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84

추천

여러분이 장바구니에 담은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6-04-25~2026-05-25
미술32%
역사22%
문화 일반18%
인사일반13%
문학/출판9%
음악4%
언론2%
  • 나폴레옹의 자비와 전쟁의 참혹함 동시에 담다

    1807년 2월,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러시아·프로이센 연합군이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충돌했다. 나폴레옹 전쟁 가운데 가장 참혹했던 전투로 꼽히는 ‘아일라우 전투’다. 마지막까지 전장을 점거한 프랑스군이 승리를 주장했으나 양측 모두 피해가 막대했다. 프랑스 내부에서 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나폴레옹은 ‘프로파간다 그림’을 명령했다.‘아일라우 전장의 나폴레옹’은 이처럼 정치적 의도를 품고 탄생했다. 전투 직후 나폴레옹은 루브르박물관에 선전화를 그릴 화가를 섭외하도록 지시했고, 공모전을 거쳐 앙투안 장 그로(1771~1835)가 붓을 잡았다. 이 그림은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루브르박물관 소장품(가로세로 7.8X5.2m)을 그리기 전에 그린 소형 버전(가로세로 1.45X1.04m)으로 여겨진다.작품은 나폴레옹의 위대함과 자비로움을 부각해서 보여준다. 화면 중앙에선 갈색 말을 탄 나폴레옹이 프랑스 군의관들의 치료를 살피고 있다. 나폴레옹의 손은 마치 병사들을 축복하는 듯한 자세로 뻗어 있어, 언뜻 구세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은 선전을 수행하는 동시에 전쟁의 참혹함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 영웅 역사화들과 달랐다. 고전주의 영웅 역사화처럼 숭고한 질서와 승리를 그리면서도, 화가는 전장의 참혹함과 감정적 혼란을 회피하지 않았다. 관람객의 시선이 바로 닿는 화면 전경에는 시체와 부상자들을 그려넣었는데, 신체가 절단돼 고통스러워하거나 미쳐가는 듯한 표정이 생생히 묘사됐다. 나폴레옹 재단 측은 “승리의 어두운 면을, 거의 처음으로 그 추한 현실 그대로 보여준 그림”이라고 평가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3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 ‘잡음’을 재료삼아, 진동으로 존재 연결

    신경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삼나무 구조물. 화음도 불협화음도 아닌 여러 성부의 허밍이 전시실을 메웠다. 구조물 위에 걸터앉자, 허밍에 맞춰 변화하는 진동이 몸을 울렸다. 태풍에 무너진 숲처럼 보이던 전시실에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22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2인전 ‘어긋난 파동, 흔들리는 시간’엔 대형 설치미술 ‘플렉서스(리좀) 서울’이 설치돼 있다. 주파수와 불협화음 등 통상 ‘음악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소리를 재료 삼아 서로 낯선 관객들을 파동으로 연결한 작품. 제목인 리좀(rhyzome)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위계 없이 다중적으로 연결돼 의미를 만드는 구조를 가리킨다. 이번 전시는 ‘노이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흔히 불규칙성이나 예상 밖 변수는 제거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새로운 의미와 관계가 생겨날 틈이 될 수도 있다고 본 것. ‘플렉서스(리좀) 서울’을 만든 노르웨이 출신 작가 카밀 노먼트는 아르코미술관 고유의 ‘잡음’인 주파수를 측정한 뒤, 그에 맞는 허밍과 진동을 소프트웨어가 무작위 생성하도록 설계했다. 노먼트 작가는 20일 미술관에서 열린 공개회에서 “진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부터 거대한 행성에 이르는 모든 존재를 상호 연결하며 힘을 발산하는 에너지 그 자체”라고 밝혔다. 이어 “전시 기간에는 매분 매초 다른 소리와 진동이 생성될 예정”이라며 “무언가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성장하며, 형태를 재구성하는 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출품작인 ‘동시’ 연작은 노이즈 없는 완성본을 ‘불완전한 것’으로 본다. 전시실에서 동시 재생되는 7종의 영상은 서로 다른 직군의 영화계 종사자가 1명씩 등장해 영화 제작 현실, 소회 등을 끊임없이 얘기한다. 관객은 어느 한 화면에 눈과 귀를 고정하려 해보지만, 나머지 영상들이 섞여 만들어진 잡음 때문에 몰입이 쉽지 않다. 설령 노이즈를 무시하는 데 성공해도, 다른 직군의 이야기를 놓쳤으니 ‘한 편의 영화’는 완성되기 어렵다. 이를 만든 오민 작가는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과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이 ‘답을 모른 채 수많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는 우리 일상’과 닮았다”고 했다. 그에게 촬영 현장은 여러 사람과 기계가 제각각 노이즈를 만들며 촉박하게 돌아가는 장소이고, 감독은 그 한복판에서 결과도 모르고 오케이를 외쳐야 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말처럼 “어떤 쇼트가 만들어진 이유를 사후에 발견해 가는 과정”이 삶일지도 모른다. 7월 19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16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약을 복용하십니까, 독을 복용하십니까

