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우선지급금 환수에 직불금마저 깎나” 농민 반발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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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풍년에 더 꼬이는 ‘쌀 해법’

《 쌀 직불금을 둘러싼 정부와 농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쌀값 하락으로 올해 필요한 쌀 변동직불금이 1조5168억 원으로 추산되지만, 정부가 확보한 예산은 법정 한도인 1조4900억 원이다.
정부는 “지금보다 더 지급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득하고 있지만 지난해 ‘우선지급금 환수 조치’에 대해 불만이 누적된 농민단체들은 실력 행사까지 예고하고 있다. 정부와 농가의 쌀 직불금 갈등을 해소하려면 쌀 생산량 조정과 쌀 수요 확대 등의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북 충주의 한 농민이 2016년산 첫 벼를 수확하고 있다. 쌀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이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을 줄여 쌀 생산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내놨지만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동아일보DB
충북 충주의 한 농민이 2016년산 첫 벼를 수확하고 있다. 쌀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이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을 줄여 쌀 생산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내놨지만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동아일보DB

○ 쌀 안 먹는데 농사는 매년 풍년

1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6년 10월∼2017년 1월의 평균 쌀값을 계산해 정하는 2016년 수확기 쌀값이 80kg 한 가마니 기준 12만9711원으로 책정됐다. 한 가마니 기준가격이 13만 원 이하로 내려간 것은 2010년 9월 이후 약 7년 만이다.

쌀값이 하락한 이유로는 30년 전의 절반으로 줄어든 쌀 수요가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1.9kg으로 1980년(132.4kg)의 절반이 채 안 된다. 지난해 국민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69.6g이었다. 밥 한 공기가 쌀 100∼120g 분량인 것을 감안하면 국민 대부분이 하루에 밥을 두 공기도 먹지 않는 셈이다.

쌀 수요는 줄어드는데 농사는 해마다 풍년이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째 풍년이 이어졌다. 쌀 생산량은 흉작이었던 2012년 401만 t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420만 t을 넘겼다. 지난해에도 420만 t가량이 생산돼 수요보다 30만 t이 초과됐다. 벼 성장기에 기온이 높았고 일조량이 늘어 소출이 좋았기 때문이다.

○ 직불금 예산 더 못 늘려


남아도는 쌀이 많아지고 쌀값이 폭락하면서 변동직불금 예산이 모자라는 상황에 이르렀다. 농식품부는 올해 변동직불금 예산으로 1조4900억 원을 확보했다. 사상 최고 액수다.

쌀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지급하는 직불금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도입됐다. 시장 개방으로 피해가 큰 농가를 위해 장치를 만든 것이다. 당시 정부는 생산된 쌀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수매제를 시행했지만 2005년 이를 폐지하고 직불금 제도를 도입했다. 목표가격(80kg 한 가마니에 18만8000원)의 85%를 보전하는 것이 목표다.

쌀 직불금은 논 면적에 따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고정직불금과 매년 달라지는 변동직불금으로 나뉜다. 목표가격과 실제 쌀값 차이의 85%를 두 가지 직불금으로 보전하는 것이다. 고정직불금으로 ha당 100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변동직불금으로 주는 식이다. 쌀값이 떨어질수록 변동직불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변동직불금이 법정 한도까지 차올랐다는 점이다. WTO에 제소당할 우려가 있어 정부는 농업 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로 변동직불금 상한을 1조4900억 원으로 정해놓고 있다. 반면 지난해 수확기 쌀값이 낮은 탓에 농민에 지급할 변동직불금은 1조5168억 원이나 된다. 정부는 모자란 268억 원가량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쌀 소비 늘리려 건강기능식품 등 개발 추진

정부는 쌀 생산을 줄여 직불금이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쌀 생산을 줄일 유인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9일 벼 재배면적을 감축하고 해외 식량원조를 늘려 쌀값을 올리겠다는 중장기 수급 안정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벼 재배면적 중 77만9000ha 중에서 3만5000ha를 올해 안에 감축해야 한다. 재배면적을 감축한 지자체에 수확기 공공비축미를 사들일 때 인센티브를 주고 시책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정부 안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던 생산조정제(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소득을 보전하는 제도)나 휴경제(쌀 농사를 쉬면 소득을 보전하는 제도) 등이 예산 부족으로 없던 일이 됐기 때문이다.

쌀 생산량을 어디까지 줄일 것인지 목표량도 정해지지 않았다. 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생산은 농민들이 알아서 하는 건데 목표량이나 목표가격을 정부가 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쌀 수요를 늘리는 데 당분간 주력할 계획이다. 2∼5kg짜리 소포장 쌀을 늘리고 쌀 간편식을 직장인 아침식사로 제공하거나 할인 판매하는 ‘굿모닝 라이스 프로젝트’를 시행할 예정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는 ‘천원의 아침밥’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고부가가치 쌀을 생산하는 데도 관심을 두고 있다. 신규 기능성 쌀을 이용해 갱년기 여성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거나 쌀가루를 기반으로 한 K스타 디저트 레시피를 개발하는 방법 등을 민간 업체와 함께 논의하고 있다. 쌀로 화장품을 만들거나 친환경 용기를 만드는 등 비식용 분야도 발굴하고 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쌀#우선지급금#환수#직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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