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주량은 와인 10병”…‘새로운 놀이 문화’ TMI의 빛과 그림자

임희윤 기자 , 박선희 기자 입력 2018-06-10 17:17수정 2018-06-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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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A: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신민아 구혜선 윤은혜 산다라박 스칼렛 요한슨이랑 동갑이라는 정보를 전해드립니다. B: TMI 감사드립니다. (트위터 게시물 대화 중)

직장인 김진성 씨(34)는 요즘 틈날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포털 사이트, 동영상 서비스 검색창에 ‘TMI’란 단어를 쳐 넣는다. 요즘 유행하는 TMI. 이것은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뜻한다. 얼핏 들으면 부정적 이미지이지만 ‘사족’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된다.

김 씨는 유명인 중 문득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관련 TMI를 검색한다. ‘김정은 TMI’ ‘아이린 TMI’ 등이다. 그는 “혈액형이나 습관부터 방송에 나와서 했던 사소한 행동까지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볼 수 있어 잔재미가 있다”고 했다. 스스로 TMI란 말을 쓰기도 한다. 궁금하지 않은 장광설을 대화 상대가 늘어놓을 때다. “‘야, 그거 TMI다. TMI’라고 웃으면서 지적하면 상대도 나도 얼굴 붉히지 않고 핵심 대화로 넘어가게 돼 꽤 유용합니다.”


●새로운 놀이 문화, TMI

TMI는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측면을 함께 지녔다. 최근 인터넷과 SNS를 수놓는 TMI 관련 놀이 문화와 마케팅은 비교적 긍정적인 측면이다. ‘김정은의 주량은 와인 10병’ ‘문재인의 키는 172㎝’ 같은 시시껄렁한 정보를 발굴해 공유하는 TMI는 팬덤과 트위터 문화를 통해 융성했다. 트위터에서는 ‘강다니엘 tmi봇’ ‘아스트로 쓸데없는정보봇’ 등 수십 개의 연예인 관련 ‘tmi봇’ 계정이 활약 중이다. 이들은 ‘강다니엘 고기 취향은 소고기 레어’ ‘아스트로 차은우는 손하트를 만들면 새끼손가락이 닿지 않는다’ 등 TV나 웹에서 모은 자잘한 팩트들을 잇따라 게시하고 있다. 일종의 만물 정보 아카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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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포츈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기획사에서는 연예인에 관한 간략하고 중요한 정보를 반복해 배포함으로써 특정한 브랜드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팬들은 그 반작용으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 자체 콘텐츠 격인 TMI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TMI가 팬덤 확산의 열쇠로 순기능하자 기획사의 흐름도 바뀌었다. TMI 양산을 위한 이른바 떡밥을 콘텐츠에 삽입하는 추세다. 아이돌 그룹 갓세븐은 아예 엠넷에서 운영하는 M2 채널을 통해 ‘갓세븐의 투 머치 인포메이션(TMI, Too Much Information)’이란 웹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꼽히는 SNS 실시간 소통 역시 일종의 자체 제작 TMI로 팬 문화를 활성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보 과잉 시대의 징후, TMI

TMI는 정보 과잉 시대의 폐해를 지적하는 말로도 쓰인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출신인 박찬호가 ‘투 머치 토커’로 알려지며 그가 방송에서 한 장광설이 ‘짤’ 형태로 유행한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나 광고가 무한히 배달되는 SNS에 대한 피로감이 축약된 말 역시 TMI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정보 선별과 시간 관리의 중요성이 극단적으로 높아진 점에 주목한다. 차 평론가는 “SNS의 ‘타임라인’이란 말이 보여주듯 체험과 모험에 긴 시간을 들이기보다 핵심 정보를 빠른 시간에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여기서 TMI를 둘러싼 양극단의 문화가 나왔다”면서 “핵심 외에 다른 것은 시간 관리의 독소이지만, 특정 콘텐츠의 팬들이 시시콜콜한 정보를 원한다면 그 역시 여과 없이 널린 것이 SNS와 인터넷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TMI 민폐에서 나를 지키는 법 ▼
현대인들은 침대에서도 스마트폰의 정보 홍수에 빠져 허덕이곤 한다. 동아일보 DB
직장인 황모(33) 씨는 업무관계로 알게 된 거래처 사람과 SNS에서 친구를 맺었다가 얼마 전 관계를 차단했다. 조깅 인증샷, 어릴 때 받은 상장, 졸업사진, 점심 메뉴에 이르기까지 하루에 수십 건의 게시물을 올렸기 때문이다. 황 씨는 “말 그대로 ‘안물안궁’(안물어 본 것, 안궁금한 것)을 시시때때로 보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SNS가 일상화된 디지털 시대에 TMI(Too much information)나 TMT(Too much talker)는 이렇게 새로운 민폐가 될 수 있다.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정보과잉으로 인한 피로감 뿐 아니라 일·관계와 적절한 사생활의 거리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TMI 민폐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오’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한 예스맨으로는 원치 않는 과잉정보와 24시간 연결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우투 워라밸’의 저자 안성민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은 “특정 상황, 사람 등에게 어떻게 거절한다는 규칙을 미리 정해둬 고민 없이 ‘노’ 할 수 있는 요령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상대의 부분별한 카톡 대화나 게시물에 끌려 다니는 대신, 자신의 상황을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다.

상대에게 그 정보가 ‘TMI’임을 지적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안임을 간명히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시콜콜한 정보를 늘어놓고 싶을 때는 사전에 ‘TMI’임을 고지하는 것도 일종의 온라인 에티켓이 될 수 있다.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깨알 같은 정보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추천한 ‘디지털 디톡스’도 TMI 시대 꼭 알아둬야 할 ‘쉼의 기술’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실시한 ‘2017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의 65.5%가 과의존 문제가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디지털 기기 중독 증세가 심할 수 록 온라인을 떠도는 수많은 TMI로부터 분리되기 어려워진다.

스티브 잡스도 정기적으로 실천했던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 디톡스 방안들로는 어플 알림기능을 끄거나 이메일 계정에서 로그아웃하는 것, 온라인 접속시간을 측정하는 것,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 등이 있다.

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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