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친미 성향 민진당 총통 후보 당선 막으려 수단·방법 안 가린다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12월 30일 0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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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당에 투표하면 청년들 전쟁터 나가야” 가짜 뉴스 유포… 군사 압박과 경제제재도

“민진당에 투표하면 양안(중국과 대만)에 평화는 없다. 모든 청년이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중국이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통해 대만 젊은이들에게 퍼뜨리고 있는 가짜 뉴스다. 중국은 2024년 1월 13일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의 젊은 유권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이 같은 동영상을 대량으로 살포하면서 선거 개입 공작을 펴고 있다. 대만 언론들은 중국의 전략을 ‘인지전(cognitive warfare)’으로 보고 있다. 인지전이란 적 지휘부에 가짜 정보를 퍼뜨려 잘못된 인지를 바탕으로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하거나, 무기와 장비 운용에서 실수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을 말한다.

친미 성향 민진당 vs 친중파 국민당 박빙
대만 민진당 총통 후보인 라이칭더 부총통이 2023년 8월 14일 파라과이 실비오 페티로시 국제공항에서 손을 모아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대만 민진당 총통 후보인 라이칭더 부총통이 2023년 8월 14일 파라과이 실비오 페티로시 국제공항에서 손을 모아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대만 한 고위 관리는 “중국이 양안의 전쟁 위기감 고조, 대만 병역정책에 대한 비방과 부정적 인식 제고 등을 통해 청년층을 선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리는 “중국은 양안관계가 좋지 않으면 청년층이 전쟁터로 내몰릴 것이라는 여론조작 등을 통해 총통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주장했다. 대만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국(NSB)을 관할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구리슝 비서장은 “대만은 매일 중국으로부터 500만 회에 달하는 인터넷 공격을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가안보 관련 범죄 등을 수사하는 대만 법무부 산하 조사국 정보통신안전처는 “중국이 대만 인터넷을 해킹한 뒤 마치 대만인이 작성한 게시물처럼 가짜 뉴스를 포장해 민심 분열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친미 성향인 여당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가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고자 가짜 뉴스 유포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 유세에서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2024년은 전 세계 71개국에서 대선과 총선 등이 열리는 ‘슈퍼 선거의 해’다. 대만 총통 선거는 2024년 시작을 알리는 중요 행사다.

대만 여론조사기관들이 조사한 판세를 보면 민진당 라이 총통-샤오 부총통 후보가 친중파이자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 총통-자오샤오캉 부총통 후보를 오차범위에서 앞서고 있다.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총통-우신잉 부총통 후보는 앞선 두 후보들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당 허우유이 총통 후보. [GETTYIMAGES]
국민당 허우유이 총통 후보. [GETTYIMAGES]


대만 인터넷 매체 메이리다오 전자보의 우쯔자 회장은 “두 후보 간 지지율은 막상막하로, 50만 표 내외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우 회장은 “20, 30대 젊은 층이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이 후보는 중국이 ‘대만 독립분자’라고 칭할 정도로 반중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은 라이 후보가 차이잉원 총통보다 더 강경한 독립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라이 후보는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며 “대만의 민주 헌정 체제를 수호하고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허우 후보는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은 라이 후보가 당선할 경우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뜨리고 독립할 가능성이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대만 선거 겨냥해 폭스콘 세무조사
중국은 라이 후보의 당선을 막고자 대만 국민에게 평화와 전쟁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천빈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현재 대만은 평화와 전쟁, 번영과 쇠퇴라는 두 갈래 길, 두 가지 앞날의 선택에 직면했다”며 “평화·발전·교류·협력을 원하는 것이 대만의 주류 민의”라고 주장했다. 천 대변인은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평화가 있겠느냐”고 경고했다.

중국은 무엇보다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해군 항공모함인 산둥함 전단이 최근 대만과 중국 본토를 구분하는 대만해협 중간선에서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대만 침공을 시사하는 일종의 무력시위라고 볼 수 있다. 그간 중국군 군용기와 군함은 대만 인근 해역에서 합동 순찰 활동을 벌였다. 중국군 전투기와 폭격기는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수시로 진입했다.

