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무대가 있는 한… 셰익스피어는 불멸한다

  • 동아일보

재창조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
내달 서울서 발레 ‘햄릿’ 亞 첫 공연… 상실의 슬픔 조명한 영화 ‘햄넷’ 호평
20일 국립극장 개막 ‘리어왕외전’ 등 한국적 재해석 연극-뮤지컬도 눈길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물건을 골라 담듯, 예술가들은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저장고에서 원하는 이야기를 뽑아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든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의 극장에 오르며, 심지어 일본 가부키로도 재해석되는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작가 데니스 케네디는 이런 현상을 ‘문화적 슈퍼마켓’이라고 표현했다. 올봄 한국에서도 연극은 물론이고 뮤지컬과 발레, 영화로 각기 다른 셰익스피어를 만나볼 수 있다.

● 광기와 고독의 햄릿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계적으로 이 대사를 모르는 이가 드문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현대 무용과 시적인 영화로 재해석됐다.

스위스 기반 무용단인 베자르 발레 로잔(BBL)이 셰익스피어 비극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무용 ‘햄릿’.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스위스 기반 무용단인 베자르 발레 로잔(BBL)이 셰익스피어 비극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무용 ‘햄릿’.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다음 달 23, 25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선 발레 ‘햄릿’이 아시아 최초로 선을 보인다. 2024년 6월 스위스에서 무용단 베자르 발레 로잔(BBL)이 초연한 작품이다.

막스 리히터나 뮤즈, 시가렛 애프터 섹스 등 현대의 다양한 장르 음악가들의 작품을 사용하고, 의자 등 최소한의 상징적인 소품만 활용한 연출이 특징이다. 무용수들의 신체와 움직임, 조명을 주된 언어로 이용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인 금기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이른바 ‘고독’과 ‘광기’의 햄릿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 고통스러운 아버지, 셰익스피어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햄넷’의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햄넷’의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최근 개봉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햄넷’은 지독한 슬픔과 고통이 키워드다. 매기 오패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햄릿’ 탄생 이면에 숨겨진 셰익스피어와 아내 아그네스 부부의 개인적 비극을 다룬다.

부부는 흑사병으로 열한 살 아들 햄넷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지독한 슬픔에 잠긴다. 영화는 아그네스를 중심으로 자식을 잃은 참담함과 이에 따라 벌어지는 관계의 균열,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마침내 ‘햄릿’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겪는 창작의 고통 등의 정서를 섬세하게 그린다.

셰익스피어를 ‘유명한 거장’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잃은 한 명의 평범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그린 점이 특징이다. 봉준호 감독은 “창작의 고통이 상실의 고통에 맞먹을 수 있음을 보여줘 마음을 움직인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제시 버클리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조용필 노래 부르는 리어왕

한국의 극단 마방진이 오락적 요소를 더해 만든 연극 ‘리어왕외전’. 옐로밤 제공
한국의 극단 마방진이 오락적 요소를 더해 만든 연극 ‘리어왕외전’. 옐로밤 제공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리어왕외전’은 셰익스피어 비극 ‘리어왕’의 한국식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세 방향에서 관객이 무대를 둘러싸는 형태로 ‘마당극’ 같은 역동성, 춤과 액션부터 노래까지 더했다. 고선웅 연출은 이를 “무장르 오락비극”이라고 설명했다.

고 연출의 말처럼 극본을 완전히 다시 쓴 이 작품은 원작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리어왕의 탄식 장면은 과감하게 삭제했다. 비극적인 결말까지도 바꿔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성을 더했다. 오만한 리어의 몰락과 권력의 허망함에 부모-자식의 세대 갈등 코드를 넣어 한국 관객의 공감대를 넓히고자 했다. 리어왕이 회한에 잠길 때는 조용필의 노래 ‘허공’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와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를 모티프로 운명의 갈림길에 선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창작 뮤지컬 ‘초록’도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공연된다.

케네디 작가는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셰익스피어를 두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에 비유했다. 끊임없이 복제, 조립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권위를 벗어 던지고 고독의 몸짓, 애달픈 부정, 혹은 친숙한 유행가로 변주된 셰익스피어를 만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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