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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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5-11-13~2025-12-13
종교57%
문학/출판27%
문화 일반7%
사회일반3%
정치일반3%
인사일반3%
  • 교황 “청년은 새 세상 징표, 2년뒤 서울서 만나자”

    “갈등이 무기가 아닌 대화로 해결되는 박애와 우정의 세상, 여러분(청년)은 그런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징표다.” 레오 14세 교황이 3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토르베르가타 지구에서 열린 ‘2025년 젊은이의 희년’ 폐막 미사에서 청년들을 향해 이같이 밝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청년들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과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교황은 “우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 야기된 가장 심각한 악으로 고통받고 있는 젊은이들과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다”며 “가자지구,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 전쟁으로 피범벅이 된 이 땅의 모든 이들과 함께하자”고 덧붙였다. 희년은 가톨릭에서 25년 또는 50년마다 선포하는 은총의 기간이다. 이번 희년은 지난해 12월 24일부터 2026년 1월 6일까지다. 특히 지난달 28일부터 3일까지는 18∼35세 신자를 위한 ‘젊은이의 희년’ 주간으로 지정됐다. 교황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과 용기를 강조했다. 2일 철야기도에서 교황은 “우정이야말로 세상을 진짜 바꿀 수 있고 평화로 가는 길”이라며 “세상에 정의와 평화의 증인인 복음 전도사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5월 즉위한 레오 14세가 처음 대규모 청년들과 만나는 자리란 점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바티칸은 전 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교황은 지난달 29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개막 미사에서 지붕 없는 전용 행사 차량 ‘포프모빌’을 타고 깜짝 등장해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기도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음악 공연을 즐기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번 대회가 2000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가톨릭 우드스톡’이라고 불렸던 세계청년대회장 같았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교황은 2027년 8월 3∼8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WYD)’ 본대회 일정을 직접 언급하며 방한을 예고했다. WYD는 교황이 참가하는 세계 가톨릭 청년들의 최대 축제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창설했으며, 2∼4년 간격으로 대륙을 순회하며 열리고 있다. 2027 서울 WYD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교구에서 5일간 열리는 교구 대회(사전 행사)와 서울에서 6일간 열리는 본대회로 나뉜다. 본대회에서는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각국 주교들의 교리 교육, 박람회, 교황과의 밤샘 기도 및 차기 개최국 발표 등이 진행된다.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는 50만∼70만 명이 대회에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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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두 살 아기도 타인의 마음을 신경쓴다

    인간이란 참 설명하기 힘든 존재다. 자기 생일 잔치에서 아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런 모순적인 행동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나기도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과연 무엇일까?’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로 발달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가 이 가볍지 않은 물음에 답을 찾아 나섰다. 저자는 생후 수개월밖에 안된 아기들의 행동에 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인간의 도덕관과 종교성, 예술적 판단, 본질주의적 사고 등은 후천적으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오랜 진화를 통해 인간에게 내장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 독특한 심리 구조가 어떻게 윤리와 사회적 연대, 문화로 확장되는지를 그려낸다.“아이들은 만 2세 정도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그들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행동한다. 또한 아기들은 공감적 분노도 드러냈다.”(4장 ‘선과 악’ 중)인간이라는 참 독특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생물의 여러 특징을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 한편으로는 인간성이 타고나는 건지, 만들어지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안들 작금에 하루가 멀다고 비인간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막고,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쓸모가 있을지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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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한국어 안내…차승원 목소리로 듣는다

    교황청이 1일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어 음성 안내(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한다.천주교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31일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과 협력해 베드로 대성전 안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작하고, 29일(현지 시간) 교황청에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오디오 가이드는 성 베드로 대성전 내 전시 및 안내 콘텐츠 개편에 맞춰 기획됐다. 배우 차승원이 목소리를 재능 기부했으며, 한국인 방문객과 순례자들이 베드로 대성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제공됐지만, 대성전에서 제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전달식에는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바티칸시국 총대리)을 비롯해 서울대교구 이경상·최광희 주교,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장 정연정 몬시뇰, 이정우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대리 등이 참석했다. 감베티 추기경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한국인 신자와 순례자들이 성 베드로 대성전을 더욱 풍부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상 주교는 “희년을 맞아 로마를 방문하는 많은 한국 순례자와 관광객이 성 베드로 대성전을 이해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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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국적 넘어 韓불교 세계화 이바지하고파”

