장 많이 팔렸다고 2일 밝혔다.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히가시노 게이고가 2, 3위를 차지했다. ‘7년 후’, ‘센트럴 파크’ 등을 쓴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는 4위였다. 한국 작가로는 신경숙이 5위에 올랐고, 김진명(6위) 공지영(7위)이 뒤를 이었다. 파울루 코엘류, 조정래, 조앤 롤링 순으로 8∼10위를 차지했다. 1981년부터 35년간 연간 소설 베스트셀러 20위를 분석한 결과 모두 700개 작품이 목록에 올랐다.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는 이문열이었다. ‘젊은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13종이 23차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위는 하루키로, ‘상실의 시대’ ‘1Q84’ 등 7종이 21차례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됐다. 3위는 코엘류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회사원 정민우 씨(43)는 지난해 여름휴가 때 오페라 페스티벌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브레겐츠에서 ‘노르마’ ‘피델리오’ ‘투란도트’ ‘호프만 이야기’를 관람했다. 오페라 팬인 그가 해마다 오페라 페스티벌을 찾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 ‘오페라 에센스55’(시공사)와 ‘불꽃의 지휘자 카라얀’(21세기북스)을 읽은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 씨는 “지휘자를 슈퍼스타로 추앙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이 문화의 정수(精髓)로 자리 잡은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을 읽고 길을 떠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오페라, 역사, 도자기, 건축, 도서관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여행을 권하는 촉매제이자 길잡이가 되고 있다. 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단순한 관광보다는 한발 더 깊숙이 문화를 체험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김아라 씨(24·여)는 지난해 8월 나폴레옹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을 2주간 다녀왔다. 여행 전, 유럽의 역사를 다룬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서유럽편’(김영사)을 읽었다. 신세계그룹이 인문학 부흥을 위해 2014년부터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년 운영하는 ‘지식향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송동훈 작가도 동행했다. 서유럽 국가 대부분을 이미 다녀왔던 김 씨는 “파리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에서 나폴레옹의 무덤을 보고 워털루 전쟁 기념관을 찬찬히 보니 같은 유럽인데도 이전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며 “리더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유럽편, 동유럽편, 지중해편까지 3권으로 구성된 ‘송동훈…’은 2007년부터 순차적으로 출간된 후 지금까지 4만8000권이 팔렸다. 마이센, 헤렌드 등 유명 도자기의 세계를 담은 ‘유럽도자기여행 동유럽편’(도도)에 나온 루트를 따라 여행하는 상품도 나왔다. 4월 29일 떠나는 링켄리브 여행사 상품으로, 조용준 작가도 함께 간다. 2014년 나온 이 책은 5000권이, 시리즈로 나온 북유럽편은 3000권이 판매됐다. 서유럽편도 최근 나왔다. 도자기 전문 작가인 조 씨는 “책에 나온 곳을 여행하고 싶다며 어떤 코스가 좋을지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며 “도자기 여행을 위해 적금을 붓고 있다는 자매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자전거를 타고 마쓰야마 성, 구마모토 현립 장식고분관 등 유명 건축물을 둘러본 ‘자전거 건축 여행’(차현호 지음·앨리스)에 나온 코스대로 자유 여행을 하기도 한다. ‘유럽의 아날로그 책 공간’(백창화 지음·이야기나무), ‘유럽도서관에서 길을 묻다’(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서울모임 지음·우리교육)를 보고 도서관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이들도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지만 순도 높은 정보가 제대로 정리된 건 결국 책”이라며 “전문적 문화 여행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책의 역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채널A 메인 뉴스인 ‘채널A 종합뉴스’가 29일부터 매일 오후 7시 20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메인 뉴스’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메인 뉴스 시간대를 평일 오후 9시 40분에서 대폭 앞당긴 것은 퇴근 직후 뉴스를 보는 시청자의 생활 패턴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뉴스 진행도 역동적으로 바뀐다.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직접 전달하는 뉴스를 늘리고 기자가 스튜디오에 출연해 뉴스를 심층 분석하는 ‘현장 A 파일’ 코너를 신설한다. 진행자인 박상규 보도본부 부본부장과 김설혜 사회부 기자가 대형 스크린과 뉴스 진행석을 오가며 활기차게 뉴스를 진행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코스타상은 2015년 수상작으로 프란세스 하딘지의 ‘거짓말을 먹는 나무’(The Lie Tree)를 최근 선정했다. 아동·청소년 책이 이 상을 수상한 것은 2001년 필립 풀먼의 ‘앰버 스파이글래스’에 이어 두 번째다.