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택 앞 시위의 유형도 예전엔 1인 시위 위주였는데, 요즘엔 단체 시위로 바뀌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 주민들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자택 앞에서 12일부터 벌이고 있는 시위도 한 예다. 이들은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공사로 인한 붕괴 위험을 거론하며 아파트 하부를 지나도록 설계된 광역급행철도(GTX) 노선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GTX 노선을 바꿀 결정권은 현대건설이 아니라 국토교통부에 있다. 정 회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이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토부는 안전에 관한 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터널을 뚫는 공법도 주민들이 걱정하는 ‘발파공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성에 대해 “산 밑에 빨대 두 개를 꽂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하는 전문가도 있다. 무리한 시위는 재건축추진위에 소속된 주민들에게도 자충수가 된 형국이다. 국토부가 재건축추진위 공금을 GTX 반대 시위에 사용한 것이 위법이라며 조사를 시작한 것이 단적인 예다.
▷현행 집시법에는 ‘사생활의 평온(平穩)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이 집회를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자택 앞 시위는 법률의 문제를 떠나, 기본적인 상식과 시민의식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앞서 주가 하락 시위만 하더라도 충분히 항의는 할 수 있지만 꼭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시위 대상이 되는 기업인들의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음과 혐오 표현에 고통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