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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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문학/출판74%
문화 일반7%
산업7%
생활/가정3%
국제사고3%
인사일반3%
사회일반3%
  • [책의 향기]70대 뇌과학자가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저자가 후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처음 든 것은 2006년이었다. 아름다운 장미 옆을 지날 때였다. 몸을 숙여 코를 대봤지만 향기가 나지 않았다. 2012년 우연한 기회에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가 APOE-4 유전자가 두 개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년 안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것이 확실시되는 결과였다. 신간은 치매에 걸린 70대 신경과 의사의 기록이다. 현재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계인 저자는, 30년 가까이 신경과 의사로 일하며 지켜본 알츠하이머 환자의 길을 자신이 걷고 있다. 이 질환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뇌 건강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과학자의 분투가 인상 깊다. 알츠하이머병은 인지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기 최대 20년 전부터 뇌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하지만 그간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연구는 말기와 최종 단계에 집중돼 왔다. 뇌의 변화가 시작된 잠복기를 알츠하이머병 정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야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개입을 더 빨리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생활습관(유산소 운동, 매달 책 6∼10권을 읽는 정신 활동과 사회적 참여 등)을 자가 처방하는데, 이 같은 생활방식의 변화를 인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짚는다. 유전 등의 이유로 발병 위험성이 높은 경우라면 40대부터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다. 조기 진단과 치료를 통해 몇 년, 심지어 몇십 년의 의미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번은 아두카누맙이라는 치료제를 주입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가 뇌에 미세출혈이 일어나 철분 색소가 문신처럼 남기도 했다. 저자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치료법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다. “어떤 연구를 통해 내 수명을 연장하거나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출 가능성이 매우 작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 바람은 이렇게 연구에 참여함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내 자식들의 세대에게 보탬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생애에는 알츠하이머병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고백이 울림을 준다. 원제는 ‘내 뇌에 새긴 문신(A Tattoo on My Brain)’이다. 뇌에 남은 부작용의 흔적을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2021년 2월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알츠하이머 연구에 중요한 진전이 있을 때마다 최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질병의 운명을 이해하고 있는 신경과 전문의로서 자신이 겪은 질환의 증상을 증언하기도 한다. 알츠하이머병의 끝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의 기록을 읽을 기회는 별로 없다. 저자 역시 자고 일어났더니 철자를 하나하나 짚어보지 않고서는 단순한 단어조차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냥 상실감에 젖지 않고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다시금 자신을 재촉한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알츠하이머병을 더 일찍 진단하고 치료함으로써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풀이해 강조한다. 그리고 회피할 수 없는 상실 속에서도 사랑과 행복, 성취를 위한 노력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삶은 언제나 참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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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내가?”…본인 치매 알아차린 신경과 의사의 분투기

    저자가 후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처음 든 것은 2006년이었다. 아름다운 장미 옆을 지날 때였다. 몸을 숙여 코를 대봤지만 향기가 나지 않았다. 2012년 우연한 기회에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가 APOE-4 유전자가 두 개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년 안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것이 확실시되는 결과였다.신간은 치매에 걸린 70대 신경과 의사의 기록이다. 현재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계인 저자는, 30년 가까이 신경과 의사로 일하며 지켜본 알츠하이머 환자의 길을 자신이 걷고 있다. 이 질환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뇌 건강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과학자의 분투가 인상 깊다.알츠하이머병은 인지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기 최대 20년 전부터 뇌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하지만 그간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연구는 말기와 최종 단계에 집중돼왔다. 뇌의 변화가 시작된 잠복기를 알츠하이머병 정의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야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개입을 더 빨리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저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생활습관(유산소 운동, 매달 6~10권을 읽는 정신 활동과 사회적 참여 등)을 자가처방하는데, 이 같은 생활방식의 변화를 인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짚는다. 유전 등의 이유로 발병 위험성이 높은 경우라면 40대부터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다. 조기 진단과 치료를 통해 몇 년, 심지어 몇십 년의 의미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한번은 아두카누맙이라는 치료제를 주입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가 뇌에 미세출혈이 일어나 철분 색소가 문신처럼 남기도 했다. 저자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치료법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다. “어떤 연구를 통해 내 수명을 연장하거나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출 가능성이 매우 작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 바람은 이렇게 연구에 참여함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내 자식들의 세대에게 보탬이 되는 것, 그리하여 나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생애에는 알츠하이머병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고백이 울림을 준다.