    남편이 마실 술에 약을 타서 살해를 시도한 사건이 이달 알려져 떠들썩하다. 살인미수 혐의자가 술에 섞었다고 진술한 약물은 ‘벤조디아제핀계’ 물질. 앞서 논란이 된 ‘강북 모텔 연쇄살인범’이 범행에 쓴 성분도 이것이다.하지만 벤조디아제핀계가 처음부터 ‘독’이었던 건 아니다. 원래는 불면증과 불안장애 완화, 경련 치료 등의 목적으로 개발됐다. 향정신성의약품인 ‘케타민’도 원래 용도와 다르게 쓰이며 오해를 받고 있다. 2023년 ‘강남 납치 살해 사건’에 쓰이면서 국내에선 범죄에 쓰이는 약물이란 오명을 얻었지만, 원래 용도는 마취제 겸 진통제다. 1970년대베트남 전쟁에선 수많은 미군 부상병을 치료하기도 했다.의약품 개발 분야를 연구해 온 경상대 약대 교수가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16세기 독일계 약학자 파라셀수스가 남긴 “약이 독이고, 독이 약이다. 중요한 건 양이다”라는 명언을 인용하면서 사용법에 따라 인류를 살리거나 죽였던 여러 약물을 살폈다. 프로포폴 같은 전문의약품부터 전쟁터에서 쓰이는 생화학무기,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멀미약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사례를 위트 있는 문체로 다뤘다.미국 켄터키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약물 부작용으로 숨진 사람은 1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기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례(4만여 명)의 약 4배에 이른다. ‘심각한 약물 부작용’을 겪은 사람은 무려 125만 명이었다. 집집마다 상비약으로 갖추고 있는 타이레놀조차 술과 함께 먹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니 이런 수치가 놀랍지만은 않다.건강기능식품이 사람을 죽인 대목에선 최근 거의 맹목적으로 변한 ‘건기식 열풍’을 돌아보게 된다. 1974년 영국 런던에서 48세의 한 남성이 죽은 채 발견됐다. 검시관이 밝힌 사망 원인은 “당근 주스 중독”. 각별한 건강식품 애호가였던 그는 죽기 전 열흘간 매일 당근 주스 4L를 마셨다고 한다. 거기에다 당근에 풍부한 비타민A를 700만 단위(IU)씩 먹었다. 하버드대 기준 성인 남성의 일일 권장량(3000IU)을 터무니없이 초과한 양이다.저자는 이처럼 약이 독이 되기도 하는 이유를 ‘오랜 세월에 걸쳐 설계된 인체 시스템의 복잡성’에서 찾는다. “섬세하고 신비한 우리 몸을 고작 수백 년에 걸친 과학의 산물로 조절해 보겠다는 게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이며 “생로병사의 흐름을 따라잡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복용해야 할 약들은 대부분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책은 약물의 오남용을 막을 치밀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화학무기를 ‘살포’했다. 앞서 1899년 체결된 헤이그협약의 화학무기 ‘발사’ 금지 조항을 교묘하게 피한 꼼수였다. 정교하지 못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는 이처럼 실제 역사 속에 여럿 있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이 도처에 넘쳐나는 시대, 약물로 인해 생명이 위협받는 일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제도가 더욱 시급해 보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핑크퐁 아기상어’ 10억회 이상 재생… 캐릭터 IP-동요 중 세계 최초 달성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동요 ‘핑크퐁 아기상어’가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10억 회 이상 재생돼 ‘빌리언스 클럽’에 올랐다. 캐릭터 지식재산권(IP)으로는 최초이며, 어린이 노래 가운데서도 처음이다. 더핑크퐁컴퍼니는 “2017년 7월 발표된 ‘핑크퐁 아기상어’가 스포티파이에서 10억 회 이상 재생된 것으로 집계됐다”며 “캐릭터와 콘텐츠의 힘으로 만들어낸 기록”이라고 22일 밝혔다. 이 노래는 최근 1년 동안 총 1억3700만 회 재생됐다. 하루 약 38만 회꼴이다. 누적 재생 횟수 10억 회 이상인 곡들이 포함되는 빌리언스 클럽에는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에드 시런,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대표곡이 올라 있다. 이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영상 ‘핑크퐁 아기상어 체조’(Baby Shark Dance)도 유튜브에서 169억 회가 조회돼 65개월 연속 세계 조회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아기상어, 스포티파이 빌리언즈 클럽 입성…동요 최초 기록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동요 ‘핑크퐁 아기상어’가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10억 회 이상 재생돼 ‘빌리언즈 클럽’에 올랐다. 캐릭터 지식재산권(IP)으로는 최초이며, 어린이 노래 가운데서도 처음이다.더핑크퐁컴퍼니는 “2017년 7월 발표된 ‘핑크퐁 아기상어’가 스포티파이에서 10억 회 이상 재생된 것으로 집계됐다”며 “캐릭터와 콘텐츠의 힘으로 만들어낸 기록”이라고 22일 밝혔다. 이 노래는 최근 1년 동안 총 1억 3700만 회 재생됐다. 하루 약 38만 회꼴이다.누적 재생 횟수 10억 회 이상인 곡들이 포함되는 빌리언즈 클럽에는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에드 시런,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대표곡이 올라 있다.이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영상 ‘핑크퐁 아기상어 체조’(Baby Shark Dance)도 유튜브에서 169억회가 조회돼 65개월 연속 세계 조회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2
    • 좋아요
    • 코멘트
  • 건기식 애호가가 숨졌다…매일 당근 주스 4L와 ‘이것’ 먹었다는데

    남편이 마실 술에 약을 타서 살해를 시도한 사건이 이달 알려져 떠들썩하다. 살인미수 혐의자가 술에 섞었다고 진술한 약물은 ‘벤조디아제핀계’ 물질. 앞서 논란이 된 ‘강북 모텔 연쇄살인범’이 범행에 쓴 성분도 이것이다.하지만 벤조디아제핀계가 처음부터 ‘독’이었던 건 아니다. 원래는 불면증과 불안장애 완화, 경련 치료 등의 목적으로 개발됐다. 향정신성의약품인 ‘케타민’도 원래 용도와 다르게 쓰이며 오해를 받고 있다. 2023년 ‘강남 납치 살해 사건’에 쓰이면서 국내에선 범죄에 쓰이는 약물이란 오명을 얻었지만, 원래 용도는 마취제 겸 진통제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선 수많은 미군 부상병을 치료하기도 했다.의약품 개발 분야를 연구해 온 경상대 약대 교수가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16세기 독일계 약학자 파라셀수스가 남긴 “약이 독이고, 독이 약이다. 중요한 건 양이다”라는 명언을 인용하면서 사용법에 따라 인류를 살리거나 죽였던 여러 약물을 살폈다. 