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 사립유치원 석달새 37곳 폐원… 업종 바꿔 원비 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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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총 “아이들 볼모로 폐원 없다” 했지만… 작년 한해 27곳보다 급증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안모 씨(43·여)는 지난달 외동딸(6)이 다니던 사립유치원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유치원이 곧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3월 5일 폐원한 이 유치원은 놀이학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유치원일 때 월 40만 원이던 원비를 약 60만 원으로 올렸다. 교육과정과 교사당 학생 수는 달라진 게 없는데 원비만 오른 것이어서 안 씨는 아이를 놀이학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안 씨는 아이를 인근 사립유치원에 보내려 했지만 지원자가 몰려 대기번호를 받아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당분간은 아이를 직접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이른바 ‘유치원 3법’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폐원은 없다”고 밝혔다. 26일 선출된 김동렬 한유총 신임 이사장은 “아이들을 볼모로 한 휴·폐원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치원 일선 현장의 상황은 다르다.

서울 동작구의 한 사립유치원은 지난해 12월 학부모들에게 폐원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지만 한 달 뒤 기습적으로 폐원을 결정했다. 본보가 서울지역 11개 교육지원청 관내 유치원 폐업 현황을 확인한 결과 올해 들어 문을 닫은 사립유치원이 37곳(3월 26일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지역에서 폐원한 사립유치원이 27곳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폐원을 준비 중인 곳도 있어 문을 닫는 유치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폐원한 사립유치원 중 일부는 학원이나 영어유치원으로 업종을 바꾼 뒤 원비를 올려 받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유치원은 폐원 인가 결정이 난 이달 4일 이후 일명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어학원으로 바뀌었는데 원아를 모집하면서 유치원 때 월 30만 원 정도이던 정규반 원비를 100만 원대로 올렸다. 서울 성동구의 하모 씨(44·여)도 둘째 딸아이가 다니던 사립유치원이 이달 5일 폐원하고 업종을 학원으로 바꾼 경우다. 유치원비는 월 50만 원이었는데 학원비는 약 80만 원이다. 하 씨는 “원비는 올랐지만 가르치는 내용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유치원으로 보내고 싶은데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며 “딸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 입장에서는 교육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내년이 더 걱정’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폐원에 따른 유치원 감소로 입학 경쟁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 송파지역은 올 들어 사립유치원 6곳이 문을 닫았는데 송파구의 한 유치원의 경우 5세 아동 30∼40명이 대기번호를 받아놓고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둘째 아이(5)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김모 씨(37·여)는 “작년에 사립유치원 자리가 없어 첫째 아이(6)를 월 150만 원을 주고 영어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내년에 둘째 아이까지 이렇게 되면 부담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사립유치원 측은 국회와 정부가 추진 중인 유치원 3법 개정과 이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 시행령’이 폐원과 업종 변경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유치원 3법 개정안에는 이사장과 유치원장의 겸직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원아 200인 이상 사립유치원은 교육부에 회계 내용을 신고하는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을 사용해야 한다. 사립유치원이 학원으로 업종을 바꾸면 유치원 3법과 에듀파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윤다빈 기자
#사립유치원 폐원#유치원 3법#영어유치원#놀이학원#에듀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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