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美, 스티븐 김 간첩죄 적용은 무리”

  • Array
  • 입력 2011년 6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 ‘기밀 유출 혐의’ 한국계 북핵전문가 온정적 보도

스티븐 김 씨
스티븐 김 씨
이달 초 미국 연방검찰이 국가안보국(NSA) 고위 간부 출신 토머스 드레이크의 간첩법 위반 사건(일명 ‘드레이크 사건’)에 대한 기소를 철회하면서 지난해 한국계 스티븐 김(김진우·44) 간첩법 기소 사건이 미국 내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18일 뉴욕타임스(NYT)는 스티븐 김 사건을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도하고 나섰다.

NYT는 “2009년 스티븐 김이 정보사항을 기자에게 너무 솔직하게 얘기를 했고,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에게 거짓 진술을 했다는 사실을 정부가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스티븐 김의 유능하면서도 자수성가한 이민자로서의 개인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의 개인사를 동정적으로 묘사했다.

NYT는 스티븐 김을 “지난 10년 동안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에게 북한의 위협을 브리핑해온 무기 전문가”라면서 “하지만 적대국을 도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지 기밀정보를 폭스뉴스 기자에게 알려줬다는 이유로 지난해 8월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고 지적했다.

18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1면과 13면에 걸쳐 한국계 스티븐 김의 간첩법 위반 기소사건을 다룬 기사. 뉴욕타임스는 미국 안보를 위해 일하던 스티븐 김이 미 정부의 강경한 기밀정보 유출 처벌 방침에 희생돼 고초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18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1면과 13면에 걸쳐 한국계 스티븐 김의 간첩법 위반 기소사건을 다룬 기사. 뉴욕타임스는 미국 안보를 위해 일하던 스티븐 김이 미 정부의 강경한 기밀정보 유출 처벌 방침에 희생돼 고초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김은 9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계 미국인.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 조지타운대를 거쳐 하버드대, 예일대에서 차례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 최대 국립 핵연구소인 로런스 리버모어 소속으로 지난해 8월까지 미 국무부에서 검증·준수·이행국 정보총괄 선임보좌관으로 일했다. 그의 활동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27일 미 연방검찰이 스티븐 김을 북한 정보 유출 등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그의 활동이 공개됐다.

그가 기소된 것은 미국 폭스뉴스 기사 때문이었다. 2009년 6월 11일 폭스뉴스는 “북한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이후 추가 핵실험 등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5월 25일)을 규탄하는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위한 유엔 안보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북한은 이미 5월 29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유엔의 제재가 시작될 경우 더 이상의 자위적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천명한 때여서 폭스뉴스 보도는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스티븐 김은 국무부 공보담당자로부터 폭스뉴스 기자에게 북한 문제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e메일을 교환했다. 이후 폭스뉴스 기자는 “북한이 유엔제재 결의안에 대응해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중앙정보국(CIA)이 북한 내 정보원을 통해 파악했다”는 기사를 썼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수사에 착수했고 1년여가 지난 지난해 8월 27일 미 연방검찰은 폭스뉴스 기사가 극비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스티븐 김을 정보 유출자로 지목하고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에 북한 핵실험을 둘러싸고 미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가 극도로 예민한 상황에서 나온 북한 관련 기사였던 데다 취임 초부터 오바마 행정부와 사사건건 대립해온 폭스뉴스에 정보가 흘러간 것도 수사 착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이후 미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4차례 스티븐 김 사건 공판이 열렸지만 검찰에서 뚜렷한 증거를 내놓지 않아 현재 재판은 큰 진척이 없는 상태다. 변호인단은 2월 초 검찰의 기소 내용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1조와 적법 절차를 보장한 헌법 5조를 어긴 위헌이라며 재판부에 소송 기각을 신청했다. 스티븐 김은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고 인종차별적 표현까지 쓰면서 강압수사를 벌였다”며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 기소 후 보석금 10만 달러를 내고 가석방된 그는 현재 집에서 25마일 이상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거주 제한을 받고 있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스티븐 김의 누나 유리 루스텐버거 김도 NYT와의 인터뷰에서 “내 동생은 미국을 위해 모든 전문적인 역량을 쏟아 부었는데도 간첩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소송 결과와 상관없이 검찰의 기소로 11세 아들을 둔 스티븐 김은 물론이고 전체 이민자 가족들이 이미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NYT는 “스티븐 김은 평소 언론과 잦은 접촉을 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오히려 정보 유출에 경계심을 보이며 보안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며 그의 사건을 ‘불행한 케이스’라고 묘사했다. 그의 상사였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폴라 드서터 국무부 검증·이행·준수 담당 차관보의 말을 인용하면서 “스티븐 김은 한국어에도 능통하면서 이 분야 일을 꾸준히 해왔다”며 “나는 그를 최고로 존경한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신문은 “그가 브리핑한 여러 고위 인사 중에는 딕 체니 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며 그의 안보 분야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한편 마이클 이시코프 미 NBC 방송 외교안보 전문기자는 지난해 10월 NBC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전 전략 재검토 과정에서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 간에 오간 기밀을 공개한 ‘오바마의 전쟁’을 쓴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 대기자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고 스티븐 김 같은 실무자에게는 강경 대응하고 있다”며 미 정부의 이중 잣대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김 씨가 누설했다는 정보는 놀랄 만한 것이 아니며 당시 한국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드레이크 사건 ::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미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토머스 드레이크가 ‘NSA가 불필요한 감시 활동으로 민간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며 기밀 정보를 신문기자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로 2009년 4월 미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된 사건이다. 드레이크는 기밀 정보 보유와 정의실현 방해, 거짓 진술 혐의 등으로 최고 35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검찰이 증거 제출을 포기함에 따라 구속을 면하고 벌금도 물지 않게 됐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