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 실수 담은 ‘오답노트’, 무죄 판결 받은 사건 모아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10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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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 이비인후과 의사 오모 씨(42)는 2012년 4월 병원 진료실에서 한 살배기 아들을 안고 진료의자에 앉아 있는 강모 씨(35·여)의 오른쪽 정강이에 자신의 주요 부위를 밀착해 문지른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됐다. 오 씨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고 결국 재판부가 현장 검증에 나섰다. 재판부는 의자 구조가 강 씨의 설명대로 주요 부위를 밀착시키는 게 불가능한 형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당시 진료실 문이 열려 있었고 함께 있던 간호사가 아들의 귀를 소독할 때 면봉을 건네준 사실도 확인했다. 게다가 오 씨가 강 씨의 아이를 진료한 시간은 30초 정도였다. “처음엔 물컹거리는 느낌이었고 추행 시간은 2분 정도였다”는 강 씨 진술도 믿기 어려웠다. 서울중앙지법은 2013년 6월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은 현장 재연 사진만 보고 오 씨를 기소했다.

#사건 2. 이모 씨(57·여)는 2013년 5월 “내 음부를 촬영해 휴대전화로 전송했다”며 김모 씨를 고소했다. 두 사람은 합의를 했고 이 씨는 고소를 취소했다. 하지만 검사는 이 사실을 모른 채 그냥 김 씨를 기소했고,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두 사례는 대검찰청 공판송무부(부장 강경필 검사장) 산하 무죄대책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말 일선 검사들에게 배포한 ‘주요 무죄 사례 분석 및 수사·공판 유의사항 무죄 대책’과 ‘2013년도 죄명별 무죄 분석’ 대외비 책자에 포함된 사건들이다.

TF는 각각 140쪽 분량의 책 두 권에 △선거 △ 뇌물 △성폭력 △무고 △위증 사건을 주축으로 무죄율 및 원인 분석과 함께 수사, 기소, 공판 등의 단계마다 주의할 사항을 담았다. 검사들이 최소한의 기초적 오류를 피할 수 있도록 그동안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를 담은 오답노트 형태의 ‘실전 참고서’인 셈이다.

이 ‘오답노트’에는 일선 검사들의 실수가 그대로 담겨 있다. 공소장 등에 예규에 맞는 올바른 혐의를 적지 못해 판사에게 지적받고, 법 조항 적용을 잘못해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다. 핵심 참고인 조사를 생략했다가 조사 결과의 신빙성을 의심받았고, 목격자 진술이 엇갈리는데도 추가 확인 없이 기소했다가 무죄가 난 일도 담겨 있다.

책자는 굵직한 사건에서 연이어 무죄가 선고되자 지난해 9월 김진태 검찰총장이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증거 조작 의혹과 함께 간첩 혐의로 기소됐던 중국 국적 유우성(류자강·35) 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데 이어 북한 보위부 직파 간첩 혐의로 기소된 홍모 씨까지 연이어 무죄를 선고 받았다. 특히 홍 씨 사건에서는 법원에서 “진술 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 고지 등 ‘미란다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까지 받아 체면을 구겼다. 검찰은 당시 강하게 반발했지만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결국 대검 공판송무과장이 TF팀장을 맡고 대검 연구관들이 구성원이 돼 2013년에 무죄 선고된 전체 사례를 분석했다.

사례와 그래프를 중심으로 가독성을 높여 일선 검사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한 검사는 “다른 책자보다 읽기가 편했다”고 말했다. 책을 받지 못한 검사 직무대리들도 책을 보내달라고 요청해 추가 인쇄 중이다. 법무연수원도 신임 검사 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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