원제는 ‘내 뇌에 새긴 문신(A Tattoo on My Brain)’이다. 뇌에 남은 부작용의 흔적을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2021년 2월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알츠하이머 연구에 중요한 진전이 있을 때마다 최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질병의 운명을 이해하고 있는 신경과 전문의로서 자신이 겪은 질환의 증상을 증언하기도 한다.알츠하이머병의 끝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의 기록을 읽을 기회는 별로 없다. 저자 역시 자고 일어났더니 철자를 하나하나 짚어보지 않고서는 단순한 단어조차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냥 상실감에 젖지 않고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다시금 자신을 재촉한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알츠하이머병을 더 일찍 진단하고 치료함으로써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풀이해 강조한다. 그리고 회피할 수 없는 상실 속에서도 사랑과 행복, 성취를 위한 노력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삶은 언제나 참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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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늦기 전에 세대간 이해 계기 마련 됐으면”

    소설가 손원평(46)의 첫째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일 무렵이다. 딸이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저출산 고령화에 대해 배웠다. 딸은 앞으로는 한국이 ‘노인이 많은 나라’가 될 것이며, 자신들이 크면 위 세대를 부양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손 작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첫째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나는 크면 이 나라 떠날 거야!”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됐다. 작가로서의 레이더가 반짝인 순간이었다. 8일 출간되는 장편소설 ‘젊음의 나라’(다즐링)를 쓴 그를 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작품은 노인이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미래 한국이 배경. 노인 대상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29세 청년의 모습을 그렸다. 손 작가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이 사회의 변화가 아이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 늦기 전에 세대 간에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젊음의 나라’는 국내에서만 150만 부 이상이 팔린 장편 ‘아몬드’를 비롯해 ‘서른의 반격’ ‘튜브’ 등 베스트셀러를 쓴 손 작가의 첫 공상과학소설(SF)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있는 이야기를 미래라는 시점으로 옮겨서 그려본 것뿐”이라며 “친한 사람들에게 미리 보여줬을 때도 SF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 했다. 그만큼 소설이 묘사하는 고령 사회의 풍경은 낯설지 않다. 작품에서 청년은 “내 삶이 나이 든 누군가를 살리는 수혈 팩에 든 피 같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노인의 나라’라고 해서 노인들은 다 살 만한 건 아니다. 경제력에 따라 A부터 F까지 세분화된 노인시설에서 생활하는데, B등급 아래로는 인간이 아닌 로봇의 서비스를 받는다. 가난한 노인일수록 외로움을 달랠 수단이 마땅찮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미래 일자리, 메타버스, 노년의 삶, 조력 죽음에 대한 책을 두루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품은 여러 씨앗이 발아하고 뻗어 나갈 때 어떻게 얽히고설킬지를 상상했다. 그는 “정책을 연구하는 마음으로 썼다”며 “여기까지는 이럴 것 같고, 여기서부턴 이럴 것 같고, 말이 되는지 혼자 따지다 보니 어려웠다”고 했다. 그럴 때 힌트가 된 건 아이들이었다. 14세, 6세 딸을 둔 손 작가는 “아이들이 컸을 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가 작품의 씨앗이 됐다”며 “아이가 있는 건 세상을 보는 렌즈가 더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제게는 제 세대의 렌즈 외에도 중학생 세대의 렌즈가 하나 더 있는 거죠. 심지어 아이들끼리도 여덟 살 터울이다 보니 세대 차이가 나요. 첫째가 둘째한테 ‘나 때는∼’ 하거든요. 어린이용 렌즈도 하나 더 있는 셈이죠.” 손 작가는 앞으로의 세상은 세대 갈등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세대 갈등이야 늘 있었지만, 인구 구조가 역피라미드가 되면 청년은 그 자체로 소수자가 된다”며 “젊은이들이 감당할 게 많아진다고 느낄수록 연금, 노인 혐오 같은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했다. “누구든 한 나이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요. 저 역시 점차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잘 모르는,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세대에 속하게 될 거예요. 지금은 모르기 때문에 그냥 타자화하지만 이 소설이 나의 세대와 미래 세대, 나이 든 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미래를 미리 살피고 모든 세대가 논의할 수 있는 재료가 되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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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문화센터 로비를 도서관으로… 현관 열자마자 펼쳐지는 ‘책의 세계’[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5일 경기 포천시에 있는 청소년교육문화센터. 현관에 들어서자 우산꽂이 옆에 ‘세계문학의 터’란 명패가 붙은 원목 잡지대가 눈에 띄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리고 ‘춘향전’ 등 30여 권이 표지가 보이게끔 진열돼 있었다. 문화센터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눈이 가는 자리였다. 원래 유휴공간이었던 문화센터 로비가 또 하나의 도서관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날 문화센터에선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315㎡(약 90평) 규모로 만든 청소년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전국 각지 문화 소외지역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이번이 127번째이며, 올해 2번째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문화센터의 계단과 기둥만 있던 곳에 책장을 들이고 장서 1만8000권을 채워 만들었다. 위층의 댄스실, 탁구장, 쿠킹룸 등을 이용하는 청소년이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책에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을 활용했다. 청소년 자치기구 활동을 하며 한 달에 두세 번 센터를 방문한다는 오채은 양(포천 송우고 2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다녔는데 이제야 정말 ‘센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린이들도 책과 친해지면 좋겠다”고 반가워했다. 센터 계단 옆과 아래에도 서가를 만들고 책을 채웠다. 