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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온라인 서점인 예스24는 1999년 문을 연 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갈수록 도서 시장이 침체되고 서점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예스24는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고 독자와의 접점을 확대함으로써 계속 커나갈 수 있었다. 국내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2010년 모바일 쇼핑 서비스를 시작했고, 경기 파주시와 대구에 물류센터를 설립해 당일 배송이 가능한 주문 시간도 늘렸다. 공연, 영화,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로도 사업을 확대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독자 욕구에 신속 대응 예스24의 회원은 올해 9월 현재 1200만 명을 넘었다. 국민 4명 중 1명이 회원인 셈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판매된 책은 모두 3억1200여만 권으로 이를 쌓아올리면 6799km에 이른다. 한라산 높이(1947.269m)의 약 3500배가량 되는 분량이다. 올해 상반기 누적거래액은 2746억80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었다.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올해는 오프라인 중고서점인 ‘예스24강남’, ‘예스24목동’을 열어 중고책 시장도 개척하고 있다. 영풍문고, 쿠팡과는 전략적 제휴를 추진 중이다. 경기 파주시와 대구에 물류센터를 설립함으로써 당일 배송이 가능한 주문 시간이 연장됐다. 올해 3월부터는 서울, 경기 지역의 당일 배송 가능시간을 1시간씩 확대했다. 서울, 부산은 오후 3시까지 주문하면 당일에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책 이외의 엔터테인먼트 분야로도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공연, 영화, 음반, DVD 등도 함께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이 인터넷에서 책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를 포착해 이에 대응한 것. 엔터테인먼트 사업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113% 늘어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콘서트 티켓을 단독 판매하는 계약을 맺어 엑소, 샤이니 등 유명 아이돌그룹의 단독 콘서트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SK텔레콤과 제휴를 맺고 멤버십 영화 예매 서비스를 새로 시작했다. 독자와 작가와의 교류도 확대해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독서 인구를 늘리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에만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600여 차례 열렸다. 강연회뿐 아니라 북콘서트, 티타임, 원데이 클래스, 트레킹, 답사 등 색다른 형태로 독자와 작가가 만나는 방식을 도입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만남의 형태에 따라 작가와 독자를 합쳐 5명을 넘지 않도록 구성하는가 하면 많게는 450여명의 독자가 모이는 등 행사의 성격에 맞춰 규모를 조정한다. 지난달에는 정유정 작가와 300여 명의 독자가 함께하는 ‘2016 소설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연극으로 각색해 선보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예스24 측은 “작가와 독자가 깊이 있게 소통하고 교감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연구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첨단 기술로 책과 교감하세요” 예스24는 지난해 모바일 연매출이 1000억 원을 넘었다. 2010년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모바일 쇼핑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연평균 10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K페이 등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매출 확대에 상당히 기여했다. 모바일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560만 건이 넘었다. 웹 매출 대비 모바일 매출 비중은 2014년 15%에서 지난해 23%였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32%까지 늘었다. 전자책 앱을 만들어 꾸준히 투자하고 서비스를 개선한 것도 모바일 매출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기술인 TTS(Text to Speech)를 활용하면 우리말은 물론이고 영어로도 책 내용을 들을 수 있다. TTS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속도를 선택할 수 있어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직장인이 많다. 어학 공부를 하는 수험생, 대학생들도 자주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문판과 국문판 전자책으로 선보였다. ‘귀가 트이는 영어’ ‘입이 트이는 영어’와 같은 EBS의 인기 영어 프로그램 교재 4종을 전자책으로 내놓았다. 라디오 방송을 듣고 문제 풀이도 가능하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능이 있는 멀티 전자책을 선보일 계획이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전자책 앱을 설치하면 전자책 6권을 무료로 제공한다. 소설, 인문, 비즈니스 분야 등의 인기 있는 책은 전자책으로 10년 대여를 해주고 있다. 10년 대여를 할 경우 가격은 종이책보다 50∼83%가량 저렴하다. 전자책 앱에서는 ‘마이 메뉴’ 기능을 활용하면 구매한 책 권수와 선호하는 분야, 총 독서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독서 습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많다. 김기호 예스24 대표는 “독자의 편의를 확대하고 물류 시스템과 전자책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시도와 투자를 통해 책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도서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책은 물론이고 공연, 영화 관련 서비스도 늘려 더욱 다채롭고 편리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독자의 e메일은 몇 번씩 읽어본다. 기사에 대한 공감이든 항의든, 메일 주소를 찾아 의견을 보내는 마음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에 대해 항의(혹은 지적)하는 60대 재미교포 남성의 메일을 받았다. 미국의 흑인 저널리스트가 흑인 차별에 대해 15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 에 대한 서평 기사(10일자 17면)를 읽고 메일을 보내왔다. 이 독자는 기사가 감상적이고 편파적이라고 했다. 기사에는 책 내용을 인용해 담배를 훔치다가 혹은 장난감 총을 지녔다가 경찰의 총에 숨진 흑인들의 사례와 엽궐련을 훔친 흑인 소년을 쏘아 숨지게 한 경찰이 기소되지 않자 저자의 아들이 눈물을 흘린 이야기 등이 거론됐다. 