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새샘]잊혀진 전투 되살린 ‘6만명의 작은 정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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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샘·문화부
이새샘·문화부
10일 개봉하는 영화 ‘연평해전’이 끝난 뒤 나오는 엔딩 크레디트는 일반 영화보다 좀 더 길다. 약 10분 동안 7000여 명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비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개인과 단체의 이름이다. 참여자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자식을 사고로 잃고 “자식 또래의 젊은이들이 희생됐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돈을 보내온 부모부터 “군대에 간 동생이 생각난다”는 누나, 한 푼 두 푼 모아 꽉 채운 돼지저금통을 전달한 노부부와 5000원권 문화상품권을 보낸 고등학생도 있다. 공통점은 이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라는 점이다.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사격으로 발발한 제2연평해전은 오랫동안 ‘잊혀진 전투’로 불렸다.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하는 등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한일 월드컵 열기와 남북 화해 무드에 묻혀 곧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잊혀진 전투의 기억을 2015년 스크린 위에 되살린 원동력은 바로 이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제작사인 로제타시네마는 제작비가 부족해 2013년 1월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사흘 만에 2000만 원이 넘게 모였고 3차에 걸쳐 8억9000만 원에 이르는 돈을 모았다.

중학교 1학년이던 당시 용돈을 모아 5만 원을 기부했던 김성아 양(15)은 “우연히 영화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제2연평해전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걸 알았는데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며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후원금을 보냈다”고 했다.

펀딩이 화제가 되면서 새로운 투자자와 후원자도 나타났다. 제작사는 “해군 바자회에 참여한 인원, 개인 투자자 등을 합해 돈이나 물품으로 영화에 도움을 주신 분들은 약 6만 명”이라고 했다. 이렇게 십시일반 모은 돈은 20억 원에 이른다. 영화를 연출한 김학순 감독은 “크라우드펀딩을 하지 않았다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기자를 포함한 젊은 세대에게는 특히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2015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기도 하다. 펀딩에 참여한 시민들의 뜻처럼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이새샘·문화부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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