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허술로 줄줄 새는 전남지역 ‘귀농 보조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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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안에 전출시 지원금 취소 규정, 12개 시군 15억8500만원 회수 못해
결격 귀농인에 융자금 알선도 적발 “귀농교육 강화 등 정책 개선해야”

2009년 전남 A군에 귀농한 B 씨는 빈집을 수리한 뒤 군으로부터 보조금 500만 원을 받았다. 농사가 힘에 부쳤던 B 씨는 2013년 도시로 이사했다. A군은 1년에 한 번 이상 귀농인이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를 소홀히 했다. B 씨가 보조금만 받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 사실은 최근 전남도 감사에서 드러났다. 그때까지 A군은 B 씨가 이른바 ‘먹튀 귀농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전남도는 A군에 B 씨에게 준 보조금을 회수토록 하고 담당 공무원을 훈계토록 했다.

농촌 활성화와 도시민 농촌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지원하는 귀농 보조금이 줄줄 새고 있다. ‘먹튀 귀농인’이 적지 않은데도 보조금을 받아 내지 못하고 귀농 무자격자에게 융자금 지원을 알선하는 등 귀농인 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15개 시군을 대상으로 2009년 이후 귀농지원 보조금 집행 및 관리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여 모두 56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집행된 42억3800만 원을 회수 및 추징하고 관계 공무원 23명을 훈계하도록 했다.

시군이 제정한 귀농인 지원조례는 귀농인이 보조금을 받고 5년 안에 다른 지역으로 전출하면 지원을 취소하고 지원금 전부 또는 일부를 회수하도록 했다. 현재 목포시를 제외한 21개 시군은 빈집 수리비로 500만 원을 주고 일부 시군은 정착금 명목으로 최고 10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감사 결과 12개 시군은 95명에게 지급한 귀농 보조금 15억8500만 원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자치단체는 귀농 정착금을 받은 14명이 다른 지역으로 무단 전출했는데도 보조금 1억6300만 원을 회수하지 못했다. 또 다른 자치단체는 농가주택 수리비를 받은 4명이 영농에 종사하지 않고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도 보조금 2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지원 자격이 안 되는 귀농인에게 융자금을 알선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창업자금이나 주택구입자금 등 융자금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농촌 전입일 기준 1년 이상 농어촌 이외의 지역에서 거주하고 귀농교육 100시간을 이수해야 하며 실제 영농기간이 3개월 이상인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C군은 실제 영농 증빙자료 없이 농지원부만 제출했는데도 교육이수로 인정해 56명에게 22억5400만 원의 융자금 지원을 받게 하는 등 8개 시군이 결격 귀농인 119명에게 54억1200만 원을 부적정하게 지원받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귀농·귀촌 종합상담 매뉴얼에 시장과 군수는 귀농 자금을 받은 귀농인에 대해 관리대장과 카드를 작성·비치하고 연 1회 이상 사후관리 실태를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2개 군은 실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귀농체험을 위한 ‘농어촌 한옥체험관 건립 운영지침’에는 도시민을 대상으로 체험시설을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D군은 귀농과는 관련 없는 관광객, 공무원 등 373명에게 672일간 민박 형태로 체험관을 제공하다 적발됐다.

전남도 관계자는 “시군별로 경쟁적으로 귀농을 유치하면서 부적격자에게 정착자금을 지원하고 귀농인과 현지인의 갈등으로 도시로 유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농촌사회 문화에 대한 귀농교육을 강화하고 무분별한 귀농 지원보다는 실제 영농에 종사할 귀농인을 유치하는 등 귀농 정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남은 2013∼2016년 귀농 7225가구(전국의 15.8%·2위), 귀어 1156가구(전국의 33.2%·1위)로 집계됐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귀농 보조금#도시민 농촌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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