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날아오른 따오기, 우리 동네에도 오려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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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그렇게 같이 살기로 했다]
‘따오기의 고향’ 창녕 주민들, 논에 농약 안 쓰고 서식지로 내놔
“친환경 ‘따오기 쌀’ 기대하세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198호인 따오기 발목에 방사한 개체를 구별하기 위한 식별띠가 부착돼 있다. 국내에선 1950년대 이후 농약 사용과 남획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2008년 중국에서 따오기 한 쌍을 기증받아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198호인 따오기 발목에 방사한 개체를 구별하기 위한 식별띠가 부착돼 있다. 국내에선 1950년대 이후 농약 사용과 남획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 2008년 중국에서 따오기 한 쌍을 기증받아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1925년 발표된 애달픈 동요의 주인공 따오기. 1979년을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복원을 통해 다시 날아오른 지 3년이 됐다. 올해는 야생에서 처음 새끼를 부화하는 등 자연에 적응하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마을에도 날아올지 모를 일이다. 따오기와의 ‘동행’을 선택한 경남 창녕 우포늪 일대를 다녀왔다.》

따오기 울음소리 들어 봤나요… 심금을 울립니다

지난달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이주호 씨(61) 논에는 베어낸 벼 밑동만 남아 있었다. 논의 가장자리 2m 정도는 벼 밑동도 없이 흙과 물이 드러나 있었다. 물을 빼고 심어둔 마늘 싹이 올라와 푸릇푸릇해진 주변 논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은 이 씨가 따오기들이 먹이를 먹으며 쉬라고 비워둔 논이다. 사계절 내내 농약을 치지 않는다. 겨울철에도 물이 고여 있도록 유지한다.

“따오기는 진짜로 ‘따옥따옥’ 하고 웁니다. 소리가 둥글면서도 꽤 울림이 있어요.”

이 씨는 3년 전 따오기 울음소리를 처음 들어봤다. 원래 논이나 하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따오기는 농약 사용과 남획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국내에선 1979년 경기 파주에서 목격된 것이 마지막 야생 개체였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40년 만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온 따오기는 창녕 사람들에게는 ‘선물’ 같은 존재가 됐다.

○ 2019년부터 야생 방사 시작

국내 따오기 복원은 2008년 중국에서 한 쌍을 기증받으며 시작됐다. 이 따오기들은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부터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일반 새장보다 크고 흔들림이 적게 제작된 새장에 들어간 상태로 전세기 귀빈석에 앉아 한국에 왔다. 입국한 뒤에는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창녕군까지 특수 무진동차로 이송했다.

이듬해 두 마리가 알에서 부화했을 때는 경남도가 전국을 대상으로 새끼 따오기 이름을 공모했다. 후보만 530여 개가 접수돼 새끼 따오기들은 ‘따루’와 ‘다미’란 이름을 얻었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2013년에는 유전적 다양성을 늘리기 위해 중국에서 추가로 수컷 두 마리를 기증받기도 했다.

따오기 야생 방사는 여러 차례 미뤄지다 2019년에서야 이뤄졌다. 방사 예정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퍼지거나 날씨가 험해지는 등 여건이 맞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따오기 보호의 ‘강도’가 더 세졌다. 2014년 AI가 퍼졌을 때는 우포따오기복원센터 직원들이 설 명절 연휴를 포함해 2주간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합숙했다. AI 전염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 따오기와 동행하는 창녕 주민들

그렇게 개체 수를 늘려 2019년부터 지금까지 방사된 따오기는 총 160마리다. 이 중 116마리가 자연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따오기는 창녕 우포늪 일대 마을을 날아다니고 논에 와서 미꾸라지와 고동을 잡아먹는다. 둥지도 민가 근처에 트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사람 사는 곳 가까이에 산다.

따오기는 얕은 물가에서 벌레와 미꾸라지 등을 잡아먹는 새다. 이 때문에 강이나 바다가 아닌, 논이나 하천이 최적의 서식지다. 동시에 환경오염에 약하다. 농약을 치는 논은 곤충이나 작은 동물이 없어 따오기가 살 수 없다.

가장자리 2m를 비워두고 벼를 심은 창녕 지역 논. 따오기들이 편히 들어와 먹이를 찾아 먹으라는 주민들의 배려다.
가장자리 2m를 비워두고 벼를 심은 창녕 지역 논. 따오기들이 편히 들어와 먹이를 찾아 먹으라는 주민들의 배려다.
따오기를 위해 창녕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은 따오기가 날아가서 쉬고, 먹이도 먹을 수 있는 ‘거점 서식지’로 자신의 논을 내놨다. 논을 거점 서식지로 내놓으면 제초제와 농약을 일절 쓸 수 없다. 따오기들이 놀 수 있게 논 가장자리를 비워둬야 해 그만큼 심을 수 있는 벼의 양도 줄어든다. 대여료가 지급되지만 가을철 논에 물을 빼고 마늘 등을 심어 나오는 부가수익도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따오기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 주민들은 ‘자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엔 농작물을 먹는 새들이 농약을 사용해 쫓아내고 없애야 할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 기후위기 문제가 부각되고, 자연 보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친환경을 경제적 돌파구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6년 전 창녕으로 귀농한 공희표 씨(61)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다. 따오기가 사는 우포늪 주변만큼 친환경 농사가 어울리는 곳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공 씨는 “이제 소비자들은 값이 싸고 양이 많은 것보다 어떤 땅에서 어떻게 농사지은 쌀인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며 “고령화된 농촌이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려면 결국 사람과 동물이 모두 함께 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 씨는 향후 친환경 농사에 동참하는 창녕 주민들이 늘면 ‘따오기 쌀’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 점점 멀리 나는 따오기, 어디까지 갈까