    “불심(佛心)도 더위도, 한국이 인도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하하하.” 지난해 9월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경기 양주 회암사 주지에 인도 출신 인공(印空) 스님이 임명됐다. 임명 당시 32세라는 나이도 파격적이었지만, 조계종 역사상 공찰(公刹·종단 소유 사찰) 주지에 외국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탄과의 접경 지역인 인도 타왕 지역 출신인 그는 1998년 6세 때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로 출가한 뒤, 2010년 18세의 나이로 한국에서 재출가했다. 현재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가 겔룩파 출신이다. 28일 회암사에서 만난 인공 스님은 “2009년 인도로 유학 온 범하 스님을 만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범하 스님이 견문도 넓힐 겸 한국에서 한번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괜찮겠다 싶어서 5년만 공부하고 돌아가려고 이듬해 바로 한국에 왔지요. 그런데 인연이 닿아서인지, 인도에서 산 것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게 됐네요.” 그는 “원래 계획은 행자 생활 1년, 통도사 강원(講院·사찰에 설치된 교육기관) 4년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며 “좀 더 공부하고 싶어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숙소이던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서 주지 호산 스님을 만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를 좋게 본 호산 스님이 2023년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 양주 봉선사 주지에 임명되면서 그를 봉선사 말사인 회암사 부주지로 데려간 것. 그리고 1년여간의 주지 직무대행을 거쳐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 회암사는 고려 말 인도 승려 지공 선사(?∼1363)가 터를 지목하며 창건된 사찰이다. 지공 선사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부터 2년여간 고려에 머물며 불교를 전파했다. 그의 제자인 나옹 선사(1320∼1376)가 도량을 열었고, 나옹의 제자 무학 대사(1327∼1405)가 중창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고 정종, 세종, 세조 등 역대 왕과 왕후의 후원을 받았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인공 스님은 외국인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인도 출신인 지공 선사와의 인연이 있던 곳인 만큼, 나이와 국적을 넘어 좀 더 젊고 개방적인 불교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신자는 물론이고 출가자까지 급감하는 시대에 불교가 과감하게 변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본다는 것. 이런 기대 때문인지 회암사에 상주하는 승려 8명 중 6명이 인도, 스리랑카 등 외국 출신이고 그중 인공 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20대다. 인공 스님은 올해 종교인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됐다. 인도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인도 국적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연(緣)으로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면, 다음 연은 외국인 출신 주지로서 무탈하게 소임을 마치는 것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불교가 외국인 출신 스님에게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인공 스님은 “외국인 출신 주지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 스님들이 절을 많이 찾는다”며 “회암사를 외국인 스님의 출가 도량으로 키워낸다면 이것이 곧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양주=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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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심(佛心)도 더위도, 한국이 인도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불심(佛心)도 더위도, 한국이 인도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하하하.”지난해 9월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경기 양주 회암사 주지에 인도 출신 인공(印空) 스님이 임명됐다. 임명 당시 32세라는 나이도 파격적이었지만, 조계종 역사상 공찰(公刹·종단 소유 사찰) 주지에 외국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탄과의 접경 지역인 인도 타왕 지역 출신인 그는 1998년 6살 때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로 출가한 뒤, 2010년 18세의 나이로 한국에서 재출가했다. 현재 제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가초가 겔룩파 출신이다. 28일 회암사에서 만난 인공 스님은 “2009년 인도로 유학 온 범하 스님을 만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라고 회고했다.“범하 스님이 견문도 넓힐 겸 한국에서 한번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괜찮겠다 싶어서 5년만 공부하고 돌아가려고 이듬해 바로 한국에 왔지요. 그런데 인연이 닿아서인지, 인도에서 산 것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고 있네요.”그는 “원래 계획은 행자 생활 1년, 통도사 강원(講院·사찰에 설치된 교육기관) 4년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라며 “좀 더 공부하고 싶어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숙소이던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서 주지 호산 스님을 만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그를 좋게 본 호산 스님이 2023년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 양주 봉선사 주지에 임명되면서 그를 봉선사 말사인 회암사 부주지로 데려간 것. 그리고 1년여 간의 주지 직무대행을 거쳐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회암사는 고려 말 인도 승려 지공 선사(?~1363)가 터를 지목하며 창건된 사찰이다. 지공 선사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부터 2년여 간 고려에 머물며 불교를 전파했다. 그의 제자인 나옹 선사(1320~1376)가 도량을 열었고, 나옹의 제자 무학대사(1327~1405)가 중창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고 정종, 세종, 세조 등 역대 왕과 왕후의 후원을 받았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인공 스님은 외국인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인도 출신인 지공 선사와의 인연이 있던 곳인 만큼, 나이와 국적을 넘어 좀 더 젊고 개방적인 불교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했다. 신자는 물론이고 출가자까지 급감하는 시대에 불교가 과감하게 변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본다는 것. 이런 기대 때문인지 회암사에 상주하는 승려 8명 중 6명이 인도, 스리랑카 등 외국 출신이고 그 중 인공 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20대다.인공 스님은 올해 종교인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됐다. 인도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인도 국적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연(緣)으로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면, 다음 연은 외국인 출신 주지로서 무탈하게 소임을 마치는 것으로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국 불교가 외국인 출신 스님에게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인공 스님은 “외국인 출신 주지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 스님들이 절을 많이 찾는다”라며 “회암사를 외국인 스님의 출가 도량으로 키워낸다면 이것이 곧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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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교파 초월…140년 한국 기독교 역사 한자리에