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유명 작가 케이트 앳킨슨의 신작 ‘폐허의 신’이나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작가 앤드류 헐리의 ‘로니’와 같은 화제작을 제치고 수상했다는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됐다. 특히 수상 이후 일주일 만에 6000권이 팔렸다. 작품의 배경은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으로, 열네 살 소녀 페이스가 목사이자 과학자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외딴 섬에 도착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가 발표했던 오래된 화석에 대한 연구가 실은 조작이었다는 소문이 퍼지며 학계에서 신뢰를 잃은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섬으로 도망친 것. 빅토리아 시대는 여자에게 사견을 갖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던 보수적인 사회였지만 페이스는 독학으로 라틴어를 깨우칠 만큼 똑똑한 소녀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의문의 사고로 사체로 발견되고,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비밀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일기에서 우연히 거짓말을 먹는 나무에 대한 내용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중국 여행 중 발견한 이 나무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먹고 성장하는 신기한 나무였다. 대중들에게 거짓말이 널리 퍼질수록 나무는 더욱 잘 자라고, 다 자란 나무에 열린 열매를 먹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다른 이의 비밀을 알 수 있다. 페이스는 아버지가 화석 연구를 조작한 이유가 바로 이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나무를 이용해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찾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 앞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 있다. 딸이 요조숙녀로 조용하게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 아버지의 연구 결과를 훔쳐내려는 삼촌, 그리고 페이스의 가족을 하루빨리 섬에서 내쫓으려고 하는 섬사람들…. 이들 틈에서 과연 페이스가 아버지의 죽음과 거짓말을 먹고 사는 나무에 대한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코스타상의 심사위원장인 제임스 헤네기는 이 책을 수상작으로 결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내용과 잘 짜여진 구성, 멋진 캐릭터들도 물론 훌륭한 요소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딸이 있는 아버지 독자로서 용기 있는 열 네 살짜리 소녀의 마음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느꼈다. 이 책이 영국의 수많은 십대 소녀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의 수상 소식은 최근 신문 등 미디어에 아동·청소년 책에 대한 지면을 더 할애해달라고 요청해 왔던 영국의 많은 출판사들에게 희소식이 됐다. 어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나이와 성별이라는 두 가지 편견에 맞서 싸우는 페이스의 모습은 어쩌면 성인 책들이 지배하는 출판계에서 지분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영국 아동·청소년책의 현 상황을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회사원 정민우 씨(43)는 지난해 여름 휴가 때 오페라 페스티벌로 유명한 잘츠부르크와 브레겐츠에서 ‘노르마’ ‘피델리오’ ‘투란도트’ ‘호프만의 이야기’를 관람했다. 오페라 팬인 그가 해마다 오페라 페스티벌을 찾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 ‘오페라 에센스55’(시공사)와 ‘불꽃의 지휘자 카라얀’(21세기북스)을 읽은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 씨는 “지휘자를 슈퍼스타로 추앙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이 문화의 정수(精髓)로 자리 잡은 현장을 직접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을 읽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오페라, 역사, 도자기, 건축, 도서관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여행을 권하는 촉매제이자 길잡이가 되고 있다. 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단순한 관광보다는 한 발 더 깊숙이 문화를 체험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김아라 씨(24·여)는 지난해 8월 나폴레옹의 발자취를 따라 파리, 브뤼셀, 런던을 2주간 다녀왔다. 여행 전, 유럽의 역사를 다룬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서유럽편’(김영사)을 읽었다. 신세계그룹이 인문학 부흥을 위해 2014년부터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년 운영하는 ‘지식향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송동훈 작가도 동행했다. 서유럽 국가 대부분을 이미 다녀왔던 김 씨는 “파리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에서 나폴레옹의 무덤을 보고 워털루 전쟁 기념관을 찬찬히 보니 같은 유럽인데도 이전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며 “리더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유럽편, 동유럽편, 지중해편까지 3권으로 구성된 ‘송동훈…’은 2007년부터 순차적으로 출간된 후 지금까지 4만8000권이 팔렸다. 