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근형]사각지대 ‘발굴’만으론 세 모녀 비극 못 막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경기 수원에서 세 모녀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지 2주가 지났다. 비극적인 사연이 전한 안타까움과 분노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 8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그랬듯, 이들에 대한 관심의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은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의 관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수원 세 모녀의 사연이 알려진 뒤인 지난달 21일에도 “쉽게 대책이 나오기 힘든 문제”라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하자 그날 오후부터 대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현장 간담회, 각종 브리핑이 우후죽순 잡혔다. 그러다 보니 사각지대 민관 합동 발굴 등 단골 대책들이 반복됐다. 그마저도 지난달 25일 세 모녀의 장례식 이후에는 움직임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 한 소장파 복지학자는 “한바탕 연극이 끝난 것 아니겠느냐”며 씁쓸해했다.

복기해보면 ‘번갯불에 콩 볶듯’ 지나간 지난 2주 동안 놓친 부분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는 ‘왜 세 모녀를 발견하지 못했나’에 집중했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좀 더 세밀하고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일견 타당한 해법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세 모녀와 같은 소재불명 위기가정을 모두 찾았다고 가정해보자. 이들 모두가 안정적인 복지 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정부가 자랑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은 올해만 약 52만 가구를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 중 절반은 아예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일시적 지원만 받거나, 민간 복지기관으로 넘어가는 사례도 많았다. 기초생활보장제 등 빈곤에서 벗어날 때까지 안정적으로 공적 지원을 받은 사람은 전체 100명 중 3명꼴에 불과했다. 기초생활보장제의 문턱이 아직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움이 절실하지만 서류상 부양가족이 있으면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월 소득 125만 원(3인 가구 기준) 이상도 생계급여 대상자가 되기 힘들다. 2, 3개월 걸리는 기초수급자 선정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고 있었거나 처분하기 어려운 사소한 재산이 발견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수도권의 한 복지 공무원은 “중고로 팔면 200만 원밖에 못 받는 소위 ‘똥차’를 보유해도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며 “이런 가정은 대개 정기적으로 통원이 필요한 환자가 있는데, 차를 팔지 못하고 복지 지원을 포기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1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5%)의 절반에 불과하다.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방, 교육, 치안 등 다른 부문과 달리 선진국과의 격차가 크다. 기초생활보장제 확대 등 전체 복지 파이를 키우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이라는 보완적 대책만으로는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어렵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눈감는다면 ‘약자 복지’라는 윤석열 정부의 슬로건은 진정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사각지대#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약자 복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