올해 41세인 저자는 어릴 때 백인 소년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총을 겨눴고 흑인인 대학 동기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흑인은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신의 딸이 미국에서 주검사를 지냈다는 재미교포 독자는 미국의 검사는 엄정하게 기소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판사들은 잘못 선고하면 낙선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들 판결에 순응한단다. 최근 흑인들이 숨진 사건은 경찰이 과잉 대응했을 수 있지만 정당한 매뉴얼에 따른 것이었다고 했다. 흑인들이 진짜 권총 같은 장난감 권총을 경찰에게 겨누었고, 물건을 훔치다 서라는 경찰의 명령에 불응해 도망가다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기자는 미국에서 산 적은 없지만 공권력이 철저히 존중된다는 것은 안다. 시위를 하다 경찰 통제선을 넘으면 연방 하원의원도 수갑을 채워 연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이 경찰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이어지고 이에 대한 항의가 들끓는 이유를 살피려면 법절차의 공정성만 따지기보다는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주장이 과격한 측면은 있지만 그가 직접 겪은 일은 흑백 갈등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단순히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처리된 사안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 독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비하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독자를 오도하는 기사를 쓰려면 아예 작가로 나서라’ ‘술 마시러 다니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하라’는 말은 접어두고 싶다. ‘미국의 판사는 한국의 정신 빠진, 달달 외우기 고시해서 판사가 된 사람들과 다르다’ ‘미국의 검사는 한국의 부정한 검사들이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기자들은 거기에 아부하는 기생이 될까. 대비하라’는 표현을 보며 씁쓸했다. 법조인, 언론인의 비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한국의 제도와 법조인, 언론인 전체를 매도하며 내리깔아 보는 시선에서 일말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미국 백인 중심의 시각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는 점에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노르웨이의 피오르에서 북극까지 심해에서 사는 원시 생물, 세계에서 가장 큰 육식 상어(크기는 돌묵상어와 고래상어가 더 크지만 이들은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수억 년의 진화를 거치고 피에 맹독이 흐르며 보호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녀석…. 그린란드상어다. 최대 200년까지 살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두 사내가 의기투합했다. 노르웨이의 역사학자, 모험가, 저널리스트인 저자와 아티스트인 후고 오스요르. 이 책은 이들이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1년간 북대서양, 정확히는 노르웨이 북쪽의 로포텐 제도에 머물렀던 시간을 담았다. 실제 상어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고무보트가 뒤집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무모한 도전기이자 탐험기이면서 바다에서 태고와 같은 적막한 시간을 보내며 자연과 자신, 삶과 문학을 떠올리는 사색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왜 그토록 그린란드상어잡이에 사로잡혔을까. 상어잡이를 먼저 제안한 이는 후고였다. 고래를 잡았던 후고의 아버지는 선원들이 죽은 고래를 손질하는 동안 그린란드상어가 심해에서 올라와 고래의 비곗덩어리를 삼키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한 번은 상어를 작살로 잡아 배로 끌어올렸는데 상어가 갑판 위의 고래 고기 큰 덩이를 하나 꿀꺽 삼켰단다. 죽기까지 몇 시간 동안 선원들을 지켜봐 모두를 오싹하게 만들었다는 이 이야기는 후고의 판타지를 키웠다. 바닷가에서 자란 저자는 낚시를 즐겼다. 수많은 생물로 가득한 신비의 세계에 대한 저자의 환상은 점점 더 강렬해졌기에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것. 이들이 그린란드상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미지의 그 무엇을 두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린란드상어는 바다 밑바닥에서 자는 물범을 잡아먹는대, 그린란드상어의 위에서 통째로 삼킨 물범 한 마리와 커다란 대구 8마리, 여러 조각의 고래 비곗덩어리가 나왔대, 상어의 살에는 독이 있어 이누이트족이 개 먹이가 없을 때 먹였는데 개들이 환각에 빠지거나 온종일 몸이 마비됐대….’ 하지만 그린란드상어는 초짜 상어 낚시꾼들에게 잡힐 만큼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었다. 미끼를 물었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실망하는 시간과 함께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저자는 정색하고 후고에게 묻는다. 왜 그린란드상어를 잡고 싶으냐고. 후고는 답한다. “그린란드상어가 심해에서 올라왔을 때 긴장감을 느끼면 돼.” 저자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호기심을 채우고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이에게 왜 그토록 그것을 가지려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오렌지색으로 물든 여름밤 하늘, 때로 빛이 커튼처럼 하늘거리는 오로라 등 이국적인 풍광 속에 펼쳐지는 두 남자의 도전은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바다와 생명을 노래한 시와 소설, 전설을 따라가는 재미도 적잖다. ‘그때부터 나는 시의 바다에서 헤엄쳤네/젖빛 나는 별들이 잠기고, 푸른 창공을 삼킨 바다….’ 아르튀르 랭보의 시 ‘취한 배’다. 랭보는 이 시를 16세 때 썼는데 그때까지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지난해 ‘노르웨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고,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인 ‘브라게상’을 비롯해 ‘비평가상’을 받았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명함이 없는 삶은 많은 이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조직에 속하지 않은 자연인으로도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진정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90세 작가의 유쾌한 인생 탐구’(다고 아키라 지음·김선숙 옮김·재승출판)의 저자는 활발히 글을 쓰며 건강하게 생활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별난 사람들에게서 유머와 배려, 유연한 사고를 배운 덕분이라고. 일본의 100세 자매는 방송 출연료를 어디에 사용하겠느냐는 질문에 “노후에 대비해 저축하겠다”고 답했다.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씨는 “모든 것을 녹이는 액체를 보존할 용기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우주 공간도 생각해 두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틀에 갇히지 않은 생각과 유머 감각은 여유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이 역시 노력이 필요한 사항이지만.