프로포폴 같은 전문의약품부터 전쟁터에서 쓰이는 생화학무기,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멀미약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사례를 위트 있는 문체로 다뤘다.미국 켄터키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약물 부작용으로 숨진 사람은 1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기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례(4만여 명)의 약 4배에 이른다. ‘심각한 약물 부작용’을 겪은 사람은 무려 125만 명이었다. 집집마다 상비약으로 갖추고 있는 타이레놀조차 술과 함께 먹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니 이런 수치가 놀랍지만은 않다.건강기능식품이 사람을 죽인 대목에선 최근 거의 맹목적으로 변한 ‘건기식 열풍’을 돌아보게 된다. 1974년 영국 런던에서 48세의 한 남성이 죽은 채 발견됐다. 검시관이 밝힌 사망 원인은 “당근 주스 중독”. 각별한 건강식품 애호가였던 그는 죽기 전 열흘간 매일 당근 주스 4L를 마셨다고 한다. 거기에다 당근에 풍부한 비타민A를 700만 단위(IU)씩 먹었다. 하버드대 기준 성인 남성의 일일 권장량(3000IU)을 터무니없이 초과한 양이다.저자는 이처럼 약이 독이 되기도 하는 이유를 ‘오랜 세월에 걸쳐 설계된 인체 시스템의 복잡성’에서 찾는다. “섬세하고 신비한 우리 몸을 고작 수백 년에 걸친 과학의 산물로 조절해 보겠다는 게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이며 “생로병사의 흐름을 따라잡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복용해야 할 약들은 대부분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책은 약물의 오남용을 막을 치밀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화학무기를 ‘살포’했다. 앞서 1899년 체결된 헤이그 협약의 화학무기 ‘발사’ 금지 조항을 교묘하게 피한 꼼수였다. 정교하지 못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는 이처럼 실제 역사 속에 여럿 있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이 도처에 넘쳐나는 시대, 약물로 인해 생명이 위협받는 일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제도가 더욱 시급해 보인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2
    • 좋아요
    • 코멘트
  • 어두운 수풀 속 흰 드레스의 여인… 상징으로 인물을 드러내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어두운 수풀에 안겨 있다. 표정과 자세는 억지로 힘을 준 흔적 없이 자연스럽고 담담하다. 정면을 살짝 비껴간 눈빛, 침엽수 이파리에 스며들 듯 기댄 모습이 여인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기존 초상화들이 정형화된 미감과 고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것과 사뭇 다르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젊은 여인의 초상’은 귀족적 이상미를 강조하던 18세기 말 프랑스 초상화의 흐름에서 벗어난 사례로 꼽힌다. 이를 그린 오라스 베르네(1789∼1863)는 대상을 이상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노력한 프랑스 화가. 고전주의를 칭송한 아카데미 미술의 고상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껴, 일상적 소재와 친숙한 시선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19세기 전후 프랑스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서정적이고 상징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낭만주의가 확산했다. 이러한 풍조는 ‘젊은 여인의 초상’에도 영향을 줬다. 작품을 소장한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은 “초상화의 배경이 실내가 아닌 야생인 점, 여인을 둘러싼 향나무가 순결의 상징이라는 점 등이 인물의 내면과 상황을 드러내는 요소로 쓰였다”고 설명한다. 그림에는 이 밖에도 흥미로운 상징이 곳곳에 숨어 있다. 여인이 손에 든 제비꽃은 전통적으로 정절을 뜻하는 자연물이다. 흰색 드레스와 분홍 리본, 허리띠는 젊고 순수한 이미지를 환기하는데, 제비꽃 및 향나무와 결합돼 여인이 약혼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는 여성을 그렸지만, 다양한 상징 언어를 통해 인물의 성품과 처지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여인 손에 제비꽃, 주변엔 향나무…초상화에 숨겨진 메시지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어두운 수풀에 안겨 있다. 표정과 자세는 억지로 힘을 준 흔적 없이 자연스럽고 담담하다. 정면을 살짝 비껴간 눈빛, 침엽수 이파리에 스며들 듯 기댄 모습이 여인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기존 초상화들이 정형화된 미감과 고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것과 사뭇 다르다.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젊은 여인의 초상’은 귀족적 이상미를 강조하던 18세기 말 프랑스 초상화의 흐름에서 벗어난 사례로 꼽힌다. 이를 그린 오라스 베르네(1789~1863)는 대상을 이상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노력한 프랑스 화가. 고전주의를 칭송한 아카데미 미술의 고상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껴, 일상적 소재와 친숙한 시선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19세기 전후 프랑스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서정적이고 상징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낭만주의가 확산했다. 이러한 풍조는 ‘젊은 여인의 초상’에도 영향을 줬다. 작품을 소장한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은 “초상화의 배경이 실내가 아닌 야생인 점, 여인을 둘러싼 향나무가 순결의 상징이라는 점 등이 인물의 내면과 상황을 드러내는 요소로 쓰였다”고 설명한다.그림에는 이밖에도 흥미로운 상징이 곳곳에 숨어있다. 여인이 손에 든 제비꽃은 전통적으로 정절을 뜻하는 자연물이다. 흰색 드레스와 분홍 리본, 허리띠는 젊고 순수한 이미지를 환기하는데, 제비꽃 및 향나무와 결합돼 여인이 약혼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는 여성을 그렸지만, 다양한 상징 언어를 통해 인물의 성품과 처지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1