유아와 아동을 위한 학습만화부터 신간인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한강의 ‘빛과 실’, 김장하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 빌 게이츠 자서전 ‘소스 코드’ 등 다양한 책이 눈에 띄었다. 서가에서 ‘로마인 이야기’를 꺼내든 윤은성 군(송우고 2학년)은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권력 다툼 장면을 읽었다”며 “역사책을 좋아해 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접이식 문으로 연결된 도서관 앞마당은 앞으로 시민 캠핑장으로 꾸며진다. 김현철 포천시청소년재단 대표는 “도서관은 3층 꼭대기가 아닌 현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아이들이 엄마 아빠랑 캠핑하다가도 들어오게끔 하고, 친구 생일파티도 도서관에서 하라고 방(榜)을 붙일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백영현 포천시장과 최위집 KB국민은행 북부지역영업그룹대표 등이 참석했다. 백 시장은 “부모님들이 교육 때문에 자녀 손 잡고 외부로 나가면서 포천시 인구가 줄어든다는 말씀들을 많이 한다”며 “청소년도서관이 이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대표도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배움과 상상의 공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이달 7일엔 경북 울진군 기성면복지회관에서 기성작은도서관의 문도 연다. 김 목사는 “많은 이들에게 ‘당신들은 어떻게 잘사는가’라고 질문하면 대부분 대답이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며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독서”라고 강조했다.포천=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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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듀오 ‘애즈원’의 이민,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

    여성 R&B 듀오 애즈원의 이민(사진)이 5일 사망했다. 향년 47세. 6일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전날 오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애즈원의 소속사 브랜뉴뮤직 관계자는 “정확한 경위는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계 미국인인 고인은 1999년 애즈원 1집 ‘데이 바이 데이(Day By Day)’로 데뷔한 뒤 세련된 창법으로 사랑을 받았다. 대표곡으로 ‘너만은 모르길’ ‘원하고 원망하죠’ 등이 있다. 올해 6월에도 신곡 ‘축하해, 생일’을 발표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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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센터 로비에 도서관 꾸몄더니, 오며 가며 책과 친해져요”

    5일 경기 포천시에 있는 청소년교육문화센터. 현관에 들어서자 우산꽂이 옆에 ‘세계문학의 터’란 명패가 붙은 원목 잡지대가 눈에 띄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리고 ‘춘향전’ 등 30여 권이 표지가 보이게끔 진열돼 있었다. 문화센터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눈이 가는 자리였다. 원래 유휴공간이었던 문화센터 로비가 또 하나의 도서관으로 변신한 것이다.이날 문화센터에선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315㎡(90평) 규모로 만든 청소년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전국 각지 문화 소외지역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이번이 127번째이며, 올해 2번째 도서관이다.도서관은 문화센터의 계단과 기둥만 있던 곳에 책장을 들이고 장서 1만8000권을 채워 만들었다. 위층의 댄스실, 탁구장, 쿠킹룸 등을 이용하는 청소년이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책에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을 활용했다. 청소년 자치기구 활동을 하며 한 달에 두세 번 센터를 방문한다는 오채은 양(포천 송우고 2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다녔는데 이제야 정말 ‘센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린이들도 책과 친해지면 좋겠다”고 반가워했다.센터 계단 옆과 아래에도 서가를 만들고 책을 채웠다. 유아와 아동을 위한 학습만화부터 신간인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한강의 ‘빛과 실’, 김장하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 빌 게이츠 자서전 ‘소스 코드’ 등 다양한 책이 눈에 띄었다. 서가에서 ‘로마인 이야기’를 꺼내든 윤은성 군(송우고 2학년)은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권력 다툼 장면을 읽었다”며 “역사책을 좋아해 사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접이식 문으로 연결된 도서관 앞마당은 앞으로 시민 캠핑장으로 꾸며진다. 김현철 포천시청소년재단 대표는 “도서관은 3층 꼭대기가 아닌 현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아이들이 엄마 아빠랑 캠핑하다가도 들어오게끔 하고, 친구 생일파티도 도서관에서 하라고 방(榜)을 붙일 것”이라고 했다.이날 개관식에는 백영현 포천시장과 김수연 대표, 최위집 KB국민은행 북부지역영업그룹대표 등이 참석했다. 백 시장은 “부모님들이 교육 때문에 자녀 손 잡고 외부로 나가면서 포천시 인구가 줄어든다는 말씀들을 많이 한다”며 “청소년도서관이 이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배움과 상상의 공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이달 7일엔 경북 울진군 기성면복지회관에 기성작은도서관의 문을 연다. 김 대표는 “많은 이들에게 ‘당신들은 어떻게 잘사는가’ 질문하면 대부분 대답이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며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독서”라고 강조했다.포천=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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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판지’ ‘조립 선반’ 팝업스토어에 지속가능한 미래가 엿보여

    1일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인근 연무장길. 1.2km 남짓한 성수동 대표 상권인 이곳엔 이날만 팝업스토어(Pop-up Store) 16개가 새로 설치되거나 철거되고 있었다. 망치와 드릴 소리가 끊이지 않는 팝업스토어 주변엔 우레탄폼과 합판, 벽돌, H빔이 널브러져 있었다. 여기서 나온 폐기물을 수거하는 트럭들이 수많은 인파 물결 속에서 함께 휩쓸려 다녔다. 최근 문화계를 비롯해 패션·뷰티업계 등에선 단기간 운영되는 팝업스토어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성수동만 해도 이런 팝업스토어가 한 달 평균 90개, 하루 3개씩 생겨난다. 하지만 이런 ‘가설 공간’이 만들어질 때마다 쓰레기 역시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팝업스토어 자재들을 일회성으로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재활용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팝업사이클링’이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기관도 패션업체도 재활용 팝업스토어들은 단기간 주목받기 쉬운 데다,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여러 분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주일 내외로 운영하는 방식부터 한 달 이상 운영하는 ‘쇼룸’까지 종류와 규모도 다양하다. 문제는 짧은 기간 운영한 뒤 철거를 하다 보니 발생하는 쓰레기들이다. 