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이와 늦은 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랜 친구에게도 못 했던 말을 털어놓게 되기도 한다. ‘여행자의 하룻밤’(이안수 지음·남해의봄날)은 경기 파주시 헤이리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북스테이 ‘모티브원’을 운영하며 만난 이들과의 이야기를 담았다. 6개월간 히치하이킹으로 유라시아를 횡단한 네덜란드인 바르트 씨는 “뉴스를 보면 사람에 대해 실망하지만 세상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면 멋진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방명록에 ‘벽을 만나 갈 곳을 잃어버린 기분’이라는 글을 남긴 이를 보며 저자는 절망에 대해 생각한다. 애써 완전히 절망을 발라냈다고 여긴 순간 또 다른 절망이 자라더라고. 어느 정도의 절망을 품고 가자고 생각하니 오히려 면역 기능을 했단다. 나도 몰랐던 에너지와 영감을 끌어내고 싶다면 익숙한 공간에서 훌쩍 벗어나 보자.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는 매일 아침 흑인 노예들이 지은 집(백악관)에서 눈을 뜹니다.” 올해 7월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 여사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건설에 흑인들의 노동력이 단단히 한몫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15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흑인으로 미국에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적나라하게, 그러나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흑인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값싼 ‘천연자원’이었다. 법적으로는 동등한 인간이지만 흑인의 목숨은 길거리에서 쉽게 증발한다. 무허가로 개비 담배를 팔다 경찰에게 급소를 눌려 숨진 에릭 가너, 장난감 총을 지닌 채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12세의 타미르 라이스….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차다. 이 책은 인권을 부르짖는 나라, 흑인이 대통령까지 된 나라가 인종 갈등으로 왜 갈수록 극심한 진통을 겪는지에 대한 의문을 차갑게 풀어준다. 저자는 11세 때 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권총으로 자신을 겨냥하는 백인 소년을 보며 너무나 쉽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얼어붙는다. 한 백인 여성은 극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빨리 타지 못하는 저자의 어린 아들을 밀치며 ‘아 쫌!’이라고 내뱉는다. 화가 난 저자가 격한 말을 하자 한 백인 남성은 “당신을 체포하게 할 수도 있어”라며 여성을 거든다. 흑인 부모들은 자녀에게 두 배로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저자는 중산층 이상으로 진입하면 다르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대학 동기인 프린스 존스가 2000년 경찰의 총에 숨진 경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경찰은 키 165cm, 몸무게 113kg의 남자를 추적하던 중이었다. 프린스의 키는 192cm, 몸무게는 96kg이었다. 어머니가 박사였고, 교외의 마당 있는 집에서 살던 존스는 성실한 청년이었지만 검은색 피부는 끝내 그를 허망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2001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직접 목도한 저자가 그라운드 제로는 과거 흑인 노예를 경매하던 곳이었음을 떠올린 건 존스의 죽음과도 무관치 않다. 흑인에 대한 시선은 동성애자, 아웃사이더 등 소수 집단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갈파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혐오하는 사람에게 이방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족 내에서 우리를 확인받는다’는 것. ‘증오가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문장은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려준다.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의 아들은 2014년 무장하지 않은 18세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편의점에서 엽궐련 몇 갑을 훔치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지만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본 후 방으로 들어가 흐느낀다. 그는 말한다. “이것이 너의 나라다. 너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살아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냉정하다.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멈출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래도 투쟁은 필요하단다. 암담하지만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라며 눈이 아플 정도로 강한 조명을 내리꽂는 듯하다. 지난해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챙겨 간 책이다. 원제는 ‘Between the World and Me’.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책마을을 만들 겁니다. 고서(古書)와 헌책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곳이 될 거예요.” 지난달 29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문을 연 삼례책마을을 진두지휘하는 박대헌 이사장(63)은 자신감이 넘쳤다. 5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들뜬 감정도 느껴졌다. 책마을은 고서점을 비롯해 절판 도서 10여만 권을 갖춘 헌책방, 북 카페, 책박물관, 북 갤러리 등이 들어선 3개 건물로 구성됐다. 일제강점기 무렵 지은 양곡창고를 개조했다. 양식창고가 ‘지식창고’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에게 책마을 건설을 제안한 완주군(군수 박성일)은 건물과 부지를 제공하고 사업비도 지원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고서점 ‘호산방’을 운영하던 그는 1999년 강원 영월군의 폐교를 활용해 영월책박물관을 만들었다. 고서를 대거 도난당하고 운영난에 시달리는 등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다 2011년 결국 문을 닫았다. 책박물관은 2013년 삼례로 이전했고 드디어 삼례책마을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박 이사장은 “고서 판매와 도서전, 세미나, 공연을 개최하고 주말에는 마을 광장에서 헌책 벼룩시장을 열어 책과 사람, 자연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고서는 어떤 의미일까. “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아름다워요. 병이라고 해도 좋을 이런 감정을 스무살 무렵 느꼈지요.”(웃음) 그는 고서가 결코 고리타분한 책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서양 술이 뭔지 아세요?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이 조선 관군에게 붙잡힌 후 내놓은 네덜란드산 레드와인이에요. 