    • 좋아요
    • 코멘트
  • 그때도 백성 민원처리 분주… ‘조선판 서울시청’ 한성부의 하루

    ‘떼인 돈 대신 받아주기’, ‘무허가 도축 단속하기’, ‘도성 안팎에서 발견된 시신 조사하기’…. 약 500년간 조선의 수도를 관할한 관청 한성부(漢城府)는 1년 365일 쏟아지는 민원과 업무로 분주했다. 오죽하면 여러 사람이 숨 가쁘게 달려드는 모습을 비유한 “한성부에 대가리 터진 놈 달려들 듯”이란 속담이 생겨났을까. 총 170여 칸 규모의 청사는 언제나 “구름처럼 쌓인 문서와 장부로 가득”(강희맹 문집 ‘사숙재집·私淑齋集’)했고, 관원들은 여름철엔 이르면 오전 5시부터 출근해 오후 6∼7시가 돼야 퇴청했다고 한다. 오늘날 사회 풍경과도 닮은 한성부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한 기획전 ‘한성부입니다’가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한성부는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이듬해부터 1910년까지 한양도성 및 중앙 행정기관으로 운영된 관청. 전시는 박물관이 약 30년간 수집한 관련 유물 90건을 통해 한성부의 역사와 사람들을 조명했다. 전시물 가운데 대다수는 고문서지만, 전시는 생생한 이야깃거리에 초점을 맞춰 주목도를 높였다. 1774년 한성부 주민 이윤경에게 발급된 호적 등본 ‘준호구(准戶口)’에는 206세 된 노비 ‘오월이’가 등장한다. 김혜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주인이 재산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에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아 장수한 ‘서류상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로 한성부를 짚어본 구성도 흥미롭다. 14세기 명재상 황희와 16세기 행주대첩을 이끈 장수 권율, 을사늑약에 항거한 대한제국의 관료 민영환은 모두 한성부 수장인 판윤(判尹)을 지냈다. 조선시대 한성부 판윤은 정2품의 고위직이자 육조판서로 가는 관문이었다. 그러나 당대 관료들 사이에선 서로 떠넘기고 싶은 ‘기피 벼슬’이었나 보다. ‘숫자로 보는 한성부 판윤’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85일에 불과했다. 1890년엔 판윤이 무려 25차례 바뀌기도 했다. 김 연구사는 “사직이 잦아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었을 정도”라며 “비교적 조정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평안감사 등과 달리 임금의 시야 안에서 막중한 책임과 업무를 맡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성부의 행정 체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한성부의 초대 수장 성석린이 1402년 판개성유후사사(判開城留後司事)로 임명될 당시의 문서인 ‘성석린 고신왕지(告身王旨)’(보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관청 발급 공증문서인 ‘1379년 한양부 사급입안(斜給立案)’ 등이 관람객을 만난다. 7월 12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달빛 아래 경복궁서 만나는 ‘세종의 음악’

    해가 저문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세종대왕의 음악 철학을 재해석한 궁중음악극이 펼쳐진다. 국립국악원은 20일 “오늘부터 매주 수∼토요일 경복궁에서 야간 상설공연 ‘소리의 씨앗’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공연은 슬럼프에 빠진 현대의 음악가가 시간을 거슬러 세종과 만나 교류한다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악귀를 몰아내고자 췄던 처용무를 비롯해 행진곡 대취타와 봉래의, 춘앵전 등 무용 및 성악, 기악곡으로 구성됐다. 연극 ‘맥베스’ 등을 선보였던 양정웅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번 공연은 경복궁 야간 개방 일정에 맞춰 근정전과 경회루 사이의 수정전(보물)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우선 다음 달 5일까지 10회 공연(6월 3일 제외)을 한 뒤, 다시 9월 2일부터 10월 2일까지 15회에 걸쳐 관람객과 만난다. 국립국악원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처용무·대취타·춘앵전…경복궁서 만나는 세종대왕의 음악 철학

    해가 저문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서 세종대왕의 음악 철학을 재해석한 궁중음악극이 펼쳐진다.국립국악원은 20일 “오늘부터 매주 수~토요일 경복궁에서 야간 상설공연 ‘소리의 씨앗’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공연은 슬럼프에 빠진 현대의 음악가가 시간을 거슬러 세종과 만나 교류한다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악귀를 몰아내고자 췄던 처용무를 비롯해 행진곡 대취타와 봉래의, 춘앵전 등 무용 및 성악, 기악곡으로 구성됐다. 연극 ‘맥베스’ 등을 선보였던 양정웅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이번 공연은 경복궁 야간 개방 일정에 맞춰 근정전과 경회루 사이의 수정전(보물)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우선 다음 달 5일까지 10회 공연(6월 3일 제외)을 한 뒤, 다시 9월 2일부터 10월 2일까지 15회에 걸쳐 관람객과 만난다. 국립국악원 홈페이지(gugak.go.kr)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0
    • 좋아요
    • 코멘트
  • 떼인 돈 받아주고, 변사체 조사까지…‘기피 벼슬’ 된 한성부 판윤

