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서기 100년에 쓴 로마 편지, 요즘 SNS와 비슷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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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더 레터/사이먼 가필드 지음·김영선 옮김/608쪽·2만5000원·아날로그

가장 오래된 편지부터 나폴레옹의 러브레터까지
‘소통의 윤활유이자 전달자’… 편지에 관한 모든 것 총망라

이번에도 하나에 꽂혔다. 저자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방대한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영국의 논픽션 작가다. ‘지도 위의 인문학’,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에 이어 ‘편지’를 파헤친 것.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재의 이메일까지 2000여 년에 걸친 편지의 역사를 총망라했다.

왜 하필 편지일까. 저자는 “인간 소통의 윤활유이자 생각의 자유낙하이며, 중요한 것과 부수적인 것, 우리의 멋진 날에 관한 이야기, 가장 묵직한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조용히 전하는 전달자”라고 설명한다.

서기 100년 무렵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빈돌란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편지. 현존하는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 편지에는 생일파티 초대 등 고대 로마인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서기 100년 무렵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빈돌란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편지. 현존하는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 편지에는 생일파티 초대 등 고대 로마인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편지는 고대 로마의 요새였던 빈돌란다 유적지에서 발견된 서기 100년 무렵의 것이다. 종이 대신 얇게 저민 나뭇조각에 쓴 편지로 1973년부터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1000여 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견된 편지 대부분은 “클로디우스 수페르가 케리알리스에게, 안녕하신가. 자네 바람대로 내가 레피디나의 생일에 참석하면 좋을 텐데”처럼 일상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편지들이 보여주는 간결하고, 세속적인 모습은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휴대전화 문자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편지 그 자체가 역사의 기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번성했던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산의 폭발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20여 년이 지난 후 폴리니우스는 화산 폭발 당시의 목격자 진술을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아냈다. “무시무시한 검은 구름이 끝이 갈라져 나부끼는 화염의 분출로 찢어발겨진 채 벌어져서 불의 거대한 혀를 드러냈지요.” 편지에는 비참했던 폼페이의 최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편지는 폼페이의 종말을 담은 유일한 기록으로 여겨진다.

편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연애편지’도 있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설레는 연애편지 수십 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를 외친 프랑스 나폴레옹(1769∼1821)은 조제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나폴레옹이 훗날 황후로 맞아들인 조제핀에게 보낸 연애편지. 내용뿐 아니라 필체도 격렬한 나폴레옹의 애정이 느껴진다. 연인들에게 편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유용한 마음의 전달 수단이었다. 아날로그 제공
나폴레옹이 훗날 황후로 맞아들인 조제핀에게 보낸 연애편지. 내용뿐 아니라 필체도 격렬한 나폴레옹의 애정이 느껴진다. 연인들에게 편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유용한 마음의 전달 수단이었다. 아날로그 제공
“당신이 가진 이상한 힘은 무엇이오? 당신의 한 가지 생각이 내 목숨을 해치고, 내 영혼을 갈가리 찢어 놓고 있소. 세 번의 키스를 보내오. 한 번은 당신 가슴에, 한 번은 당신 입술에 그리고 한 번은 당신 눈에….” 편지 덕분일까. 나폴레옹은 조제핀을 황후로 맞이했다.

연애편지가 우편제도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영국 헨리 8세(1491∼1547)는 두 번째 왕비로 맞이한 앤 불린을 향한 구애의 방법으로 편지를 선택했다. 헨리 8세가 편지를 더 잘 보내기 위해 우정성을 출범시키고, 말을 우편배달에 활용하는 시스템 등을 도입했단다.

어느덧 손편지보다 인터넷 이메일, 스마트폰 메시지가 익숙한 시대다. 저자는 “이메일은 ‘누르기’지만, 편지는 ‘어루만짐’”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편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 강조한다. 자연스레 편지지와 편지 봉투에 손을 뻗게 만드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투 더 레터#사이먼 가필드#김영선#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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