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파~, 음~ 파, 음파… 물위에 떠오른 거대한 나비의 행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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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시인
강정 시인
소리 내어 제목부터 읽어본다. ‘음…’ 하며 입술을 오므린 채 소리를 모은다. ‘파∼’ 하고 입을 벌려 소리를 뱉는다. 소리가 ‘거대한 나비’가 됐다. 또다시 음파, 음파. ‘거대한 나비의 행렬’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달에 만나는 시’ 11월 추천작은 강정 시인(43)의 ‘음파(音波)’다. 1992년 ‘현대시세계’에서 등단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귀신’(문학동네)에 실렸다. 추천에는 김요일 신용목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참여했다.

시집은 강 시인을 ‘시 쓰는 남자.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고 가끔 연극 무대에 서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올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어수선할 때, 꼭 세월호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상한 소리들이 막 들렸다. 밴드 연주를 하기 전에 윙윙대는 전자 사운드가 있는데 세상이 그런 느낌으로 왔다”고 했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사건 같습니다. 총체적인 감각들이 소리로 다가왔고 그에 대해 몸이 반응한 것을 썼습니다. 시에서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 메시지를 받아내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자연현상처럼 ‘시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구나’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네요.”

이원 시인은 “시인이 된 지 22년, 다섯 번째 시집에 이르러, 몸 있는 것과 몸 없는 것, 여자와 남자, 생물과 무생물, 그것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정의 ‘우주극장’이 만들어졌다. ‘흑막’에서 포획한 ‘빛’의 언어라는 데 강정 시의 탁월함이 있다”고 추천했다.

신용목 시인은 “언어로부터 도륙당한 정신이 버려진 육체 속으로 들어가 힘겹게 삶을 바라보는 시집”이라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장인 문정희 시집 ‘응’(민음사)을 추천했다. “칼날을 맨손으로 잡은 채 정면의 언어로 시와 마주했다. 시편마다 벗겨진 허물이 남겨져 있을 만큼 새롭고 독자적이다. 육체와 생명과 우주를 넘나드는 시의 발효는 ‘응’이라는 단 한 글자로 응축하기에는 너무 격렬하고, 눈부시고, 뜨겁다.”

이건청 시인은 김형영 시집 ‘땅을 여는 꽃들’(문학과지성사)을 추천하면서 “정통 서정의 미적 균형이 어떻게 시적 긴장에 닿는 것이고, 너른 공명을 획득하는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으로 하강해 가면서 삶의 궁극을 이루는 사물들을 세밀하게 발견해내고 있으며, 그것들을 형이상적 깊이와 품격을 지닌 구조 속에 담아낸다”고 했다.

장석주 시인은 이창기 시집 ‘착한 애인은 없다네’(창비)를 골랐다. “은유와 패러디가 난무한다. 김수영, 이상, 빈센트 밀레이, 김소월, 마야콥스키, 오규원 등이 시를 빌려주고, 그 시들을 비틀고 토막 내고 뒤집으며 이 시대의 말과 이념과 유행을 아이러니와 풍자로 쥐락펴락하며 풀어놓는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경제 컨설팅’ ‘경제민주화’에 따라 춤추는 장삼이사의 애환이 활달한 입담 속에서 드러내는데, 곳곳에 유머와 해학이 돌출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음파#강정 시인#현대시세계#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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