    한국 개신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2일 서울 은평구에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이사장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목사)이 문을 연다.연 면적 1341㎡ 규모의 기독교역사문화관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한국기독교 문화와 역사전체를 아울렀다. 상설전시관에선 선교 초기부터 2000년대 초까지 기독교가 펼쳤던 다양한 사회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 ‘신앙이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개최된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 독립과 6·25 전쟁 시기, 산업·민주화 시기, 민주화 이행기로 구분해 전시했다. 내년 2월까지 열리는 기획전 ‘to 조선, from 한국’과 ‘아주 보통의 주말’에선 초기 선교사들의 다양한 복음 전파 활동을 만날 수 있다. 한국 개신교 선교의 문을 연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 집안이 대를 이어 모아온 ‘코리아 미션 필드’도 선보인다. 선교사들이 한국 상황을 본국에 알리기 위해 교파를 초월해 만든 영문 잡지다. 1905~1941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 밖에도 한국 기독교 140년 역사를 알리는 사진 및 자료 1000여 점 등이 전시된다. 이영훈 이사장은 “전시는 물론이고 프로그램과 심포지엄 등을 통해 기독교역사문화관을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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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평온한 들판이, 수천명 학살 현장이라니…

    논두렁 사이로 한가로이 핀 들꽃들. 고즈넉하게 펼쳐진 너른 들판 위에는 아지랑이만 아른거렸다. 더위에 지쳤는지 느리게 우는 매미 소리 사이로 이따금 울리는 이름 모를 새소리가 정겹다. 이런 곳이 무려 100여 년에 걸쳐 수천 명이 순교한 참혹한 학살의 현장이라니…. 2020년 11월 교황청이 승인한, 국내 유일의 국제 성지인 충남 서산시 해미국제성지를 14일 찾았다. 기록적인 극한 호우로 안타까운 수해를 당하기 며칠 전이었다. 성지는 신자들이 빈번히 순례하는 거룩한 장소. 가톨릭에는 교구장이 승인하는 교구 성지, 주교회의가 승인하는 국가 성지, 교황청이 승인하는 국제 성지가 있다. 아시아에서 국제 성지는 필리핀 마닐라 안티폴로 대성당, 인도 첸나이 성 토마스 대성당에 이어 세 번째다. 해미 지역에선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1871년) 등을 거치며 100여 년 동안 수천 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132명. 특히 병인박해 시기에는 관헌들이 교수형과 참수 등으로 한 명씩 처형하는 데 지쳐 아예 물웅덩이와 구덩이에 수십 명씩 몰아넣고 생매장하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경내 노천성당 옆에 상당한 깊이와 너비를 가진 ‘진둠벙’이란 이름의 웅덩이가 있는데, 팔을 묶고 끌고 가던 신자들을 거꾸로 떨어뜨려 죽게 한 곳이다. 국제 성지는 대부분 유명한 성인이나 특별한 기적 등과 연관이 있는 곳이다. 인도의 국제 성지인 성 토마스 대성당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사도 토마스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다. 반면 해미국제성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순교자 대부분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무명 순교자들의 땅. 하지만 교황청에서는 오히려 이런 ‘특별하지 않음’을 더 가치 있는 신앙의 모범으로 여겼다. 국제 성지가 되기 전인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특별 방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6년 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미성지를 국제 성지로 선포했다. 국제 성지답게 경내 대성당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미사가 열린다. 이날 미사를 맡은 인도 출신의 하비에르 신부는 “방문객이 많은 날은 성지와 관련된 내용으로, 적은 날은 일상적인 내용으로 미사를 본다”며 “오늘은 폭염으로 사람이 적어 일상적인 내용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6일에는 휴가차 방한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을 맡고 있는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했다.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장 시절 해미성지의 국제 성지 추진을 주도한 바 있다. 그늘에 앉아 잠시 흐르는 땀을 닦는데 ‘여숫골’이라 쓰인 커다란 돌덩이가 보였다. 이 지역의 다른 이름이다. 당시 형장으로 끌려가거나, 산 채로 매장당하던 신자들이 한결같이 ‘예수, 마리아’를 절규했다. 이 소리가 멀리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여수, 머리’로 들렸다는 것. 이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변했다고 한다. 기독교 전통이 깊은 나라도 아니었는데, 목숨을 버려서까지 자신이 택한 길을 간 이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종교를 떠나, 그 무엇으로든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우려 했던 옛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서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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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쾌한 아리랑 통해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켰죠”

    “칠성각 꽃심 속에 여며놓은 태극기여/초월 스님 보살도(菩薩道)가 찬란히 서려 있네/진관사 애국행(愛國行)이어라 아리 아리랑/아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22일 서울 은평구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에서 합창곡 ‘진관 아리랑’(김연갑 작사·박범훈 작곡)이 초연됐다. 진관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체인 ‘일심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 불교계 항일독립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던 백초월(白初月) 스님(1878∼1944)이 머물렀던 곳이다. 2009년 사찰 내 칠성각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백초월 스님이 숨긴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 등 독립운동 관련 유물 20여 점이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진관 아리랑은 이런 진관사의 역사와 백초월 스님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을 기린 국악 합창곡이다. 노래를 작곡한 박범훈 조계종 불교음악원장(동국대 한국음악과 석좌교수)을 10일 진관사에서 만났다. ―한스럽고 슬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나고 흥겹습니다.“우리 아리랑의 진정한 매력은, 한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어요. 그래서 느리면 한이 서리고 슬프고 애간장을 녹이지만, 또 장단을 바꿔서 흥겹게 부르면 그렇게 신나는 가락이 없지요. 느리게 만들어서 슬픔과 한이 배어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지금 시대에 굳이 아리랑을 구슬프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술을 많이 먹고 거북할 때 토하면 속이 편해지듯, 경쾌한 아리랑을 통해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토해내는 것이죠. 아직 충분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좀 기쁘게, 흥겹게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찰 이름이 붙은 첫 아리랑이라고 들었습니다.“맞습니다. 원래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2009년에 당시 주지인 계호 스님이 백초월 스님과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부탁했는데, 그때는 너무 바빠서 만들지 못했어요. 그게 늘 마음의 짐이었죠. 마침 올해가 광복 80주년인 데다, 마침 진관사에서 백초월예술제가 처음으로 열려 쓰게 됐지요.” ―백초월 스님이 누군지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 독립운동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분입니다. 만해 한용운과 백용성 스님이 체포되자 뒤를 이어 ‘승려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의용승군제를 추진한 독립투사시죠. 1944년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셨지요. 