중국은 쓰촨성 시창위성발사센터에서 위성 발사용 창정-2D 로켓을 발사했는데, 이 로켓은 대만 남서쪽 영공을 통과했다. 대만을 공격할 수 있는 각종 미사일 1500여 기를 보유한 중국이 대만 영공을 지나는 궤적으로 로켓을 발사한 것은 언제든 대만 타격이 가능하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정찰 풍선을 5번이나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기며 날려 보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2023년 연초부터 대만을 겨냥한 경제제재 조치도 단행했다. 중국 관세세칙위원회는 대만산 12개 화학 품목에 대해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따라 적용해오던 관세 감면을 중단하고 현행 규정에 따른 세율을 부과하기로 했다. 관세 감면 중단 대상은 프로필렌과 부타디엔, 이소프렌, 파라자일렌, 염화비닐 등 화학 품목이다. 중국과 대만은 ECFA에 따라 대만산 267개, 중국산 539개 품목에 무관세 혜택을 적용해왔다. 대만 정부는 “중국의 일방적 조치는 총통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앞서 중국은 친중 후보 단일화 압박을 위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궈타이밍 후보가 설립한 폭스콘 공장들을 대대적으로 세무조사 했고, 결국 궈 후보가 사퇴했다. 궈 후보는 폭스콘 창업자이자 회장을 역임했다. 미국 애플 최대 협력사인 폭스콘은 정저우 등 중국에서 대규모 공장들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산 우럭 수입을 재개하는 등 ‘당근’도 내놓았다. 중국의 의도는 민진당 텃밭인 남부 어민들이 양식하는 어류의 수입 금지를 해제해 국민당을 우회 지원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교류와 협력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만 국민에게 유화 제스처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대만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중국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후원했다.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수도 타이베이시 이장 30%가 일주일 일정으로 중국에 다녀왔는데 개인 비용이 1만∼1만5000대만달러(약 42만∼62만 원)에 불과했다. 식사나 관광비용을 중국에서 부담했기 때문이다. 제2도시 가오슝시를 비롯한 주요 도시 이장들도 이처럼 중국에 ‘저가 여행’을 다녀왔다. 대만 이장은 한국의 동장 격이지만 선출직이다.

대만서 펼쳐지는 미·중 대리전
중국은 자국에 거주하는 대만인들에게 총통 선거에 적극 참여해 국민당 후보를 선택해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대만에서 친중파 정치인으로 유명한 샤리옌 국민당 부주석을 초청해 대만인이 많이 사는 자국 남부 5개 지역을 순회하도록 했다. 중국에는 사업 등을 이유로 대만인 120만여 명이 거주 중인데, 이는 대만 인구의 5%를 차지한다. 대만은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어 해외에 체류하는 재외국민은 직접 대만으로 돌아가 투표해야 한다. 샤 부주석은 대만인 모임 등에 참석해 대만으로 돌아가 투표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은 귀국하는 대만인을 위해 항공료 일부도 지원해주고 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가 박빙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라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의 투표 참여가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정훙 중국 대만동포투자기업연합회 회장은 “대만인 사업가의 80%가 투표를 위해 대만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만 총통 선거 결과는 양안관계뿐 아니라, 동북아를 비롯한 국제질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중파인 허우 후보가 당선할 경우 통일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2년 12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해 “조국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통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으로선 대만 통일을 바탕으로 남중국해와 동남아 주도권을 장악할 경우 미국과 패권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중국은 대만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이용해 미국 경제제재도 돌파할 수 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도 대만 선거 결과는 중요하다. 미국으로선 라이 후보가 당선할 경우 대만과 군사협력 등을 통해 중국의 남중국해와 태평양 진출 등 해양 패권 도전을 봉쇄할 수 있다. 중국은 4000㎞에 달하는 긴 해안선을 갖고 있지만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 남쪽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등에 막혀 해양 진출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미국은 대만을 발판으로 동남아를 비롯해 인도·태평양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TSMC를 비롯해 대만 첨단산업 기업들에 대한 공급망도 유지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대만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1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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