구체적인 역사와 지식이 담겨 있는 게 고서입니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 거장들이 표지화를 그린 책들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마구 뛴단다. 책마을은 연중무휴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박 이사장은 운영시간을 차츰 늘리고 싶다고 했다. 보유한 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그는 “책의 가치를 아는 눈 밝은 분들은 멀리서도 꼭 찾아오실 거라 믿는다”고 했다. 개관을 기념해 영국 빅토리아시대 그림책 거장인 ‘케이트 그린어웨이’전을 내년 4월 23일까지 열고 있다. 그는 지역에 어린이, 문학 등 작은 전문서점이 들어서고 장기적으로 국제고서도서전도 개최하는 꿈을 꾸고 있다. “여러 나라의 고서를 가진 판매자와 이를 사려는 수집가들이 세계에서 모여드는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필수적입니다. 절판된 책을 구하고 싶은 분, 책에 흠뻑 취하고 싶은 분들은 삼례로 오세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1.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33번에 걸쳐 구강암 수술을 받았다. 말년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는 거부했다. “맑은 정신으로 생각할 수 없다면 차라리 고통을 받으며 생각하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구강이 괴사되며 뿜어내는 지독한 악취에 애완견조차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죽음을 직시했다. “생명체답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죽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글처럼. #2. 수전 손태그(1933∼2004)는 백혈병에 걸리자 71세에 골수이식 수술을 받는다. 완치 가능성이 낮은 걸 알았지만 수술을 원했다. 수술 전 유언장을 작성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친구들이 제안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40대 초반에 유방암 4기 진단을, 60대 중반에는 자궁암 진단을 각각 받았지만 모두 공격적인 치료법을 찾아내 살아난 그였기에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맹렬히 싸웠다. 》프로이트·손태그·모리스 센닥 등위대한 작가-사상가 5인의죽음 과정 통해 삶의 의미 찾아 세계적인 작가들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색깔이 뚜렷하다. 뉴욕대 언론학과 교수인 저자는 존 업다이크, 딜런 토머스, 모리스 센닥까지 모두 다섯 작가의 편지와 일기, 엽서, 수첩은 물론이고 친구, 자녀, 간병인과 인터뷰해 죽음의 과정을 촘촘히 복기해냈다. 잔병치레가 잦았던 저자는 열두 살 때 한쪽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후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됐다고 한다. 고령(82세)이지만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을 강렬하게 끌어당긴 다섯 작가의 죽음을 추적했다. 황혼 무렵을 의미하는 제목은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따왔다. 어둠으로 세상이 서서히 덮여가는 시간이 죽음을 향한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그러기에 포장되지 않은 작가들의 민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이 살아간 방식과 왜 그런 작품을 쓰게 됐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유명한 모리스 센닥(1928∼2012)은 자주 죽음을 접했기에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자세가 돼 있었다. 가난한 이민자였던 부모는 셋째였던 자신을 임신하자 몇 번이나 유산시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을 줄곧 했다. 여섯 살 때는 같이 공놀이 하던 친구가 달려가다 차에 치여 숨지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 대신 공포를 모티브로 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소설 ‘달려라 토끼’로 유명한 존 업다이크(1932∼2009)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글을 쓰고 섹스에 몰두했다. 죽음이 몸을 감춘 채 늘 도사리고 있다고 여긴 딜런 토머스(1914∼1953)는 술을 돌파구로 삼아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택했다. ‘순수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라는 시에서 ‘분노하오 분노하오, 꺼져 가는 빛에 대해’라고 읊조렸던 그였다. 손태그는 “유방암과의 싸움은 열정을 더해 주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 철저히 따르려고 노력하게 되니까”라고 말했다. 실제 손태그는 더 치열하게 사색했고 화학 치료를 받으며 대표작 ‘은유로서의 질병’을 구상했다. 저자는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들의 삶을 압축적이고 선명하게 조명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어떤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가, 외면하려 애쓰는가. 그 시선에 따라 삶의 방향이 좌우될 것이다. 다섯 명의 작가가 그랬듯이. 원제는 ‘The Violet Hour’.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페미니스트의 발칙한 도전여자다운 게 어딨어(에머 오툴 지음·창비)=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여자답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며 삭발하기, 겨드랑이 털 기르기, 친척 모임에서 집안일 안 하기 등에 도전한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사소해 보이는 편견을 이겨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을 해부했다. 1만6000원.교토를 통해 본 한일관계서울과 교토의 1만 년(정재정 지음·을유문화사)=천 년 이상 수도였던 교토를 통해 일본의 역사와 한일관계를 분석했다. 백제, 신라, 고구려 이주민이 많이 살았고 윤동주, 정지용의 애환이 서린 곳이자 일제강점기에 노동자로 강제 동원됐던 재일동포 집단거주지가 있는 교토 곳곳을 발로 누볐다. 1만8000원. 진정한 나를 찾는 수행법참선이란 무엇인가?(진제 스님 지음·매일경제신문사)=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인 저자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간화선 수행법과 득도의 경지에 이른 대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문 법어를 한글로 정리하고 영문 번역도 곁들였다. 1만6000원.같은 듯 너무 다른 한국과 일본토끼가 새라고??(고선윤 지음·안목)=일본인은 토끼를 셀 때 왜 네발 달린 짐승이 아니라 새를 세는 단위로 셀까. 일본에서 중고교를 나오고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영주 귀국한 저자가 그만의 특별한 시선으로 한국인과 정신적 입출력 과정이 전혀 다른 일본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2만5000원.}
