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염재호]대전환, 대타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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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패러다임으론 생존 힘든 세계 문명사의 대전환기… 기업도 개인도 불안감 증폭
與와 野, 보수와 진보, 勞와 使… 대화 통한 사회적 합의없인 미래로의 첫발 내디딜수 없어
역사 읽고 국민 대타협 이뤄낼 정치지도자가 정말 그립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연말이다. 1년이 다 되어가는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을 내세우며 창조경제의 화두를 던졌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시간제 일자리와 재취업, 창업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도모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30번이 넘는 정상외교를 펼쳤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국정을 운영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식물국회가 됐고, 노사갈등의 골은 깊어졌으며, 동북아의 불안한 국제정세는 심화하고 있다. 심지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사회 문제를 제기한 대학생의 대자보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은 세계문명사의 대전환기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였던 20세기가 지나가고 지식정보 중심의 서비스산업이 새로운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다. 더이상 20세기의 패러다임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사회를 지나 다시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수렵사회로 회귀한 느낌이다.

그러기에 모두 불안하다. 특히 고도경제성장과 급속한 사회 변화를 겪은 우리 사회는 대전환의 속도감에 모두 불안해한다. 20세기 후반 50년간 세계경제는 6.6배 성장했는데 우리는 1970년 이후 40여 년 동안 300배 가까운 경제성장을 했다. 이런 성장신화 때문에 성취동기는 강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 이혼율은 최상위이고 출산율, 행복지수는 최하위이다. 아무리 학점과 스펙이 좋아도 대졸 취업은 선배 세대들과 비교할 때 하늘의 별따기이다. 고용의 안정성은 점점 취약해지고, 연금 혜택 같은 복지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로 생존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도 어느 날 갑자기 핀란드의 노키아처럼 세계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주요2개국(G2)이 된 중국은 영토분쟁과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 잃어버린 20년의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틀대는 일본은 아베 정부의 현실주의 외교정책과 경제정책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일 안보협력은 더 긴밀해지는데 한일 관계는 더 나빠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이런 상황은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불안하게 만든다. 북한 정세의 급박한 변화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역사적 대전환기에 개인과 집단이 개별적 이익에 매달려서는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최근 교육부총리를 지낸 원로 행정학자 안병영 교수가 쓴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는 주목할 만하다. 합의와 상생, 융합과 재창조의 오스트리아 국가모델은 미래로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을 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이념갈등으로 투쟁했던 오스트리아의 국민당과 사회당은 대연정으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극심한 노사대립에서 ‘사회적 파트너십’이라는 노사정 협력 거버넌스를 확립해 최초로 네오 코퍼러티즘의 모델을 제시했다. 전후 러시아의 공산세력 등 다양한 사회적 위협을 국민적 대타협으로 지혜롭게 극복했다.

우리에게는 세계사의 변화를 읽어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미래모델을 제시할 정치지도자들은 없는가. 국민감정과 역사인식을 넘어 신념을 갖고 거시적 외교전략을 일본에 제시할 전략가는 없는가. 대기업은 신자유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동반성장을 위해 과감하게 이익을 양보할 수는 없는가. 노조는 집단이익과 이념의 틀을 용감하게 벗어던지고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대가로 임금정책의 유연성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가. 이처럼 정치, 행정, 교육, 종교, 의료, 문화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 대타협을 통한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역사의 대전환기에서 서로 불편한 진실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이야기해 봐야 한다. 양보 없는 타협은 없다. 기득권은 접어두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지엽적 명분에 집착하지 말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노와 사가 함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런 국민적 대타협 없이 미래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디딜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의 승리만을 생각하지 말고, 역사를 읽고 미래를 위해 국민적 대타협을 이끌어낼 큰 바위 얼굴의 정치지도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aehoyeom@icloud.com
#박근혜#대전환기#창조경제#양보#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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