목재나 폐벽돌, 합판, 시트지 같은 폐기물은 스토어마다 디자인이 달라 재활용이 쉽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5일짜리 팝업스토어 한 곳을 철거하면 1t 트럭 2∼3대 분량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런 팝업스토어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최근 문화계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팝업스토어’에 대한 고민들이 커지고 있다. 기본 뼈대가 되는 자재들을 재활용해 쓰레기를 줄여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다.이날 찾은 무신사 편집숍 ‘무신사 스토어 성수@대림창고’도 그중 하나다. 무신사에서 팝업을 여는 브랜드들은 공용 행거와 하부장, 수납장 등을 써야 한다. 같은 집기를 쓰더라도 색상 선택과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무신사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팝업을 진행해 보니 폐기물도 많고 매번 제작되는 소모품의 비용이 크다”며 “폐기물과 팝업 비용을 줄이기 위해 팝업 전용 집기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유휴 공간이던 건물을 팝업스토어로 탈바꿈한 사례도 있다. 성동구는 지난달 1일부터 뚝섬역 인근에 ‘공공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시범 운영하고 있다. 구에 따르면 연무장길 시세의 10분의 1 가격으로 임대 중이다. 이곳에선 우드 팔레트를 쌓아 선반으로 활용하고, 팝업스토어에 따라 현수막만 바꿔 활용한다. 임대료를 낮추려는 목적도 컸지만 집기 대부분을 재활용해 폐기물 감소 효과도 거뒀다. 신혜승 성동구 기업활성화팀장은 “이미 갖춰진 기물들의 세팅만 바꾸면 되니 입점 브랜드들도 몸만 들어오면 된다”며 “폐기물이 줄고 철거비도 아낄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재활용 통한 가치 부여를 예술로 승화6월 약 15만 명이 찾은 서울국제도서전은 전국에서 올라온 535개 출판사가 특색 있는 부스를 선보여 테마파크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5일간의 잔치 뒤 그 많던 부스는 어떻게 됐을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는 도서전 당시 설치했던 종이 부스를 해체해 창고에 보관했다가, 지난달 용산 아이파크몰에 다시 설치하고 ‘앙코르’ 팝업을 진행했다. 재활용한 종이 부스는 다시 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내년 도서전 때 다시 선보이는 게 목표다. 문지는 2023년 도서전 때 만든 종이 부스도 절반은 사옥 책장으로 재활용했다. 나머지도 서울예대에 기부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이광호 문지 대표는 “사실 재활용은 비용과 의지가 더 드는 일이긴 하다”면서도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이들은 팝업과 굿즈 등에서 거대한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걸 이해한다면 이런 방식에 더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의 폐기물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 ‘팝업사이클링’ 개념을 처음 도입한 퍼니준(본명 김완준) 작가가 대표적이다. 과거 팝업스토어 제작에도 참여했던 그는 어느 날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팝업스토어와 폐기물을 보고 ‘더는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남은 폐기물을 모아 설치미술전을 여는 등 팝업사이클링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퍼니준 작가는 “팬데믹 기간 급격하게 팝업스토어가 늘어나면서 잠깐 설치됐다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철거하는 일이 잦아졌다”며 “기업 등의 입장에선 당연히 효용성이 중요하겠으나 이젠 팝업스토어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자원순환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이전에 비해 지방자치단체나 기업 등에서도 팝업스토어로 인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면서도 “한 번 사용한 팝업스토어에서 뜯어낸 자재들을 다른 팝업에 다시 활용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순환형 팝업스토어 모델’을 확대하고, 과도하게 발생하는 폐기물에 대해선 규제 방안을 논의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팝업사이클링‘팝업스토어(Pop-up store)’와 ‘업사이클링(Upcycling)’이 합쳐진 신조어. 업사이클링은 리사이클링(재활용)에서 한발 더 나아가, 버려지는 물건에 가치를 더해 새로운 상품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팝업사이클링 역시 팝업스토어에서 나오는 폐기물로 가치를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국내에 팝업사이클링 개념을 도입한 퍼니준 작가는 한 화장품 브랜드와 협업해 팝업스토어 자재를 이용한 설치미술전 ‘포레스트(foRRest)’를 개최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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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켈란젤로도 비싸서 못 쓴 色… 화학으로 본 예술

    인류 역사상 푸른색은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던 색이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바다의 색을 푸른색이 아닌 “포도주처럼 검은색”이라고 묘사했다. 최초의 안료는 돌을 갈아 만들었으니 황토색, 갈색, 붉은색 위주일 수밖에 없었다. 푸른색은 언제부터 과학, 예술, 언어에 등장하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스페인 라코루냐대에서 재료과학을 연구하는 화학자다. 예술 속 색채와 재료를 화학의 언어로 읽어내면서 과학이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다시 푸른색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값비싼 색으로 알려진 울트라머린 안료는 ‘청금석’이라는 푸른색 광물에서 비롯됐다. 안료에 ‘울트라머린(바다를 넘다)’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청금석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발견돼 바다 건너 유럽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울트라머린은 한때 금보다도 비쌌다. 미켈란젤로는 울트라머린이 너무 비싸 ‘그리스도의 매장’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울트라머린을 사용한 그림은 그 자체로 고급스러운 작품이 됐다. 특히 성스러운 푸른색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성녀의 옷을 그릴 때 주로 사용됐다. 19세기 울트라머린의 가치가 정점에 달했다. 청금석을 깨지 않고도 울트라머린을 합성할 방법이 시급히 필요했다. 1824년 프랑스 국가산업진흥협회는 300프랑 이하의 비용으로 울트라머린 합성에 성공하는 사람에게 6000프랑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화학자 장바티스트 기메가 1828년 산업용 울트라머린을 최초로 개발했고, 이후 합성 울트라머린은 ‘프렌치 울트라머린’으로 불리게 됐다. 제프 쿤스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뒤편에 설치한 조형물 ‘튤립’은 강철로 만들어졌다. 강철은 철과 탄소가 혼합된 합금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산화된다. 이를 막기 위해 크롬을 첨가했다. 크롬은 철보다 먼저 산화돼 철을 보호한다. 이 과정에서 얇은 산화막이 형성되는데, 이 층은 프라이머처럼 표면을 정돈해 래커가 매끄럽게 달라붙도록 만든다. 덕분에 ‘튤립’은 마치 거울처럼 반짝이는 표면을 갖게 됐다. 화학자의 큐레이팅을 따라 읽다 보면 예술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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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으로 나눠진 미래의 도시, 우리에게는 이미 낯익은 모습”

