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만에 첫 왕… 관객들 안 웃어 안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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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서 인조 역할 배우 유해진
“왜 나야? 처음 제안한 감독에 되물어… 왕 역할 한번쯤 해보면 좋겠다 싶기도
더도 덜도 말고 역사 속 기록만 생각… 무대서 연극한단 마음으로 광기 표현”

‘올빼미’ 포스터.
‘올빼미’ 포스터.
“‘왜 나야? 다른 배우 많잖아?’ 이 말부터 나오더라고요.”

배우 유해진(52)이 1997년 ‘블랙잭’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25년 만에 처음 왕 역을 제안받고 감독에게 한 말이다. 그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올빼미’에서 조선 16대 왕 인조로 열연했다. 현대극과 사극을 막론하고 그는 주로 코믹한 캐릭터를 맡아왔다. 사극만 좁혀 보면 영화 ‘왕의 남자’(2005년)에선 광대 육갑 역을,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년)에선 해적에서 산적으로 전향(?)하는 철봉 역을 맡아 천민을 연기해왔다.

그런 그에게 웃음기라고는 없는 데다 최고 신분인 왕 역을 제안한 이는 ‘왕의 남자’ 조감독 출신의 안태진 감독.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유해진은 “안 감독은 나를 택한 이유로 ‘조금 다른 왕이었으면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하면 확 다르겠지’라고 되받아쳤다”며 웃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올빼미’에서 인조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1997년 영화계에 데뷔한 유해진이 왕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다. 유해진은 “왕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진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후배인 배우 진선규가 ‘형이 왕 하니까 너무 좋다’며 
희망을 갖더라”면서 웃었다. NEW 제공
23일 개봉하는 영화 ‘올빼미’에서 인조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1997년 영화계에 데뷔한 유해진이 왕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다. 유해진은 “왕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진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후배인 배우 진선규가 ‘형이 왕 하니까 너무 좋다’며 희망을 갖더라”면서 웃었다. NEW 제공
영화에서 유해진은 왕 그 자체다. 상영 25분이 지나서야 왕실의 보일 듯 말 듯한 얇은 막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는 언뜻 비치는 존재 자체로 관객이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든다. 평소 코믹한 이미지는 모두 털어냈다. 권력에 눈이 멀어 광기에 휩싸인 인조를 지금껏 본 적 없는 왕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그는 “원래 시나리오에는 인조가 ‘짠’ 하고 등장했다”며 “아무리 영화라도 대중이 가진 유해진에 대한 이미지가 있지 않으냐. 관객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서서히 나타나는 것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사회에서 내가 처음 나올 때 관객들이 실소를 터뜨리진 않더라. 나를 왕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싶어 안심했다.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인조실록에 실린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1612∼1645)의 죽음에 관한 기록에 상상을 더한 스릴러물이다. 병자호란 후인 1637년 청나라에 인질로 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인조 23년(1645년), 귀국 한 달여 만에 사망한다. 사인은 학질(말라리아). 그러나 시신 외관으로 볼 때 인조가 의관 이형익을 시켜 독침을 놓아 죽인 것이라는 독살설이 제기돼왔다. 영화에는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인물로, 빛이 없을 때만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궁중 시각장애인 침술사 경수(류준열)라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주로 어스름한 시간을 배경으로 세자가 죽어가는 모습과 진범을 찾는 과정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그려진다. 권력욕에 부정마저 버린 비정한 아버지이자 왕위를 뺏길지 모른다는 병적인 불안감에 시달리는 왕을 연기하는 유해진은 숨이 막히는 수준까지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유해진은 “인조를 연기할 때 더도 덜도 말고 역사에 기록된 내용만을 생각했다”며 “광기를 표현할 땐 무대에서 연극 한 편을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면 마비로 한쪽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입이 비뚤어져 말할 때 웅얼거리는 모습까지, 실제 환자처럼 연기한다. 그는 “주변에 안면 마비를 앓는 분들 모습을 참고했다”며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인조의 모습은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모습”이라고 했다.

시사회를 통해 왕으로 분한 유해진을 접한 평단은 극찬했다. 그럼에도 베테랑 배우는 관객에게 정식으로 영화를 선보이기에 앞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왕 역할을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관객들이 ‘이야, 뭐? 유해진이 왕을 한다고?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 이런 생각만 안 하고 편하게 보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웃음)”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올빼미#인조#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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