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늙어가는 한국[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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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최고의 노인대국은 일본이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28%를 차지한다고 하니 한국의 14.9%에 비하면 근 2배다. 인구 구성이 달라지면 사회 분위기도 변한다. 지난해 10여 년 만에 일본서 살게 된 지인은 “어딜 가나 유니클로 패션이라 놀랐다”고 했다. ‘유니클로 패션’이란 수수하고 실용적인 옷차림을 말한다. 과거 여기저기서 눈에 띄던 호사스러운 멋쟁이들이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패션도 노인이 주류가 된 사회에 맞춰 변한다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감소는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국난’이라 표현할 정도로 화두로 떠올랐다. 군사안보 전문가가 “일본의 가장 큰 안보과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고 잘라 말할 정도다. 노인들은 일손 부족으로 정년이 연장된 데다 장수가 가져다준 끝을 알 수 없는 ‘노후(老後)’ 탓에 쉴 새 없이 일하며 사회에 짐이 될 시간을 늦추려 애쓴다.

▷이런 풍경들을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보던 한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45년 한국은 일본을 추월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고령화율 37%)가 된다고 통계청이 예측을 내놓았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 탓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라 하니 일본의 1.43명(2017년 기준)과 비교해도 한참 낮다. 생산가능인구도 줄어 2067년이면 인구 절반이 일해 나머지 절반(생산가능인구 100명당 102.4명)을 부양해야 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은 100명당 14명에서 30여 명으로 늘어나는 정도다.

▷부양과 복지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어깨에 올려진다. 이런 나라에 경쟁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동생산성이 저하되고 복지 등 지출은 늘어 소비와 투자의 활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말 그대로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다.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한 아이의 성장에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과 사회의 수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웃끼리 유대를 갖고 돕는 문화가 남아있는 섬 지역에서는 출산율이 훨씬 높다는 보고가 많다.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을 겪고 있는 우리 청년들이 아이를 낳아 기를 엄두를 못 내는 것도 이해가 간다.

▷곧 추석이다. 피라미드 구조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를 정점으로 아랫세대로 갈수록 바글바글대는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우리네 명절 풍경이었다. 이러다간 집안 구석구석 뛰어다니는 손주들로 정신없으면서도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런 북적댐이 추억처럼 그리운 사라진 풍경이 될까 걱정이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고령화#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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