    유독 멍이 잘 드는 체질이 있다. 손보미 소설가(45)도 그런 편이다. 살짝만 부딪혀도 멍이 들고, 접영 연습 직후엔 눈 주위에 수경 자국이 그대로 남아 멍이 든다. 가리고 싶고, 빨리 없애고 싶은 멍 자국…. 이 세상엔 ‘멍 같은’ 취급을 받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평소 멍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됐기 때문이라고 손 작가는 말했다. 신작 장편소설 ‘세이프 시티’(창비)를 최근 낸 그를 2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정부의 통제 아래 재개발된 신시가지와 각종 범죄가 집중된 구시가지가 극명하게 구분된 도시다. 제일 안전한 ‘0등급’부터 우범지대인 ‘엑스(X) 구역’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앱이 있을 정도다. 엑스 구역은 공공연하게 ‘도시의 멍’이라 불린다. 모순적인 것은 ‘세이프 시티’를 표방하는 이 도시가 안전하고 쾌적하기는커녕 조커가 사는 고담시티만큼이나 삭막하기 그지없다는 것. 손 작가는 “사람들에겐 등급화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다”며 “사는 집, 사는 동네로 살아왔던 모습을 평가하고, 아이들끼리도 같은 단지 내에서 임대주택 아이들을 구분 짓기도 한다. 소설 속 설정은 이미 낯익은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속한 곳은 좋은 곳이었으면 하는 게 사람 심리다. 그는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비판하다가도 내가 집을 사면 이제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라며 “그런 욕구를 가지는 게 너무 자연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욕구가 참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소설에는 ‘도시의 멍’을 인위적으로 없애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손 작가는 “0등급, 1등급 이런 식으로 등급을 나누는 순간 아무리 애를 써도 틀은 벗어날 수 없다”며 “한 구역을 좋게 만들어도 결국 차상위 구역이 다시 그 밑으로 가게 된다. 등급화라는 프레임 자체를 깨지 않으면 그 구분 안에 계속 남아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는 나쁜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는 신기술, 이른바 ‘기억 교정술’이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멍 같은 기억’을 지우고자 한다. 이에 대해 손 작가는 “지금 남아 있는 기억은 사실 어떤 식으로든 나한테 중요한 기억”이라며 “아무리 버리고 싶고 창피하고 떨쳐버리고 싶은 기억이라도, 어쨌든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 충분히 창피해하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기억의 효용”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손 작가는 수상 이력이 화려한 작가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잇달아 받았다. 비결을 묻자 그는 “수면 위로 안 드러나서 그렇지 망한 작품도 많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작업 일기를 쓴다고 했다.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갈 땐 이렇게 쓰기도 한다. “그냥 쓰자. 이 소설은 그냥 망하기 위해 쓰는 거다. 그래도 스스로 배우는 게 있겠지. 여기서 배운 게 다음 소설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이 되겠지.” “제가 일희일비하고 쉽게 좌절하는 면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바꿔 보려고 수년에 걸쳐 노력하는 거예요. 어떤 면이 남들보다 부족한지 잘 알고 있는 게 저의 장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멍이 들어도 앞으로 나아간 비결이겠다 싶은 답변이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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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하며 키운 소설가의 꿈… 인간성 얘기 전해 드릴게요”

    “저는 항상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고, 그 꿈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정보라의 ‘저주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등 수많은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온 안톤 허의 첫 소설 ‘영원을 향하여’(반타)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톤 허 작가는 “오랜 꿈은 소설가였고 영미권 출판사와 소통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시작하게 된 게 문학 번역이었다”고 회고했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허 작가는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첫 소설도 영어로 썼지만 국적은 한국인이다. 그는 “한국 문단 시스템이 다양성을 제한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데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 소설을 많이 읽어서 꼭 영어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영원을 향하여’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근미래부터 수천 년 뒤 핵전쟁으로 지구가 황폐해진 먼 미래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과학소설(SF). 기억을 잃었지만 불멸하게 된 주인공을 통해 인간과 자아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허 작가는 “인간성이란 것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있는 무엇이라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그가 번역해 부커상 최종 후보까지 올렸던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가 한국어 번역을 맡아 더욱 눈길을 끈다. 그는 “정 작가님이 ‘죽어도 제가 번역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며 “얼마나 바쁜지 알기에 미안했지만 제 욕심으로 승낙했다”고 했다. 이틀 전 처음 번역본을 접했다는 그는 “제가 쓴 글 같지 않았다. 이 느낌이 온다는 것 자체가 번역이 잘됐다는 신호”라며 “직접 번역했어도 정 작가님보다 잘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 작가는 올해 계간지 자음과모음 여름호에 단편 ‘화가의 미래’를 발표하는 등 소설 집필에 공을 들이고 있다.“번역가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고생문이 열리는데 소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원을 향하여’로 지금까지 독일어 중국어 등 4개 언어 출간 계약을 맺었는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돈이 들어와 엄청난 희열을 느꼈어요. 소설을 더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하지만 앞으로도 번역 일은 놓지 않을 계획이다. 그가 번역한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은 내년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문학 세계가 정말 풍요롭고 번역하고 싶은 것들도 너무 많다”며 “번역으로도 세상에 계속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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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팝, 문학이 되다

