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인찬]스가의 1년 천하

황인찬 논설위원 입력 2021-09-07 03:00수정 2021-09-0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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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루(추る).’ ‘기대다, 의지하다’는 뜻의 이 일본어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지칭하는 현지 유행어다. 자신의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관철시키기보다는 전문가 등 주변 의견에 기대거나 결정을 미루는 스가 총리의 소극적인 스타일을 빗댄 말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뒤를 이었던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실정 등의 책임을 지고 ‘1년짜리 단임 총리’에 그치며 물러난다.

▷스가 총리는 3일 자민당의 차기 총재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며 총리 연임 도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지자 떠밀리듯 물러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달 스가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후보가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서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패배한 충격이 컸다. 스가 총리가 중의원 8년 등을 보낸 정치적 텃밭마저 그에게 등을 돌린 것. 그의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당연하다’(57%)는 여론이 ‘반대한다’(35%)를 훌쩍 앞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물(魔物)’에 지고 말았다.” 결국 코로나19가 스가 총리의 발목을 잡았다. 여행을 가면 경비를 지원해주는 ‘고 투 트래블’ 정책으로 엇박자 방역 논란을 빚은 것이 시작이었다. 백신 확보도 늦고 시스템도 미비해 접종률도 지지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 올림픽 강행이란 승부수를 띄웠지만 흥행은 참패했고, 코로나는 재확산됐다. 스가 총리는 방역에 집중하겠다며 총재 도전을 포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총재 선거에서 심판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꼼수란 비판이 많다.

▷스가 총리는 부모의 후광, 파벌, 학맥이 없는 ‘3무(無)’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행보가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의 ‘구로코(黑子)’ 역할 같다는 말도 있다.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채 극의 진행을 돕는 구로코의 보조 역할처럼 그는 아베 정권 시절 8년 가까이 관방장관을 맡는 등 2인자 역할에 익숙한 인물이었다. 총리가 돼서도 한일 과거사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그만의 철학이나 정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베 노선 계승’만을 되풀이하며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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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총리의 퇴임 효과는 즉각 나타나고 있다. 총리 연임 도전을 포기한 뒤 4, 5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6.5%포인트 뛰어올라 46%가 됐다. 일본 증시도 반색했다. 스가의 퇴임 의사가 전해진 당일 닛케이평균주가는 2.05% 오른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지난해 아베가 사퇴를 밝혔을 때 2.7% 급락했던 것과 대비되는 반응이다. 스가 총리의 급작스러운 퇴장 선언으로 인한 혼란보다는 새 총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일본이다. 30일 임기를 마치는 스가 총리의 마지막이 이래저래 초라해지는 것 같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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