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동반자, 등대[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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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동해안 축산항에서 태어난 나는 언젠가 우리 집 뒷산에 있는 흰 물체를 봤다. 등대였다. 녹색 대나무 숲과 푸른 하늘색을 배경으로 한 흰색 등대가 아름다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멀리 있는 집을 찾아갈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렇지만 그 등대를 길잡이 삼아 우리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때부터 등대가 고마워졌다. 등대 위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5m 가까운 등대의 몸체에 붙어 있는 지지대 20여 개를 잡고 올라가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기어이 등대 위에 올라섰다.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동해의 장관이 펼쳐졌다.

등대의 역할이 바닷길을 비춰 주는 것임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등대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불빛을 반짝인다. 어른들은 죽도산 정상에 있는 축산항 등대 불빛을 보고 어선들이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고 우리 항구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북한에 넘어갔던 우리 동네 어선들이 배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상태로 돌아왔다. 축산항인지 알고 들어갔더니 북한이었다는 것이었다. 등대를 오인했던 모양이다. 해양대에 다니면서 등대도 서로 구별이 될 수 있도록 반짝이는 주기를 달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A등대는 10초에 한 번씩, B등대는 5초에 한 번씩 반짝이도록 등대를 배치한다. 해도(海圖)에 그러한 사실을 기입해둔다. 항해사와 어부들은 이런 등대의 특성을 확인해 자신의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이같이 등대의 고유한 목적은 길잡이다. 긴 항해를 이어온 선원들에게 이제 안전한 육지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기능이다. 그래서 등대는 희망과 긍정의 상징이 되었다. 일본에서 출항하여 미국 북서부로 향해하는데 안개가 계속 끼어 현재 나의 위치를 몰라 불안했다. 안개가 걷히면서 곧 육지의 등대를 발견했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등대가 설치된 곳은 ‘위험하니 피해 가라’는 뜻도 있다. 너무 가까이 가면 등대 유역의 얕은 곳에 선박은 좌초되고 만다. 불빛을 한 방향으로 계속 비추는 등대도 있다. 이 불빛을 따라 계속 항해하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부산항의 높은 산에 설치된 선박 뱃길 안내용 등대가 대표적이다.

최근 등대에 관광과 숙박 기능이 더해졌다. 오동도와 장기갑 등대가 대표적이다. 등대는 바닷가에 설치돼 경관이 좋다. 한적한 곳이다 보니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적격이다. 여기에 등대지기를 위한 기존의 숙박시설을 확충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된다.

뉴욕 출장 때 멋진 등대 그림을 발견해 연구실에 걸어둘 요량으로 사 가지고 왔다. 애지중지 지금도 연구실의 높은 곳에 걸어 두었다. 몸은 바다를 떠나 있지만, 나는 여전히 등대와 함께 살아간다. 등대는 내 평생의 동반자였던 셈이다. 유년 시절의 등대는 우리 집을 찾아오게 하는 큰 물표로서의 기능을 했다. 선원 시절 등대는 안전의 길잡이였다. 대학교수인 지금 등대는 해상법과 해양수산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방향을 나에게 제시한다. 등대와 항상 함께했기에 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가 정한 인생의 목표를 잃지 않고 꾸준하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등대#바닷길#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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