    톱 아이돌이 살해됐다.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채 리프트에서 추락했다.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소민 작가의 신간 소설 ‘아이돌 살인’(엘릭시르)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찰이 찾은 사건 현장엔 위험할 수 있는 공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급하게 무대를 세우고 부수는 현장 여건상 어쩔 수 없다지만 언제 흉기로 쓰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못까지 박힌 게 아무런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라는 경찰의 질문에 스태프는 “원칙상으로는 치우는 게 맞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라고 답한다. 여느 산업 재해 현장에서 되풀이됐을 법한 대사와 장면으로 소설은 아이돌 산업의 명암을 드러낸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K팝이 우리 문학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과거 아이돌을 소재로 한 작품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연재되는 팬픽 등 하위 문화에 머물렀던 데 반해 최근에는 위상이 달라졌다. 문단의 주류 작가들도 아이돌 소재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기 시작한 것.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작가로는 이희주(33)가 있다. 유년기 HOT, god, 동방신기를 ‘덕질’하며 성장했다는 이희주 작가는 ‘최애’ 스타의 정자를 팬이 공여받으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단편 ‘최애의 아이’로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K팝 아이돌을 납치하는 내용을 다룬 그의 장편 ‘성소년’은 지난해 해외 판권 계약을 통해 미국 하퍼콜린스, 영국 팬 맥밀런으로부터 각각 1억 원대의 선인세를 받았다. 하퍼콜린스는 ‘성소년’에 대해 “‘버터’(유즈키 아사코)의 어두운 충동과 ‘미저리’(스티븐 킹)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결합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K팝 소재 문학은 다양한 관점에서 아이돌 팬덤 문화를 재조명한다. ‘최애의 아이’는 아이돌 팬덤의 부정적 면모를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한 이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대상을 독점하려는 욕망과 일방적 관계에서 비롯된 위계를 드러낸다. 예컨대 소설 속엔 덕질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최애’에게 자신의 못난 외모를 내보이는 게 두려워 팬 사인회에 응모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 스타 외의 존재에게 핀 조명을 비추는 것도 특징이다. ‘아이돌 살인’에는 공황장애 탓에 은퇴한 전직 아이돌, 아이돌이 노래하는 동안 오르내리는 버튼을 눌러주기 위해 리프트에 웅크린 채 탑승하는 스태프 등이 등장한다. 이소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동경의 대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때로는 지나친 이상에 잠식되기도 한다”며 “K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실은 폭발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성장에만 집중해 성숙하는 길을 볼 수 없게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것이 작가의 문제의식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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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장애 남매 둔 교사의 ‘통합교육’ 분투기

    “수업을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특수반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두 발달장애 남매를 둔 엄마인 저자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담임 교사로부터 걱정 어린 말을 들어야 했다. 현장 체험학습이나 발표회 같은 행사를 앞두고도 “참여시키는 게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비장애 아이들이라면 듣지 않았을 질문이다. 저자의 본업은 중학교 영어 교사. 이 같은 차별 경험은 육아휴직과 간병휴직으로 7년간 휴직했던 저자를 다시 교실로 돌아가게 했다. 아이들 덕분에 현장의 문제가 더 가까이 보이고 더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는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배우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교사의 기록이다. 이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통합교육의 현실과 가능성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경험이 워낙 없다 보니, 무엇이 차별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한다고 짚는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그의 딸은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느 날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한번은 카페에서 빵을 먹다가 가족이 다 같이 쫓겨난 적도 있다. ‘노래를 부르지 말아 달라’가 아니라 아예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냥 나왔다고 한다. 이후 다른 장소에서도 여러 번 비슷한 상황을 만났다. 교육자로서 저자의 지향점은 특수교육이 아니라 통합교육에 있다. 장애 학생을 분리해서 가르치는 특수교육으로는 다양성 존중과 사회 통합이란 궁극적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리는 교육이 아니라 차별이며, 같은 공간에 있는 비장애 아이들에게도 비교육적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일선 교사인 저자는 이를 위해 단순히 교사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통합교육 교사 연수와 지원 인력 확충, 협력 교수 등 시스템적인 해결책을 제언한다. 아이들이 장애와 상관없이 행복한 교육을 받기 위해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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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日망명때 쓴 자필일기 반세기만에 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망명 시절에 썼던 자필 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1972년 8월 3일부터 1973년 5월 11일까지 김 전 대통령이 자필로 쓴 일기 223편을 수록한 ‘김대중 망명일기’(한길사·사진)가 출간됐다”고 22일 밝혔다. 1972년 10월 17일 일본에 있던 김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선포 소식을 듣고 망명을 결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일기에 “나는 이 일기를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마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김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전후 국내외에서 경험한 사건들을 6권의 일기장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생전에 망명 시기에 쓴 일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어 누구도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 서거 이후 3남인 김홍걸 전 국회의원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일기장들을 발견하며 세상에 알려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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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임말’ 이라는 큰 산을 넘은 아이들, ‘예쁜말’ 언덕은 아주 쉽게 올라가요

