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문화유산 파수꾼 되다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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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만든 문화재 보호는 쇠 전문가인 우리에게 맡겨주세요.”(포스코)

“우린 녹차를 만드는 회사이니 만큼 전통 다도(茶道)를 중흥시켰던 초의선사의 암자를 관리하겠습니다.”(㈜태평양)

“하회마을 등지에 있는 전통 가옥의 가스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한국가스공사)

최근 기업들이 회사 특성을 살려 문화재 지킴이 운동에 나서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말 시작한 ‘1문화재 1지킴이’ 캠페인에 기업들의 참여가 늘고 있는 것.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은 개인이나 기업 학교 등이 하나씩의 문화재를 맡아 보호 관리하는, 일종의 문화재 보호 자원봉사 제도다.

현재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지킴이 대상 문화재를 선정했거나 협의 중인 기업은 10여개. 기업으로선 이미지 홍보를 위한 ‘문화재 마케팅’이기도 하다.

이들 기업이 제시한 지킴이 대상 문화재는 대부분 회사의 성격과 어울리는 것들.

포스코는 철강회사로서의 이미지를 살려 철과 관련된 문화재 보호 운동을 펼치겠다는 방침이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멈춰선 경기 파주시 장단역의 증기기관차(등록문화재 78호)를 보호하고, 전국 주요 사찰의 철제 불상이나 철제 당간(幢竿·사찰 입구에 깃발을 걸어 세워놓는 장대) 보존처리 기술을 지원할 계획.

녹차를 가공 판매하는 태평양은 초의선사(1786∼1866)가 수행했던 전남 해남군 대흥사 일지암의 지킴이로 나설 예정이다. 태평양은 또 초의선사와 깊은 교유를 나누었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제주 남제주군 유배지 보호 계획도 제시했다. 제주에 다원과 설록차 박물관을 운영하는 태평양과 제주 지역의 인연을 강조한 것.

한국가스공사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이나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등 전통 가옥 밀집 지역의 가스 안전을 무료로 수시 점검해주기로 했다. 전국 지사별로 해당 지역 민속마을의 가스시설을 점검해 가스 사고로 인한 가옥 훼손을 막겠다는 취지다.

콘도미니엄과 골프장을 주로 짓는 한화국토개발은 잔디 관리의 노하우를 살려 경기 화성시 융릉(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무덤)과 건릉(정조와 효의왕후의 무덤)의 잔디 50만여 평을 관리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본점 바로 옆에 있는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의 지킴이를 자원했다. 이 은행은 전국의 350여 지점들이 해당 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하나씩 맡아 지킴이 활동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기업들의 문화재 지킴이 활동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소문이 퍼지면서 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싶다는 기업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지킴이 캠페인이 기업 이미지 홍보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시로 보호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전 직원이 문화재 보호 활동에 참여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며 “이름만 걸어 놓고 제대로 활동하지 않는 기업은 곧바로 지킴이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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