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약 7년 전, 강미현 건축사(52)의 건축사사무소로 요양병원 설계 의뢰가 들어왔다. 문제는 위치였다. 병원 맞은편에 장례식장이 있었다. 요양병원 창문 너머로 장례식장이 그대로 보이는 자리. 강 건축사는 최소한의 가림막 설치를 제안했지만, 사업주는 비용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해당 설계를 포기했다. 적법하게 지어졌더라도,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초라하게 만드는 건축물이 있다. 강 건축사는 건축 현장에서 체감해온 이런 문제의식을 주거, 노동, 장애, 교육, 공존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풀어낸 책 ‘존엄하고 초라한’(흠영)을 최근 펴냈다. 12일 전화로 만난 그는 “이 책은 제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했다.“건축, 특히 공공건축은 그 사회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설계돼요. 우리는 편안함보다는 면적이 크고 화려한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답답함도 있고, 미안함도 있어요.” 강 건축사의 문제의식은 장애인 주거복지 활동을 하며 더욱 또렷해졌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친구가 되면서 “설계 도면만으로는 알 수 없던 일상의 불편함을 체감하게 됐다”고 한다.“제가 ‘우리 맛집 가자’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누나, 나는 갈 수 있는 데가 맛집이야.’” 대표적인 예가 화장실이다. 현행 법규는 수동 휠체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더 큰 전동 휠체어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화장실임에도 현실에선 이용이 어렵다.“그 친구는 사람을 만나러 가도 물도 안 마시고 음식도 잘 안 먹어요. 화장실이 불편하니까요.” 강 건축사는 요양병원 건축에 대해서도 “현실의 설계는 병실과 레크리에이션용 공동 공간을 배치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하지만 사람답게 살려면 그것만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가족이 왔을 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고, 친구들이 오갈 수 있어도 좋고요. 반대로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은 분들은 자기만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요.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공간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원광대 건축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그는 후배 건축가들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건축을 한다고 하면 크고 거창한 걸 꿈꾸잖아요. 그런데 저는 정말 작은 것 하나, 예를 들면 도시의 계단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건축이었으면 좋겠어요. 건축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약 7년 전, 강미현 건축사(52)의 건축사무소로 요양병원 설계 의뢰가 들어왔다. 문제는 위치였다. 병원 맞은 편에 장례식장이 있었다. 요양병원 창문 너머로 장례식장이 그대로 보이는 자리. 강 건축사는 최소한의 가림막 설치를 제안했지만, 사업주는 비용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해당 설계를 포기했다.적법하게 지어졌더라도,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초라하게 만드는 건축물이 있다. 강 건축사는 건축 현장에서 체감해온 이런 문제의식을 주거·노동·장애·교육·공존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풀어낸 책 ‘존엄하고 초라한’(흠영)을 최근 펴냈다. 12일 전화로 만난 그는 “이 책은 제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했다.“건축, 특히 공공건축은 그 사회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설계돼요. 우리는 편안함보다는 면적이 크고 화려한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답답함도 있고, 미안함도 있어요.”강 건축사의 문제의식은 장애인 주거복지 활동을 하며 더욱 또렷해졌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친구가 되면서 “설계 도면만으로는 알 수 없던 일상의 불편함을 체감하게 됐다”고 한다. “제가 ‘우리 맛집 가자’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누나, 나는 갈 수 있는 데가 맛집이야.’”대표적인 예가 화장실이다. 현행 법규는 수동 휠체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더 큰 전동 휠체어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화장실임에도 현실에선 이용이 어렵다. “그 친구는 사람을 만나러 가도 물도 안 마시고 음식도 잘 안 먹어요. 화장실이 불편하니까요.”강 건축사는 요양병원 건축에 대해서도 “현실의 설계는 병실과 레크리에이션용 공동 공간을 배치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하지만 사람답게 살려면 그것만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가족이 왔을 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고, 친구들이 오갈 수 있어도 좋고요. 반대로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은 분들은 자기만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요.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공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원광대 건축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그는 후배 건축가들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건축을 한다고 하면 크고 거창한 걸 꿈꾸잖아요. 그런데 저는 정말 작은 것 하나, 예를 들면 도시의 계단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건축이었으면 좋겠어요. 건축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30년 차 직장인 김모 씨(57)는 요즘 퇴근하면 그리스어 알파벳을 펜으로 쓰며 외우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언젠가 제대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이에 정년을 앞두고 첫걸음을 뗐다. 김 씨는 “고대 희랍어는 문자로만 남아있는 사어(死語)라 오히려 배우는 재미가 있다”며 “유럽에서 근무하던 시절 익힌 언어들이 실용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한 공부’라 즐겁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첫 부분을 원어로 읽어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인공지능(AI) 번역과 요약이 일상화되면서 언어 학습은 이전과는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AI가 다 해주니 외국어는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흐름과 반대로, 고대 그리스어·산스크리트어처럼 실용성과 거리가 먼 언어를 배우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원전을 몇 달에 걸쳐 완독하는 등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공부’에 나서기도 한다.● ‘뿌리의 뿌리’를 찾는 즐거움 고대 희랍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유를 남긴 언어다. 플라톤 연구로 석사, 호메로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전학자 강대진 씨는 “2500년 전 언어지만, 일상에 가장 깊숙이 스며든 언어 중 하나”라며 “헤게모니, 패러다임, 카리스마 같은 단어도 희랍어에서 왔다. 사람들에겐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희랍어는 그 갈증을 채워준다”고 했다. 강 박사는 최근 ‘쉽게 배우는 고전 그리스어’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스·로마 고전 강독 수업’에 참여 중인 주부 황경화 씨(57)는 최근 번역본 독서를 넘어 희랍어 공부를 시작했다. 황 씨는 “고전 읽기도 어느덧 6년이 됐으니, 희랍어 역시 평생 공부라 생각한다”며 “인생에서 금요일 하루만큼은 고전을 읽는 시간으로 두려 한다”고 했다. 소설 ‘희랍어 시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해되지 않는 언어 앞에 멈춰 서는 시간은 삶의 리듬을 바꾼다고. 강 박사는 “AI 시대에 어떤 언어라도 실용성은 큰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무익한 것’을 해보자는 제안”이라며 “고귀함이란 무용한 걸 계속하는 것이란 말도 있다”고 덧붙였다.● AI가 따라올 수 없는 것 프랑스·독일·스페인 문학 번역가인 최성웅 씨는 지난해부터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있다. 