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싸우는 군대… “마초문화-온정주의 못깨면 필패”

신규진 기자 ,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입력 2021-08-28 03:00수정 2021-08-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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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잇단 대책에도 끊이지 않는 軍내 성추행
서울 국방부 장관이 6월 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군 이모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금 군은 ‘성폭력과의 전쟁’ 중이다. 석 달 사이 공군과 해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후폭풍도 거셌다. 성추행 뒤 81일 동안 고통을 호소해 온 공군 이모 중사가 5월 말 숨진 채 발견되자, 13일 만에 공군참모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으로 세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한 서욱 국방부 장관은 12일 사망한 해군 A 중사 사건으로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잇단 군 내 성폭력 사건을 “병영 폐습”이라 규정하고 네 차례에 걸쳐 철저한 수사와 병영 문화 개선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군을 뒤흔드는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24일엔 육군 B 하사가 지난해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피해자의 언니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문제가 개선되는 집단이라면 살아 있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나름의 자정 노력에도 땅에 떨어진 군에 대한 신뢰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계 실패 등 군 특수성에 기반한 사건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성폭력 사건의 후폭풍이 장기화되면서 지휘관들도 부대 지휘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예하 부대 대대장은 “온 신경이 성 군기 관련한 조치에 쏠려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군 내부에서조차 후진적인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과 성폭력 사건 처리,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 을(乙) 중에 을 ‘女부사관’

공교롭게도 공군과 해군에서 잇따라 발생한 성폭력 사망 사건 피해자는 모두 여군 중사였다. 이 중사와 A 중사 모두 성추행을 당한 직후 이를 상관에게 알렸지만 두 달여간 부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군 관계자는 “군의 성범죄 근절 대책은 ‘을 중에 을’인 여성 부사관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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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준 부사관은 약 17만 명인 전체 군 간부의 65.2%를 차지한다. 이 중 여성 부사관은 6.8%에 불과하다. 9.9%인 여성 장교보다도 비중이 작다. 하지만 지난해 군에서 발생한 771건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하사와 중사가 58.6%로 가장 많았다. 대부분 5년 차 미만 초급 간부였다.

비중 자체가 작아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데다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의 가장 말단에 위치해 있다 보니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16년 군 인사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여성 부사관의 기본 복무 기간은 3년으로 남성(4년)에 비해 1년이 적었다. 장기복무 심사 전 복무가 가능한 최소한의 기간조차 당국의 무관심으로 차별이 방치됐던 셈이다.

통상 부사관은 장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근무지 순환 주기가 길다. 한 곳에 더 오래 근무한다는 뜻이다. 특히 레이더 관련 임무를 수행했던 이 중사와 A 중사처럼 전문성을 요하는 보직일수록 조직 내 인력 순환은 더욱 폐쇄적이다. 출신별 지휘 관계와 친분을 앞세워 조직 보호를 명분으로 쉬쉬하고 방관하는 문화가 뿌리내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또 부사관에게 근무평정은 진급을 좌우하는 절대적 지표가 된다고 한다. 평가 권한을 쥔 부서장, 부대장의 부대 관리와 진급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침묵하기 쉬운 환경인 셈. 올해 말 진급심사를 앞두고 있던 11년 차 베테랑 A 중사는 성추행을 당한 뒤에도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을 쓰며 74일 동안이나 정식으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군의 한 여군 상사는 “피해를 신고해 봐야 진급에서 불이익과 부대 내 따돌림을 당할 텐데 ‘그냥 운이 나빴다’면서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 이제야 주목받는 ‘2차 가해’, 기준 몰라 혼란

이 중사와 A 중사는 성추행을 당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두 달여간 2차 피해로 인한 고통을 주변에 호소했다. 육군 B 하사에게 회유 등 2차 가해를 한 의혹을 받고 있는 간부 3명도 최근 기소 의견으로 군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원인으로 떠오른 2차 가해는 군 내 뿌리내린 온정, 보신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대체 인원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적당히 사과받고 넘어가야 한다는 안이한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한 예비역 여군 소령은 “‘성실한 친구인데 술 때문에 실수한 것’이라고 용인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2차 가해의 단초”라고 했다. 또 “가해자의 딱한 처지를 강조하는 지휘관도 있었다. 이렇게 쉬쉬하면서 수개월이 지나면 피해자는 신원이 알려지는 등 2차 가해에 노출됐다”고도 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부사관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 여성 부사관의 74.3%는 인권침해 피해를 겪고도 ‘그냥 참고 지나갔다’고 답했다. 이유는 ‘부대가 시끄러워지거나’(28.1%) ‘진급, 인사평정 불이익이 우려돼서’(21.6%)였다. ‘즉각 시정요구’를 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없었다.

2차 가해가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행위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떤 행위를 2차 가해로 볼 것인가를 두고 부대원들의 혼란도 빚어지는 상황이다.