“나이가 드니 안 좋은 게 딱 하나 있어요. 도움을 받을 일이 많아졌다는 거죠.” 원로 연극배우가 말했다.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였지만 80세를 넘기자 걸을 때 자주 부축을 받아야 한단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당당하게 무대를 채우는 그를 보며 ‘역시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나이가 어딨어?’(힐러리 브래트 외 지음·신소희 옮김·책세상)는 60세를 넘겨 배낭을 메고 떠난 이들의 여행기를 모았다. 환갑을 기념해 프랑스, 일본, 영국을 자전거로 달리는가 하면 50년 전 교사로 근무했던 시에라리온의 학교를 찾아가는 이도 있다. 야생 회색곰을 관찰하려 북극권 한계선으로 가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또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걸 알기에 이들은 매 순간을 음미한다. 느리고 서툴더라도 자기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그렇게 가면 된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높이 날아오르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 헛된 걸 알지만 상상할수록 즐거운 일이다. 꿈꾸고 도전하는 것은 우리가 삶을 지속해나가는데 필수적이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 리빙스턴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읽었던 14세 소녀시절부터 지금까지 난 조나단 리빙스턴의 비상을 동경하고 여전히 그것을 소망한다. 그럼에도 ‘날아올라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디로, 언제, 어떻게 비상해야 하는가’와 같은 의문이 힘찬 날갯짓을 주저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데미안’에서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한계를 벗고 나와야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은 수많은 도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매우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나단은 한계라는 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쳤다. ‘가여운 플레처.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 눈이 보여주는 것은 다 한계가 있을 뿐이란다. 너의 이해력으로 보고 이미 아는 것을 찾아 내거라. 그러면 너는 나는 법을 알게 될 게다’라며. 그는 무리에서 추방되었다. 현실에 안주하길 원했던 무리에서 쫓겨난 덕분에 비로소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난 것이 한계를 뛰어넘는 시작이 된 것이다. 낯익은 세상에서 안주하는 이들의 눈빛은 더 이상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리빙스턴을 추방한 무리는 단지 물가의 물고기를 주워 먹거나 그것에 의지하는 뻔한 삶만을 이야기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나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따금 낯선 곳을 찾아간다. 또 발레리나로서 20여 년의 삶이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면 자발적으로 ‘추방된 자’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도전을 향해 날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껍질을 깨야 하는지 알지 못할 뿐더러 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도 가늠하기 어렵다. 어디쯤을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꿈을 꿀수록, 날갯짓을 할수록 더 멀리 나갈 것이라는 생각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분명한 건 한번 시작한 날갯짓과 무한한 꿈 덕분에 드넓은 창공을 항상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힘찬 날갯짓을 한다. 이 날갯짓을 혼자서 하고 싶지는 않다. 여러 마리의 새가 하늘을 함께 나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과 같이 하기를 늘 소망해 왔다. 함께 하다보면 무모해 보이는 도전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기에. 김주원 발레리나·성신여대 교수}

“책 속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있어요. 책을 읽으면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알 수 있고요. 엄마, 아빠에게 같이 책 읽자고 할 거죠? 약속하고 도장 찍어요!” 31일 오전 경기 화성시 비봉면사무소 앞마당에 세워진 ‘책 읽는 버스’에서 김수연 목사(70)가 여섯 살 어린이들에게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함께 내밀었다. 책 버스는 깔끔한 푸른 매트가 깔려 있고 책 1000여 권과 DVD, 접이식 TV 모니터와 긴 의자 등을 갖춘 이동식 도서관이다. 아이들은 함성처럼 “네에∼”라고 대답하며 김 목사에게 우르르 달려들어 연신 손도장을 찍어댔다. 김 목사는 사단법인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을 꾸려 32년째 도서관을 세우고 책을 기증하는 ‘책 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4대의 ‘책 읽는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다가 중단했는데 이번에 새로 버스를 마련해 시동을 걸었다. 두 달 꼬박 걸려 비봉면사무소 1층에 설립한 ‘고맙습니다 비봉작은도서관’도 이날 문을 열었다. ○ “하늘 간 아들과의 약속 지키는 중” 동아방송과 KBS 기자였던 그가 ‘책 읽기 전도사’가 된 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1984년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이 화재로 세상을 떠난 것. 아들은 “책 사 주세요”라는 말을 자주 했지만 늘 “좀 더 크면”이라며 다음으로 미뤘다. 하지만 ‘다음’은 없었다. “바쁘다며 아들에게 책 한 번 사주지 못했고, 서점과 도서관도 함께 간 적이 없었어요. 아들에게 해 주지 못한 일을 평생 하리라 다짐했어요. 뒤늦게나마 약속을 지키는 중입니다.” 이후 그는 목사가 됐고 사재를 털어 책 읽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학교마을도서관 254개를 개설했고 2008년부터 KB국민은행 후원으로 작은도서관 56곳도 만들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도 6년째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도서관의 책장 책상 의자 등 집기는 원목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직접 업체와 접촉해 저렴한 가격에 들여오는 방식을 도입한 것. 전기, 도배 등 다른 설비도 마찬가지다. 제한된 예산에서 책 구입 비용을 늘리고 좋은 독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은 욕심에 발로 뛰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날 비봉작은도서관의 원목 책상을 연신 문지르며 “천연 오일로 두 번 칠하고 사포질도 세 번 해서 이렇게 매끈한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가 운영할 책 버스는 지역 축제나 주요 관광지 등에서 책(명심보감 논어 탈무드 도덕경)을 나눠주고 책 읽기를 권장할 예정인데 벌써 지자체, 시골 학교 등 30곳 정도에서 요청이 들어온 상태다.○ “책은 인생의 이정표”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지만 32년간 외길을 걷기는 녹록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주변에서 “올해만 쉬자”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한 번 쉬면 다시 못 할 것 같았어요. 