고대 인도 언어로 불교와 힌두교 경전에 쓰인 언어다. 최 씨는 현대 문학은 상당 부분 AI 번역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고전’은 다르다고 믿는다.“고전어에는 논리 접속사가 붕괴되는 지점이 종종 나타나요. 인과와 역접이 동시에 성립하는 식이죠. 그걸 이해하려면 개인의 논리 자체가 흔들리는 지점까지 가야 합니다. 일종의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이죠. 고전 텍스트 영역은 AI가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를 취미로 독학하는 직장인 이모 씨(29)도 “AI가 검은 밤바다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무언가를 배워 간직할 수 있는 게 기쁘다”고 했다. 옛 언어를 배우는 이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AI가 결과를 손쉽게 제공하는 시대지만, 이들은 어떤 이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공부의 의미 역시 재정의돼야 한다고 했다.“공부 자체를 좋아하고, 자기 마음을 단련하는 여정으로 받아들일 때 의미가 생깁니다. 한국어만 봐도 수많은 언어가 뒤섞여 형성됐잖아요. 요리사가 재료를 하나씩 꺼내 보듯 한자와 문법, 어원을 들여다보는 식이죠. AI 시대에 모두의 독해력이 낮아질수록, 고어를 통해 독해력을 기르는 건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습니다.”(최성웅 씨)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30년 차 직장인 김모 씨(57)는 요즘 퇴근하면 그리스어 알파벳을 펜으로 쓰며 외우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언젠가 제대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이에 정년을 앞두고 첫걸음을 뗐다.김 씨는 “고대 희랍어는 문자로만 남아있는 사어(死語)라 오히려 배우는 재미가 있다”며 “유럽에서 근무하던 시절 익힌 언어들이 실용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한 공부’라 즐겁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첫 부분을 원어로 읽어보는 게 목표”라고 했다.인공지능(AI) 번역과 요약이 일상화되면서 언어 학습은 이전과는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AI가 다 해주니 외국어는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흐름과 반대로, 고대 그리스어·산스크리트어처럼 실용성과 거리가 먼 언어를 배우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원전을 몇 달에 걸쳐 완독하는 등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공부’에 나서기도 한다.● ‘뿌리의 뿌리’를 찾는 즐거움고대 희랍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유를 남긴 언어다. 플라톤 연구로 석사, 호메로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전학자 강대진 씨는 “2500년 전 언어지만, 일상에 가장 깊숙이 스며든 언어 중 하나”라며 “헤게모니, 패러다임, 카리스마 같은 단어도 희랍어에서 왔다. 사람들에겐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희랍어는 그 갈증을 채워준다”고 했다. 강 박사는 최근 ‘쉽게 배우는 고전 그리스어’를 출간하기도 했다.‘그리스·로마 고전 강독 수업’에 참여 중인 주부 황경화 씨(57)는 최근 번역본 독서를 넘어 희랍어 공부를 시작했다. 황 씨는 “고전 읽기도 어느덧 6년이 됐으니, 희랍어 역시 평생 공부라 생각한다”며 “인생에서 금요일 하루만큼은 고전을 읽는 시간으로 두려 한다”고 했다.소설 ‘희랍어 시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해되지 않는 언어 앞에 멈춰 서는 시간은 삶의 리듬을 바꾼다고. 강 박사는 “AI 시대에 어떤 언어라도 실용성은 큰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무익한 것’을 해보자는 제안”이라며 “고귀함이란 무용한 걸 계속하는 것이란 말도 있다”고 덧붙였다.● AI가 따라올 수 없는 것프랑스·독일·스페인 문학 번역가인 최성웅 씨는 지난해부터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있다. 고대 인도 언어로 불교와 힌두교 경전에 쓰인 언어다. 최 씨는 현대 문학은 상당 부분 AI 번역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고전’은 다르다고 믿는다.“고전어에는 논리 접속사가 붕괴되는 지점이 종종 나타나요. 인과와 역접이 동시에 성립하는 식이죠. 그걸 이해하려면 개인의 논리 자체가 흔들리는 지점까지 가야 합니다. 일종의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이죠. 고전 텍스트 영역은 AI가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를 취미로 독학하는 직장인 이모 씨(29)도 “AI가 검은 밤바다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무언가를 배워 간직할 수 있는 게 기쁘다”고 했다.옛 언어를 배우는 이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AI가 결과를 손쉽게 제공하는 시대지만, 이들은 어떤 이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공부의 의미 역시 재정의돼야 한다고 했다.“공부 자체를 좋아하고, 자기 마음을 단련하는 여정으로 받아들일 때 의미가 생깁니다. 한국어만 봐도 수많은 언어가 뒤섞여 형성됐잖아요. 요리사가 재료를 하나씩 꺼내 보듯 한자와 문법, 어원을 들여다보는 식이죠. AI 시대에 모두의 독해력이 낮아질수록, 고어를 통해 독해력을 기르는 건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습니다.”(최성웅 씨)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정보기술(IT) 기업 디자이너로 일하는 서경수(가명·41) 씨는 회사에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15분 거리에 산다. 직장이 바뀔 때마다 웬만하면 회사 근처로 이사했다. 그에게 집은 대기실 같다. 들어가서 잠만 자는 공간. 서 씨는 “개인적으로 진짜 쉬고 있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건 그가 1인 가구이기 때문이다.지난해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42%로, 1000만 가구를 넘어섰다. 하지만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국내의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드문 게 현실.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1인 가구 109명을 직접 만나 쓴 신간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초당·사진)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다. 서 씨와 같은 이들을 수차례, 수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며 통계 뒤에 가려진 삶을 끌어냈다. 김 교수를 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1인 가구들을 만나 보면 커리어 이야기는 아주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해요. 그런데 연애나 가족 계획을 묻는 순간, 말이 흐려지죠. ‘좋은 사람 만나면요’ 같은 식으로요.”김 교수가 현장에서 포착한 이 미묘한 머뭇거림은 ‘혼자 사는 삶=자발적 선택’이란 통념과 사뭇 달랐다. 그는 지금을 ‘솔로 권하는 사회’라고 표현했다. 노동시장이 급격히 유연화되면서 언제든 이동 가능하고, 24시간 투입 가능하며, 가족 부양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1인 가구가 현재의 노동시장에 가장 잘 맞는 형태가 됐다는 설명이다. 업무 효율에 최적화된 삶을 살다 보니 ‘어쩌다 솔로’가 된 사람들이 지금의 1인 가구라는 해석이다.혼자 살면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식사다. 통계에 따르면 아침 식사를 거르는 비율은 다인 가구의 두 배에 이른다. 하루 한 번 이상 외식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한다. 만성질환 유병률은 다인 가구보다 세 배, 우울 위험은 2.4배 높았다.그럼에도 여전히 “1인 가구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이들을 위한 정책도 번번이 추진력을 얻지 못한다. 김 교수는 1인 가구가 겪는 문제의 핵심을 ‘관계의 결핍’에서 찾았다. 해법 역시 막대한 재정 투입이 아니라, 연결망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인 가구들이 의미를 느끼며 기여할 수 있는 삶, 가족을 이루지 않아도 사회 안에서 역할과 자리가 주어지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기부든, 자원봉사든, 작은 모임이든 형태는 다양합니다. 특히나 앞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산과 물건, 경험을 가족이 아닌 사회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늘어날 거예요. 그렇다면 이런 연결망은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이 순환되게 하는 거죠.”그는 “전체의 42%가 1인 가구라면 그건 이미 다수”라며 “다수의 위험을 그냥 방치하는 게 국가의 기조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IT(정보기술) 기업 디자이너로 일하는 서경수 씨(41·가명)는 회사에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15분 거리에 산다. 