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 여론조사’ 유튜브 등서 말하면… “선거법 위반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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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D-22]‘불법 여론조사’ 기승


#장면 1.

여론조사업체 A사는 지난해 12월 정치인 B 씨에게서 총선 지역구 후보자 적합도 여론조사를 의뢰받았다. 올 1월 초 두 차례 진행된 조사는 B 씨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먼저 A사가 설문에 사용한 데이터베이스(DB)는 B 씨에게서 건네받은 휴대전화 목록이었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 구분조차 없었다. 또 A사는 설문에서 후보자들의 경력을 알릴 때도 B 씨의 경력이 유리하게 문항을 만들었다. 이는 ‘전 계층을 대표할 수 없는 피조사자를 선정했고’, ‘특정 후보자에게 편향된 여론 조사를 설계한 것’으로 법 위반이다. 해당 지역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A사를 2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장면 2.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자로 나서는 C 씨는 1월 중순 한 정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본인이 여론조사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오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적이 없었고,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여론조사 결과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허위로 공표한 것이다. 여심위는 2월 해당 후보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여심위 관계자는 “유튜브의 매체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허위 여론조사를 공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후보자들도 불법 여론조사 공표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왜곡해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불법 선거여론조사에 대한 경고등이 다시 켜지고 있다. 정당과 정치인은 민심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기울이고, 유권자들은 내 표가 사표(死票)가 되지는 않을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며 가늠한다.

그러나 여론조사 기관이 아닌 곳이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대표성과 균형성에 현저히 문제가 있는 조사가 곳곳에서 공표되고 있다. 또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떠돌고 있다. 유권자와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에게 주의가 당부되는 이유다.


○ 불법 선거 여론조사의 진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불법 선거여론조사를 5대 중대 선거범죄 중 하나로 규정해 집중단속하고 있다. 특히 선거여론조사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중앙선관위 산하 기구인 여심위는 조사권과 고발권을 부여받아 불법 선거여론조사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6년 20대 총선과 달리 21대 총선에서는 △선거여론조사 등록제 △미등록 조사기관 및 정당, 후보자가 실시한 선거여론조사 공표 보도 금지 △휴대전화가상번호제 도입 등 각종 안전장치가 강화됐다.

이처럼 선거당국이 불법 여론조사 감시에 힘을 쏟는 건 선거철만 되면 ‘불량’ 여론조사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 경계령이 떨어졌다. 진보, 보수를 떠나 정치에 관심이 큰 유권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를 주시하는 지지층을 잡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 여심위 관계자는 “바뀐 선거법에 따라 여심위 홈페이지에 공식 등록된 여론조사만 공표(보도)할 수 있지만 아직 이 사실을 잘 모르는 후보자와 유권자가 많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지인을 동원해 연령과 지역을 거짓으로 응답하도록 지시하거나 권유해 여론조사에 응하게 하는 것도 단골 적발 사례다. 본인을 지지하는 당협 소속 구성원들에게 수백 대의 유선전화를 개설하게 한 뒤 휴대전화로 착신해 여론조사로 응답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 감시 인력 예산 한계

불법을 적발하는 건 여심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등록 자료 분석, 온라인 자체 모니터링 등을 토대로 한다. 예를 들어 조사방법과 표본 추출 틀은 제대로 돼 있는지, 최소 표본수(국회의원선거는 지역구 단위 최소 500명)가 충족됐는지를 확인한다. 질문지의 편향성도 눈으로 일일이 확인한다. 또 여심위에 등록하지 않은 여론조사가 유권자들에게 떠돌고 있는지도 인터넷기사, SNS 등을 통해 모니터링한다. 성, 연령, 지역 등 모든 계층의 여론이 고루 반영돼 있는지도 주요 확인 요소다. 그러나 모니터링에 현실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 중앙여심위에서는 직원 13명과 모니터링 요원 8명 등 21명이 불법 선거여론조사를 상시 확인 중이며, 17개 시도 선관위에도 모니터링 요원들이 있지만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론조사에 하나하나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응답률 낮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 △불법 선거여론조사 기관 제재 강화 △여심위 인력 및 예산 확충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여론조사 관련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근 실시된 전국 단위 선거(대선, 총선, 지방선거) 중 1개 이상의 선거에서 정당 지지에 관한 사항을 전체 설문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자는 개정안, 저응답률 여론조사 공표 금지를 담은 개정안 등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류정호 여심위 심의팀장은 “촘촘한 틀로 불법 여론조사를 걸러내고 있지만 새로운 방식의 불법 여론조사가 계속되고 있다”며 “유권자들도 여론조사에 문제가 없는지 비판적인 시선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21대 총선#불법 여론조사#선거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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