맥을 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는 책이 인생의 이정표라고 말했다. “책이 그냥 유용한 지식을 주는 도구라면 이렇게 열심히 하진 않았을 겁니다. 책은 인생의 길을 미리 알려줍니다. 모르는 길을 가면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아는 길을 가면 여유가 생기잖아요. 책이 미리 알려주니 삶이 여유 있고 행복하게 되는 겁니다.” 그는 강원 고성군, 제주도는 물론이고 마라도까지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1년에 차로 30만 km를 뛰는 건 예사다. ‘책 할아버지’라는 별명도 생겼다. “하나님이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을 살려둔 이유는 소중한 일을 하라는 뜻이 있을 겁니다. 책을 읽어주다 길 위에서 죽는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겁니다.”:: 김수연 목사가 책과 함께 걸어온 길 :: △ 학교마을도서관 254개 개설△ 작은도서관 56곳 건립△ 책 100여만 권 기부△ ‘책 읽는 버스’로 전국 400여 곳 300여만 km 누빔△ ‘논어’ ‘탈무드’ ‘도덕경’ ‘명심보감’ 20여만 권 제작·배포화성=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다 검사가 자살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아래에 있으면 마구 짓밟는 행태를 고위층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고 있어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79)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 고위층을 질타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평생토록 사회계급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는 최근 출간한 ‘특혜와 책임’(가디언)에서 누리기만 할 뿐 책임지지 않는 한국 고위층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책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가 역사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고 한국 고위층의 형성 과정과 문제점을 분석했다. 그는 고위 관료들의 병역 면제 비율이 일반 국민의 7∼10배인 현실을 지적하며 “고관들이 ‘높은 자리는 우리가, 죽을 자리는 국민이’라는 식으로 행동해서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송 교수는 영국과 미국, 일본이 200년 이상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요인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말했다. 책에서는 ‘충성스럽고도 희생적이며 공고히 단합된 엘리트 집단이 있는 나라는 오래오래 존속한다’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 언급된다. 육필(肉筆)을 고집하는 그는 한국의 현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 횃불을 드는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만년필로 적어 나갔다고 했다. 집필에는 1년이 걸렸지만 20년 이상 모은 자료가 바탕이 됐다. 이 책이 생애 마지막 저서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80세가 다 된 노인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웃음) 한 주제만 깊이 파고든 책을 쓰고 싶지만 만만찮은 작업이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송 교수는 한국 정치권의 천박함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지역 기관장들의 대화가 공개된 ‘초원복집 사건’을 들었다. ‘똘똘 뭉쳐야 한다’ ‘지역감정이 좀 일어나야 돼’라는 저질 언어가 난무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보다는 자기 쪽에 유리한 것이면 뭐든 해도 괜찮다는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과 고위 관료, 법조인 등이 지금 누리는 것을 노력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명문대 입시, 고시 등은 대부분 0.5∼1점 차로 당락이 갈립니다. 합격자는 운이 따랐음을 깨닫고 떨어진 사람들의 몫까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송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단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다 보니 도덕성과 희생정신을 내면화할 시간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고위층 역시 맨주먹으로 상층에 오르느라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역사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빛난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신라 시대, 정확하게는 법흥왕 초기(514년)부터 문무왕 말기(681년)까지 167년간이다. “신라 지도층은 풍부한 지식과 판단력, 정확한 정세 분석, 강한 희생정신과 도덕성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 장군이 이끄는 부대에 맞서 목숨을 던진 관창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가정에서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시작돼야 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이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장 무서운 사회는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가장 치열한 매도의 대상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좌절과 폭압이 횡행해요. 많이 가진 이가 선각자가 돼야 합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세상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보이는 대로 보는 방법과 고뇌 끝에 열린 마음의 눈으로 보는 방법 말이다. 전용수 전 인하대 부총장은 최근 출간한 ‘세상으로 열린 두 개의 창’(기파랑)에 육안뿐 아니라 마음으로 본 세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인생은 하루하루가 모인 삶의 궤적임을 깨달았다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습관을 갖고, 자신의 모습을 자주 거울에 비춰 보며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보자고 제안한다. 서양에서 마을 근처에 공동묘지를 둔 것처럼 죽음과 친해지고,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기억하고 산다면 그런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매일 14시간 환자를 돌보고, 36시간 동안 이어지는 수술을 해내며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했고, 내과의사인 아내와 아이도 갖기로 했다. 갈망하던 목표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손에 쥘 수는 없었다. 순항하던 인생을 폐암 4기 판정이 순식간에 뒤흔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36세였다. 지난해 38세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에세이는 삶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던 문학도였다. 