직장이 바뀔 때마다 웬만하면 회사 근처로 이사했다. 그에게 집은 대기실 같다. 들어가서 잠만 자는 공간. 서 씨는 “개인적으로 진짜 쉬고 있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건 그가 1인 가구이기 때문이다.지난해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42%로, 1000만 가구를 넘어섰다. 하지만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국내의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드문 게 현실.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1인 가구 109명을 직접 만나 쓴 신간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초당)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다. 서 씨와 같은 이들을 수 차례, 수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며 통계 뒤에 가려진 삶을 끌어냈다. 김 교수를 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1인 가구들을 만나보면 커리어 이야기는 아주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해요. 그런데 연애나 가족계획을 묻는 순간, 말이 흐려지죠. ‘좋은 사람 만나면요’ 같은 식으로요.”김 교수가 현장에서 포착한 이 미묘한 머뭇거림은 ‘혼자 사는 삶=자발적 선택’이란 통념과 사뭇 달랐다. 그는 지금을 ‘솔로 권하는 사회’라고 표현했다. 노동시장이 급격히 유연화되면서 언제든 이동 가능하고, 24시간 투입 가능하며, 가족 부양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1인 가구가 현재의 노동시장에 가장 잘 맞는 형태가 됐다는 설명이다. 업무 효율에 최적화된 삶을 살다 보니 ‘어쩌다 솔로’가 된 사람들이 지금의 1인 가구라는 해석이다.혼자 살면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식사다. 통계에 따르면 아침 식사를 거르는 비율은 다인가구의 두 배에 이른다. 하루 한 번 이상 외식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한다. 만성질환 유병률은 다인가구보다 세 배, 우울 위험은 2.4배 높았다.그럼에도 여전히 “1인 가구는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이들을 위한 정책도 번번이 추진력을 얻지 못한다. 김 교수는 1인 가구가 겪는 문제의 핵심을 ‘관계의 결핍’에서 찾았다. 해법 역시 막대한 재정 투입이 아니라, 연결망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인 가구들이 의미를 느끼며 기여할 수 있는 삶, 가족을 이루지 않아도 사회 안에서 역할과 자리가 주어지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기부든, 자원봉사든, 작은 모임이든 형태는 다양합니다. 특히나 앞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산과 물건, 경험을 가족이 아닌 사회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늘어날 거예요. 그렇다면 이런 연결망은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이 순환되게 하는 거죠.”그는 “전체의 42%가 1인 가구라면 그건 이미 다수”라며 “다수의 위험을 그냥 방치하는 게 국가의 기조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어머니는 몸소 삶으로 보여주셨고 김을 매듯 글을 쓰셨습니다.” 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올해 타계 15주기를 맞은 소설가 박완서(1931∼2011·사진)를 기리는 ‘박완서 아카이브’ 개관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작가의 장녀인 호원숙 작가(72)는 “어머니는 사랑에는 얼마나 큰 품이 드는지 보여줬고, 어머니의 문학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고 말했다.‘박완서 아카이브’는 박 작가의 유족이 기증한 자료 6000여 점 가운데 470여 점을 엄선한 전시 겸 보존 공간이다. 도서관 본관과 관정관을 잇는 공간을 리모델링한 ‘헤리티지 라이브러리’ 내에 약 50평(165㎡) 규모로 조성됐다.아카이브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작가가 생의 마지막 13년을 보낸 경기 구리시 아치울 자택을 재현한 공간이다. 고인이 실제로 사용했던 장서와 책상, 의자, 컴퓨터를 그대로 옮겨와 서재로 꾸몄다. 박 작가는 실제로 이 서재에서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과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집필했다. 다섯 아이의 어머니인 박 작가는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은 가족을 돌보며 틈틈이 엎드려 등단작 ‘나목’을 썼고, 등단 뒤에도 15년이 흐른 1985년에야 자신의 책상을 갖게 됐다. 생애 첫 책상을 마련한 뒤 박 작가는 “엎드려서 글을 쓰다가 밥상을 놓고 글을 쓰니 이렇게 좋은 것을, 하고 좋아하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이젠 버젓하게 큰 책상에다 의자에 앉아서 쓴다”는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작가가 의자에 앉아 오른쪽 큰 창으로 내다보던 마당 정원도 실제 나무와 흙으로 재현했다. 아치울에 이사를 오자마자, 고인은 유년 시절 살던 집 뜰을 닮은 마당을 가꿨다. 손수 호미를 들고 흙을 만지는 일은 아파트 생활로 숨이 막혔던 그에게 “생각만으로도 비죽비죽 웃음이 나올 정도로” 큰 위안이 됐다고 한다. 아카이브에는 이 밖에도 박 작가가 사용하던 재봉틀과 사진기, ‘해산 사발’ 등 생활 유물과 친필 원고, 일기 등 육필자료가 전시됐다. 4월 30일까지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도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어머니는 몸소 삶으로 보여주셨고 김을 매듯 글을 쓰셨습니다.”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올해 타계 15주기를 맞은 소설 박완서(1931~2011)를 기리는 ‘박완서 아카이브’ 개관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작가의 장녀인 호원숙 작가(72)는 “어머니는 사랑에는 얼마나 큰 품이 드는지 보여줬고, 어머니의 문학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고 말했다.‘박완서 아카이브’는 박 작가의 유족이 기증한 자료 6000여 점 가운데 470여 점을 엄선한 전시 겸 보존 공간이다. 도서관 본관과 관정관을 잇는 공간을 리모델링한 ‘헤리티지 라이브러리’ 내에 약 50평(165㎡) 규모로 조성됐다.아카이브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건 작가가 생의 마지막 13년을 보낸 경기 구리시 아치울 자택을 재현한 공간이다. 고인이 실제로 사용했던 장서와 책상, 의자, 컴퓨터를 그대로 옮겨와 서재로 꾸몄다. 박 작가는 실제로 이 서재에서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과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집필했다.다섯 아이의 어머니인 박 작가는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인은 가족을 돌보며 틈틈이 엎드려 등단작 ‘나목’을 썼고, 등단 뒤에도 15년이 흐른 1985년에야 자신의 책상을 갖게 됐다. 생애 첫 책상을 마련한 뒤 박 작가는 “엎드려서 글을 쓰다가 밥상을 놓고 글을 쓰니 이렇게 좋은 것을, 하고 좋아하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이젠 버젓하게 큰 책상에다 의자에 앉아서 쓴다”는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작가가 의자에 앉아 오른 쪽 큰 창으로 내다보던 마당 정원도 실제 나무와 흙으로 재현했다. 아치울에 이사를 오자마자, 고인은 유년 시절 살던 집 뜰을 닮은 마당을 가꿨다. 손수 호미를 들고 흙을 만지는 일은 아파트 생활로 숨이 막혔던 그에게 “생각만으로도 비죽비죽 웃음이 나올 정도로” 큰 위안이 됐다고 한다. 아카이브에는 이 밖에도 박 작가가 사용하던 재봉틀과 사진기, ‘해산 사발’ 등 생활 유물과 친필 원고, 일기 등 육필자료가 전시됐다. 4월 30일까지 아카이브 조성 기념전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도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일본의 과학소설(SF) 작가 이토 게이카쿠(伊藤計劃)는 근미래를 묘사한 ‘세기말 하모니’에서 건강을 사회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세상을 그렸다. 정부는 개인의 건강 상태를 상시 관리하기 위해 모든 시민의 몸에 초미세 기계를 삽입한다. 조금이라도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면 강제 치료가 이뤄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모두 건강하게 100세 이상 살 수 있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묘하게 불편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이 작품을 언급하며 “‘건강’하지만 ‘부자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미래를 상상할 필요도 없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청결하고 안전하며 질서 정연한, 그야말로 쾌적한 사회에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쾌적함이 타인을 향한 노골적인 배제와 통제를 토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자유를 잃어버렸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료화’다.