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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日, 오키나와에 中대항 전력 증강… “더는 희생 안 돼” 주민 반발[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2022-05-19 03:00업데이트 2022-05-1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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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일본 패전 후 미국령 오키나와는 1972년에서야 일본 영토로 공식 편입됐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공식 반환된 1972년 5월 15일 나하시 고쿠사이도리에서 주민 3만여 명이 ‘오키나와 희생 강요 반대’를 외치며 데모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50년이 지난 이달 12일 나하시 오키나와현청 앞에서 젊은이들이 ‘오키나와를 전쟁터로 만들지 말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나하=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이상훈 도쿄 특파원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과 일본의 최대 격전지였던 오키나와가 15일로 일본 공식 반환 50주년을 맞았다. 오키나와는 미군 아시아·태평양 거점이자 중국에 대항하는 최전선으로 지정학적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군기지가 집중돼 생기는 주민 피해와 일본에서 가장 낮은 소득 수준이 대변하는 경제 여건은 여전히 숙제다. 반환 50주년을 맞아 축제 분위기와 긴장감이 뒤섞인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를 찾았다.》



축제 분위기 속 반발도
12일 오키나와 최대 도시 나하시 오키나와현청 앞. ‘본토 복귀 50주년’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인근 공터에 걸렸다. 오키나와는 1945년 8월 일본 패전 후 미국령으로 있다가 27년 만인 1972년 5월 15일 일본에 공식 반환됐다. 반환 50주년 기념식을 사흘 앞둔 이날, 거리 곳곳에는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과 간판 등이 내걸려 들뜬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현청 정문 앞에서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확성기를 들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이 정권은 오키나와를 또다시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습니다. 50년 희생했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들은 ‘미군기지 영구화 반대’ ‘분노의 데모에 나서자’같이 격한 문구를 적은 전단지를 뿌렸다.

오다카 사토시 씨(56)는 전단지를 주워 들고는 박수를 보냈다. 오다카 씨는 “안보를 이유로 오키나와에 미군과 자위대를 영구 주둔시킬 수는 없다. 오키나와가 다시 희생당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당수 시민은 별 눈길을 주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카무라 아야카 씨(31)는 “이곳에서 시위는 일상이다. 오키나와가 차별받는다고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튿날 오전 미군 해병대 후텐마 기지가 있는 기노완시를 찾았다. 미군기지에서 약 2km 떨어진 전망대에 오르니 도심 한복판 군용비행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 여의도와 비슷한 면적(4.8km²)인 후텐마 기지에서는 5분에 한 대꼴로 군용 헬리콥터, 수송기 등이 하늘을 갈랐다. 전망대에서 만난 주민은 “미군 작전이 있는 날은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이 온종일 이어진다”고 말했다.

50주년 기념식이 열린 15일 나루히토 일왕은 대독한 축사에서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비참한 지상전 무대가 됐다”며 ‘비참하다’는 표현을 썼다. 부친 아키히토 상왕이 “전쟁 기억이 옅어지는 요즘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며 우경화 경향이 짙어지는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것을 떠올리게 했다.

미군 피해, 여전한 격차
태평양전쟁 최대 전투이자 일본 영토 유일한 지상전이던 1945년 4∼6월 오키나와 전투에서 주민 상당수가 군과 간호대, 노역으로 끌려갔다. 당시 전체 주민 49만 명 가운데 12만 명 넘게 숨졌다.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군은 주민들에게 “미군에 끌려가면 잔인하게 살해되거나 강간당한다”고 거짓 주장을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강요했다. 마을 방공호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집단 자결하거나 가족끼리 서로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교과서에 ‘집단 자결에 몰렸다’고만 표현할 뿐 일본군이 강요했다는 사실은 명기하지 않고 있다.

일본 국토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전체 주일미군 기지 70%가 몰려 있어 소음은 물론 각종 사고로 인적, 물적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주민은 ‘미일 동맹 혜택은 본토가 누리고 피해는 오키나와가 뒤집어쓴다’고 생각한다. 아사히신문이 최근 오키나와 주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오키나와와 본토에는 다양한 격차가 있다’(89%) ‘정부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 주민 의견을 듣지 않는다’(74%) 같은 응답이 나온 것은 일본 정부 및 본토에 대한 오키나와의 반감을 드러낸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경제를 (미군)기지 관광 공공사업에 의존하는 ‘3K 경제’라고 부른다. 자생력이 미약해 경기가 조금만 둔화돼도 타격이 크다. 오키나와 1인당 연간 평균 소득(239만 엔·약 2350만 원)은 일본 평균(332만 엔)의 70%, 일본 47개 광역자치단체 중 최하위다. 2019년 한 해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었지만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해 여행객은 327만 명에 그쳤다.

지정학적 중요성 더욱 커져
오키나와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반경 5000km 이내에 한국 중국 필리핀 베트남 러시아 등이 들어 있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태평양 쐐기돌(keystone)’이라 부를 정도로 중시한다. 미군의 해외 주둔 최대 기지인 가데나 공군기지도 여기에 있다. 아시아·태평양 분쟁 지역이나 분쟁 가능성이 큰 국가들과 가까워 미군이 유사시 대응하기 쉽다.

6·25전쟁, 베트남 전쟁 때는 미군의 배후 병참기지 역할을 했고 냉전시대에는 극동 러시아를 표적으로 둔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기도 했다.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안보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미일 동맹 억지력에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고사부로 니시메 오키나와담당상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일본과 떨어져 있었다면 오키나와는 지금 중국 위안화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오키나와 남쪽 난세이 제도에 미 해병대 거점을 두는 공동작전계획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대양 진출을 저지하는 최전선이 되는 셈이다.

군사대국화를 꾀하는 일본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방위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2016년 대만과 111km 떨어진 오키나와 서쪽 요나구니섬에 자위대 연안감시대를 배치해 중국 선박 및 항공기를 24시간 레이더로 감시하고 있다. 2019년에는 지대함-지대공 미사일 부대를 주둔시켰다. 올 연말에는 미사일 부대를 추가 배치할 예정이다.

이처럼 오키나와를 최전선 기지로 주목하는 일본 정부와 ‘더 이상 군 기지화는 안 된다’는 오키나와의 간극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오키나와는 1995년부터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 지사는 지난해 말 일본 정부의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북부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려고 하지만 오키나와현은 헤노코의 지반이 연약해 바다를 매립해서는 의미가 없다며 반대한다. 매립을 위해 오키나와 곳곳에서 파낸 흙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숨진 사람들 유골이 발견되면서 주민들 감정은 더욱 끓어올랐다. 일본 정부는 올해 오키나와 예산을 10년 만에 처음으로 3000억 엔 이하로 편성해 오키나와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팽창주의로 세계 질서 재편 움직임이 거센 지금 오키나와는 물론 아시아·태평양을 둘러싼 환경 역시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은 오키나와의 현재와 미래는 한국으로서도 허투루만 볼 수는 없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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