    ‘떼인 돈 대신 받아주기’, ‘무허가 도축 단속하기’, ‘도성 안팎에서 발견된 시신 조사하기’….약 500년간 조선의 수도를 관할한 관청 한성부(漢城府)는 1년 365일 쏟아지는 민원과 업무로 분주했다. 오죽하면 여러 사람이 숨 가쁘게 달려드는 모습을 비유한 “한성부에 대가리 터진 놈 달려들 듯”이란 속담이 생겨났을까. 총 170여 칸 규모의 청사는 언제나 “구름처럼 쌓인 문서와 장부로 가득”(강희맹 문집 ‘사숙재집·私淑齋集’)했고, 관원들은 여름철엔 이르면 오전 5시부터 출근해 오후 6~7시가 돼야 퇴청했다고 한다.오늘날 사회 풍경과도 닮은 한성부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한 기획전 ‘한성부입니다’가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한성부는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이듬해부터 1910년까지 한양도성 및 중앙 행정기관으로 운영된 관청. 전시는 박물관이 약 30년간 수집한 관련 유물 90건을 통해 한성부의 역사와 사람들을 조명했다.전시물 가운데 대다수는 고문서지만, 전시는 생생한 이야깃거리에 초점을 맞춰 주목도를 높였다. 1774년 한성부 주민 이윤경에게 발급된 호적 등본 ‘준호구(准戶口)’에는 206살 된 노비 ‘오월이’가 등장한다. 김혜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주인이 재산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에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아 장수한 ‘서류상 인물’”이라고 설명했다.‘숫자’로 한성부를 짚어본 구성도 흥미롭다. 14세기 명재상 황희와 16세기 행주대첩을 이끈 장수 권율, 을사늑약에 항거한 대한제국의 관료 민영환은 모두 한성부 수장인 판윤(判尹)을 지냈다. 조선시대 한성부 판윤은 정2품의 고위직이자 육조판서로 가는 관문이었다.그러나 당대 관료들 사이에선 서로 떠넘기고 싶은 ‘기피 벼슬’이었나보다. ‘숫자로 보는 한성부 판윤’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85일에 불과했다. 1890년엔 판윤이 무려 25차례 바뀌기도 했다. 김 연구사는 “사직이 잦아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었을 정도”라며 “비교적 조정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평안감사 등과 달리 임금의 시야 안에서 막중한 책임과 업무를 맡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한성부의 행정 체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한성부의 초대 수장 성석린이 1402년 판개성유후사사(判開城留後司事)로 임명될 당시의 문서인 ‘성석린 고신왕지(告身王旨)’(보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관청 발급 공증문서인 ‘1379년 한양부 사급입안(斜給立案)’ 등이 관람객을 만난다. 7월 12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0
    • 좋아요
    • 코멘트
  • ‘국보 태극기’ 나올까… ‘보물’ 3점 승격 검토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 등 옛 태극기의 국보 승격이 검토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유산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태극기는 3건으로, 하나라도 승격하면 사상 첫 태극기 국보가 된다. 19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국가유산위원회(전 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달 회의를 열고 태극기 3건을 국보로 승격하기 위한 조사 계획을 보고했다. 조사 대상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데니 태극기’와 독립기념관의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의 ‘서울 진관사(津寬寺) 태극기’다. 셋 다 2021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국보 지정 논의는 최근 문화재계 안팎에서 “태극기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어나며 활발해졌다. 위원회는 “재평가 요구에 따라 올 1월과 3월에 관련 전문가 자문 회의를 가졌다”며 “이르면 연내 조사를 마친 뒤 국보 지정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63빌딩서 문 여는 ‘퐁피두’ 피카소부터 김환기까지… 개관전부터 압도적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한화문화재단이 협력한 ‘퐁피두센터 한화’가 19일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퐁피두센터가 해외에 거점을 마련한 것은 스페인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다. 다음 달 4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정식으로 문을 여는 미술관은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 피카소부터 들로네, 김환기까지개관전은 라인업부터 압도적이다. 1907년 태동한 큐비즘(Cubism·입체주의)의 원조 격인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부터 페르낭 레제, 후안 그리스 등 굵직한 작가 43명의 작품 91점을 선보인다. 퐁피두센터도 “지난 50년간 아시아에서 열린 가장 중요한 큐비즘 전시”라고 자부할 정도다. 퐁피두센터의 크리스티앙 브리앙 근대컬렉션 총괄 큐레이터는 “큐비즘은 20세기 초기의 아방가르드 운동이자, 이후 추상미술과 개념미술 등으로 이어지는 모든 미술을 파악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며 첫 전시의 의미를 강조했다. 특히 국내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대작들이 다수 공개돼 눈길을 끈다. 소니아 들로네의 가로세로 2.5m 크기 회화 ‘전기 프리즘’과 피카소가 발레 공연을 위해 가로 5m, 세로 3.9m 크기로 만든 ‘메르퀴르 발레 무대 막’이 대표적. 제2전시실에 마련된 ‘코리아 포커스’는 개관전에서 가장 눈여겨볼 코너다. 생전 “나는 세잔에게 미쳤다”고 고백한 화가 하인두를 비롯해 큐비즘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한국 작가 11명의 작품 21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김환기는 한국의 색채와 서정성을 큐비즘에 결합한 화가로, 변영원은 동양의 음양 사상을 기하학적 추상과 조합한 사례로 소개됐다. 