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까지 고용한파 위기… “나갈 사람 사다리 타자 이야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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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경제위기]3월 사업체 종사자 사상 첫 감소

35년 동안 공항에서 기내식을 운반한 허모 씨(63)는 지난달 말 권고사직을 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 수요가 급감하자 허 씨 등 직원 대부분이 유급휴가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국 그를 포함한 직원 절반이 해고됐다. 허 씨는 “워낙 많은 인원을 내보내야 해 사다리 타기로 해고자를 정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잘려 나가는 게 가혹해 내가 먼저 나가겠다고 손을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 씨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해고 위기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정년이 지나고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그가 35년간 지켜온 일자리를 앗아갔다. 허 씨는 “내가 관두지 않는 한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며 “반평생을 보낸 일터를 떠나 어디서 일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 상용직 일자리 첫 감소


21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주변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줄지어 있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1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주변에 일자리를 찾기 위해 줄지어 있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고용노동부가 28일 발표한 지난달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임시일용직뿐만 아니라 허 씨와 같은 상용직 종사자들에게도 고용한파가 들이닥친 것으로 나타났다. 상용직이란 고용 계약기간이 1년 이상인 임금근로자 또는 계약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정규직을 말한다.

지난달 상용직 종사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8000명(0.1%) 감소한 1555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상용직 종사자가 줄어든 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9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고용 충격이 상용직 종사자에게도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에선 정규직 일자리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아직 제조업 정규직까지 고용 위기가 본격화된 건 아니라고 밝혔다. 해고 대신 유·무급 휴업으로 고용을 유지하며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고용 유지 기업들이 폐업이나 구조조정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렇게 되면 대량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

○ 특수고용직 감소 폭 가장 커

서울에서 9년째 전업 대리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모 씨(62)는 최근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회식이나 모임이 급감한 데 따른 것. 김 씨는 “올 들어 경기가 안 좋아 콜이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코로나19 태풍까지 겹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당장 먹고살려면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 씨와 같은 특수고용직 근로자가 포함된 기타종사자는 지난해보다 9만3000명(7.9%)이 감소했다. 기타종사자는 2월에도 4만1000명(3.5%)이 줄었다. 임시일용직 종사자는 2월까지만 해도 3만8000명(2.3%) 증가했지만 한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경북지역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이모 씨(49)도 그중 한 명이다. 이 씨는 지난달부터 단 하루도 일을 나가지 못했다. 날씨가 풀리고 공사현장이 하나둘 문을 열 때지만, 코로나19가 건설경기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씨는 “최근 직장을 잃은 사람들까지 건설 일자리를 기웃거리고 있어 더 힘들다”며 “일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 번호표를 뽑고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위기가 취약한 일자리부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점점 확산되고 있다”며 “정부가 단기 일자리를 포함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업대란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송혜미 1am@donga.com·이소정 기자
#정규직#사업체 종사자#코로나19#고용한파#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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