마이슨, 헤렌드 등 유명 도자기의 세계를 담은 ‘유럽도자기여행 동유럽편’(도도)에 나온 루트를 따라 여행하는 상품도 나왔다. 4월 29일 떠나는 링켄리브 여행사 상품으로, 조용준 작가도 함께 한다. 2014년 나온 이 책은 5000권이, 시리즈로 나온 북유럽편은 3000권이 각각 판매됐다. 서유럽편도 최근 나왔다. 도자기 전문 작가인 조 씨는 “책에 나온 곳을 여행하고 싶다며 어떤 코스가 좋을지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며 “도자기 여행을 위해 적금을 붓고 있는다는 자매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자전거를 타고 마쓰야마 성, 구마모토 현립 장식고분관 등 유명 건축물을 둘러본 ‘자전거 건축 여행’(차현호 지음·앨리스)에 나온 코스대로 자유 여행을 하기도 한다. ‘유럽의 아날로그 책 공간’(백창화 지음·이야기나무), ‘유럽도서관에서 길을 묻다’(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서울모임 지음·우리교육)를 보고 도서관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이들도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지만 순도가 높은 정보가 제대로 정리된 건 결국 책”이라며 “전문적 문화 여행을 위한 플랫폼으로써 책의 역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부모 자식 남편 아내 직장인…. 누구나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이 모두를 잘하기란 불가능하다. ‘○○ 역할’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좀 망가져도 난 행복한 엄마’(캉디스 코른베그르 앙젤 지음·김수영 옮김·문학세계사)는 아이를 키우며 겪는 시트콤 같은 일상을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아이는 소아과 의사에게 “우리 엄마는 엉덩이로 트럼펫 소리를 내요”라고 말하고 아끼는 옷을 입을 때마다 그 위에 토한다. 우아하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없다. ‘어른노릇 아이노릇’(고미 타로 지음·김혜정 옮김·미래인)은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 일침을 놓는다. 어른들은 빡빡하게 살 때가 아닌데도 “열심히 하라”는 말로 아이들의 삶을 삭막하게 만든다.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이를 못 맞추면 스스로를 들볶고 있지는 않은가. 애면글면할 필요 없다. 뒷목만 더 팽팽해질 뿐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정식 교육은 열여섯 살에 끝났고, 기계 제작 견습생으로 일하며 주말에 축구를 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무뚝뚝했지만 성실했고, 비행기 부품 공장에서 근무했던 어머니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실함과 칭찬의 힘을 일찌감치 알았던 소년은 훗날 축구 감독이 됐고, 이를 실천했다. 사반세기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아 축구 역사를 새로 쓴 알렉스 퍼거슨 경이다. 자서전 ‘알렉스 퍼거슨 나의 이야기’(문학사상)가 지난해 나왔지만 이 책은 그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췄다. 평생 오전 7시에 출근한 그는 오직 승리를 위한 전략에 집중했다. 선수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다른 팀의 경기를 챙겨 봤다. 1930년대 뉴욕 록펠러센터 건설 현장에서 수백 피트 높이의 철제 난간에 앉아 점심을 먹는 노동자 열한 명의 흑백 사진을 훈련장 사무실에 걸어 놓은 건 동료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전력에 지장을 주는 건 작은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긴 머리와 액세서리 착용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더 민첩해지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면서 왜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는 머리카락을 기르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십자가 목걸이는 골고다 언덕길을 따라 순례자들이 이고 가는 십자가보다 무거워 보였다.” 문신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한 번도 몸에 손댄 적이 없을 정도로 자제력이 뛰어나다고 기어이 덧붙이는 모습에서는 노장의 고집이 엿보인다. 저자는 선수들을 대했던 방식을 소탈하고 솔직하게 들려준다. 버스 앞자리에만 앉으며 일정 거리를 유지했지만 고민하는 선수들에게는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경기에서 큰 실수를 한 선수는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다는 걸 알기게 질책하지 않았다. 쌍둥이 아들 대런이 맨유에 입단했지만 전력 강화를 위해 아들과 같은 포지션에 더 뛰어난 선수를 영입했다. 결국 아들은 이적했다. 다정한 아내는 아직도 이를 용서하지 못해 “아들을 팔아먹은 아버지라니”라는 말을 가끔 듣고 산단다. 선수들이 경기 때마다 상대방 선수들과 비싼 유니폼을 바꿔 입고 이를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걸 보면 울화가 치밀었다는 대목에서는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후원사의 유니폼 재고가 떨어지면 구단이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명 선수들의 일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호날두는 발목에 무게 추를 달고 드리블 연습을 해 환상적인 발 기술을 개발했다. 