의학은 인간의 영적, 생리적 측면을 파고들다 만난 지점이었다. 예일대 의과대학원을 마친 후 스탠퍼드대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했다.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뇌에 매료돼 주저 없이 신경외과에 지원했다.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똑바로 마주보고 싶다’는 의미도 있었다. 해부용 시신의 위에서 채 소화되지 않은 모르핀 두 알을 보며 고통 속에 약병을 더듬었을 생전 모습을 떠올린다. 환자를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하려 애쓰는 저자의 노력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그는 남은 시간이 석 달이라면 가족과 함께 보내고, 1년이라면 책을 쓰고, 10년이라면 병원으로 복귀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대신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폐암 치료를 받기 전 아내와 상의해 정자은행에 정자를 보관하고, 통증이 진정되자 병원에 복귀해 수술도 한다. 딸 케이디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보며 말한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맛봤다.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됐다.” 갈라진 손가락 끝으로 어마어마한 통증을 참아가며 글을 썼지만 그는 책을 매듭짓지 못하고 아내와 8개월 된 딸을 두고 떠났다. 짧지만 놀라울 정도로 충만하고 한 인간으로, 의사로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을 알게 된 건 축복이다. 아내 루시는 “그가 희망한 것은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희망을 이뤄냈다. 원제는 ‘When Breath Becomes Air’.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의 서비스 산업 경쟁력은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백화점은 서비스업의 정점에 있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안미선, 한국여성민우회 지음·그린비)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인터뷰해 화려함 뒤에 가려진 고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대부분이 여성인 이들은 팔찌, 목걸이를 착용해서는 안 되고 앞머리가 눈썹을 가려서도 안 되는 까다로운 복장 규정을 지켜야 한다. 고객용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는 이용할 수가 없다. 먹다 남은 음료수 컵을 버려달라고 하거나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상품권을 대신 타 달라고 요구하는 손님도 미소로 대해야 한다. 산 지 1년 이상 지난 상품을 가져와 환불해 달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돈 냈으니 뭐든 요구해도 된다’는 인식이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삶을 갈수록 피폐하게 만든다. 그들도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심이 흔들릴까 봐 정관수술을 받은 남자, 상술이 넘치는 ‘미친’ 한국의 결혼식이 싫어 혼인신고만 한 후 아내와 순댓국을 먹은 남자, 액화석유가스(LPG)통과 화기(火器) 같은 부모와 아내를 중재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라며 명절에 본가에 혼자 가는 남자…. ‘한국이 싫어서’ ‘표백’ ‘댓글부대’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인 저자가 낸 첫 에세이에는 사생활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2014년 아내와 3박 5일간 보라카이로 늦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뼈대 삼아 자신의 가치관과 일상을 녹여 냈다. 출간 전 포털 사이트에 연재한 글을 본 한 중년 남성은 저자에 대해 “골 때린다”고 말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통념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아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와는 오랜 기간 연락을 끊었다. 집에 있는 가장 비싼 가전제품은 장모가 사준 냉장고다. 자동차도 없다. 자신의 감정, 아내와의 행복에 철저히 무게중심을 둔다. 소설 ‘호모 도미난스’가 많이 팔리지 않아 실망하면서도 영화 제작이 진행되는 것에 위안을 얻고, 머리카락을 만져주면 나른해하며, 차가운 맥주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아내가 먹다 남긴 미지근한 맥주를 군말 없이 먹는 모습에서는 평범하면서도 다정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다. 전직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를 입사 때부터 봐 온 입장에서는 익숙한 그의 민얼굴을 마주한 느낌이다. 내밀한 연애사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를 철저히 따지는 살림살이까지 속속들이 알았던 건 아니지만. 기존 소설(특히 ‘한국이 싫어서’)에 저자의 캐릭터가 일정 부분 반영돼 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이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날려줄 것 같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회사 그만두는 법, 수제 맥주, 테슬라, 북한, 이슬람…. 사회 생활부터 정치, 경제, 문화 등 온갖 종류의 지식을 전자책으로 30분 만에 섭렵할 수 있는 ‘헬로월드 시리즈’ 100권이 최근 완간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의 지식 입문서 ‘아주 짧은 소개’ 시리즈를 국내 전자책 1위 업체인 리디북스가 벤치마킹한 것. 100권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리디북스 사무실에서 현정환 콘텐츠그룹 실장(36), 김상훈(39) 유찬경 PD(34)와 프리랜서인 김희정 출판기획자(47)를 17일 만나 ‘광속’으로 책을 낸 비결을 물었다. 김희정 씨는 “책은 ‘기획-저술-인쇄-운송’을 거쳐 독자에게 가는데 전자책이라 인쇄, 운송이 빠져 단계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분량이 종이책(300쪽 기준)의 5분의 1 정도여서 글도 빨리 쓸 수 있었다. 사회 현안에 맞춰 신속하게 움직인 측면도 크다. 올해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알고도 당하는 북한 외교’를 단 24시간 만에 출간했다. 당시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쓴 초고만 확보한 상태였다. “현 실장이 당시 오후 2시에 ‘책을 내자’고 했을 때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고요. 바로 오후 3시부터 편집, 교정, 제작에 들어가 다음 날 오후 3시가 채 되지 않아 팔기 시작했어요. 하루 만에 수백 권이 나갔죠.”(김 PD) ‘오타쿠 진화론’ ‘내 맘대로 솔로 캠핑’ ‘건담이 온다’ ‘비어 투어리스트’ 등 기존 출판사들이 잘 다루지 않는 분야를 파고들었다. 현 실장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직원의 주축을 이루는데 아이돌, 건담, 캠핑 등 분야별 마니아가 많아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저자는 기존에 책을 냈던 사람이 아니라 블로거 운영자 등 해당 분야의 고수 가운데 글쓰기가 되는 사람을 찾아냈다. 전자책이라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기술인 TTS(Text to Speech)를 이용해 듣는 사람도 많다. 