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전승민]2100년 한반도, 태풍이 2배 증가한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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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
“일본은 고마운 나라다. 자연재해는 모두 다 막아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본 기억이 있다. 반일감정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말 자체는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일본열도는 한국을 감싸고 있어 해일과 지진을 적잖게 막아준다. 태풍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향하던 태풍이 일본을 지나면서 진로가 바뀌거나 위력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본의 비호(?)를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앞으로 더 강력한 태풍이, 더 천천히 이동하면서, 더 자주 한반도를 찾을 것으로 보여, 한반도도 일본처럼 태풍의 길목에 놓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태풍은 적도 부근의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지구의 자정적 시스템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최근엔 양상이 달라졌다. 더 뜨거워진 바다는 크고 강력한 태풍을 만드는데, 이미 극지조차 더워져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려졌다. 강해진 태풍이 더 긴 시간 동안 큰 피해를 낳는다는 뜻이다. 지금 한반도를 할퀴고 있는 19호 태풍 솔릭도 이런 ‘온난화형 태풍’의 대표적인 사례다.

온난화형 태풍의 등장은 과학자들에 의해 이미 예견돼 왔다. 얼마 전 미국 해양대기청 연구진은 세계적으로 태풍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속도도 계속 느려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한반도 인근에서 태풍이 특히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연구 결과를 국내 연구진도 내놓은 적이 있다. 2016년 서울대, 부산대, 한국해양대, 극지연구소 등이 홍콩시립대 등 해외 연구진과 공동으로 아시아의 태풍 발생빈도를 분석한 결과 2100년에는 한반도를 찾는 태풍의 수가 지금보다 2배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언제든 제2의 솔릭이 찾아와도 놀랍지 않다.

과거 재해를 자주 겪지 않은 한국은 태풍이나 지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안일함은 과거 수없이 많은 인재(人災)를 낳았다. 2년 전인 2016년 10월 남부지역을 짓밟았던 태풍 차바도 이 같은 사례다. 당시 울산 울주군 대암댐 인근에선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주위 아파트 일대가 흙탕물 범벅이 됐다. 댐에선 태풍 예고를 접하고도 물을 사전에 방류하지 않았고, 하천 인근에 신도시를 조성했던 건설사도 태풍을 고려치 않은 설계로 빗물저장소와 우수관로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다.

많은 과학자가 ‘더 강한 태풍이, 더 자주 불어올 것’이라고 지적하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한국은 지금 즉시 과학계의 지적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국가 전역의 재난대응 시스템을 다듬기 시작해야 한다. ‘올해는 이미 지나갔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질수록 다음 해에 입는 피해는 점점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수석기자 enhanced@donga.com
#한반도#태풍#지구 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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