조주현 퐁피두센터 한화 수석 큐레이터는 “당시 우리나라는 주로 일본을 통해 서구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예술을 접했기에, 단절에서 비롯한 번역과 변형으로 인해 독특한 근대성을 형성했다”며 “우리 미술을 세계적인 미술사의 맥락에서 읽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마티스 등 ‘야수주의’ 전시 이어져한화문화재단은 개관전을 시작으로 향후 4년간 매년 2차례씩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큐비스트’전이 끝나면 야수주의를 조명한 ‘마티스와 그 이후’가 열린다. 이후 초현실주의와 여성 추상미술 등의 사조도 각각 심층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마르크 샤갈과 바실리 칸딘스키 등 유명 작가별 단일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국내 미술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퐁피두센터 한화가 ‘맥구겐하임’(맥도널드와 구겐하임미술관 합성어)과 같은 ‘맥퐁피두’란 비판을 넘어설지도 관심거리다. 유명 미술관의 해외 거점들이 지나치게 프랜차이즈화한다는 지적도 나오기 때문이다. 본국에 집중된 결정권과 지나친 상업화, 서구 중심 미술사 재확산 등에 대한 우려는 해외에서도 적지 않았다. 퐁피두센터는 최근 해외 분관 확대에 속도를 올리는 모양새다. 2015년 스페인 말라가와 2019년 중국 상하이 이후, 올해는 이달 서울에 이어 11월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개관한다.이성수 한화문화재단 이사장은 “그간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퐁피두센터의 걸작을 최대한 선보이는 동시에 퐁피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할 것”이라며 “(운영권이 보장된) 4년 이후에도 협력을 지속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개관전은 10월 4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드디어 베일 벗은 ‘퐁피두센터 한화’… 피카소·김환기 대작 쏟아진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한화문화재단이 협력한 ‘퐁피두센터 한화’가 19일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퐁피두센터가 해외에 거점을 마련한 것은 스페인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다. 다음 달 4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정식으로 문을 여는 미술관은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 피카소부터 들로네, 김환기까지개관전은 라인업부터 압도적이다. 1907년 태동한 큐비즘(Cubism·입체주의)의 원조 격인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부터 페르낭 레제, 후안 그리스 등 굵직한 작가 43명의 작품 91점을 선보인다. 퐁피두센터도 “지난 50년간 아시아에서 열린 가장 중요한 큐비즘 전시”라고 자부할 정도다. 퐁피두센터의 크리스티앙 브리앙 근대컬렉션 총괄 큐레이터는 “큐비즘은 20세기 초기의 아방가르드 운동이자, 이후 추상미술과 개념미술 등으로 이어지는 모든 미술을 파악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첫 전시의 의미를 강조했다.특히 국내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대작들이 다수 공개돼 눈길을 끈다. 소니아 들로네의 가로세로 2.5m 크기 회화 ‘전기 프리즘’과 피카소가 발레 공연을 위해 가로 5m, 세로 3.9m 크기로 만든 ‘메르퀴르 발레 무대 막’이 대표적. 이밖에 앙리 발랑시, 조르주 야쿨로프 등 다소 낯설지만 큐비즘이 어떻게 등장하고 확산했는지 잘 보여주는 이들의 대표작들도 상당하다.제2전시실에 마련된 ‘코리아 포커스’는 개관전에서 가장 눈여겨볼 코너다. 생전 “나는 세잔에게 미쳤다”고 고백한 화가 하인두를 비롯해 큐비즘에 영향받은 20세기 한국 작가 11명의 작품 21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김환기는 한국의 색채와 서정성을 큐비즘에 결합한 화가로, 변영원은 동양의 음양 사상을 기하학적 추상과 조합한 사례로 소개됐다.조주현 퐁피두센터 한화 수석 큐레이터는 “당시 우리나라는 주로 일본을 통해 서구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예술을 접했기에, 단절에서 비롯한 번역과 변형으로 인해 독특한 근대성을 형성했다”며 “우리 미술을 세계적인 미술사 맥락에서 읽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마티스 등 ‘야수주의’ 전시 이어져한화문화재단은 개관전을 시작으로 향후 4년간 매년 2차례씩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큐비스트’전이 끝나면 야수주의를 조명한 ‘마티스와 그 이후’가 열린다. 이후 초현실주의와 여성 추상미술 등 사조도 각각 심층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마르크 샤갈과 바실리 칸딘스키 등 유명 작가별 단일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제2전시실에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동시대 미술을 선보인다.국내 미술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퐁피두센터 한화가 ‘맥구겐하임’(맥도날드와 구겐하임미술관 합성어)과 같은 ‘맥퐁피두’란 비판을 넘어설지도 관심거리다. 유명 미술관의 해외 거점들이 지나치게 프랜차이즈화를 한다는 지적도 나오기 때문이다. 본국에 집중된 결정권과 지나친 상업화, 서구 중심 미술사 재확산 등에 대한 우려는 해외에서도 적지 않았다.퐁피두센터는 최근 해외 분관 확대에 속도를 올리는 모양새다. 2015년 스페인 말라가와 2019년 중국 상하이 이후, 올해는 이달 서울에 이어 11월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개관한다.이성수 한화문화재단 이사장은 “그간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퐁피두센터의 걸작을 최대한 선보이는 동시에 퐁피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할 것”이라며 “(운영권이 보장된) 4년 이후에도 협력을 지속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개관전은 10월 4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9