열두 살의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기 위해 여름 훈련 캠프에 초청하고 1군 선수들의 라커룸도 구경시켜줬다. 자로 잰 듯 요모조모 따지며 리더십을 분해하는 대신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나의 시대는 모두 끝났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뒤돌아보지 않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모든 것을 치열하게 불사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설도윤. 그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1년 국내 초연된 ‘오페라의 유령’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 역사를 쓴 사람이 설앤컴퍼니 대표인 그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위키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그는 ‘잭팟’을 터뜨리며 뮤지컬 시장을 넓혀왔다. ‘에비타’ ‘프리실라’ ‘아이러브유’ ‘애비뉴 Q’ 등도 선보였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9년간 연극·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섰고 무용가의 길을 걸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피날레 안무도 맡았다. 하지만 1990년 뮤지컬 제작에 뛰어든 그는 든 지금까지 뮤지컬만 보고 달려왔다. 설 대표는 요즘 부산에서 한 주의 절반을 보내고 있다. 180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극장인 ‘부산국제금융센터 아트홀’을 짓는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완공되는 공연장 건설은 남구 문현금융로에 자리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의 2단계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부산은 뮤지컬에 대한 잠재력이 큰 도시입니다. 일본, 중국 관광객도 많은 데다 북항에 크루즈선이 자주 정박해요. 유명 작품을 올리고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뮤지컬 업계의 승부사로도 유명한 그는 ‘오페라의 유령’으로 불모지였던 한국에 뮤지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대구에서 ‘캣츠’를 2주간 공연한 것은 지방에서 처음으로 장기 공연을 시도한 승부수였다. 당시 대구에서는 사전예약으로만 1만5000명이 표를 샀다. 이때 잠재력을 확인했기에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도 기획할 수 있었다. 현재 그가 짓고 있는 건물은 2개 동으로 호텔, 오피스, 상가도 함께 들어선다. 사업비만 4000억 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사실 그는 화려한 성공 못지않게 숱한 실패도 맛봤다. 1992년 집을 팔아 3억 원을 들인 뮤지컬 ‘재즈’는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2003년 ‘캣츠’ 공연을 위해 부산에 설치한 120억 원짜리 텐트극장 빅탑씨어터는 태풍 매미로 하루아침에 날아가 덩그러니 골조만 남았다. 이 때 진 빚을 갚는 데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일이 터지면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빨리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부터 먼저 찾게 돼요. ‘진짜 힘들다’고 꼽는 순간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난 다 할 수 있다’고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거든요.”(웃음) 무한긍정 그 자체다. 이번 프로젝트도 “잘된다고 100% 확신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증권박물관도 함께 들어설 예정입니다. 뉴욕에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함께 있는 것처럼 부산국제금융센터를 문화와 금융이 어우러지는 명소로 만들 겁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대구 광주 대전에도 뮤지컬 전용극장을 만들어 ‘뮤지컬전용극장 광역화’를 실현하고 싶다고 했다. 극장이라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관객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뮤지컬을 하라고 점지된 운명 같아요, 하하. 뮤지컬을 할 때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참, 나이는 빼주시면 안 될까요? 나이 잊고 산 지 오래 됐거든요.”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에 나오는 인물을 새롭게 분석한 책이 나왔다.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55)가 쓴 ‘휘둘리지 않는 힘’(더숲)이다. 셰익스피어의 400주기인 올해 이 책은 눈길을 끈다. 신방과 교수가 왜 셰익스피어에 빠져들었을까. 그는 2013년부터 학생들과 독서클럽 활동을 하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시 읽게 됐다. 인물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고 강렬하게 매료됐다. 최근 만난 김 교수는 갑상샘 수술을 받아 목에 거즈를 붙이고 입술도 부르터 있었지만 주요 인물 9명을 말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햄릿은 복수를 위해 사랑도 버리고 계획을 세워 치밀하게 움직였어요. 죽는 순간에도 따라서 자결하려는 친구 허레이쇼에게 ‘살아남아 자신의 정당성을 알려 달라’고 할 만큼 철두철미했고요. 이런 인물이 우유부단한가요?” 