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재 “누구도 상상 못할 모습으로, 찰나의 표정까지 담아”

  • 스포츠동아
  • 입력 2020년 8월 3일 06시 57분


■ 5일 개봉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잔혹한 킬러 캐릭터 연기한 이정재

흰색 부츠에 주황색 반바지 직접 제안
고된 액션에 왼쪽 어깨 인대파열 부상
“황정민형과 박정민의 연기에 큰 자극”

“오래 연기하다보니 비슷해 보이지 않으려고, 새롭게 보이려고 내 안의 것을 박박 긁어낸다”고 말하는 이정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정재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영화이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오래 연기하다보니 비슷해 보이지 않으려고, 새롭게 보이려고 내 안의 것을 박박 긁어낸다”고 말하는 이정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정재의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영화이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고, 속도도 나지 않으니 답답하죠.”

‘엄살’이다. 배우 이정재(48)가 고난도 액션연기를 소화하면서 느낀 몸의 변화를 길게 설명했지만 정작 완성된 작품에서 마음고생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오래 연기하다보니 어떻게 하면 관객에 더 새로운 걸 보일까” 걱정과 고민에 빠져있다는 그는 끝없는 갈망의 끝에서 지금껏 본적 없는 무자비한 킬러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5일 개봉하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데뷔 27년차 배우 이정재의 새로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태국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에 얽히고설킨 두 암살자가 벌이는 하드보일드 추격 액션이다. 구구절절 설명 없이 두 인물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질주하는 이야기가 미덕이자 매력이다.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서인지 7월30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정재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촬영 과정을 상세히 돌이켰다. 자신의 역할인 킬러 레이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액션에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공들여 설명하는 그에게 ‘배우’라는 수식어보다 작품의 ‘또 다른 설계자’라는 평가가 어울렸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압도적인’ 등장…의상까지 직접 구상
암살당한 형제의 장례식장에 티클 하나 묻지 않은 화이트 코트를 입고 레이가 나타난 순간부터 영화의 온도는 급상승한다. 흡사 화려한 무늬의 스카프를 두른 듯 목 주위를 휘감은 타투, 두 개씩 교차해 걸은 금목걸이, 지브라 무늬 셔츠에 매치한 화이트 앵글부츠까지, 바로 이정재의 극 중 모습이다. “누구도 상상한적 없는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는 욕심이다. “집요한 집착을 가진, 히스테릭한 인물이에요. 레이를 보는 순간 관객이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직감하길 바랐어요. 첫 회의 때 제가 개인 스타일리스트와 상의해 극 중 의상을 구상해 USB에 담아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어요. 모두 당황스러워했죠. 흰색 부츠에 주황색 반바지 입은 킬러라니. 하하! 하지만 제가 그동안 맡은 캐릭터 가운데 제일 독특한 인물인 만큼 과하다 싶게 밀어붙이고 싶었습니다. 다들 우려했지만, 막상 의상을 입고 촬영장에 가면 너무 잘 어울렸어요.”

이정재는 형제를 죽인 암살자인 황정민을 쫓아 일본 도쿄에서 대한민국 인천으로, 다시 태국 방콕으로 여정을 이어간다. 이름대신 ‘백정’으로 불리지만 그의 과거가 어떤지, 왜 무자비한 인물이 됐는지 설명조차 없다. 상상과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촬영은 대부분 태국에서 이뤄졌다. 이정재는 폭염을 견디며 밀폐된 차고에서 수십 명을 칼로 제압하고, 태국 택시인 ‘툭툭’을 타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총격 질주 액션을 소화한다. 좁은 건물 복도에서 황정민과 벌이는 ‘불꽃’ 튀는 액션 대결도 짜릿하다.

“시나리오와 달리 태국 현지 촬영에서 추가된 액션이 더 많다”는 게 이정재의 설명이다. 현장의 뜨거운 공기가 그의 액션 열정도 달아오르게 했다. 하지만 실전은 고된 법. 현지 촬영에서 그는 왼쪽 어깨 인대 파열 부상을 입었고, 촬영으로 미뤄 둔 수술을 곧 받는다.

“여러 기술 활용으로 액션이 화려해보이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 동작보다 그 인물이 짓는 찰나의 표정이 가장 중요해요. 배우가 액션에 임하면서 느낀 순간의 감정이 담긴 찰나의 표정이 액션 전체를 좌우합니다.”

배우 이정재.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재.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감독 데뷔 결심한 이유
영화에선 숙적이지만 실제로 이정재는 상대역인 황정민을 향한 신뢰가 깊다.

“예전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어요. 형이 아이를 안고 산책하는 모습도 자주 봤고요. 그 땐 제가 팬의 입장에서 반갑게 인사했는데 ‘신세계’(2013년)를 같이하면서 많이 설레었어요. 이번 영화로 7년 만에 다시 만났으니, 형이나 저나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순간순간 ‘신세계’를 의식했고, 간혹 비슷한 모습이 나올라치면 경계했어요.”

이정재는 영화를 찍으면서 황정민은 물론 또 다른 주인공인 박정민으로부터 “자극을 받았다”며 “두 배우가 부러웠다”고 돌이켰다. 자신이 갖지 못한 재능과 표현을 해내는 배우들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라고 했다.

이정재는 내년 초 첩보액션 ‘헌트’(가제)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주연도 맡고 연출까지하는 도전이다. 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1년 홍콩에서 영화 ‘도둑들’을 찍으면서 받은 ‘충격’이다.

“배우가 연출도 하고 제작도 하는 일은 뉴스로나 접하는 할리우드 소식이었어요. 제 일은 아니라고 여겼어요. 그러다 ‘도둑들’ 홍콩 촬영 때 임달화 배우가 ‘지난달엔 친구 영화의 프로듀서를 했다’, ‘다음 달엔 내 영화를 연출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뭔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배우, 감독, 작가를 나누지 않고 그냥 ‘영화인’이구나. 너무 부러웠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분야는 상관 없구나. 큰 자극이 됐죠.”

“우리도 자유로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정재는 그 때부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틈틈이 적어두고, 이야기를 확장해 직접 쓰기도 했다. 그 첫 결실이 ‘헌트’이다. 현재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촬영에 한창인 이정재는 마무리하는 대로 ‘헌트’ 준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친구인 정우성에게 감독으로서 출연을 제안해 확답을 기다리고 있다고도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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