유 PD는 “TTS는 된소리에 약한 편이어서 ‘대가(代價)’가 ‘대가(大家)’로 들려 다른 표현으로 바꿨고, 소수점을 읽지 못해 프로그램을 보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빨리 제작한다고 해서 질이 떨어진다고 여기면 오산이라고 말한다. 리디북스의 독자들은 “부담 없이 읽히면서도 해당 주제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헬로월드 시리즈’가 흑자를 낸 비결이다. 판매 1위인 ‘제대로 회사 그만두는 100가지 방법’은 5000권 넘게 팔렸다. 가격은 낱권 기준으로 900원, 1500원, 2100원이다. 현재 100권을 묶어 할인 판매하고 있으며 50년 장기 대여하면 더 낮은 가격에 볼 수 있다. 이들은 비슷한 유형의 시리즈를 계속 낼 예정이다. 현 실장은 “이 시리즈가 전자책을 접하고, 해당 주제를 더 깊이 다룬 책을 찾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센세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선생님, 감사합니다).” 일본 도쿄 라라포트 쇼핑몰에 자리한 기노쿠니야 서점에는 20일 한껏 신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본에서 530만 권 넘게 판매되며 큰 인기를 모은 과학 만화책 ‘살아남기’ 시리즈의 한현동 그림작가(39)가 사인회에서 주인공인 지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씩 책에 그려 주고 있었다. 한 여자아이는 양손을 활짝 벌린 채 달려와 한 작가의 두 손을 와락 잡기도 했다. 이달 초 일본에서 출간된 ‘물 부족에서 살아남기’는 출판 도매상인 도한이 집계하는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지난주 종합 5위까지 올랐다. 한국 출판물이 일본에서 이처럼 사랑받는 경우는 드물다. 미래엔 출판사의 아이세움에서 2001년 출간해 지금까지 51권이 나온 이 시리즈는 미국, 대만, 태국 등 7개국에 수출됐다. 한국(1100만 권)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2800여만 권이 판매됐는데, 일본은 중국(800만 권)에 이어 해외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나라다. ○ 모험하다 보면 과학 지식이 쏙쏙 “선생님은 지오를 그릴 때 눈을 가장 먼저 그려요. 이렇게요∼.” 사인회에 앞서 열린 그림 교실에서 한 작가가 화이트보드에 지오의 눈을 그리자 “와!”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림 교실 바로 옆에는 ‘살아남기’ 시리즈만 모아 놓은 책장이 2개 있었다. 일본 출판을 담당한 아사히신문출판의 나카무라 마사시 서적본부장은 “일본의 대형 서점 대부분에는 ‘살아남기’ 시리즈 서가가 별도로 있다”고 말했다. 이 시리즈는 사건과 위기가 이어지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과학 지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아이들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웃집 친구 같은 친근한 캐릭터와 역동적인 그림, 익살스러운 표정과 행동도 한몫한다. 히라노 가즈키 군(10)은 “모험이 재미있고, 실수를 하지만 멋진 면도 많은 지오가 좋아 새 책이 나오면 바로 사서 본다. 20권 넘게 보다 보니 흥미가 없던 과학도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권 가까이 읽었다는 미야케 미라이 양(9)은 “‘인체에서 살아남기’가 제일 재미있다. 지오는 평상시는 잠꾸러기인데 위험이 닥치면 실력을 발휘해서 좋다”며 웃었다. ○ 일본 학습 만화 시장 개척 이날 취재를 나온 출판문화 전문 신문인 분카쓰신(文化通信) 호시노 와타루 편집장은 “2008년 일본에 처음 출간됐을 때 책을 보니 아이들을 설레게 하는 요소가 많고 구성도 탄탄해 히트칠 것이라 직감했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시리즈는 일본에서 과학 만화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한자, 세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만화가 쏟아지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만화 강국이지만 학습 만화로는 일본 역사를 다룬 책 정도가 있다고 한다. 아오키 야스유키 아사히신문출판 사장은 “출판계가 불황인데 ‘살아남기’ 시리즈는 최근 3, 4년간 해마다 100만 권씩 판매돼 놀라울 뿐이다”고 말했다. ‘물 부족…’은 초판만 9만 권을 찍었다. 대부분의 일본 초등학교 도서관에는 ‘살아남기’ 시리즈가 비치돼 있다. 하지만 예약자가 많아 곧바로 빌려 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수업 전 5∼10분 학생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책을 읽는 시간이 있다. 일반 만화책은 안 되지만 ‘살아남기’ 시리즈는 허용하고 있다. 나카무라 본부장은 “해마다 이 시간에 많이 읽은 책 순위를 발표하는데 ‘살아남기’ 시리즈는 늘 2, 3위에 오른다”고 말했다. 이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판형과 내용을 그대로 모방한 책까지 나오고 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한 작가는 “일본 만화를 보며 자랐는데, 내 작품이 일본에서 이토록 사랑받는 걸 보니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도쿄=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그는 유독 유럽과 인연이 많았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1등 서기관, 노르웨이 대사, 이탈리아 대사를 지냈다. 퇴직 후엔 페레로 로셰, 킨더 초콜릿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페레로 그룹에 몸담고 있다. 김영석 페레로 아시아 리미티드 고문(63)의 이야기다. 그는 최근 이탈리아 역사를 비롯해 도시 문화 예술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이탈리아 이탈리아: 김영석의 인문기행’(열화당)을 펴냈다. 그를 17일 서울 서초구 마방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해 보니 그동안 거쳤던 유럽 여러 나라의 문화가 이탈리아로 수렴된다는 걸 생생히 느꼈어요. 로마, 피렌체 등 큰 도시뿐 아니라 작은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언어(라틴어)를 비롯해 미술, 문학, 종교 등 이탈리아가 서양문화의 뿌리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죠.” 이탈리아의 모든 것을 한 권으로 압축한 책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많은 한국인이 인문학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는 “이탈리아가 지금은 정치·경제적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뿌리 깊은 나무이기 때문에 복원력도 크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페레로 그룹은 피에몬테 주에 자리한 작은 마을 알바의 제과점에서 출발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페레로 그룹을 이탈리아의 장인정신을 잘 보여주는 기업으로 꼽았다. “페레로 로셰는 피에몬테 주에서 많이 나는 헤이즐넛과 함께 웨하스, 액상 초콜릿 등을 겹겹으로 감싸 만드는데, 이 정교한 작업을 하는 기계를 모두 자체 개발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기술력이 뛰어납니다.” 그는 어린이 스키스쿨, 어린이날 가족 달리기 대회 등 페레로 그룹의 한국 내 사회공헌 활동에 많은 조언을 하고 있다. 초콜릿 회사인 만큼 어린이 행사가 많다. “공무원으로서 귀한 기회를 가졌던 만큼 이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과 이탈리아를 잇는 작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