지난달 11일 경남 창녕군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김성진 따오기서식팀 박사가 야생 적응 훈련 중인 따오기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11일 경남 창녕군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김성진 따오기서식팀 박사가 야생 적응 훈련 중인 따오기를 살펴보고 있다.
따오기 복원에 따라 창녕의 자연도 건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오기가 살 수 있게 논에 미꾸라지를 풀고 농약 사용을 멈추자 새들이 모였다. 2016년 60여 마리가 관찰된 제비가 올해는 200마리 넘게 관찰됐다. 논에 오리가 들어가 노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취재진이 지난달 창녕군 유어면 우포따오기복원센터 인근의 한 습지를 찾았을 때도 따오기는 중대백로 쇠백로 노랑부리저어새 등과 함께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노랑부리저어새도 따오기처럼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2급이다. 야생에 나온 따오기들은 이들과 자리다툼을 하며 열심히 미꾸라지를 찾아 먹고 있었다. 이따금 먹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미꾸라지를 부리에 물고 푸드덕 날아가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따오기의 활동 반경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김성진 우포따오기복원센터 따오기서식팀 박사는 “따오기들이 먹이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데다, 먹이를 찾으면 그곳에 머물면서 야생성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따오기들은 가깝게는 경남 밀양시 사천시 하동군, 멀리는 경북 경주시와 전북 남원시, 강원 영월군까지 날아가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우포늪을 벗어나 창원시 내서읍 광려천에서 월동한 따오기도 나왔다.

따오기 복원 사업의 최종 목표는 따오기가 예전처럼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에서 사는 것이다. 여기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북한 등도 포함된다. 김 박사는 “따오기가 사는 곳은 생태계 건강성이 확인된 곳인 만큼 사람에게도 이롭다”고 강조했다.

산양들아, 서울에 왜 왔니?… 인왕산-용마산에 수컷 두마리 터 잡아
설악산 등 고지대 사는 멸종위기종
도심 아파트단지 인근 속속 출몰
“새 서식지 찾아 더 올 가능성”


올 7월 인왕산에서 포착된 산양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올 7월 인왕산에서 포착된 산양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멸종위기종은 어느 정도 개체 수가 늘어나면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한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더구나 최근엔 도심에 숲길과 물길을 만들고 있다. 살 곳을 찾아 떠난 멸종위기종이 다시 우리 곁에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로 이렇게 서울에 돌아온 동물이 있다.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산양은 한반도 곳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1960년대 서식지 파괴와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해 현재는 설악산 고지대 등에만 모여 살고 있다.

산양은 서울에서도 중랑구 용마산과 종로구 인왕산에 각각 1마리씩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용마산에 사는 산양은 수컷이다. 2018년 7월 처음 발견됐다. 용마산에서 40km 이상 떨어진 경기 포천시 일대에 살다가 공사가 진행되던 포천-구리 고속도로를 거쳐 용마산까지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컷 산양은 현재 용마산과 광진구 아차산을 오가면서 살고 있다. 지난달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연구진이 현장을 조사한 결과 산양이 낙엽과 새순을 씹어 먹은 흔적, 나무에 뿔을 비벼 다듬은 흔적 등이 발견됐다. 산양의 동그랗고 까만 똥도 확인됐다.

지난해 인왕산에서 발견된 또 한 마리의 수컷 산양은 어디서 온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산양은 녹지축을 따라 서대문구 안산까지 이동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종로구 윤동주문학관과 목인 박물관, 서대문구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는 종종 산양을 봤다는 목격담이 나온다.

두 마리의 산양이 왜 서울에 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활동반경이 10∼20km에 불과한 산양이 우연히 왔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영태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지역 내 개체 수가 늘어날수록 산양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또 다른 산양이 서울과 경기, 그 외 지역에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히어로콘텐츠팀
▽ 기사 취재 : 강은지 송혜미 기자
▽ 사진·영상 취재 : 전영한 기자
▽ 그래픽·일러스트 : 김충민 기자
▽ 기획 : 위은지 기자
▽ 사이트 개발 : 임상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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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오기#산양#창녕#서식지#따오기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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