진관사 태극기는 1920년 초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긴박한 상황에서 당시 진관사에 머물던 스님이 칠성각 벽 속에 숨겨 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태극기에 독립신문 등 사료 20점이 싸인 채였는데, 90년 가까이 아무도 모르게 보존되다가 기적처럼 발견된 것이지요.” ―진관사 태극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요.“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 독립 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고 해요. 더욱이 왼쪽 윗부분 끝자락은 불에 타 손상되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으로 미뤄 만세운동 등 실제 독립운동 과정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지요. 이런 의미를 알고 진관 아리랑을 부르면 더 뜻깊은 광복 80주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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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쾌한 아리랑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토해내고 싶었어요”

    “칠성각 꽃심 속에 여며놓은 태극기여/ 초월 스님 보살도(菩薩道)가 찬란히 서려 있네/ 진관사 애국행(愛國行)이어라 아리 아리랑/ 아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달 22일 서울 은평구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에서 합창곡 ‘진관 아리랑(김연갑 작사·박범훈 작곡)’이 초연됐다. 진관사는 일제강점기 비밀결사체인 ‘일심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 불교계 항일독립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던 백초월(白初月) 스님(1878~1944)이 머물렀던 곳이다. 2009년 사찰 내 칠성각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백초월 스님이 숨긴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 등 독립운동 관련 유물 20여 점이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진관 아리랑은 이런 진관사의 역사와 백초월 스님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을 기린 국악 합창곡이다. 노래를 작곡한 박범훈 조계종 불교음악원장(동국대 한국음악과 석좌교수)을 10일 진관사에서 만났다.―한스럽고 슬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나고 흥겹습니다. “우리 아리랑의 진정한 매력은, 한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어요. 그래서 느리면 한이 서리고 슬프고 애간장을 녹이지만, 또 장단을 바꿔서 흥겹게 부르면 그렇게 신나는 가락이 없지요. 느리게 만들어서 슬픔과 한이 배어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이유가 무엇인가요.“지금 시대에 굳이 아리랑을 구슬프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술을 많이 먹고 거북할 때 토하면 속이 편해지듯, 경쾌한 아리랑을 통해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토해내는 것이죠. 아직 충분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좀 기쁘게, 흥겹게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사찰 이름이 붙은 첫 아리랑이라고 들었습니다.“맞습니다. 원래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2009년에 당시 주지인 계호 스님이 백초월 스님과 진관사 태극기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부탁했는데, 그때는 너무 바빠서 만들지 못했어요. 그게 늘 마음의 짐이었죠. 마침 올해가 광복 80주년인 데다, 마침 진관사에서 백초월예술제가 처음으로 열려 쓰게 됐지요.”―백초월 스님이 누군지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 독립운동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분입니다. 만해 한용운과 백용성 스님이 체포되자 뒤를 이어 ‘승려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의용승군제를 추진한 독립투사시죠. 1944년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셨지요. 진관사 태극기는 1920년 초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긴박한 상황에서 당시 진관사에 머물던 스님이 칠성각 벽 속에 숨겨 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태극기에 독립신문 등 사료 20점이 쌓인 채였는데, 90년 가까이 아무도 모르게 보존되다가 기적처럼 발견된 것이지요.”―진관사 태극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요.“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 독립 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고 해요. 더욱이 왼쪽 윗부분 끝자락은 불에 타 손상되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으로 미뤄 만세운동 등 실제 독립운동 과정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지요. 이런 의미를 알고 진관 아리랑을 부르면 더 뜻깊은 광복 80주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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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끼 식사, 공양 여기면 몸-마음 달라져… 지금 힘들다면 먹는 것부터 바꿔 보길”

    “매끼를 식사(食事)가 아닌, 공양(供養)이라 불러보세요. 몸도 마음도 세상도 달라집니다.” 9일 서울 강남구 대한불교조계종 법룡사 사찰음식문화센터에서 만난 선재 스님은 “지금 힘들다면, 먹는 것부터 바꿔보라”라고 권했다. 국내 사찰음식명장 1호인 그는 최근 대중 특강에 나서는 등 ‘좋은 음식’의 본질을 알리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공양이라 부르기만 해도 효과가 있다고요.“식사는 그냥 밥을 먹는 행위예요. 공양은 먹는 것을 넘어, 나눔의 의미가 있지요.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햇볕, 물, 공기 등 얼마나 많은 자연의 나눔이 있었습니까.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건 어머니의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이에요.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고, 그걸 나누면 행복해지지요.” ―고통스럽다면 먹는 걸 바꾸라는 게 선문답 같습니다.“열반경(涅槃經)에 사람들이 고통과 어려움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 있어요. 다 들으신 뒤 부처님의 첫 질문이 ‘당신은 무슨 음식을 어떻게 해서 먹고 삽니까’였지요. 불경에 ‘식자제(食自制)가 곧 법자제(法自制)’란 말이 있습니다. 나쁜 음식 먹으면 병이 나듯, 편안하고 행복해지려면 건강한 음식이 토대라는 것이지요.” ―음식이 성격도 바꾼다고요.“짜게 먹는 지역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 많아요.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밥을 먹은 뒤와 과자를 먹은 뒤에 떠드는 게 양상이 달라요. 과자를 먹으면 더 거칠고 과격한 모습을 보이지요.” ―모든 채소는 약인데, 약은 독과 통한다고 하셨습니다.“따뜻한 식재료는 된장에, 냉한 것은 고추장에 무쳐 성질을 중화시켜 먹어야 속이 편해요. 우리가 쑥떡을 먹는데, 쑥 자체는 독해서 아주 어릴 때 아니면 그냥 먹을 수 없어요. 하지만 삶아서 쌀과 섞으면 먹기 편하지요. 요리란 이런 식재료의 성질을 사람과 맞게 연결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행위입니다.” ―다음 달 아이들을 위한 사찰음식 특강을 하시더군요.“요리법을 배운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좋은 음식이 뭔지 안다면 스스로 나쁜 음식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식이 곧 수행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 행복의 시작이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폭염이 심해서 찬 것만 찾게 됩니다.“이럴 땐 보리차가 정말 좋아요. 보리가 냉한 성질이라 더울 때 몸을 중화시키거든요. 보리를 볶아 물에 넣고 끓이면 되니 만드는 법도 간단하지요.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좋아요. 뭐든지 수고가 들어가야 얻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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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재 스님 “음식이 성격도 바꿔요…짜게 먹으면 급해지죠”

