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이상훈]진정한 고객은 진실이 만든다

  • 입력 2005년 5월 30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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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고 커뮤니케이션의 일을 한다. 남들이 보면 아주 재미있고 독특한 일을 한다고 생각들 한다. 사실 일은 재미있고 성취감도 높은 편이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교만해지기도 한다.

몇 해 전 나는 중요한 광고주 중 하나인 A패션회사와의 계약을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기간 20여 일. 다른 광고대행사 세 군데도 참여했다.

특히 A패션회사가 준비하고 있던 미래 브랜드에 대한 정보까지 미리 수집한 우리 팀은 자신이 있었다. 특히 경쟁사들은 패션브랜드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나는 패션 광고 등을 2년여 동안 해본 적이 있어 유리하다고 생각됐다.

발표 당일. 긴장된 마음으로 들어간 발표장. 심사위원들인 그 회사 대표와 임원들이 어두운 방안에 침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앞에서 브리핑을 해 나가다 보면 서서히 어두운 실내도 눈에 익숙해지고 차츰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회사 대표가 정작 내가 준비한 화면은 보지 않고 뚫어지게 나만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하품까지 했다.

순간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생각하며 프레젠테이션을 끝냈다.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다. 대표가 질문을 했다.

“자네는 누굴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나?”

“네? 소비자와 고객 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 적절한….”

“됐네.”

“네?”

그는 내 대답을 다 듣지도 않고 질문을 끝냈다. 내심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가망이 없겠구나 생각하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우리가 그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발표가 들렸다.

기뻤지만 회사 대표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며칠 후 그 대표를 독대하는 자리가 있었다.

“자네는 그날 아주 당당하더군. 그런데 자네의 브리핑은 분명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았는데도 들을수록 불쾌해지더군.”

그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자네 팀의 기획안은 참신함이 많아 선택이 되었지만 상대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참신함은 남에게 배척되기도 쉽다는 걸 알아야 하네.”

발표를 하면서도 광고주를 사로잡는 ‘진실된 설득력’이 부족했었던가 보다.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다. 남을 진심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진정한 고객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그때의 교훈으로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프레젠테이션을 받는 날이 온다면 그날 그 대표가 내게 한 것처럼 교만한 발표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봐 줄 것이다. 그의 미래를 위해.

지금 직장이 열세 번째. 국내에서는 생소한 BTL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BTL(below the line)이란 광고주를 위한 종합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홍보, 판촉, 전시, 컨벤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포함돼 있다.

이상훈 그레이프 커뮤니케이션즈 부국장

:약력:

지금 직장이 열세 번째. 국내에서는 생소한 BTL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BTL(below the line)이란 광고주를 위한 종합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홍보, 판촉, 전시, 컨벤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포함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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