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던 다양한 증상과 행동이 질병이나 장애로 규정되고 치료의 대상으로 편입되는 현상을 의료화라고 부른다. 과거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행동과 태도는 이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ASD)로 해석되며 의료와 복지의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료와 복지의 지향은 자본주의 사회에 원활히 적응하는 삶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내세운 ‘1억 총활약 사회’를 언급하며 “사람들은 정신질환의 정도와 사회 적응의 수준에 맞춰 ‘1억 총활약 사회’ 속 어딘가로 재배치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1억 총활약 사회’는 50년 뒤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하고, 1억 명 모두 활발하게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슬로건이다. 틀 바깥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선 20세기 초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환자는 단골 의사의 왕진을 받았고, 가족과 이웃이 지켜보는 가운데 삶을 마무리했다. 병든 사람 역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고도 경제 성장을 거치며 질병과 죽음은 점차 일상의 공간에서 밀려났다. 자택 사망은 꾸준히 줄어든 반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크게 늘었다. 의료 인프라의 발달은 삶에서 병과 죽음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상 속에서 병과 죽음을 받아들일 여지는 줄어들었고, 현대인은 자신이나 가족에게 질병과 죽음이 닥쳤을 때 이를 마치 기습적인 사건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병과 죽음을 삶의 일부로 인식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추구해 온 사회는 분명 많은 고통을 줄였지만, 동시에 불완전함과 다양성을 포용하는 능력 역시 약화시켰다고 본다. 의료와 복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체계가 만들어낸 차별과 배제를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책이다. 일본의 사례를 다루지만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쾌적함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우리가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최근 출판 시장에선 문학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상대적으로 비문학은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존재감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인공지능(AI)이 방대한 정보를 즉각 제공하는 시대다 보니, 오랫동안 ‘지식 전달’을 핵심 역할로 해 온 비문학이 약세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실제로 출판계에선 기존 ‘백과사전형’ 비문학은 막을 내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손민규 인문PD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같은 책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식 나열형 책들은 수요가 덜하다”고 전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도 “개념 설명을 나열하는 책은 기획 단계부터 걸러낸다”고 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독자에게 사랑받는 비문학은 어떤 게 있을까.① 단순 지식 넘어 ‘세계관’ 제공 당연히 비문학이라고 모두 외면받진 않는다. 특히 스테디셀러들은 강하다. 1998년 국내 출간된 ‘총, 균, 쇠’와 2015년 나온 ‘사피엔스’는 여전히 잘 팔린다. 김영사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해마다 8만 부 이상 팔렸다. 그래픽노블 버전인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도 2024년 유발 하라리 신작 ‘넥서스’ 출간과 맞물려 판매량이 9만 부까지 뛰었다. 이런 비문학 스테디셀러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지식에 접근하는 태도를 길러준다. 최신 정보가 아니어도, 독자의 세계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문화 자본’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윤경 김영사 편집이사는 “거시적인 흐름을 문명사적으로 바라본 책들은 신간 이상으로 잘 팔린다”며 “단편적인 질문에 즉각 답을 내놓는 AI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② 곁에서 독자의 삶과 ‘동행’지난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비문학도 공통점이 있다. ‘초역 부처의 말’(6위)과 ‘위버멘쉬’(16위), ‘쇼펜하우어 인생수업’(21위)은 종교나 철학 등 순수 학문과 자기계발서의 경계에 선 책들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전문서적에서 다뤄지던 내용을 격언 형태로 재구성해 ‘씹어먹기 좋게’ 만든 게 닮은 꼴”이라고 했다. 이런 책들은 ‘완결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불안이나 고독, 관계 등 현대인의 고민과 맞닿는 문장을 제시한다. 철학을 설명하는 대신 사용하게 만드는 방식. 한 출판사 대표는 “비문학에 대한 기대가 ‘설명’에서 ‘동행’으로 이동한 결과로 보인다”며 “완독이 필요하지 않아 곁에 두고 가끔 펴 봐도 좋은 책들”이라고 분석했다.③ ‘반 AI’ 느림과 불편을 지향 손 PD는 지난해 주목받은 비문학으로 ‘먼저 온 미래’와 ‘편안함의 습격’, ‘경험의 멸종’, ‘불안 세대’를 꼽았다. 모두 디지털 환경 아래 줄어든 신체 감각과 느린 시간, 불편함의 의미를 다룬 책들이다. AI로는 충족되지 않는 ‘인간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는 비문학이 새로운 경쟁력을 얻고 있다. 이 책들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의 서사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편안함의 습격’에서 저자는 직접 극한을 체험하기 위해 33일간 알래스카 순록 사냥을 떠난다. 비문학이지만 분명한 스토리텔링이 있고, 저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에 가깝다. 독자는 정보를 얻기보단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김 출판사의 김미선 편집자는 “과거엔 비문학의 효용 가치가 지식 습득에 치중돼 있었다면, 지금은 인간다움과 새로운 나의 발견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능동적인’ 책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최근 출판 시장에선 문학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상대적으로 비문학은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존재감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인공지능(AI)이 방대한 정보를 즉각 제공하는 시대다보니, 오랫동안 ‘지식 전달’을 핵심 역할로 해온 비문학이 약세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실제로 출판계에선 기존 ‘백과사전형’ 비문학은 막을 내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손민규 인문PD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같은 책들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식 나열형 책들은 수요가 덜하다”고 전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도 “개념 설명을 나열하는 책은 기획 단계부터 걸러낸다”고 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독자에게 사랑받는 비문학은 어떤 게 있을까.① 단순 지식 넘어 ‘세계관’ 제공당연히 비문학이라고 모두 외면받진 않는다. 특히 스테디셀러들은 강하다. 1998년 국내 출간된 ‘총, 균, 쇠’와 2015년 나온 ‘사피엔스’는 여전히 잘 팔린다. 김영사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해마다 8만 부 이상 팔렸다. 그래픽노블 버전인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도 2024년 유발 하라리 신작 ‘넥서스’ 출간과 맞물려 판매량이 9만 부까지 뛰었다.이런 비문학 스테디셀러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지식에 접근하는 태도를 길러준다. 