    “너무 잘해요.” “아깝습니다.” 경기 하남시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을 촬영한 영상. 학생들 4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데 말투가 남다르다. 친구들끼리 높임말을 쓰고 심지어 서로 ‘OO 씨’라 부른다. 이 아이들은 20년 차 초등교사 김희영 씨(46)의 반 학생들이다. 김 교사는 10년째 ‘높임말 교실’을 운영하는 높임말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그는 그 과정을 정리해 최근 책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포레스트북스)도 펴냈다. 21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 교사에 따르면 해마다 새 학기 첫날 학생들에게 “우리 반은 높임말로 대화합니다”라고 안내하면 아이들 표정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눈이 왕방울만 해져선 서로 눈치만 본다. 처음엔 쉬는 시간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이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차마 높임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 하지만 보통 한 달 정도 지나면 ‘높임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다. 김 교사는 “반말하는 친구를 지적하기보단 높임말 잘 쓰는 학생들을 칭찬한다”며 “칭찬 받으면 자발적으로 ‘높임말 전도사’가 된다. 반말 쓰는 친구가 있으면 ‘OO 씨, 높임말 쓰셔야죠’라고 서로 고쳐준다”고 했다. 학생들이 ‘높임말’이란 큰 산을 넘고 나면, ‘예쁜 말’ 언덕은 아주 쉽게 올라간다고 한다. 비속어를 밥 먹듯 쓰던 아이조차 교실에선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쓰면 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단계까지 오면 아이들은 나쁜 말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듣기 힘들어했다.“사실 높임말로 대화하는 기간은 저와 있는 딱 1년이죠. 장소도 교실로 국한돼 있고요. 하지만 그 1년이 분명 아이들의 평생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운 언어를 사용해 봤으니,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어도 거친 언어가 뭔지를 빨리 인지할 수 있죠. 존중받은 느낌을 배웠으니 타인을 존중할 수도 있고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간을 갖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죠.” 김 교사 역시 높임말 프로젝트의 효과를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프로젝트 2년 차 때 만난 한 학생에게서 확신을 얻었다. 5학년 담임 때 만난 그 학생이 6학년이 된 뒤 교실로 찾아왔다. 높임말에 적응하는 걸 유독 힘들어하던 아이였는데, 그가 들려준 얘긴 무척 놀라웠다.“선생님, 사실 작년에는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됐어요.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한데 이젠 알겠어요.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하고 달라요. 복도에서 만나도 우리끼리는 높임말로 인사해요.” 김 교사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 한마디 덕분에 굳건히 높임말 교실을 끌어갈 수 있었다”며 “어른이 일관성 있게 지도하면 아이들은 ‘무한 성장 발전소’가 된다”고 강조했다. “높임말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준비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 한번 ‘해보자’ 하고 꾸준히만 하면 되는 거죠.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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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장의 심정으로 쓴다”…김대중 日 망명때 작성한 자필일기 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망명 시절에 썼던 자필 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1972년 8월 3일부터 1973년 5월 11일까지 김 전 대통령이 자필로 쓴 일기 223편을 수록한 ‘김대중 망명일기’(한길사)가 출간됐다”고 22일 밝혔다. 1972년 10월 17일 일본에 있던 김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선포 소식을 듣고 망명을 결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일기에 “나는 이 일기를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마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김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전후 국내외에서 경험한 사건들을 6권의 일기장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생전에 망명 시기에 쓴 일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어 누구도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 서거 이후 3남인 김홍걸 전 국회의원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일기장들을 발견하며 세상에 알려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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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임말’ 큰 산을 넘으면 ‘예쁜말’ 언덕은 쉽게 올라요

    “너무 잘해요.” “아깝습니다.”경기 하남시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을 촬영한 영상. 학생들 4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데 말투가 남다르다. 친구들끼리 높임말을 쓰고 심지어 서로 ‘OO씨’라 부른다. 이 아이들은 20년 차 초등교사 김희영 씨(46)의 반 학생들이다. 김 교사는 10년째 ‘높임말 교실’을 운영하는 높임말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그는 그 과정을 정리해 최근 책 ‘높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포레스트북스)도 펴냈다.21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 교사에 따르면 해마다 새 학기 첫날 학생들에게 “우리 반은 높임말로 대화합니다”라고 안내하면 아이들 표정이 혼란스럽다고 한다. 눈이 왕방울만 해져선 서로 눈치만 본다. 처음엔 쉬는 시간에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이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차마 높임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하지만 보통 한 달 정도 지나면 ‘높임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다. 김 교사는 “반말하는 친구를 지적하기보단 높임말 잘 쓰는 학생들을 칭찬한다”며 “칭찬 받으면 자발적으로 ‘높임말 전도사’가 된다. 반말 쓰는 친구가 있으면 ‘OO씨, 높임말 쓰셔야죠’라고 서로 고쳐준다”고 했다.학생들이 ‘높임말’이란 큰 산을 넘고 나면, ‘예쁜 말’ 언덕은 아주 쉽게 올라간다고 한다. 비속어를 밥 먹듯 쓰던 아이조차 교실에선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쓰면 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단계까지 오면 아이들은 나쁜 말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듣기 힘들어했다.“사실 높임말로 대화하는 기간은 저와 있는 딱 1년이죠. 장소도 교실로 국한돼 있고요. 하지만 그 1년이 분명 아이들의 평생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운 언어를 사용해 봤으니,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어도 거친 언어가 뭔지를 빨리 인지할 수 있죠. 