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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해방촌 언덕에 묻어나는 삶, 잠깐 놀러온 관광객은 몰라”

입력 2022-11-30 03:00업데이트 2022-11-30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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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시집 낸 ‘해방촌 시인’ 황인숙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게다가 지름길 꼭 오르막이지/마치 내 삶처럼’(시 ‘내 삶의 예쁜 종아리’ 중)

황인숙 시인(64·사진)은 최근 출간한 9번째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에서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1986년 집세가 저렴한 곳을 찾아 해방촌에 들어왔고, 지금은 작은 옥탑방에 살고 있다. 언덕이 많은 동네, 가파른 골목길을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굵어진 종아리를 보고 그는 역설적으로 “예쁘다”고 표현한다. 전화로 28일 만난 그는 “해방촌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담담히 말했다.

“평지에 세워진 아파트에서 태어나 잠깐 해방촌에 놀러 오는 관광객은 몰라요. 노인이 폐지가 담긴 수레를 끌고, 상인이 무거운 상자를 옮기는 이 언덕엔 삶이 묻어난다는 걸요.”

그가 시집을 펴낸 건 ‘아무 날이나 저녁때’(현대문학·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그는 신작에 해방촌의 뒷모습을 담아냈다. 시인은 퇴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짙고 짙은 암갈색/환영처럼 앉아 있었다’(‘어둠의 빛깔’ 중)라고 썼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소리 지르는 시장 상인을 보곤 ‘뒤집힌 풍뎅이처럼 자빠져/바둥거리는 맛도 있다우’(‘장터의 사랑’ 중)라고 풀어냈다.

1984년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그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해방촌을 돌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그러나 ‘동네 한 바퀴 돌고/돌아오는 길에 보니/고양이 밥그릇이 사라졌다’(‘봄의 욕의 왈츠’ 중)는 일도 벌어지는 게 현실. 해방촌에 언제까지 살 것이냐고 묻자 그는 조용히 답했다.

“제가 돌보는 고양이만 80마리에 가깝습니다.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날 때까지 이곳에 살 겁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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