최신 정보가 아니어도, 독자의 세계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문화 자본’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윤경 김영사 편집이사는 “거시적인 흐름을 문명사적으로 바라본 책들은 신간 이상으로 잘 팔린다”며 “단편적인 질문에 즉각 답을 내놓는 AI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② 곁에서 독자의 삶과 ‘동행’지난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비문학도 공통점이 있다. ‘초역 부처의 말’(6위)과 ‘위버멘쉬’(16위), ‘쇼펜하우어 인생수업’(21위)는 종교나 철학 등 순수 학문과 자기계발서의 경계에 선 책들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전문서적에서 다뤄지던 내용을 격언 형태로 재구성해 ‘씹어먹기 좋게’ 만든 게 닮은 꼴”이라고 했다.이런 책들은 ‘완결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불안이나 고독, 관계 등 현대인의 고민과 맞닿는 문장을 제시한다. 철학을 설명하는 대신 사용하게 만드는 방식. 한 출판사 대표는 “비문학에 대한 기대가 ‘설명’에서 ‘동행’으로 이동한 결과로 보인다”며 “완독이 필요하지 않아 곁에 두고 가끔 펴봐도 좋은 책들”이라고 분석했다.③ ‘반 AI’ 느림과 불편을 지향손 PD는 지난해 주목받은 비문학으로 ‘먼저 온 미래’와 ‘편안함의 습격’, ‘경험의 멸종’, ‘불안 세대’를 꼽았다. 모두 디지털 환경 아래 줄어든 신체 감각과 느린 시간, 불편함의 의미를 다룬 책들이다. AI로는 충족되지 않는 ‘인간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있는 비문학이 새로운 경쟁력을 얻고 있다.이 책들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의 서사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편안함의 습격’에서 저자는 직접 극한을 체험하기 위해 33일간 알래스카 순록 사냥을 떠난다. 비문학이지만 분명한 스토리텔링이 있고, 저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에 가깝다. 독자는 정보를 얻기보단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김 출판사의 김미선 편집자는 “과거엔 비문학의 효용 가치가 지식 습득에 치중돼 있었다면, 지금은 인간다움과 새로운 나의 발견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능동적인’ 책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요즘 도서전의 주인공은 도서가 아니라 ‘굿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15만 명이 찾는 화제의 행사로 자리 잡는 데도 굿즈의 힘이 컸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도서전이 열렸다. 이름부터 지향점이 분명하다. ‘디스 이즈 텍스트(This Is Text)’.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서울 중구 알라딘 빌딩에서 열린 이 도서전은 ‘굿즈 없는 도서전’을 전면에 내걸었다. 출판사 ‘이김’과 ‘힐데와소피’가 주최했고, 16개 논픽션 출판사가 참여했다. 1일 오전 찾은 현장은 도서전이면 으레 보여야 할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굿즈도 없고, 유명 저자의 북토크도, 줄을 서는 사인회도 없었다. 그 대신 조용한 대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책만 있는 도서전에 사람들이 올까 싶었지만, 600장의 사전 예매 티켓이 모두 팔렸다. 각 부스에선 책을 사이에 두고 편집자와 독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부스마다 ‘대화 카드’가 마련돼 있었다. 출판사 ‘현실문화연구’ 부스에서 한 독자가 ‘책이 나오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 책은?’이란 카드를 가리키자, 김수기 대표의 답변이 이어졌다. “‘세계 끝의 버섯’은 만드는 데만 7, 8년이 걸렸어요. 비문학이지만 문학적 표현이 많아서 번역자를 찾는 데만 10개월이 걸렸어요. 인간중심적 사고에 머물러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걸 보여 주는 책입니다.” 김 대표는 “장터처럼 떠밀리듯 구경하다가 진이 빠지는 여느 도서전과 달리, 여기서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천천히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은 회차별 입장 인원을 70명으로 제한하고, 관람 시간도 70분으로 설정했다. ‘양’보다 ‘밀도’를 택했다. 대구에 있는 ‘한티재’ 출판사는 비수도권 출판사로는 유일하게 이번 도서전에 참여했다. 1인 출판사인 만큼 참가비와 숙박비 부담 때문에 서울 도서전은 늘 먼 이야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은지 대표는 “이번에는 ‘굿즈 없는 도서전’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다른 출판사들이 예쁜 굿즈를 쏟아내는 걸 보면 그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해요. 이번 도서전이 책의 ‘본질’로 돌아가는 하나의 물꼬가 되지 않을까 기대가 큽니다. 한티재를 응원하려고 대구에서, 전주에서 일부러 찾아온 독자들도 계셨어요. 그런 분들을 직접 만나는 것만으로도 다음 책을 만들 힘을 얻습니다.” 도서전을 방문한 독자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책 네 권을 구매했다는 대학원생 김다연 씨(26)는 “온라인 서점에도 정보가 넘쳐나지만, 도서전에서는 대표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며 “책들이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 2017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겨냥한 트윗을 올렸다.“방금 북한 외무성 장관이 유엔에서 한 발언을 들었다. 이 말이 꼬마 로켓맨의 생각을 반영한 거라면 둘 다 오래 살아남진 못할 듯!” 수천만 명에게 동시에 전달되는 트윗에서 그는 북한의 독재자를 ‘꼬마 로켓맨’이라고 불렀다. 다른 국가를 향한 핵전쟁 위협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이를 “명백한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사실 당시 트위터엔 ‘폭력적 협박 및 폭력 조장을 금지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트위터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발언에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한 달 뒤인 2017년 10월, 미 배우 로즈 맥가윈은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위터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회사는 그의 계정을 정지시켰다. 게시물에 타인의 전화번호가 담긴 스크린샷이 포함돼 있었고, 이는 ‘당사자 동의 없는 개인 연락처 공개를 금지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이 결정은 거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에겐 트위터를 사용할 자유를 허용하면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침묵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표현의 자유’와 ‘영향력에 따르는 책임’ 사이에서 플랫폼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트위터 내부에서는 어떤 논쟁이 벌어졌고, 어떤 기준이 작동했을까. 이 책은 블룸버그 비즈니스·기술 전문 기자인 저자가 트위터가 흥망성쇠를 거쳐 결국 ‘X’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 기록이다. 150명이 넘는 트위터 안팎 관계자를 심층 취재해 현대 기술 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위험과 책임을 드러냈다. 원래 트위터는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기업이었다. 흑인, 라틴계, 성소수자 직원을 위한 사내 후원 모임도 활발했다. 트럼프는 그런 기업 문화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트위터 직원들이 설계하고 가꿔 온 서비스를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많은 직원에게 이는 불편하고 모순적인 현실이었다. 잭 도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트위터 정책 책임자들은 트럼프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일상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 CEO는 대통령의 트윗을 차단하는 데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발언이 아무리 부적절하더라도, 대통령의 생각을 들여다볼 통로를 아예 없애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익 압박과, 세계 여론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랫폼이라는 사실 사이의 긴장은 도시 CEO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는 트위터가 상장 기업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에 회의를 품었다. 그가 선택한 해법은 모순적이게도 일론 머스크였다. 