실제 A 중사의 부대장은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피해 사실을 언급한 혐의로 입건됐다. 앞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공군 이 중사의 전출 부대 대대장은 주간회의에서 “새로 오는 피해자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전입을 오니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대원들의 성 군기를 다잡아야 할 지휘관마저 후진적인 성인지 감수성으로 문제가 된 것이다.

○ 일상 속 세심한 배려 정책화돼야

이런 가운데 성폭력 등 비(非)군사범죄를 수사와 기소 단계는 물론이고 1심부터 민간에 이관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성범죄 사건 처리 과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엄정한 조치가 이뤄지는 선례를 구성원들이 직접 보면서 군 내 경각심을 심어줄 거란 기대가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남성 중심적인 부대문화나 피해자가 ‘내부 고발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 등이 바뀌지 않으면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거란 지적도 나온다.

독립성과 성범죄 신고 독려를 위해 2014년부터 도입된 성고충상담관 제도도 기대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이 많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면담이 일종의 ‘낙인’이 되는 폐쇄적인 분위기로 인해 상담관들이 피해자와의 신뢰 형성 및 비밀 보장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지휘관이 본인에게 상담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품는 등 부대 내 부정적 시선도 견뎌야 했다. 게다가 군 내 성고충상담관은 지난해 47명에 불과했다. 미군의 성폭력예방대응국(SAPRO) 제도를 참고해 인력과 독립성을 강화한 ‘성폭력 전담 조직’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군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일상 속 여군이 성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세심한 배려를 정책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지휘관이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주도할 성인지 감수성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예비역 여군 중령은 “현재 각 군에선 연간 한두 차례 지휘관들의 성인지력을 부대원들이 평가하고 이를 개별 통보하는데, 이 평가 빈도를 늘리거나 지휘관의 인사평점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美 “성범죄는 아군에 대한 아군의 공격”… 2차피해 없게 비밀 보장한채 사건 처리
국방부내 ‘사프로’ 총괄기구 운영… 담당관 900명-피해자옹호관 1만명
지휘체계 안 거치고 증거확보-상담… 신고때 인사 불이익 등 걱정 없어



“아군(我軍)에 대한 아군의 공격이다. 해결해야만 한다.”

마크 밀리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5월 펜타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군 성범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군 성범죄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군에서도 직면한 문제다. 당시 밀리 의장은 군 내 성범죄 사건의 기소 권한을 떼어내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2월 조 바이든 대통령 지시로 설립된 ‘독립검토위원회(IRC)’가 성범죄 기소 권한을 지휘관에서 분리하는 권고안을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한국의 민관군 합동위원회와 기능이 유사한 IRC 위원들은 조사 기간 90일 동안 600여 명의 군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지난달 82개의 권고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성범죄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 보호 및 대응 시스템은 2005년부터 국방부 산하에 성폭력 대응 총괄기구를 따로 둔 미군의 ‘사프로(SAPRO·Sexual Assault Prevention and Response Office)’ 제도가 참고 대상으로 꼽힌다. 현재 미군은 해외 파병을 포함한 모든 주둔지에서 연중무휴로 성폭력 신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성폭력대응담당관은 900여 명, 피해자옹호관은 1만1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우리 군의 민간인 성고충상담관은 47명, 양성평등담당관은 120명이었다.

사프로 제도의 핵심은 피해자가 비밀을 보장받은 채 사건 처리 및 후속 조치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가 성추행 신고 직후 부대에 신고 사실이 알려져 생전에 2차 피해를 당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또 ‘제한적 신고’를 한 경우 사건이 군 지휘 체계를 거치지 않고 군 내 사건 수사도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가 의료 서비스 및 법의학적 증거 확보, 상담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상담 내용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 지휘 계통에 공개되지 않으며 지휘관에겐 성폭력 발생 장소와 날짜, 피해자 성별만 보고된다. 피해자가 가장 염려하는 인사상 불이익 등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셈이다.

사건 신고 1년 뒤 피해자에게 ‘비제한적 신고’로 전환할지를 확인하는데, 만약 피해자가 계속해서 제한적 신고를 원할 경우 피해 기록은 5년 보존 뒤 파기된다. 비제한적 신고를 선택하더라도 사건 세부 내용은 합법적으로 알 권리를 지닌 소수 인원에게만 공개된다. 지난해 발생한 7816건의 미군 성범죄 사건 중 비제한적 신고는 5640건으로 제한적 신고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20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프로 제도의 도입을 촉구하며 “2차 가해가 일어나면 도저히 그 조직에서 살 수 없다. 인생에 꿈이 없어져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군 내 성폭력 문제를 ‘적폐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던 문재인 정부도 2018년 군 적폐청산위원회에서 사프로 제도를 참고한 민간인 참여 독립기구 신설 등 권고안을 냈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병영문화 개선을 목표로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원회에서 이런 안이 개진될 수 있도록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합동위 활동이 공식 종료되는 다음 달까지 독립기구 설치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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