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다가 잘 졸거나 멍 때리는 아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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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뇌의 ‘온-오프’ 돕는 숙면과 운동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초등학교 5학년 ○○이는 공부를 한다고 앉아서는 가만히 보면 졸거나 멍을 때릴 때가 많다.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럴까? 부모는 이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걱정도 되고 한숨이 나기도 한다.

어른 중에도 전날 충분히 잤는데도 불구하고 잘 조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흥미와 관심을 느낄 때는 졸지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일을 하거나 회의를 하다가도 꾸벅꾸벅 존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 눈을 반짝이다가 지루하면 금세 존다. 주의력의 기능에는 뇌를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있다. 이것이 미숙하면 흥미나 관심이 없는 일에는 깨어 있지 못한다. 주의력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부 발달에 잠시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부모가 도와주면 자라면서 서서히 균형이 맞춰지는데, 만약 아이의 주의력이 또래보다 많이 떨어진다면 어른이 돼도 정상 수준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어른들 중에서도 주의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부모가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교육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초등학생 또는 중·고등학생들은 주의력의 발달 여부를 살피기 전에 전날 푹 잤는지를 살펴야 할 것 같다. 부모는 수면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지만, 수면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초등학생 수면 시간은 10∼11시간, 청소년은 8∼10시간이다. 우리나라 아이들 중 이만큼 자는 경우는 아마 드물 것이다. 공부나 학원 때문에 보통 이보다 2시간 이상 적게 잔다. 따라서 수면 부족으로도 잘 졸고 멍한 상태일 수 있다.

그다음으로 살펴봤으면 하는 것이 아이가 ‘체간(몸통) 상체를 똑바로 세울 수 있는가’이다. 상체를 똑바로 세우려면 모든 근육과 인대를 긴장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시선을 분명하게 고정할 수 있다. 부모들이 똑바로 앉으라고 하는 바로 그 자세가 뇌의 각성에 필요한 자세이다.

요즘 아이들은 똑바로 앉아 있는 것을 참 힘들어한다. 엉덩이가 쭉 빠지거나 옆으로 쓰러져 눕거나 등이 잔뜩 굽은 채로 앉아 있는 아이들이 많다. 부모가 똑바로 앉으라고 하면 잠시 자세를 잡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자세가 무너진다. 아이들이 똑바로 앉아 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과 몸을 움직이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대부분 앉아서 생활하다 보니 근육과 인대를 긴장시키는 운동신경이 덜 발달되었다. 따라서 책상 앞에 똑바로 앉아 있지 못하니 뇌가 각성이 안돼 쉽게 졸게 된다.

한번 생각해보자. 공부하라고 학원을 보냈는데, 학원에서 각성이 안돼 멍 때리다 온다. 집에 와서는 또 늦게까지 숙제를 붙들고 있다. 잠을 늦게까지 못 자니 학교에서 자꾸 졸고 공부를 못하니 학원을 끊을 수가 없다. 학원 숙제를 하느라 매일 늦게 자니 성장호르몬이 나오지 않아 키가 안 크고, 그러면 키를 크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해야 한다. 밤에 잠을 못 자서 집중을 못 하면, 해야 할 과제를 다 못 하니 또 늦게 잘 수밖에 없다. 학교와 학원을 쫓아다니느라 운동할 틈이 없으니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않아 책상 앞에서 똑바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그런 데다 잘못된 자세로 매일 앉아만 있으니 척추에 이상이 생겨 허리, 어깨, 등 같은 몸 여기저기가 아파온다. 운동을 하고 잠만 충분히 재웠으면 해결될 일이 복잡하게 꼬이는 것이다.

잘 조는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굉장히 산만하다. 다리를 떨고 볼펜을 돌리고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는 등 엄청 바스락거린다. 아이 입장에서는 졸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수업에 방해가 된다. 이보다는 책에 밑줄을 긋거나 공책에 뭐든 쓰라고 조언한다. 몸을 움직여서 뇌를 깨어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 중에는 “똑바로 좀 앉아” 하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런 잔소리보다 부모와 함께 걷거나 뛰거나 학교 운동장에 가서 철봉에 매달리고 멀리뛰기도 하는 것이 아이의 자세를 바로잡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자세를 바로잡는 것은 모든 대근육이 잘 발달되어야 가능하다. 잔소리할 시간이면 아이와 맨손체조라도 함께하고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것이 낫다.

잘 조는 아이들을 보면, 자야 할 시간에 깨어 있어 뇌의 온(on)과 오프(off)에 문제가 생긴다. 자야 할 시간에 깨어 있는 아이들은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잠이 온다. 또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졸았기 때문에 자야 할 시간에는 또 잠이 안 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초등학생이 학원에 다니느라 오후 11시 이후에 잠자리에 들면 주의력 발달에도 좋지 않고, 학교에서도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아이들은 10명 중 6명은 중·고등학교 때 조는 아이가 된다. 오후 9시에는 재우라고 하고 싶지만 늦어도 오후 10시는 넘지 않는 것이 아이의 성장과 뇌 발달, 공부에 모두 좋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뇌 온-오프#숙면#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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