    “매끼를 식사(食事)가 아닌, 공양(供養)이라 불러보세요. 몸도 마음도 세상도 달라집니다.”9일 서울 강남구 대한불교조계종 법룡사 사찰음식문화센터에서 만난 선재 스님은 “지금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먹는 것부터 바꿔보라”라고 권했다. 국내 사찰음식명장 1호인 그는 최근 김치를 주제로 대중 특강에 나서는 등 ‘좋은 음식’의 본질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공양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요.“식사는 그냥 밥을 먹는 행위에요. 반면 공양에는 단순히 먹는 것을 넘는, 나눔의 의미가 있지요.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햇볕, 물, 공기 등 얼마나 많은 자연의 나눔이 있었습니까.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는 것은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든 어머니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이에요.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고, 그걸 함께 나누면 서로 행복해지지요.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지금 고통스럽다면 먹는 걸 바꾸라는 게 선문답 같습니다.“열반경(涅槃經)에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 있어요. 다 들으신 뒤에 부처님께서 던진 첫 질문이 ‘당신은 무슨 음식을 어떻게 해서 먹고 삽니까’였지요. 불경에 ‘식자제(食自制)가 곧 법자제(法自制)’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쁜 음식을 먹으면 병이 나듯,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려면 건강한 음식이 가장 기초적인 토대라는 것이지요.”―음식이 성격도 바꾼다고요.“짜게 먹는 지역은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많아요. 싱겁게 먹는 곳은 순한 사람이 많지요. 제가 아이들을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켜봤는데, 자세히 보면 밥을 먹은 뒤와 과자를 먹은 뒤에 떠드는 게 양상이 달라요. 과자를 먹은 뒤가 훨씬 더 거칠고 과격하게 떠드는 모습을 보이지요.”―모든 야채는 약인데, 약은 독과 통한다고 하셨습니다.“예를 들어 따뜻한 식재료는 된장에, 냉한 것은 고추장에 무쳐 서로 성질을 중화시켜 먹어야 속이 편해요. 우리가 쑥떡을 먹는데, 쑥 자체는 독해서 아주 어릴 때가 아니면 그냥 먹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삶아서 쌀과 섞으면 중화가 되기에 먹기 편하지요. 요리란 이런 식재료의 성질을 사람과 맞게 연결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다음 달 8, 9일에 아이들을 위한 사찰음식 특강을 하시더군요.“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좋은 음식이란 게 무엇인지 그 정신과 의미를 안다면 스스로 나쁜 음식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식이 곧 수행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 행복의 시작이니 여러 면에서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요즘 폭염이 극심해서 찬 것만 찾게 됩니다.“이럴 때는 보리차가 정말 좋아요. 옛날에 아이가 열나면 보리차를 먹였잖아요. 보리가 냉한 성질이라 더울 때 몸을 중화시키거든요. 보리를 볶아서 물에 넣고 끓이면 되니까 만드는 법도 아주 간단하지요.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좋아요. 뭐든지 수고가 들어가야 얻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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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의 기적’ 경주 마애불, 모의실험 거쳐 12월 입불 결정

    “5cm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磨崖佛·자연 암벽에 조각한 불상)입상’의 입불(入佛·불상을 세우는 작업) 여부가 12월 최종 결정된다. 최응천 전 국가유산청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 분석·조사한 마애불 상태와 입불·이운(移運·불상을 옮기는 것)을 위한 본격적인 ‘실대형 모의실험’(실제와 같은 상태·조건에서 진행하는 실험) 계획 등 추진 상황을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2월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및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마애불 입불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 2007년 5월 경주 남산 기슭에서 엎어진 채로 발견된 80t 무게의 이 불상은 지형적, 기술적 어려움과 파손 우려 탓에 지금까지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약 600년 전인 1430년 발생한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엎어진 불상 얼굴과 바닥 사이는 불과 5cm. 암벽에서 떨어져 추락했는데도 기적처럼 용모와 형상이 고스란히 보존돼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경 조성된 마애불 중 가장 완벽한 얼굴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계종과 국가유산청은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입불을 검토했지만, 무리해서 세우려다가 불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쉽게 추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한 진우 스님이 마애불 입불을 최우선 과제로 밝히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쓰러진 상태로 계속 두는 것도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학계의 지적도 입불 추진에 힘을 보탰다. 계획안에 따르면 마애불은 넘어지면서 내부적으로 약 13개의 균열이 나 있는 상태. 이에 입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훼손을 막기 위해 국가유산청은 같은 크기, 모양의 석불을 제작해 유사한 지형 조건에서 실제로 들어 올리는 실험을 이달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모형 석불은 마애불 상태와 최대한 유사하도록 경주 화강암을 상·중·하단 7개 면으로 접합해 제작했다. 실험 장소도 마애불 발견 당시의 상태를 재현해 조성했다. 국가유산청은 다음 달 말까지 불상을 감싸고 보호할 외부 프레임 제작을 마칠 계획이다. 9월 말까지 이동 실험, 11월 초까지 지지대 제작 및 입불 실험에 나선다. 국가유산청 측은 “마애불이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탓에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무겁다”며 “불상을 바로 세울 경우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불상의 안정성을 보완할 지지대 및 지반 테스트도 상당히 중요한 점검 사안이다. 여름철 폭우로 지반이 약해질 경우 불상과 프레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은 11월 초까지 실험이 마무리되면 결과를 12월 문화유산위원회 심의에 올려 입불을 확정할 계획이다. 입불이 확정될 경우 내년 1월부터 현장 기반 시설 조성 등 본격적인 입불 작업이 시작된다. 진우 스님은 이 자리에서 마애불의 역사적·신앙적 가치를 강조하며 “신중하게 실대형 모의실험을 마무리해,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입불까지 완성해 달라”라고 당부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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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0년 기다린 입불…80t 경주 마애불, 드디어 바로 설까

