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이제 국가가 진짜 책임질 때가 됐다[기고/장성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1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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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인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장성인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기승전 ‘의대 증원’이었다.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공병원의 확장을 위해, 또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서도, 모든 의료 문제의 만병통치약은 의대 증원이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서 지방의료원을 짓고, 병상 수를 300병상 이상으로 증축하더라도 그곳에 의사가 없으면 소용없었다. 지역의사제는 의사를 공공병원에 묶어 놓기에 획기적이었고, 공공의대는 ‘착한 의사’를 만들어낼 상징성이 충분했다. 입학 과정의 공정성 이슈가 아니었더라면 그때 의대 정원은 증원됐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상황이다.

정권이 바뀌고 보건의료에 있어서도 재정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중시하게 됐다. 공공의료보다 필수의료에 방점을 두는 정책기조가 들어서고 비효율과 포퓰리즘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십 년간 누적된 병폐는 ‘필수의료 공백’으로 여실히 드러났고, 세계 최고라 자랑했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는 이제 ‘최소한의 필수’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또다시 등장한 해결책이 의대 증원이다. 같지만 다르다. 의료를 관리 통제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자유로운 시장 영역을 인정하고 활용하려고 한다. 전문의 자격 없이 월 1000만 원을 버는 무천(無千)도사가 레드오션이 되어 필수의료의 영역으로 의사가 흘러 들어올 것이라는 ‘낙수효과론’이 그것이다. 공공의대를 통한 지역의사제가 강제하는 방식이라면, 현 정책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흘러가도록 한다.

다만 필요한 곳으로의 유입을 위해서는 장애물을 걷어내고 고랑을 충분히 파 주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공정책수가’는 그런 유인을 위한 고랑이다. 방향은 바뀌었고, 정도가 관건이다. 최근 논의되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완화’는 장애물을 걷어내는 것이다. 구색은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가 필수의료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악화되는 재정상황 속에서 국가는 ‘어쩔 수 없이’ 시나브로 필수의료를 소외시키게 될 것이다. 국가 입장에서 필수의료는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표류하다가 사망해도, 오픈런을 해야만 해도 국가는 ‘지원’을 할 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국가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수의료, 이제 국가가 진짜 책임질 때가 됐다. 국가가 당사자로서 실제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국가가 필수의료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가질 때 필수의료는 하나씩 정비되어 갈 것이다.

의료행위의 보상 중에 약 1.4%는 법적 분쟁에 대한 부분이다. 국가가 책임 당사자가 된다면 이 재정을 아끼거나 공공정책수가로 활용해서 필요한 정책에 활용할 수도 있다. 혹은 국가가 배상하는 재원으로 쓸 수도 있다. 필수의료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에 소송하고 보상받으면 된다.

소송에서의 방어 부담이 없어지기 때문에 의료 제공 과정을 밝히는 것도 투명해진다. 패소할 경우 전문 위원회를 통해 의료진의 법적 보호를 박탈하고 처벌을 하면 의료진의 고의·과실로부터 환자를 보호할 수 있다. 모든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뜨거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이슈에 힘입어 ‘필수의료 국가책임제’가 당론이라도 된다면 요원한 일은 아니다.



장성인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필수의료#국가#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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