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근로자, 원청 상대 파업 가능해져… “공장문 수시로 닫을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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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野강행 ‘노란봉투법’ 반발
하청-원청도 법적 노사관계 성립… 현대차, 하청업체만 5000여개
재계 “노사 리스크 커… 국민 피해”… 노동계 “파업만능법 악의적 선동”

노란봉투법 표결 부치자… 與, 위원장에 항의 21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해철 
환노위원장(오른쪽)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자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왼쪽)이 위원장석 옆에서 항의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날 민주당과 정의당 소속 위원 9명이 거수 표결에 찬성해 통과됐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노란봉투법 표결 부치자… 與, 위원장에 항의 21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해철 환노위원장(오른쪽)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자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왼쪽)이 위원장석 옆에서 항의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날 민주당과 정의당 소속 위원 9명이 거수 표결에 찬성해 통과됐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하청업체가 수십 곳, 수백 곳인 기업(원청)들은 하청 근로자들이 돌아가면서 파업을 벌인다면 수시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통과되자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현장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노란봉투법이 앞으로 본회의도 통과해 시행된다면 큰 파장이 뒤따를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정부 여당도 ‘파업 만능법’ ‘파업 조장법’이 될 것이라며 야당을 향해 입법 철회를 촉구했다.

● “파업으로 해결하려는 사례 늘어날 것”
노란봉투법이라는 명칭은 법원이 2014년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회사에 4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한 시민이 노란 월급봉투에 4만7000원을 담아 보내며 모금운동을 제안한 데서 유래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용자의 개념을 확장한 2조 2항이다. 현행법은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등으로 한정했지만 개정안은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확장했다.

이렇게 되면 원청과 하청 근로자, 지주회사와 자회사 근로자 사이에도 법적 노사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원청이 하청과 맺은 계약 금액 등이 결과적으로 하청 근로자의 임금, 처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청이나 자회사 소속 근로자가 원청 혹은 지주사를 상대로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자동차만 해도 1차 협력사가 300여 곳에 이르고 2, 3차까지 포함하면 5000여 개의 하청업체를 두고 있다. 이 업체들의 근로자들이 현대차 본사를 상대로 교섭에 나올 것을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을 벌여 현대차 제품 생산을 막을 수도 있게 된다.

노조가 합법적으로 파업을 벌일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한 2조 5항도 쟁점이다. 현행법은 합법적 파업 범위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해 불일치가 있는 경우라고 규정했지만 개정안은 여기서 ‘결정’이라는 말을 뺐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결정’과는 무관한 채용, 정리해고 등 다른 제반 사항들도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최근 노동판례·정책 동향 및 기업 대응방안 웨비나’에서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는 “현재는 단체협약을 체결(결정)하는 과정(이익분쟁)에서만 파업을 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단협이 아닌 다른 상황(권리분쟁)에서도 언제든지 근로조건을 위해 파업할 수 있다”며 “노사 간 이견이 발생하면 법원에서 다투기보다 파업으로 해결하려는 ‘파업 만능주의’를 조장할 것”이라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날 입장문에서 “교섭체계도 흔들리고 결국 사법적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며 “실력 행사에 의한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 기업의 손배 청구도 봉쇄… “피해는 결국 국민”
개정안에는 사측의 손배 청구를 어렵게 만드는 조항도 담겼다. ‘노조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것. 지금은 법원이 ‘노조가 회사에 100억 원을 배상하라’는 식으로 판결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파업에 가담한 A는 얼마, B는 얼마, C는 얼마…’ 식으로 판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 제기 단계부터 사측이 노조원 개개인의 책임과 귀책 사유를 일일이 산정해 소를 제기해야 하고, 또 이를 법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이런 소송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노사 리스크가 너무 커지면 결국 기업은 한국을 떠나고 피해는 대다수 국민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악의적 선동”이자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통과된 법안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이 아니다”라며 “법원의 (합법 파업에 대한) 판결이 명확한 상황에서 파업권을 남발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이) 제한적으로 만들어져 너무나 슬프고 속상하다”면서도 “지금까지 만들어낸 법안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라고, 반드시 통과시키라고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노란봉투법#원청#하청근로자#노사 리스크#파업만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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