    “5cm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磨崖佛·자연 암벽에 조각한 불상)입상’의 입불(入佛·불상을 세우는 작업) 여부가 12월 최종 결정된다.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 분석·조사한 마애불 상태와 입불·이운(移運·불상을 옮기는 것)을 위한 본격적인 ‘실대형 모의실험’(실제와 같은 상태·조건에서 진행하는 실험) 계획 등 추진 상황을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2월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및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마애불 입불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2007년 5월 경주 남산 기슭에서 엎어진 채로 발견된 80t 무게의 이 불상은 지형적, 기술적 어려움과 파손 우려 탓에 지금까지 일으켜 세우지 않아 왔다. 학계에서는 약 600년 전인 1430년 발생한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엎어진 불상 얼굴과 바닥 사이는 불과 5cm. 암벽에서 떨어져 추락했는데도 기적처럼 용모와 형상이 고스란히 보존돼 ‘5cm의 기적’으로 불린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 조성된 마애불 중 가장 완벽한 얼굴을 갖춘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조계종과 국가유산청은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입불을 검토했지만, 무리해서 세우려다 불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쉽게 추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한 진우 스님이 마애불 입불을 최우선 과제로 밝히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쓰러진 상태로 계속 두는 것도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학계의 지적도 입불 추진에 힘을 보탰다. 계획안에 따르면 마애불은 넘어지면서 내부적으로 약 13개의 균열이 나 있는 상태. 이에 입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훼손을 막기 위해 국가유산청은 같은 크기, 모양의 석불을 제작해 유사한 지형 조건에서 실제로 들어 올리는 실험을 이달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모형 석불은 마애불 상태와 최대한 유사하도록 경주 화강암을 상·중·하단 7개 면으로 접합해 제작됐다. 실험장소도 마애불 발견 당시의 상태를 재현해 조성했다.국가유산청은 다음 달 말까지 불상을 감싸고 보호할 외부 프레임 제작을 마칠 계획이다. 9월 말까지 이동 실험, 11월 초까지 지지대 제작 및 입불 실험을 나선다. 국가유산청 측은 “마애불이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탓에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무겁다”며 “불상을 바로 세울 경우,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불상의 안정성을 보완할 지지대 및 지반 테스트도 상당히 중요한 점검 사안이다. 여름철 폭우로 지반이 약해질 경우, 불상과 프레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국가유산청은 11월 초까지 실험이 마무리되면 결과를 12월 문화유산위원회 심의에 올려 입불을 확정할 계획이다. 입불이 확정될 경우 내년 1월부터 현장 기반 시설 조성 등 본격적인 입불 작업이 시작된다. 진우 스님은 이 자리에서 마애불의 역사적·신앙적 가치를 강조하며 “신중하게 실대형 모의실험을 마무리해,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입불까지 완성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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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가벼운 더위’의 무서움… 폭염보다 사망자 더 많다

    대중을 위해 쓰인 기후 변화 관련 책들은 분야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이런 형식이다. ①야! 기후 위기가 오고 있어. ②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알아? ③정신 차려, 안 그러면 큰일 나. ④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어. 다 함께 나서자! 세월이 흐르면서 ①의 ‘오고 있다’가 ‘왔다’로 달라졌을 뿐 나머지 패턴은 비슷하다. 그런데 암울한 생각이지만, 이미 파국은 왔고 돌이킬 방법도 없는데 기후 관련 전문가나 연구자란 사람들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에 기대어 허망한 동아줄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미들이 열심히 분리수거하고, 에어컨 끄고, 일회용품을 자제하면 뭐 하나. 분리수거라는 개념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내 상승으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파리협약을 보란 듯이 탈퇴하는데.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공공정책대학원 및 와튼스쿨 교수인 저자가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피해의 ‘숨겨진 비용’을 지적한 점이 눈길을 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 규모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해수면 상승 등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더 방대한 피해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기온이 35.0도를 넘는 날 사망률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26.6∼35.0도의 날씨에도 사망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연구팀 추정에 따르면 높아진 기온으로 늘어난 노령 사망자의 3분의 2 이상이 이렇게 가벼운 더위 때문에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뉴스에서 다룰 만한 폭염으로 분류된 더위는 없었다.’(5장 ‘폭염은 어떻게 삶을 무너뜨리는가’에서) 전문가가 아니라면, ‘가벼운 더위’로 인한 사망을 기후 변화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욱이 ‘가벼운 더위’는 폭염보다 온도는 낮지만, 훨씬 더 많이 자주 발생해 사망자의 총량은 ‘폭염’ 때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그 ‘가벼운’이란 용어 때문에 이를 기후 변화의 피해로 잘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또 이렇게 덜 극단적이지만, 더 자주 발생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기상 현상의 한계 효과를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기 때문인지, 환경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도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럽연합(EU) 내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감소, 의미 있을 정도의 전기차 판매와 태양광, 풍력 발전소의 증가 등을 근거로 든다. 저자는 2021년 노르웨이에서 판매된 새 승용차 중 약 80%가 순수 전기차였다고 말한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갈 길이 멀지만, 세계는 본격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열심히만 한다면 우리의 작은 등으로 구멍 난 독을 메울 수 있을까. 자기와 자기 나라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추운데 지구온난화가 웬 말?” 이런 무지막지한 말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옆에서 독을 ‘팡팡’ 깨는데, 우리의 작은 등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가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의 수장(水葬)을 일으킨다고나 해야 관심을 가질지…. 콩쥐야! 우리 이미 ‘O’된 거 아냐? 원제 ‘Slow Burn: The Hidden Costs of a Warming World’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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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최광희 신부 임명