상장 기업의 굴레를 벗어날 대안으로 머스크를 주목한 선택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셜미디어 기업과 가장 논쟁적인 기업가의 결합으로 이어졌다. 자유의 상징이던 트위터는 440억 달러에 머스크의 ‘X’가 됐다. 이 책은 한 기술 기업이 잘못된 방향 설정으로 어떻게 위기에 빠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는 트위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향력 있는 매체를 손에 쥐고 사유화하려는 시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소셜미디어 기업들에서 반복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경고이기도 하다.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느린 취미’ 부활 속도와 효율이 일상이 된 시대, 청년들은 일부러 ‘느린 시간’을 경험하려 한다. 한때 어르신들 취미로 여겨졌던 뜨개질이 트렌드가 되고, 사라지던 음악감상실이 부활하고 있다.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을 들여다봤다.28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 있는 뜨개 공방 ‘단비스튜디오’.이날 ‘뜨개질 원데이 클래스’ 도전 과제는 카드지갑 만들기였다. “혹시 바로 완성을 못 하는 경우도 있나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학창 시절 미술 수행평가 평균 점수가 늘 B를 넘지 못했던 ‘똥손’으로 살아온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공방을 운영하는 김명주 씨(32)는 “어떻게든 다 완성하게 만들어 드리니 걱정 말라”며 웃었다.뜨개질은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는 ‘느린 취미’ 중 하나다. 한때 어르신들의 취향으로 여겨졌던 뜨개질은 요즘 인스타그램에 ‘뜨개질’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게시물만 약 130만 건에 이를 정도다. ‘뜨개스타그램’ ‘뜨개질’ ‘니팅힙(Knitting hip)’ 등의 태그도 쏟아진다.》‘느린 취미’가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뜨개질 같은 느린 취미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 마음을 진정시키는 활동을 일컫는다. 청년층에겐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를 준다고 여겨지며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분위기. 해외에서도 ‘Mindfulness(마음챙김)’나 ‘Digital detox(디지털 디톡스)’의 수단으로 여겨지며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유럽의 푸근한 할머니 된 느낌”뜨개질 수업은 이런 느린 취미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수업은 7호 코바늘로 가장 기초적인 ‘사슬뜨기’와 ‘짧은뜨기’를 익히며 시작됐다. 먼저 시범을 보여주는 김 씨의 능숙한 손길 끝에 카드지갑의 몸체가 차곡차곡 쌓여 올라갔다. 처음엔 정확한 위치도 헷갈리고, 팽팽하게 실을 고정하려면 펴야 하는 손가락은 자꾸만 구부러졌다. 하지만 느릿느릿 다음 코를 뜨기 위해 바늘을 옮기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줄어들고 손의 감각만이 남았다. 김 씨는 “예전엔 뜨개질이 ‘엄마들의 취미’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팬데믹 이후 젊은 세대들도 많이 찾는다”며 “요즘엔 ‘디지털 디톡스’를 이유로 입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전했다.뜨개질이 힙한 취미로 뜨는 건 쇼츠나 릴스 등에 찌들어 산만해진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데다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바늘이야기’는 뜨개인(뜨개질하는 사람)의 성지로 불린다. 뜨개질 관련 용품을 팔고, 2층에 뜨개질 공간도 따로 마련해뒀다. 목도리와 장갑은 물론이고, 비니와 티코스터 등 만들 수 있는 물품 종류도 많다. 뜨개질을 취미로 삼은 지 3년쯤 됐다는 직장인 정수인 씨(29)는 “출퇴근 버스에서도 뜨개질을 하고, 만든 물건은 주변에도 나눠준다”며 “뜨개질을 하다 보면 불안감이 줄어든다. 마치 코코아를 마시는 유럽의 푸근한 할머니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30대 직장인 박모 씨도 “요새는 도안과 실이 함께 든 키트를 구매할 수 있어 더 편리하다”며 “뜨개질이 ‘방구석 골프’라 불릴 만큼 의외로 재료 값이 많이 들긴 하지만,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뜨개질 사내 모임도 생기고 있다. 출판사 민음사엔 ‘짓기방’이란 모임이 있다. 글이든, 점토든 무엇이든 만드는데, 주력 아이템은 뜨개질. 이정화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점심 시간에 탕비실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뜨개질을 하곤 한다”며 “‘이 집 실이 싸다’는 등 정보나 구하기 어려운 도안을 공유한다”고 했다. 영화를 보며 뜨개질을 하는 이색 이벤트도 등장했다. CGV는 지난해 CGV강변 씨네&포레 상영관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뜨개질하는 ‘뜨개상영회’를 열었다. 관객들의 호응이 이어지자 전국 10여 개 극장으로 확장해 진행하기도 했다. CGV 관계자는 “뜨개질과 결이 맞는 잔잔한 영화를 상영했을 때 특히 관객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음악도 ‘집중해서’ 듣는다느린 취미의 유행은 뜨개질로 그치지 않는다. 음악을 차분하게 감상하는 공간인 ‘음악감상실’도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소비 방식은 갈수록 파편화되고 있지만, 오히려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공간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셈이다.지난해 문을 연 서울 마포구 음악감상실 ‘틸트’는 이런 흐름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가 아니다. 소리를 ‘듣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중심 공간에 360도 전 방향 스피커를 설치해 방문자들이 어디서나 동일한 소리를 체험할 수 있다. 직장인 문모 씨(29)는 이달에만 두 번이나 틸트를 찾았다. 윤상의 앨범 ‘클리셰’를 처음부터 끝까지 90분간 듣는 리스닝 세션과 데이비드 보위의 주요 곡을 100분간 감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문 씨는 “진득하게 음악을 듣다 보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소리가 들리고, 아티스트가 곡에 담은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앨범 수록곡 중 분명 취향에 맞지 않는 트랙도 있지만, 그마저도 애정을 갖고 끝까지 들어보는 연습이 된다”고 했다.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특별한 ‘큐레이션’을 내세운 공간도 있다. 1000여 장의 음반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 마포구 재즈 및 클래식 음악감상 공간 ‘쿼터’는 원하는 느낌의 곡을 단어나 문장으로 골라 내밀면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해준다. 28일 이곳을 찾아 “따뜻한 불빛이 떠오르는 음악”을 요청하자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가 흘러나왔다. 온기가 스며든 듯한 음악이 풍성하게 귀를 채웠다.2022년부터 쿼터를 운영하고 있는 재즈드러머 정마루 씨는 “내겐 익숙한 뮤지션이라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 ‘키워드’ 형식의 큐레이션을 유지하고 있다”며 “염화칼슘 같은 뜬금없는 단어든, 개인의 사연이든 적어주는 대로 선곡해준다”고 했다. 이어 “이곳은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공간이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이야기가 오가는 ‘살롱’에 가깝다”고 덧붙였다.음악감상실이 다양한 문화 실험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2024년 경기 파주시의 LP 음악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유튜브 콘텐츠 ‘어라운드 클래식’ 오프라인 버전인 ‘오프 어라운드 클래식’을 선보였다. 국립심포니 소속 20, 30대 단원들이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 작품을 연주하고, 관객과 대화도 나눴다. 국립심포니 관계자는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기존 공연장과 다른 공간을 택했다”며 “젊은 연인 관객의 방문이 특히 많았다”고 했다.● “두웅” 긴장감 날리는 ‘싱잉볼’“현대인의 몸은 거의 매 순간 각성돼 있죠. 그 긴장감을 잠깐이라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요가원. 원장의 설명과 함께 ‘두웅’ 싱잉볼(Singing Bowl) 소리가 울렸다. 이날 수련에 참석한 회원들은 진동과 함께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약 15분간 이어진 은은한 소리와 진동에, 몇몇은 잠시 졸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원장은 오히려 “잠이 오든, 오지 않든 스스로 원하는 대로 따라가라”며 “이 시간은 몸을 이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했다.