    • 좋아요
    • 코멘트
  • 첫 ‘국보’ 태극기 나올까…‘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3건 검토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 등 옛 태극기의 국보 승격이 검토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유산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태극기는 3건으로, 하나라도 승격하면 사상 첫 태극기 국보가 된다.19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국가유산위원회(전 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달 회의를 열고 태극기 3건을 국보로 승격하기 위한 조사 계획을 보고했다. 조사 대상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데니 태극기’와 독립기념관의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의 ‘서울 진관사(津寬寺) 태극기’다. 셋 다 2021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국보 지정 논의는 최근 문화재계 안팎에서 “태극기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어나며 활발해졌다. 위원회는 “재평가 요구에 따라 올 1월과 3월에 관련 전문가 자문 회의를 가졌다”며 “이르면 연내 조사를 마친 뒤 국보 지정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후보에 오른 세 태극기는 모두 역사적 상징성이 뚜렷하다. 1890년 이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니 태극기는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고종의 외교 고문이던 미국인 오언 니커슨 데니(1838~1900)가 1891년 귀국하며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기증했다. 가로 262㎝, 세로 182.5cm로 현존하는 옛 태극기 중 가장 크다.1919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진관사 태극기는 당시 항일 의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일장기를 개조해 태극기를 만든 유일한 사례로, 일장기에 먹물로 태극과 4괘를 덧칠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의 김구 주석이 “조국 독립을 완성하자”는 내용의 글귀를 써서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본명 샤를 미우스)에게 준 것이다. 매우사 신부는 미국에서 도산 안창호(1878∼1938) 부인에게 태극기를 전했고,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유일하게 제작 시기가 명확한 태극기로도 가치가 크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9
    • 좋아요
    • 코멘트
  • “절떄 가지매새얘”… 외국인은 못읽는 ‘한글 암호’의 비밀

    ‘南 1(과) 3(놔) 5(돠) 7(롸)….’ 191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본 헌병에게 발각된 암호부(暗號簿)의 일부다. 비밀 결사 규약과 함께 발견된 이 암호부엔 한글 자모를 숫자와 동서남북을 나타내는 방위 부호로 바꾸는 방식이 담겼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꿈꾼 비밀 결사 조직들이 한글을 암호화한 서신을 통해 정보를 은밀히 주고받았다는 걸 보여 준다. 국립한글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은 올해 한글날 100주년을 맞아 한글이 가진 다채로운 가능성을 다룬 기획전 ‘가나다락―글놀이 말놀이’를 최근 개막했다. 한글의 구조적 원리에서 비롯된 놀이와 암호 체계, 시대와 매체에 따라 변화해 온 말글 놀이의 세계를 고문서와 교재 등 자료 58건으로 조명했다.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 쓰기에 암호화에도 제격이다. 이연주 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한 음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자모를 사용해 한글 체계를 모르면 암호를 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 식당이나 숙소 후기에 “동얭인 챼뱰해는 낫쁜 싴땅 절떄 가지매새얘”처럼 일부러 자모를 바꾼 글이 올라오는 것도 한글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쓰면 외국어로는 자동번역이 되지 않지만 한글 사용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글 사용자는 단어의 형태와 소리를 하나의 감각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란 게 이 연구사의 설명이다. 초성, 중성, 종성을 조합하는 원리에서 착안한 놀이 교구도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1950년대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문틀’은 크기가 다른 원형 판 4장을 돌리면서 한글을 배우는 교구다. ‘자음판’ 1개와 ‘모음판’ 1개, ‘받침판’ 2개로 이뤄져 있어 각각을 돌려 맞추면서 관련 낱말은 물론 국경일이나 단위 환산 등 정보도 익힐 수 있다.전시에선 한글 학습과 카드놀이를 최초로 접목한 사례로 여겨지는 ‘자마춤딱지’ 복원본도 공개됐다. 자음·모음 카드를 사용해 낱말과 문장을 만들어 점수를 따는 놀이로, 1938년 국어 학자 정인승(1897∼1986)이 개발했다. 실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한글박물관이 신문과 잡지 등 여러 기록을 토대로 복원해 처음 선보였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글박물관은 증축 공사로 2028년 하반기까지 휴관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 종로구 민속박물관에서 8월 30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절떄 가지매새얘”…외국인은 못 읽는 ‘한글 암호’의 비밀