리어왕의 셋째 딸 코딜리아는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묻는 늙은 아버지가 원하는 답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상대방과의 조화로운 소통이 대화의 핵심이라는 걸 모르는 소통장애자예요. 비극이 벌어질 걸 예견하면서도 신념만 고집한 지혜 없는 우등생이랄까요.” 맥베스는 실력에 인품까지 갖춘 ‘엄친아’였지만 유일한 한 가지, 정통성만 없었다. 결국 정통성 부재에 집착하다 몰락한다. “권력을 잡은 즉시 뭔가 했어야 합니다. 칭기즈칸처럼 정복전쟁에 나서든지 링컨처럼 노예해방을 하든지…. 그래야 조직을 장악할 수 있어요.” ‘종이책 읽기를 권함’(더숲)을 낸 독서광에다 커뮤니케이션학을 비롯해 경영학 정치학 사회심리학 등 그가 공부한 학문을 총동원했다. 1년 6개월이 걸린 작업 과정은 혹독했다. 비극의 인물들에게 빠져들면서 탈진했기 때문이다. 체력을 자신한 그였지만 두 번이나 앓아누웠다. “감히 비전공자가 덤벼도 되는지 수백 번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100명에게는 100명의 셰익스피어가 있다’는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을 비극으로 몰고 간 건 자신의 욕망과 아집, 열등감 때문이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스스로를 지키는 힘도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학생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영화 ‘마션’,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의 공통점은? 수학이 활용됐다는 것. 수학자인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에는 42에 관한 비밀이 숨어 있다.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와트니가 지구와 교신할 수 있었던 것도, ‘캐리비안…’에서 데비 존스 선장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문어 수염을 가진 것도 다 수학 덕분이다.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인 저자(51·사진)는 10년 만에 낸 신작에서 문학, 영화, 미술,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수학은 가까이 있다”고 속삭인다. 17일 만난 저자는 “중고교생이 배우는 내용을 다뤘다. 학생들이 워낙 하드코어로 공부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레크리에이션으로 여길 것”이라며 웃었다. 화사한 꽃분홍색 표지를 넘기면 생각지도 못한 세계가 펼쳐진다. 미터법은 프랑스혁명기에 만들어졌다. 수백 개의 단위는 불공정한 거래의 빌미가 돼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와 중국을 비롯한 고대문명에서는 직각삼각형에서 성립하는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피타고라스처럼 연역적으로 증명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이지만…. 소설, 영화 속 장면과 명화 등은 도형, 수식과 버무려졌다. “수학적 엄밀함과 독자 사이에서 수위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수식은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고요. 훅훅 건너뛰면서 관심 있는 내용 위주로 보면 돼요.” 이처럼 다양한 수학적 코드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영화, 책, 미술작품을 보다 보면 그냥 보여요. ‘매직아이’처럼요. 그만큼 수학이 곳곳에 있다는 의미죠.” 그는 소통하는 수학자로 유명하다. 전작인 ‘수학콘서트 플러스’(동아시아)와 ‘수학비타민 플러스’(김영사)는 수학 교양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중고교로 찾아가 자주 강의하고 교과서 집필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재미있는 교과서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후행(後行)학습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더 낮은 학년 과정으로 되돌아가 구멍을 메워야 해요. 수학은 벽돌쌓기와 같아서 단계별로 다져져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요.” 수학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책을 낸 것도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대형마트 상품기획자(MD)가 제품과 고객을 연결해주는 것처럼 저도 수학과 학생을 연결하는 ‘수학 MD’가 되고 싶어요. 이 책이 수학의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면 욕심일까요?”(웃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돈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지 않아요.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줘요.” 최근 방송된 한 드라마의 대사다. 발끈할 사람도 있겠지만 ‘돈=권력+α(알파)’인 현실이 직설적으로 표현됐다. ‘돈, 돈, 돈’을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부했던 메시지를 정리한 책 두 권이 나왔다. ‘교황의 경제학’(에두아르 테트로 지음·전광철 옮김·착한책가게)과 ‘이놈의 경제가 사람잡네’(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자코모 갈레아치 지음·최우혁 옮김·갈라파고스)의 내용은 비슷하다. 교황은 호소한다. “사람을 죽이는 경제는 안 된다”고.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를 향해 ‘아니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인간이 중심이 되는 길을 찾자고 제안한다. 치유와 자비를 강조하는 교황의 목소리가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게 만들 거라 믿고 싶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