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인찬]평창, 잔치는 끝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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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정치부 차장
황인찬 정치부 차장
“공항에서 호텔 가는데 소달구지가 있더라고요. 도랑 같은 데선 북한 주민들이 빨래도 하고, 물을 길어다 먹는 모습도 봤어요. 입은 옷은 뭐 색깔이 죄다 거의 까만 것 아니면 군청색, 군복 색깔이거나 누비옷 같은 것들…. 딱 우리나라 1960년대 후반 같더군요.”

1월 말 강원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마식령스키장까지 가는 차창에 비친 2018년 북한의 풍경은 이와 같았다고 한 남측 인사는 전했다. 당시 남북 공동훈련차 우리 스키선수단 등 45명이 방북했다. 정부 관계자를 제외하면 올해 들어 북한 땅을 밟은 민간인은 이들이 유일했다.

“마식령스키장과 호텔 외에는 가본 곳이 없어요. 통일부가 개인적으로 다니지 말고 꼭 두 명 이상 같이 다니라고 했고, 사실 돌아다니다 어디 잡혀갈까 봐 겁나서 나갈 엄두도 못 냈죠. 북측 감시원이 따라붙지는 않았지만 호텔 내에서는 중간중간 다 서 있으니까요.”

그나마 이게 유일했다. 금강산 합동문화공연이 취소되면서 올해 남북 교류 국면에서 북한 땅을 밟은 것은 이들뿐이다. 금강산 공연에서는 이산가족의 참가도 고려됐지만 북한의 일방적 취소로 결렬됐다.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진정한 의미의 남북 교류가 활발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북한 사람들의 한국 방문만 대폭 늘었다. 이미 올림픽에 500여 명이 다녀갔고, 패럴림픽 기간 내내 20여 명이 머물 예정이다. 반면 우리는 마식령에 1박 2일 다녀온 게 전부다.

우리가 북한에 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에 접촉을 신청한 건수만 250건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북한의 방북 승인을 받은 인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김정은은 본인이 필요할 땐 김여정도 김영철도 각종 제재를 뚫고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 종교, 문화계 인사의 방북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다. “남북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입국 허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있다.

평창의 성화는 꺼졌고, KTX와 버스 차창 너머 한국의 발전상을 별천지처럼 지켜봤을 북한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다. 한 탈북민 출신 박사는 “돌아간 응원단원 등은 남한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보위부의 철저한 감시 상태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안타깝지만 이게 평창 교류의 민낯이다.

응원단, 예술단을 위시한 김정은의 평창 공세는 아직은 실체라기보단 북한의 선전전, 더 나아가 ‘허상’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올림픽에 응원단에 예술단까지 더했지만 정작 우리 국민은 떨떠름했다. 남북 교류와 핵 문제를 냉철히 분리해 따져볼 만큼 대북 불신과 경계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패럴림픽에 보내려던 응원단, 예술단도 실익이 적다고 판단해 별다른 설명 없이 취소했다.

김정은이 최근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실무적 대책들을 세우라”고 지시를 한 만큼 조만간 또 다른 남북 교류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벌써부터 경평축구나 국립발레단의 평양 공연 가능성이 나온다. 이런 교류는 각각은 의미가 있지만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은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은 비핵화”란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남북 교류와 핵 문제는 별개라는 것이다. 결국 핵 문제에 대한 진척 없이는 남북 교류도 나중엔 벽에 막힐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깜짝 교류 제안은 평창 참가로 충분하다. 이젠 빙빙 돌리지 않고 핵 얘기를 꺼낼 때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
#북한#마식령스키장#평창올림픽#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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