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용관]美쇠고기 수입 1위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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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튜브에선 ‘왕망치 스테이크’로 불리는 토마호크 스테이크 굽기 영상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조회수가 수백만에 달하는 유튜버들도 있다. 티본, 엘본 스테이크 굽기 영상도 많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트렌드까지 형성되며 우리나라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최대 수입국에 올랐다. 2020년까지는 일본이 최대 수입국이었는데, 지난해 역전됐다. 2008년 ‘뇌 송송 구멍 탁’의 광우병 파동을 겪은 지 13년 만이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1∼11월 미국에서 수입한 쇠고기는 25만 t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했다. 금액으론 21억 달러를 넘어 39% 증가했다. 미국산의 국내 수입 쇠고기 점유율도 54%에 달한다. 2000년대 초 한때 ‘LA갈비’를 내세워 국내 시장을 점령했지만 광우병 파동 등 곡절을 겪으며 호주산에 1위를 내줬다가 다시 시장을 장악하고 물량도 크게 늘린 것이다.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MBC PD수첩은 그해 4월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는 보도로 한국 사회를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다” “공기로도 감염된다” 등 괴담이 번졌고, 유모차 부대 등까지 광화문으로 쏟아졌다. 그 뒤 광우병 사망자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미는 그해 6월 추가 협상을 통해 30개월이 안 된 소에서 나온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광우병 집회를 ‘검역 주권’을 바로세운 시민의식의 발로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괴담이 판을 치고, 과학에 근거해 팩트를 보도하던 언론사와 기자들이 무차별 공격을 당했던 사실엔 침묵한다. 당시 광화문은 민주주의 광장으로 보기 어려웠다. 가짜뉴스와 괴담, 선동에 수많은 사람들이 현혹돼 거리를 메운 현대판 대중조작 정치의 한 장면이었다.

▷요즘 미국산 쇠고기를 사 먹으며 “혹시 광우병?”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이들은 주로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층이 많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다. 요즘은 냉동육이 아닌 냉장육의 비중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갈비 중심이던 수입 부위는 안심, 등심 등 전통적 부위를 넘어 토마호크, 티본, 포터하우스와 같은 고급 스테이크 부위로 확대되고 있다. 2026년엔 관세가 폐지돼 수입 물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호주산과의 품질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의 주요 식자재가 된 사실은 근거 없는 괴담이 시장의 합리적 선택을 끝까지 가로막거나 왜곡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새삼 알려주고 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미국#쇠고기#수입#1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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