    ‘南 1(과) 3(놔) 5(돠) 7(롸)…’1919년 하얼빈역에서 일본 헌병에게 발각된 암호부(暗號簿)의 일부다. 비밀결사 규약과 함께 발견된 이 암호부엔 한글 자모를 숫자와 동서남북을 나타내는 방위 부호로 바꾸는 방식이 담겼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꿈꾼 비밀결사 조직들이 한글을 암호화한 서신을 통해 정보를 은밀히 주고받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국립한글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은 올해 한글날 100주년을 맞아 한글이 가진 다채로운 가능성을 다룬 기획전 ‘가나다락―글놀이 말놀이’를 최근 개막했다. 한글의 구조적 원리에서 비롯된 놀이와 암호 체계, 시대와 매체에 따라 변화해 온 말글 놀이의 세계를 고문서와 교재 등 자료 58건으로 조명했다.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쓰기에 암호화에도 제격이다. 이연주 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한 음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자모를 사용하기에 한글 체계를 모르면 풀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의 식당이나 숙소 후기에 “동얭인 챼뱰해는 낫쁜 싴땅 절떄 가지매새얘”처럼 일부러 자모를 바꾼 글이 올라오는 것도 한글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쓰면 외국어로는 자동번역이 되지 않지만 한글 사용자는 이해할 수 있다. “한글 사용자는 단어의 형태와 소리를 하나의 감각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는 게 이 연구사의 설명이다.초성, 중성, 종성을 조합하는 원리에서 착안한 놀이 교구도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1950년대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문틀’은 크기가 다른 원형 판 4장을 돌리면서 한글을 배우는 교구다. ‘자음판’ 1개와 ‘모음판’ 1개, ‘받침판’ 2개로 이뤄져 있어 각각을 돌려 맞추면서 관련 낱말은 물론 국경일이나 단위 환산 등 정보도 익힐 수 있다.전시에선 한글 학습과 카드놀이를 최초로 접목한 사례로 여겨지는 ‘자마춤딱지’ 복원본도 공개돼 눈길을 끈다. 자음·모음 카드를 사용해 낱말과 문장을 만들어 점수를 따는 놀이로, 1938년 국어 학자 정인승(1897~1986)이 개발했다.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한글박물관이 신문과 잡지 등 여러 기록을 토대로 복원해 처음 선보였다. 한글박물관(서울 용산구)은 증축공사로 2028년 하반기까지 휴관이고, 이번 전시는 서울 종로구 민속박물관에서 8월 30일까지 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8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정치부터 경제까지… 묵직한 ‘이슈 돌직구’

    한국과 대만은 동아시아에서 안보 불안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미중 경쟁과 북핵 위기, 대만해협 리스크 등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실제 분쟁이 터진 적은 없다. 두 국가의 반도체 산업이 멈추면 세계 경제에 비상이 걸려서다. “현대 안보의 최전선은 휴전선이 아닌 파운드리”인 셈이다. 채널A 시사프로그램 ‘김진의 돌직구쇼’를 15년간 진행 중인 기자이자 앵커인 저자가 정치·경제·사회 최신 이슈를 명료하고 친절하게 풀어냈다.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각각의 본질과 관련된 키워드를 제시해 심도와 가독성을 높였다. 예컨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방패’에선 ‘상호확증파괴’를, 버블경제에 관해선 ‘비이성적 과열’ 등을 중심에 두고 설명한다. 선거철마다 불거지는 두 거대 정당의 갈등의 원인도 정치·외교 분야를 오래 다뤄 온 입장에서 분석한다. 국내 정치권에서 협치가 사라지고, 눈살 찌푸려지는 대결만 반복되는 원인으로 사실상 양당제인 구조,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은 반드시 잃는 ‘제로섬 게임’을 든다. 나만 이득을 봐야 하는 상황에선 각자 ‘배신’을 택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는 해석이다. 저자는 “먼저 양보하는 쪽은 책임 있는 정치인이 아니라 패자로 낙인찍힌다”며 “한국 정치라는 링 위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멈추려면 플레이어들의 도덕성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게임의 법칙 그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8세 피아니스트 손세혁,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콩쿠르 우승

    피아니스트 손세혁(18)이 제77회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금호문화재단에 따르면 손세혁은 14일(현지 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폐막한 이 콩쿠르 피아노 부문 결선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d단조 Op.15를 연주해 1위를 했다. 3개 부문에서 특별상도 받았다. 우승 상금은 25만 크루나(약 1790만 원)다. 그는 “이번 콩쿠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며 “끝까지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다.1947년 창설된 이 콩쿠르는 매년 2가지 악기 부문으로 진행되며, 올해는 피아노와 플루트 부문이 열렸다.2021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손세혁은 이듬해 ‘영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낭만작품 최고 연주상’을 받았다.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 영국으로 건너가 예후디 메뉴인 스쿨을 나왔고, 현재 미국 콜번 스쿨 학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5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