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절박해진 구직자들, 연봉 낮추고 직무까지 바꿨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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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눈높이 낮추는 취준생들
구직자 희망연봉 조사결과
코로나 전후 평균 362만원 차이
연봉 올린 사람 한 명도 없어

경북에 있는 A대 인문대를 졸업한 윤모 씨(30)는 최근 국비 지원 직업교육 과정인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더 이상 졸업을 늦출 수 없어 ‘코스모스 졸업(8월 졸업)’을 했지만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악재를 만나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윤 씨는 “1년간 취업준비를 하면서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하겠다는 기업은 한 곳도 못 봤다”며 “공무원 준비를 할 자신도 없어 취업이 잘 된다는 기술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1월 20일 발생)가 나온 지 9개월이 지났다. 코로나19 확산의 여파가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직격탄’을 맞은 계층이 취업준비생들이다.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취업준비생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윤 씨처럼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업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취업시장 전망 역시 아직은 어두운 상태다.

○ 구직자 20% “취업시장 회복 안 될 것”


구직자들은 올 하반기(7∼12월) 취업시장을 상반기(1∼6월)보다 더욱 비관적으로 봤다. 하반기 취업 상황이 상반기보다 나아졌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271명(54.2%)이 “악화됐다”고 했다. 국내 고용 상황이 4, 5월에 ‘저점’을 찍고 차츰 회복 중이라는 정부 공식 발표와는 차이가 있다. 하반기 취업시장이 상반기보다 나아졌다는 응답자는 78명(15.6%)에 그쳤다.

취업준비생들은 1년 뒤인 2021년 하반기나 돼서야 취업시장의 사정이 차츰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졸 채용시장이 회복되는 시점을 묻는 질문엔 39.4%가 ‘2021년 하반기’를 꼽았다. 23.2%는 2022년 이후가 돼서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채용시장이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특히 “앞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만큼 채용시장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117명(23.4%)에 달했다. 1년 동안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한 구직자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로 취업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데 코로나19 위기로 그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코로나19에 희망연봉도 줄어


이번 조사에 응한 청년 구직자 500명은 23∼30세의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과 졸업자이다. 취업준비를 길게는 3년 이상 한 응답자들도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취업 희망 기업이나 연봉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취업 시 연봉 마지노선이 평균 3738만 원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3376만 원으로 362만 원(9.7%)이 줄었다. 구직자 500명이 원하는 연봉대는 많게는 6000만 원에서 적게는 2000만 원까지 다양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희망 연봉이 더 높아졌다는 구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취업 계획을 바꿨다는 구직자도 10명 중 7명 수준인 347명(69.4%)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장기적인 취업준비를 시작했다거나(239명·68.9%·중복 응답) 취업 희망 기업과 연봉 눈높이를 낮춘(147명·42.4%) 경우가 많았다. 아예 취업하려는 직무를 바꾸겠다는 사람도 전체의 28.8%인 100명이나 됐다.

○ 민간기업 채용 활성화 절실


청년 구직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대책으로 “민간기업의 자발적인 채용 활성화”를 꼽았다. 이를 해결책으로 본 구직자가 298명(59.6%·중복 응답)에 달했다. ‘취업준비생에 대한 현금 지원’(221명·44.2%)이나 ‘공무원 등 공공부문 채용 확대’(182명·36.4%)를 선호한 응답자보다 많은 수치다. 한 구직자는 “공공부문 채용은 이미 포화 상태다. 민간기업의 건강한 채용을 늘리기 위해 이제 기업 지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구직자는 “구직자인 내가 봐도 구직자에 대한 일부 현금 지원은 쓸데없는 낭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한 청년 구직 정책 가운데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는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266명·53.2%·중복 응답)을 꼽았다. 이는 구직 청년들에게 월 50만 원씩 최대 300만 원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이어 중소기업에 장기 취업한 청년들에게 목돈을 지급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109명·21.8%)도 선호도가 높은 구직 정책으로 꼽혔다. 일부 구직자들은 “지금은 모든 구직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소득 제한을 없애는 선별적이지 않은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진학사 캐치 김정현 소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지금 구직자들이 ‘채용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을 위한 정부와 사회의 다양한 지원 대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코로나19#취업#취준생#민간기업#청년 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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