    레오 14세 교황은 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최광희 마태오 신부(47·사진)를 임명했다. 2004년 사제품을 받은 최 보좌주교는 2013~2020년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담당 사제로 사목했다. 2023년부터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대변인으로 일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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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천년 숲, 여기가 극락일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태양이 눈부셔서” 권총을 들지만, 실은 “뜨거워서”가 아니었을까. 손에 총이 있었다면, 태양을 향해 쏘고 싶을 정도. 태양이 화살처럼 작열해 내리꽂힌다는 게 이런 걸지도. 이런 날씨는 중간에 차가 고장 났다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가만히 있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가장 싫어하는 상사와 단둘이 여름휴가를 떠난 느낌이랄까. 그렇게 짜증 반, 화 반으로 도착한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주지 퇴우 정념 스님) 선재길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상사가 갑자기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짜증과 화, 폭염을 모두 데리고.지난달 30일 찾은 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 일주문 전나무숲길부터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계곡을 끼고 걷는 약 9km의 순례길이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울창한 산림 속을 폭포처럼 쏟아지는 계곡물에 취해 걷다 보면 폭염, 무더위, 열대야는 딴 나라 이야기가 돼버린다. 이런 인기가 더해져 ‘오대산 천년 숲 선재길 걷기 행사’는 2004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고 있다. 한눈팔지 않고 걷기만 하면 보통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일주문에 서니 장대한 전나무 숲이 펼쳐진다. 약 1km에 걸쳐 1700여 그루가 있다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 황톳길을 조성해 일주문 앞에서 신발을 벗는 이가 많은데, 짙은 피톤치드 향과 함께 걷는 내내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먹이만 보여주면 쪼르르 다가오는 다람쥐와 함께 걷는 즐거움은 덤. 선재길의 또 다른 장점은 순례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국보)과 석조보살좌상(국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현존하는 한국 종 중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국보) 등 안 보면 후회할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 앞에 서니 탑에 달린 수십 개의 풍경(風磬)이 바람에 흔들려 청아한 ‘화음’을 낸다. 폭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극락이 따로 없다. 금강연(金剛淵), 월정사 부도군, 반야연(般若淵)을 지나 상원사로 오른다. 금강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물이 휘돌아 모여서 못이 되는데, 용이 숨어 있다는 말이 전해온다. 봄이면 열목어가 천 마리, 백 마리씩 무리 지어서 물을 거슬러 올라온다”고 묘사됐던 장소. 반야연의 물이 내려와 모이는 곳이다. 코스에선 다소 떨어져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를 들러보는 것도 좋다. 한번 가보면, 왜 이곳에 실록을 보관했는지 느낌이 확 온다. 왜군, 청군, 북한군조차 알고 오지 않는다면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꼭꼭 숨어 있다. 상원사는 세조가 이곳에 와 피부병이 나았다는 일화가 있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상원사 동종이 있는 그곳이다. 그런데 사찰 입구가 계단 꼭대기에 있다. 너무 가팔라 하늘을 쳐다볼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문이 보인다. 계단 양쪽은 군데군데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다. 벌써 이곳은 가을이 시작된 것일까. 왜 폭염이 여기서는 맥을 못 추는지 실감이 난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는 또 다른 맛. ‘걸어야 한다, 봐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오를 때는 안 보였던 게 눈에 들어온다. “들꽃이 저렇게 많았나?” 아쉽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일주문 앞, 세워둔 차에 올랐는데 사라졌던 상사가 나타났다. 폭염도 다시 시작됐다.평창=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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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곳…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걸어보니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태양이 눈 부셔서” 권총을 들지만, 실은 “뜨거워서”가 아니었을까. 손에 총이 있었다면, 태양을 향해 쏘고 싶을 정도. 태양이 화살처럼 작열해 내리꽂힌다는 게 이런 걸지도. 이런 날씨는 중간에 차가 고장 났다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가만히 있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가장 싫어하는 상사와 단둘이 여름휴가를 떠난 느낌이랄까. 그렇게 짜증 반, 화 반으로 도착한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주지 퇴우 정념 스님) 선재길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상사가 갑자기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짜증과 화, 폭염을 모두 데리고.지난달 30일 찾은 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 일주문 전나무숲길부터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계곡을 끼고 걷는 약 9㎞의 순례길이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울창한 산림 속을 폭포처럼 쏟아지는 계곡물에 취해 걷다 보면 폭염, 무더위, 열대야는 딴 나라 이야기가 되버린다. 이런 인기가 더해져 ‘오대산 천년 숲 선재길 걷기 행사’는 2004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고 있다. 한눈팔지 않고 걷기만 하면 보통 약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일주문에 서니 장대한 전나무숲이 펼쳐진다. 약 1㎞에 걸쳐 1700여 그루가 있다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 황토로 길을 조성해 일주문 앞에서 신발을 벗는 이가 많은데, 짙은 피톤치드 향과 함께 걷는 내내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먹이만 보여주면 쪼르르 다가오는 다람쥐와 함께 걷는 즐거움은 덤. 선재길의 또 다른 장점은 순례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볼거리가 풍부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국보)과 석조보살좌상(국보),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현존하는 한국 종 중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국보) 등 안 보면 후회할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 앞에 서니 탑에 달린 수십 개의 풍경(風磬)이 바람에 흔들려 청아한 ‘화음’을 낸다. 폭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 극락이 따로 없다.금강연(金剛淵), 월정사 부도군, 반야연(般若淵)을 지나 상원사로 오른다. 금강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물이 휘돌아 모여서 못이 되는데, 용이 숨어 있다는 말이 전해온다. 봄이면 열목어가 천 마리, 백 마리씩 무리 지어서 물을 거슬러 올라온다”라고 묘사됐던 장소. 반야연의 물이 내려와 모이는 곳이다. 코스에선 다소 떨어져 있지만, 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 사고를 들러보는 것도 좋다. 한 번 가보면, 왜 이곳에 실록을 보관했는지 느낌이 확 온다. 왜군, 청군, 북한군조차 알고 오지 않는다면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꼭꼭 숨어 있다.상원사는 세조가 이곳에 와 피부병이 나았다는 일화가 있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상원사 동종이 있는 그곳이다. 그런데 사찰이 계단 꼭대기에 입구가 있다. 너무 가팔라 하늘을 쳐다볼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문이 보인다.계단 양쪽은 군데군데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다. 벌써 이곳은 가을이 시작된 것일까. 왜 폭염이 여기서는 맥을 못 추는지 실감이 난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는 또 다른 맛. ‘걸어야 한다, 봐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오를 때는 안 보였던 게 눈에 들어온다. “들꽃이 저렇게 많았나?”아쉽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다. 일주문 앞, 세워둔 차에 올랐는데 사라졌던 상사가 나타났다. 폭염도 다시 시작됐다. 