존중받은 느낌을 배웠으니 타인을 존중할 수도 있고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그런 시간을 갖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죠.”김 교사 역시 높임말 프로젝트의 효과를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프로젝트 2년 차 때 만난 한 학생에게서 확신을 얻었다. 5학년 담임 때 만난 그 학생이 6학년이 된 뒤 교실로 찾아왔다. 높임말에 적응하는 걸 유독 힘들어하던 아이였는데, 그가 들려준 얘긴 무척 놀라웠다.“선생님, 사실 작년에는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됐어요.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한데 이젠 알겠어요.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하고 달라요. 복도에서 만나도 우리끼리는 높임말로 인사해요.”김 교사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 한마디 덕분에 굳건히 높임말 교실을 끌어갈 수 있었다”며 “어른이 일관성 있게 지도하면 아이들은 ‘무한 성장 발전소’가 된다”고 강조했다. “높임말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준비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 한번 ‘해보자’하고 꾸준히만 하면 되는 거죠.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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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기 1주기… 학전, 데뷔앨범 복원 예약판매 시작

    21일 지난해 세상을 떠난 극단 학전(學田)의 대표였던 가수 김민기(1951∼2024·사진)의 1주기를 맞았다. 학전 측은 이날부터 LP로 복원해 재발매되는 데뷔앨범 ‘김민기’의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학전에 따르면 고인이 1971년 만 20세 때 발매했던 데뷔앨범 ‘김민기’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예약 판매했다. 대표곡 ‘아침이슬’을 비롯해 ‘그날’ ‘꽃 피우는 아이’ 등 10곡이 수록된다. 다음 달 10일까지 3주 동안 주요 온라인 음반 사이트에서 주문할 수 있다. 앨범은 제작이 마무리되는 11월부터 발송할 예정이다. 앞서 학전 측은 “고인의 뜻에 따라 1주기 추모 행사나 공연 등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학전은 올해 고인의 유지를 잇는 ‘학전김민기재단’ 설립에 집중할 방침이다. 학전 관계자는 “고인의 작품과 작업을 기록·보존하는 작업을 통해 그의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후대에 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인은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 대표로서 평생 공연 문화를 일구는 데 헌신했다.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등을 만들어 국내 창작뮤지컬의 토대를 닦았다. 관객들에게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렸던 배우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 김윤석이 학전 출신이다. 학전과 별개로, 고인을 기억하는 가수와 작가 등은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동구 소극장 스페이스 거북이에서 추모 행사인 ‘김민기 뒤풀이’를 개최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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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 오브 킹스’ 국내 개봉하자… 원작 찰스 디킨스 소설 출간 봇물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16일 국내 개봉하자, 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사진)의 책이 연이어 출간됐다. 디킨스의 소설 ‘예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가 영화의 모티브가 됐기 때문이다. ‘예수의 생애’는 디킨스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전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줬다고 한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두 도시 이야기’를 쓴 세계적 작가. 하지만 ‘예수의 생애’는 아버지로서 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으로 “세상에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책은 사후 후손들이 공개하며 1934년에야 첫 출간됐다. 디킨스는 ‘예수의 생애’에서 중간중간 “사랑하는 아이들아”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억하렴!”이라며 충고도 한다. 아이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이러한 형식은 영화에도 그대로 차용됐다. 아버지의 실감 나는 이야기와 함께 아들 월터는 2000년 전 ‘왕중왕’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영화는 디킨스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원작을 바탕으로 한 건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영화의 제목이다. 디킨스는 책에서 예수가 왕이었단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왕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건 대개 헤롯 왕 중 한 명을 지칭할 때다. 하지만 ‘킹 오브 킹스’에서 월터는 아서 왕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고, 찰스는 아들에게 진정한 ‘왕들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다. 겸손한 왕, 백성을 섬기는 왕 등 예수가 어떤 왕이었는지에 대한 묘사가 다채롭게 나오는 것도 특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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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P로 재발매되는 故김민기 데뷔앨범, 오늘부터 3주간 예약 접수

    21일 지난해 세상을 떠난 극단 학전(學田)의 대표였던 가수 고 김민기(1951~2024)의 1주기를 맞았다. 학전 측은 이날부터 LP로 복원해 재발매되는 데뷔앨범 ‘김민기’의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학전에 따르면 고인이 1971년 만 20세 때 발매했던 데뷔앨범 ‘김민기’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예약 판매했다. 대표곡 ‘아침이슬’을 비롯해 ‘그날’ ‘꽃 피우는 아이’ 등 10곡이 수록된다. 다음 달 10일까지 3주 동안 주요 온라인 음반 사이트에서 주문할 수 있다. 앨범은 제작이 마무리되는 11월부터 발송할 예정이다. 앞서 학전 측은 “고인의 뜻에 따라 1주기 추모 행사나 공연 등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학전은 올해 고인의 유지를 잇는 ‘학전김민기재단’ 설립에 집중할 방침이다. 학전 관계자는 “고인의 작품과 작업을 기록·보존하는 작업을 통해 그의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후대에 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인은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 대표로서 평생 공연 문화를 일구는데 헌신했다.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등을 만들어 국내 창작뮤지컬의 토대를 닦았다. 관객들에게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렸던 배우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 김윤석이 학전 출신이다.학전과 별개로, 고인을 기억하는 가수와 작가 등은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강동구 소극장 스페이스 거북이에서 추모 행사인 ‘김민기 뒤풀이’를 개최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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