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팬덤에 사로잡혀 길을 잃다[오늘과 내일/정연욱]

정연욱 논설위원 입력 2020-12-08 03:00수정 2020-12-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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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윤석열 축출’ 역풍에 盧 팬덤으로 맞불
강경 문팬 눈치 보느라 중원 교두보 무너져
정연욱 논설위원
온갖 무리수를 둔 ‘윤석열 찍어내기’에 거센 역풍을 맞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소셜미디어에 노무현 영정 사진을 올렸다. 친노 정서에 뿌리를 둔 친문 지지층에 ‘SOS’를 요청한 것이다. 설마 했던 검찰 내 추미애 사단까지 등을 돌린 데다 법원까지 검찰총장 직무배제 결정에 제동을 걸자 다급히 정치적 구명을 호소한 것이다. 적어도 친문 지지층이 자신을 엄호해 준다면 여권 내부의 총질은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명분으로 내건 ‘민주적 통제’는 상관이 시키면 무조건 따르라는 ‘어명(御命)’으로 변질됐다. 윤석열 중심의 특수부 라인에 소외된 형사부 등 일반 검사들을 편 가르면서 일방적인 인사권 행사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검찰개혁을 외칠수록 검찰은 명분이 약한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정치적 계산도 밑자락에 깔았다. 그러나 추미애식 검찰개혁의 타깃이 제도 개선보다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 나선 윤석열 찍어내기에 맞춰지면서 추 장관이 위기에 몰리자 친노·친문 정서에 손을 내민 것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후 24차례나 부동산정책을 쏟아내고도 집값 안정에 실패한 김현미를 교체하면서도 청와대가 굳이 “경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도 친문 지지층을 의식한 오기 정치다. 일요일 심야에 도둑처럼 관련 파일 444개를 삭제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의 일탈이 면책 대상인 적극 행정이라고 감싸기 바쁘다. ‘탈원전’ 대통령 공약을 수행한 공직자를 왜 검찰이 구속 수사하느냐는 주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친문 핵심 의원은 아예 원전 수사를 하는 검찰을 향해 “선을 넘지 마라”라고 겁박했다. 지금 여당이 야당 시절 이명박 정부의 최대 공약이었던 4대강 사업을 집요하게 문제 삼았던 기억은 나 몰라라 한다. 사실관계나 과거 경험엔 개의치 않겠다는 분위기다. 친문 지지층 구미에 맞는다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강경 친문 성향의 ‘나꼼수’ 멤버들이 서로 치고받는 내분 사태다. 윤석열 검찰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 “우리 편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며 날 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친문 지지자들은 “우리 ‘이니’(문 대통령) 하고 싶은 대로 다하라”고 했는데 문심(文心)을 대변하는 추 장관을 비판하면 우리 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정책이 옳고 그른지 따져보고, 진정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강경 친문 지지층만 보고 흔들림 없이 가겠다는 결기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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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진영의 정치적 자산은 노무현 정신이다. 원조 친노인 이광재는 지금 친문 진영과 결이 다른 노무현 정신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결국 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국가는 앞으로 간다는 얘기를 했다.”

필요하다면 지지층과 맞서면서까지 국익을 위해 추진한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라크 파병이었다고 했다. 좁은 정파적 이익을 뛰어넘은 통합의 메시지였다.

여권은 지난 4·15총선 결과를 마음대로 하라는 민의의 표출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래서 웬만한 입법 폭주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각한 오독(誤讀)이다. 거여(巨與)의 출현은 친문 지지층뿐만 아니라 당시 코로나19 위기에 두려움을 느낀 상당수 중도층 표심까지 합쳐진 결과다. 입법 폭주로 강경 친문 진영은 달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마저 팽개친 오만과 오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여권이 그동안 힘겹게 쌓아올린 중원의 교두보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문재인 대통령#친문#더불어민주당#입법 폭주#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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