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 잠시라도 이를 벗어나기 위한 명상도 ‘느린 취미’로 인기다. 특히나 ‘노래하는 악기’로 불리는 싱잉볼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7가지 금속을 녹여 만든 주발을 막대로 두드리면 발생하는 진동이 우리 몸을 이완시킨다고 한다. ‘자율 감각 쾌락 반응(ASMR)’에 자주 쓰이는데, 최근 젊은층에서 인기를 끈 ‘불교 박람회’ 체험 클래스로도 자주 소개됐다. 이날 전체 참석자 5명 중 3명은 30대. 퇴근 뒤 요가원에 들렀다는 김정효 씨(34)는 “하루하루 수많은 생각과 관계에 치여 사는데, 싱잉볼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며 “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게 서툴다 보니 요가원 도움을 받기 위해 찾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은 “너무 맘에 들어 싱잉볼을 직접 구매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과 소셜미디어 등으로 인해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런 느린 취미를 찾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빠른 변화가 있다 보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디톡스 활동이 주목받기 마련”이라며 “복잡한 세계에서 발을 빼고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취미는 앞으로 더 큰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정문을 열고 마주한 첫 매대에 이색적인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 ‘오십에 읽는 논어’(유노북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익숙하게 봤던 제목들. 그런데 이 책들은 제목이 유난히 또렷하게 읽혔다. 기존 책보다 훨씬 큰 글자. 교보문고가 최근 출판사들과 협업해 선보인 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다.큰글자책은 출판계에서 오랫동안 ‘필요하지만 드러내고 싶진 않은’ 책으로 인식돼 왔다. 크고 빳빳한 외형 탓에 “교과서 같다”는 인상까지 줬다. 도서관에서도 ‘실버 도서’라며 별도 코너에 비치된 채 고령층만을 위한 특수 포맷으로 여겨졌다. 가격도 일반 책보다 2∼3배 비쌌다.이런 탓에 시중 서점에선 취급 자체가 흔치 않았던 큰글자책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큰글자책을 특정 연령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독자를 포괄하는 ‘읽기 환경의 선택지’로 재정의하는 분위기다. 오디오북 역시 하나의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자리 잡으며 다양한 연령대들이 즐기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 ‘이지페이지’는 단순히 글자 크기만 키운 게 아니다. 행간과 자간, 종이와 표지 디자인까지 전반적인 스타일을 다시 설계했다. 예컨대 ‘노인과 바다’(민음사)를 기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본과 비교해 보자. 가로 길이는 같지만, 세로 길이는 오히려 더 짧아졌다. 표지는 글씨 크기 외엔 일반 단행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련되게 디자인해 ‘노인책’이란 인상을 걷어냈다.선정 도서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기존 큰글자책은 최신 화제작이나 실험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 특정 연령층을 전제로 고전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는 ‘첫 여름, 완주’(2025년),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2024년) 등 최근에 독자 반응이 좋았던 신간 10권이 포함됐다.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의 기획을 맡은 박정남 교보문고 점포마케팅 팀장은 “큰글자책은 고령자만을 위한 옵션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를 위한 읽기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영국 사례를 보면 글자가 클수록 청소년의 완독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젊은 독자들이 “눈이 빨리 피로해진다” “긴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경험을 자주 호소한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으로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읽기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큰글자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최근 오디오북도 더 이상 중장년층이나 시각 약자를 위한 보조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고 있다.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지난해 오디오북 이용 회원의 연령대는 40대(39.9%), 30대(27.2%), 50대(15.8%), 20대(10.9%) 순. 한 권의 책을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으로 바꿔 가며 읽을 수 있는 ‘페어링’ 기능 이용 횟수도 지난해 10월 기준 누적 1400만 회로 늘어났다. 종이책의 바코드를 찍고 페이지를 입력하면 읽던 지점부터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이어 볼 수 있는 기능이다.이정화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지적·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젊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체감하는 중장년층, 이른바 신중년 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국방부가 진중문고를 통해 장병 독서를 장려하듯, 신중년의 독서를 뒷받침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문화 복지”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정문을 열고 마주한 첫 매대에 이색적인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 ‘오십에 읽는 논어’(유노북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익숙하게 봤던 제목들. 그런데 이 책들은 제목이 유난히 또렷하게 읽혔다. 기존 책보다 훨씬 큰 글자. 교보문고가 최근 출판사들과 협업해 선보인 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다.큰글자책은 출판계에서 오랫동안 ‘필요하지만 드러내고 싶진 않은’ 책으로 인식돼 왔다. 크고 빳빳한 외형 탓에 “교과서 같다”는 인상까지 줬다. 도서관에서도 ‘실버 도서’라며 별도 코너에 비치된 채 고령층만을 위한 특수 포맷으로 여겨졌다. 가격도 일반 책보다 2~3배 비쌌다.이런 탓에 시중 서점에선 취급 자체가 흔치 않았던 큰글자책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큰글자책을 특정 연령용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독자를 포괄하는 ‘읽기 환경의 선택지’로 재정의하는 분위기다. 오디오북 역시 하나의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연령대들이 즐기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 ‘이지페이지’는 단순히 글자 크기만 키운 게 아니다. 행간과 자간, 종이와 표지 디자인까지 전반적인 스타일을 다시 설계했다. 예컨대 ‘노인과 바다’(민음사)를 기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본과 비교해보자. 가로 길이는 같지만, 세로 길이는 오히려 더 짧아졌다. 표지는 글씨 크기 외엔 일반 단행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련되게 디자인해 ‘노인책’이란 인상을 걷어냈다.선정 도서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기존 큰글자책은 최신 화제작이나 실험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 특정 연령층을 전제로 고전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는 ‘첫 여름, 완주’(2025년),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2024년) 등 최근에 독자 반응이 좋았던 신간 10권이 포함됐다.큰글자책 시리즈 ‘이지페이지’의 기획을 맡은 박정남 교보문고 점포마케팅 팀장은 “큰글자책은 고령자만을 위한 옵션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를 위한 읽기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영국 사례를 보면 글자가 클수록 청소년의 완독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젊은 독자들이 “눈이 빨리 피로해진다” “긴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경험을 자주 호소한다.