평창=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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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베이징 택배기사의 ‘길거리 다큐’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책을 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일 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래서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TV를 켜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낸다.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이런 어디서 주워들은 힐링 어록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이 책의 저자는 그와는 정반대 인생을 살았다. 20년간 19개의 직업을 전전하며, 보고 경험하고 느낀 ‘삶’이라는 횟감을 변두리 횟집 할머니의 ‘투박한 칼질’로 썰었다. ‘OO상 수상작’ ‘세계적인 석학의 날카로운 통찰’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같은 현학적 수식어구에 혹해 책을 선택하는 우리에게 “이봐! 원래 글이란 그렇게 요란스러운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곤란하지. 고객이 왕이라는 말도 오르나?” 나는 멈칫했다가 본능적으로 변명했다. “하지만 왕이 한 명이라야 말이지요. 저는 매일 엄청 많은 왕을 섬겨야 하는 걸요.” 그러자 노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애당초 화가 난 게 아니라 화난 척하며 나를 놀렸던 것이다.’(‘정식 팀원이 되었지만’에서) 20년간 19개 직업을 거친 사람, 4분에 한 개꼴로 배달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 일(택배)을 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면 불만과 냉소, 우울함 등이 배어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전편에 흐르는 저자의 감성은 긍정과 유머다. 그렇다고 대놓고 유머나 우스개를 소개하는 방식은 아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꼬시’처럼 뼈째 썰어 내놓는데, 그 안에 유머와 긍정이 자연스럽게 묻어 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 자신이 본 것을 독자가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처럼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 정말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제목만 보면 수많은 직업을 경험한 한 노동자의 고된 일터 경험 같지만, 그보다는 그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성찰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적은 인생 성장기에 가깝다. 원제 ‘我在北京送快递’.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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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대통령 친서, 교황에 전달… 올해 두 분 만남 기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많은 추기경이 ‘한국은 괜찮냐’고 묻는데…,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3일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간담회를 개최했다. 유 추기경은 2021년 한국인 성직자 중 처음으로 교황청 장관으로 임명됐으며, 이듬해 한국인으로는 네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지난달 열린 교황 선출 추기경단 회의인 콘클라베에 한국인 추기경 중 유일하게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여름 휴가를 맞아 한국을 방문 중이다.유 추기경은 “지난해 12월 7일 추기경 전체 회의가 열렸는데, 세계에서 온 추기경들로부터 ‘당신 집안은 무사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님마저 놀라서 ‘한국에서 계엄이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 하고 묻는데, 괜찮다고 답하면서도 속으로 참 많이 부끄러웠다”고 떠올렸다.그는 올 3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와 관련해 담화문을 발표한 배경도 설명했다. 유 추기경은 당시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헌법재판소에 호소한다”며 “우리 안에, 저 깊숙이 살아 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정의의 판결을 해 달라”고 호소했다.“비상계엄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교회 안팎에서 목소리를 내 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종교인이고 한국을 떠나 있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데 좀 늦어지긴 했는데, 주변에서도 이럴 때 한마디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발표하게 됐어요. 그나마 요즘은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민주주의를) 바로잡았다고 말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유 추기경은 가까운 시일에 교황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친서를 자신이 직접 교황 레오 14세에게 전달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친서에는 ‘가까운 시일’이라고 돼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올해 안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많은 만큼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 등을 통해 남북 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WYD는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청년이 참가하는 가톨릭계 큰 행사 중 하나.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 대회에는 150만여 명이 참가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참가 여부도 관심사다. 유 추기경은 “북한이 올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먼저 나서서 얘기하는 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했을 때 북한에서도 올 수 있는지 백방으로 타진했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노력은 해야 하지만, 상대가 있는 만큼 (무르익을 때까지) 겉으로 내색은 안 하는 지혜가 필요해요.”유 추기경은 “교황 레오 14세와는 추기경 시절 같은 아파트 아래위층에 살아 매우 친하다”며 “교황은 직접 말하는 것보다 추기경, 장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하고 자신은 끝까지 듣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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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伊 유학 한국인 부제 2명에 직접 사제품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부제(副祭) 2명이 교황 레오 14세로부터 직접 사제품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이 교구 소속 이재현 안젤로 부제(양천본당)와 함현준 프란치스코 부제(대치성모탄신본당)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레오 14세 교황 주례로 사제품을 받아 신부가 됐다. 원래 이 부제 등의 사제 서품식은 내년 2월 명동대성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교황이 지난달 25∼27일 바티칸에서 열린 ‘사제들의 희년’ 행사 마지막 날에 로마에서 유학 중인 세계 부제들에게 직접 서품하기로 결정하며 예식이 열렸다. 이날 사제품을 받은 부제는 이 신부를 포함해 32명이다. 이 신부는 교황청립 우르바노대에서 성서신학을, 함 신부는 같은 학교에서 교의신학을 전공해 각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교황으로부터 직접 사제품을 받아 신부가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신부는 소속 교구에서 서품식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 방한했던 1984년 5월 허영엽 당시 부제 등 38명이 교황으로부터 직접 사제품을 받은 적이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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