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최지훈]내 군복무가 헛되지 않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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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보근 기자 paranwo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보근 기자 paranwon@donga.com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매서운 새벽 바람에 눈물이 얼어붙어 볼이 버석거렸다. 겨우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에 무슨 정이 그리 깊게 들었을까. 뿔뿔이 흩어지는 훈련소 동기들을 맨눈으로 보기 어려웠다. 서로를 보내며 부른 우리의 군가는 울부짖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나도 불쌍하고, 너도 불쌍해 터지는 눈물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로 딱딱한 나무 침상에 누웠던 밤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개를 왼쪽 오른쪽 돌려보면 어리둥절한 표정의 까까머리들이 나처럼 고개를 돌려보고 있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우리는 왜 마음껏 화장실에 갈 수 없을까. 우리는 왜 가족을 볼 수 없나. 생각이 깊어질 즈음이면 높은 주파수의 호각 소리가 신속한 동작을 이끌어내곤 했다.

나이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다. 하지만 같은 옷을 입고 모이자 마음을 터놓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살아온 이야기가 다르니 대화는 꼬리를 물고 끝날 기미가 없었다. 매일 밤 속삭이는 수다는 웬만한 연속극의 재미를 거뜬히 능가했다. 외부에서 편지가 올 때면 모두 자기의 이야기인 듯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의 뿌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공동체 의식에 있었다. 내가 지키는 국민이 곧 너의 가족이라는 연대의식. 우리는 모두의 부모형제를 위해 값진 희생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많은 것을 참아내게 했다. 부대를 이끄는 지도자도 그 연대의식을 강조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일탈을 가장 파렴치한 행동으로 취급하며 단체의 중요성을 교육했다.

낮에는 페인트칠과 삽질로 눈코 뜰 새 없고 밤에는 자다 깨 보초를 섰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채워 생활하고 받는 월급은 2만 원가량. 명목도 연초비였으니 담뱃값이나 하라는 얘기다. 내가 쓰던 수통은 1960년대 생산된 제품이었다. “수없이 많은 선배님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라고 외쳤더니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우니 다 함께 참는 게 옳은 줄 알았다. 요새 심심찮게 들려오는 군 관련 비리 소식은 그래서 나에게 슬픈 뉴스다.

각종 꼼수로 군 입대를 피한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른다. 눈먼 돈 긁어다 자기 주머니 채운 사람들 또한 꽤나 당당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일도 맨눈으로는 힘든 일이다. 찬 서리 맞으며 울고 서 있던 까까머리 동기들에게 미안해서, 지금도 나라 곳곳에서 조용히 고생하고 있을 병사들에게 미안해서 그렇다. 꾹 참고 버티면 종국엔 그 덕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거라 생각했던 스물한 살의 나에게 미안해서 그렇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요구되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징병제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나라의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할애하는 젊은이들의 희생이 우리 군대의 본질이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국민의 희생이니 그에 대한 가치는 확실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방산비리와 같은 범죄가 여타 범법 행위보다 엄중히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국민의 희생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모 방송에서 한 토론자가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는 없다” 했다. 당연한 얘기다. 그렇다면 갔다 온 사람이 보람을 느끼는 군대는 어떨까. 가능하지 않을까? 군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좋은 내용 일색이었으면 좋겠다. 다녀온 게 보람되는 정도만 되면 좋겠다.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방산비리#공동체 의식#연대의식#값진 희생#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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