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차단’ 중저가 아파트까지 확대… 실수요자 피해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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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부동산 대책]지난달 강남4구 갭투자, 전체의 73%


17일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에서 정부는 수도권 전역뿐만 아니라 대전, 충북 청주시까지 규제지역을 확대하고 9억 원 이하 중저가 주택을 살 때도 전세대출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전까지 주로 9억 원 초과 고가주택 및 서울과 수도권 등 집값 급등 지역에만 ‘핀셋 규제’를 해온 것과 달리 규제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유례없는 저금리 상황에서 서울 집값이 반등하고 지방에서 집값 급등세가 나타나자 서울에서 수도권,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퍼지는 ‘풍선효과’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규제가 오히려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전세 매물 감소와 이로 인한 전세가 급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갭투자’ 차단 위해 중저가 주택까지 규제
이날 정부 대책의 핵심은 갭투자 차단이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수요를 투기세력으로 보고 이를 막는 데 주력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에서 이뤄진 전체 매매거래의 48.4%가 갭투자였다. 이 비중은 점점 높아져 5월에는 52.4%로 전체 거래의 절반을 넘겼다. 특히 서울 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 등 강남 4구에서는 갭투자 거래가 5월 전체 거래의 72.7%를 차지했다. 하동수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최근 서울에서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금천, 관악, 구로구 등에서 향후 주택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갭투자자가 몰리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처럼 고가 아파트뿐만 아니라 중저가 아파트 전반으로 갭투자가 번지면서 신규 주택을 매입할 때 전세대출 회수, 주택담보대출 시 전입 의무 부여 등의 대상과 범위도 넓어졌다.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에도 실거주 및 전입 의무가 부여된다. 7월 1일 이후 보금자리론을 신청할 경우 3개월 내 전입, 1년 이상 실거주를 유지해야 한다. 기존 주택을 보유한 채 전셋집을 구해 이사를 갈 때도 기존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수도권 최대 4억 원, 지방 3억2000만 원까지 대출보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2억 원으로 낮아진다.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을 9월부터 규제지역의 모든 주택 거래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는 규제지역이라고 해도 3억 원 미만 저가 주택에 대해서는 계획서 제출 의무가 면제되고 있다.

○ 파주, 김포, 천안 규제지역 제외돼
이번 대책으로 조정대상지역은 기존 44곳에서 69곳, 투기과열지구는 기존 31곳에서 48곳으로 대폭 확대됐다. 불어난 시장 유동성에 기반한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미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경기 수원시, 구리시 등도 집값 상승세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이 같은 규제지역 확대는 또 다른 풍선효과만 낳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규제지역에서 제외된 경기 김포시, 파주시, 충남 천안시 등이 대체 투자지역으로 언급된다. 김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김포가 규제에서 빠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하루, 이틀 전부터 집도 안 보고 계약하는 손님들이 있었다”며 “평소에는 문의 전화가 거의 없었는데 오늘 하루만 10통 넘게 전화가 왔고, 규제지역에서 빠지자마자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 “20, 30대 실수요까지 차단” 지적
이번 대책을 두고 아직 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20, 30대의 내 집 마련을 차단하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서 아파트 매입을 고민하던 회사원 정모 씨(34)는 “집값이 너무 빨리 올라 미리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려 했는데 이번 대책으로 계획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만약 집값이 내린다면 다행이지만 계속해서 오르면 집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간 격차만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최근 급등세로 규제지역이 된 청주에서도 실수요자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청주시 서원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32)는 “전세 살다 내년 3월 집을 사서 이사할 계획이었는데 대출 가능 금액이 크게 줄었다”며 “조정대상지역으로 한꺼번에 규제하는 것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실수요자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특히 전세를 주며 집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실거주를 위해 전세 세입자를 내보내고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면 전셋값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센터 부장은 “이번 대책으로 집주인은 실거주하기 위해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고, 재건축 단지의 전세 매물도 줄어들게 되면서 향후 전세가격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전세에서 월세 시장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주거 비용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전세제도 특성상 주택을 구입할 때는 전세를 끼고 거래하는 형태가 많은데 정부는 이런 거래를 모두 투기로 몰아세우고 있다”며 “이번 대책으로 부모 증여 등의 도움 없이 주택을 처음 구입하는 20, 30대의 주거 사다리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새샘 iamsam@donga.com·정순구 기자
#부동산 대책#갭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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