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으로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읽기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는 큰글자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최근 오디오북도 더 이상 중장년층이나 시각 약자를 위한 보조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고 있다.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지난해 오디오북 이용 회원의 연령대는 40대(39.9%), 30대(27.2%), 50대(15.8%), 20대(10.9%) 순. 한 권의 책을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으로 바꿔가며 읽을 수 있는 ‘페어링’ 기능 이용 횟수도 지난해 10월 기준 누적 1400만 회로 늘어났다. 종이책의 바코드를 찍고 페이지를 입력하면 읽던 지점부터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이어볼 수 있는 기능이다.이정화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지적·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젊지만 물리적인 한계를 체감하는 중장년층, 이른바 신중년 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국방부가 진중문고를 통해 장병 독서를 장려하듯, 신중년의 독서를 뒷받침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문화복지”라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위수정 소설가(49·사진)의 단편소설 ‘눈과 돌멩이’가 제49회 이상문학상 대상에 27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20년 가까이 느슨하면서도 각별한 우정을 나눈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뤘다. 심사위원인 최진영 소설가는 “숨겨둔 비밀이 많아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며 “상반되는 개념과 감정을 세련되게 뒤섞어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위 작가는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중편소설 ‘무덤이 조금씩’으로 등단했다.우수작에는 김혜진의 ‘관종들’과 성혜령의 ‘대부호’, 이민진의 ‘겨울의 윤리’, 정이현의 ‘실패담 크루’, 함윤이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등 5편이 뽑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극장 책방’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조금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관객들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앉아 3000석 규모의 객석을 바라보며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이색적인 공연 ‘리딩&리스닝 스테이지’가 열렸다. 무대 한편에는 시집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박연준 시인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신이인 시인의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등 시집 27권이 올해 세종문화회관 공연 27편과 일대일로 짝지어 소개됐다. 90분간 이어진 공연 동안 존 케이지의 ‘풍경 속에서’,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 같은 음악이 흐르며 무대를 채웠다. 이날 오후 2시 공연에 입장한 관객 60여 명은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시집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공연 직전까지 사진을 찍던 이들도 이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시와 음악에 집중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명상하듯 앉아 있는 사람, 시집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시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고명재 시인도 연사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시 ‘등’과 ‘노랑’을 낭송했다. 고 시인은 “호주 시드니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할 때 이만한 대형 극장에서 청소기를 돌린 적이 있다”며 “아무도 없는 새벽, 혼자 무대에 올라섰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라는 열렬한 행위가 끝난 뒤의 텅 빈 공간은, 그 자체로 시를 쓰는 마음과 닮아 있다”고 덧붙였다. 휴가 마지막 날 일정으로 공연장을 찾았다는 이은희 씨(52)는 “세종문화회관의 1년 주요 공연을 연초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며 “특히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사랑의 시인’ 고명재 시인과 연결한 구성은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극장 책방’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선 조금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다. 관객들이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앉아, 3000석 규모의 객석을 바라보며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이색적인 공연 ‘리딩&리스닝 스테이지’가 열렸다.무대 한편에는 시집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박연준 시인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신이인 시인의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등 시집 27권이 올해 세종문화회관 공연 27편과 일대일로 짝지어 소개됐다. 90분간 이어진 공연 동안 존 케이지의 ‘풍경 속에서’,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 같은 음악이 흐르며 무대를 채웠다.이날 오후 2시 공연에 입장한 관객 60여 명은 서가에서 마음에 드는 시집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공연 직전까지 사진을 찍던 이들도 이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시와 음악에 집중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명상하듯 앉아 있는 사람, 시집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시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고명재 시인도 연사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시 ‘등’과 ‘노랑’을 낭송했다. 고 시인은 “호주 시드니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할 때 이만한 대형 극장에서 청소기를 돌린 적이 있다”며 “아무도 없는 새벽, 혼자 무대에 올라섰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라는 열렬한 행위가 끝난 뒤의 텅 빈 공간은, 그 자체로 시를 쓰는 마음과 닮아 있다”고 덧붙였다.휴가 마지막 날 일정으로 공연장을 찾았다는 이은희 씨(52)는 “세종문화회관의 1년 주요 공연을 연초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며 “특히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을 ‘사랑의 시인’ 고명재 시인과 연결한 구성은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인공지능(AI) 시대에 얼굴과 목소리를 지킨다는 것은 각 사람 안에 새겨진 신의 흔적을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황 레오 14세(사진)가 AI가 갈수록 인간의 삶에 깊게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24일(현지 시간)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5월 17일 제60차 ‘세계 소통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메시지에서 AI를 주요한 화두로 삼았다. 교황은 “기술 혁신이 인간의 삶을 점점 더 깊이 형성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레오 14세는 “얼굴과 목소리는 모든 사람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간의 정체성과 관계의 기초를 이룬다”며 “이런 목소리와 얼굴, 감정까지 모방할 수 있는 AI 기술은 인간 소통의 본질적 차원을 변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또 숙고보다 즉각적인 감정 반응을 부추기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 대한 AI의 악영향도 우려했다. AI로 인한 알고리즘 구조가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키고 사회적 양극화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