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줌마렐라’와 아줌마

  • 입력 2005년 5월 30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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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렐라’ 코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백화점 쇼윈도에 화사한 여름옷과 함께 줌마렐라 필수 아이템이라고 유혹하는 문구가 나붙어 있다.

줌마렐라. 아줌마의 ‘줌마’와 신데렐라(Cinderella)의 ‘렐라’를 합성한 단어로 ‘아줌마지만 신데렐라처럼 아름답고 적극적인 성향을 지닌 진취적인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한 마케팅연구소는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으며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 사이의 기혼 여성을 줌마렐라로 정의하고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대표적 인물로 꼽았다.

한때는 아가씨 같은 아줌마라며 ‘미시족’이라더니, 이제 물리적으로 아가씨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해졌을까, 줌마렐라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줌마렐라는 우선 시장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줌마렐라가 되기 위해서는 유기농 식품을 먹어야 하고, 유행하는 샤넬풍 투피스도 입어야 하고, 요가와 피트니스도 해야 한다.

마케팅 회사가 만들어 내는 신조어에 일일이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 등장할 때마다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시족이니 참살이(웰빙)족이니 줌마렐라니 같은 말은 듣기엔 그럴 듯해도 핵심에는 여성을 삶의 주체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줌마렐라의 유사어는? 사모님쯤 될 것 같다. 모피코트와 고급 승용차가 떠오른다.

그러면 줌마렐라의 반대어는 무엇일까? ‘오리지널 아줌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뽀글뽀글 파마머리, 얼룩덜룩 웃옷에 고무줄 치마, 목 언저리에서 빛나는 가짜 장신구, 지하철 빈 좌석으로 몸을 날려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다. 근검절약 천박함 무식 몰염치 촌스러움의 대명사가 아줌마다. 사실 아줌마에게조차 ‘아줌마 같다’는 말은 모욕적으로 들린다. 한때는 여성이었지만 이제는 여성성을 상실한 ‘제3의 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모든 아줌마들이 줌마렐라를 꿈꾼다. 하지만 기실 아줌마와 줌마렐라는 백지 한 장의 차이밖에 없다. 그 하나의 차이란? 생산하느냐 소비하느냐이다.

아줌마의 정의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많지만 필자는 아줌마의 본질은 생산이라고 생각한다. 아줌마는 아이를 생산하고, 밥을 생산하며, ‘수다’를 생산한다.

아줌마는 생산을 하고, 줌마렐라는 소비를 한다. 아줌마는 타인을 지향하지만 줌마렐라는 자신을 지향한다. 하지만 1인 2역을 할 뿐 서로 다른 사람은 아니다.

31일은 아줌마닷컴(www.azoomma.com)이라는 단체가 정한 제6회 ‘아줌마의 날’이다. 비록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아줌마들이 가정과 사회 속에서 또 21세기 정보화 시대에서 존엄하고 주체적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자는 날이다. 출렁거리는 뱃살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한때는 ‘꿈 많은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해 보자는 날이다.

왜 하필이면 31일이 아줌마의 날일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을 다 챙기고 나서 ‘겸손하게’ 5월의 마지막 날을 아줌마의 날로 정한 것부터가 참 아줌마답다. 이날 당당하게 남편과 아이들에게 말해보자. “누군 처음부터 아줌마였느냐”고.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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