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도쿄 구상’ 무산 위기…한반도 평화 구상 차질 우려

  • 뉴시스
  • 입력 2021년 4월 6일 1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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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체육성, 도쿄올림픽 불참 공식화…'코로나 우려 명분'
도쿄 구상, 평창 구상 시즌2…올림픽 계기 한반도 외교전
文대통령, 대북전략 수정 불가피…美대북정책 영향 관심
9·19 평양 공동선언 이행 사실상 무산…靑·통일부 '당혹'

도쿄올림픽을 한일 관계와 남북 관계 개선은 물론 북미 비핵화 대화의 계기로 삼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이 무산됐다. 북한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도쿄하계올림픽에 불참을 공식 선언하면서 임기 말 대북 접근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체육성은 6일 공식 운영홈페이지 ‘조선체육’을 통해 지난달 25일 개최한 북한 올림픽위원회(NOC) 총회 결과와 관련해 “악성 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세계적인 보건 위기 상황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위원들의 제의에 따라 제32차 올림픽 경기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토의 결정했다”고 밝혔다.

체육성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산하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지위를 인정받는 북한의 공식 기구다. 우리의 대한체육회(KOC)와 같은 곳으로 올림픽 참여 여부 등 주요 사안을 총회를 통해 결정한다.

북한이 선수들의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명분으로 100일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 불참을 결정하면서 문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공간도 줄어들게 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최종 수립 시점을 전후로 본격 추진을 계획했던 이른바 ‘도쿄 구상’에 급제동이 걸린 분위기다.

문 대통령의 ‘도쿄 구상’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이끌었던 경험을 토대로 도쿄·북경 올림픽을 지렛대 삼아 비핵화 대화 재개에 동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계기로 시작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등 3년 전 평화 분위기를 재현하겠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2018년 1월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육성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대표단 파견 의사를 시사한 이후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문 대통령 예방과 김 위원장의 친서 전달을 기점으로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전 세계가 주목한 문 대통령의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 역할의 출발점도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평창 구상’을 토대로 4·27 판문점 1차 남북정상회담, 5·26 2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6·12 1차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9·19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이끄는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중심에 섰다.

2·28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힘을 잃었던 평창 구상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되살리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도쿄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도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할 계획”이라며 “한반도를 위한 평화를 촉진하는 장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제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선 “올해 열리게 될 도쿄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한국은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했었다.

이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021년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릴레이 올림픽 기회를 역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담론으로 확장됐다. 정치·군사 영역이 아닌 스포츠·문화 부문 등 비정치적 교류협력에서 출발해 북한과의 접점을 점점 넓힌다는 ‘신 기능주의 통합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처음 천명한 ‘쾨르버 연설’과 맥을 같이 한다.

북한이 빗장을 걸어 잠근 상황에서 스포츠 교류를 지렛대로 남북 간 접촉면을 만들다 보면 관계 복원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이 도쿄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경기에 공동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나아가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유치에 협력한다는 내용은 9·19 평양공동선언에도 명시돼 있다는 점에서 남북 정상 간 합의 이행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남북 교류협력 추진의 내용을 담은 9·19 평양공동선언 4조2항에는 ‘남과 북은 2020년 하계올림픽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적극 진출하며,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공동개최를 유치하는 데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올해 7월23일 개막할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석 달가량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남북 정상 간 합의마저도 이행이 어렵게 됐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북한의 도쿄올림픽 불참과 관련해 입장을 자제하고 있다. 당혹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정부는 도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와 화해, 협력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왔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그렇게 되지 못하는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스포츠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한반도 평화, 남북 간 대화·협력을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찾아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통일부가 입장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입장을 참고해달라”고만 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과정에서 북미 비핵화 대화의 촉진 방안의 일환으로 종선전언과 함께 문 대통령의 ‘도쿄 구상’의 추진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보국장과의 한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도쿄올림픽의 외교적 활용 방안을 논의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협력 의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의 로버트 오브라이언 안보보좌관은 도쿄올림픽 개최 시기인 7월 전후를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재개 시점으로 꼽은 바 있다. 한미 NSC 간 공감대를 이뤘던 내용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떻게 담기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 실장은 전날 인천국제공항 귀국 자리에서 “(미국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외교적 관여를 조기에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서 실장은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결과를 토대로 미국의 대북정책 수립 완료 후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방향을 정리한 보고서를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서 “도쿄올림픽 활용 구상안이 담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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