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엎친 데 영어금지 덮쳐… 정원 못 채우는 사립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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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사립 초등학교]서울 39개교 중 13곳 정원확보 비상

《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귀족 학교’로 불린 사립초등학교의 입학 경쟁은 치열했다. 신입생 추첨 당일이면 곳곳에서 탈락한 엄마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던 사립초 열풍이 차갑게 식었다. 서울 사립초 3곳 중 1곳은 신입생 모집이 잘 안돼 위기에 놓여 있다. 최근 서울 은평구 은혜초는 수년간 정원 미달이 반복되면서 서울에선 처음으로 폐교 신청을 했다. 학비가 비싸긴 해도 공립초보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립초가 직격탄을 맞은 이유는 뭘까. 》
 

폐교 신청을 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은평구 은혜초등학교의 교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은혜초는 학생 감소와 재정 적자를 이유로 서울에선 처음 폐교를 신청했다. 국가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초부터 ‘저출산 쇼크’를 맞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폐교 신청을 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은평구 은혜초등학교의 교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은혜초는 학생 감소와 재정 적자를 이유로 서울에선 처음 폐교를 신청했다. 국가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초부터 ‘저출산 쇼크’를 맞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지역 사립초등학교인 A학교는 최근 인구절벽 위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사상 처음으로 경쟁률이 1 대 1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4년 전만 해도 입학 경쟁률이 2 대 1이었지만 올해 0.9 대 1로 반 토막이 났다.

A학교 교감은 “학교가 설립된 1960년대만 해도 사립초에 대한 학생 수요가 워낙 많아 관내에만 사립초가 9개나 생겼을 정도”라며 “하지만 이제는 적잖은 학교가 학생 유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사립초 B학교는 3년째 입학경쟁률 1 대 1을 유지하며 간신히 정원을 채우고 있다. 지원자가 모두 등록하거나 끝까지 다니는 것은 아니다보니 결원율이 높은 것이 문제다. 약 590명 정원의 이 학교는 지난해 170여 명이 빠져 결원율이 28%에 달했다.

○ ‘저출산 직격탄’에 “학생이 모자라”

최근 서울 은평구의 사립초인 은혜초가 학생수 감소를 이유로 사상 첫 폐교를 신청했다. 동아일보 취재결과 은혜초뿐 아니라 서울 사립초 3곳 중 1곳이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9일 서울시교육청의 ‘사립초 경쟁률 및 결원율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번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서울지역 사립초 39곳 중 4곳이 정원보다 적은 지원자가 몰리는 미달 사태를 겪었다. 딱 정원 수준 지원자만 몰려 정확히 1 대 1 경쟁률을 보인 사립초도 3곳이었다. 올해는 미달을 겪지 않았지만 지난 5년간 한번이라도 신입생 미달을 경험해 본 사립초는 6곳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 39개 사립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3곳이 최근 5년간 정원 미달을 겪거나 간신히 정원을 맞춘 셈이다.

사립초 지원 경쟁률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로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이 꼽힌다. 서울지역 초등학생 수는 2011년 53만5948명에서 지난해 42만8333명으로 줄었다. 6년 새 10만 명이 감소한 것이다.

국가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사립초는 학생 수 감소가 곧 학교의 재정과 직결된다.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학교 운영비와 교사 임금을 충당하기 때문에 학생 수에 학교 생존 문제가 걸려 있다. 서울의 한 사립초 관계자는 “공립초는 학생 수가 줄어도 학급당 학생 수나 학급 수 자체를 줄여 운영을 계속할 수 있지만 사립초는 그렇지 않다”며 “사립초는 정부 지원이 없다 보니 학생이 없으면 결국 폐교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 영어교육 막히고 특기교육 경쟁력도 추락

올해는 교육부의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으로 사립초들이 설 곳이 더욱 좁아졌다. 저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질 높은 영어교육이 사립초의 강점 중 하나인데, 이와 관련한 교육이 원천 차단되면서 지원자가 더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 북부 지역 사립초에 지원한 학부모 최모 씨는 “매달 100만 원 상당의 비용을 들여 사립초에 보내는데 영어마저 따로 또 돈과 시간을 들여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립초 지원이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라며 “주변 엄마들 중에서도 실제 이런 이유로 지원을 포기하거나 당첨되고도 최종 등록을 안 한 가정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 사립초 C학교 관계자는 “실제 올해 지원율 하락에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여파가 가장 컸다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립초가 중국어 교육 등 차별화되는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립초가 위기를 겪는 동안 공립초의 특기교육이 다양화된 것도 사립초 지원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에는 수영, 승마, 악기교육 등을 사립초에 가야만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공립초에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요즘 공립초에도 다양한 분야의 방과후 수업이 개설돼 ‘1인 1악기 프로그램’이나 각종 체육특기활동을 할 수 있다”며 “돌봄교실 같은 경우에는 재정이 빠듯한 사립보다 정부 지원이 많은 공립이 더 잘 돼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공립초에서도 지난해부터 3, 4학년 필수과목으로 생존 수영 수업이 시작됐다.

사립초만의 장점과 특징이 줄어든 반면 비용 부담(연간 1000만 원 내외)은 커지다보니 지역의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부터 사립초 인기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서부지역의 한 사립초 관계자는 “지역 내에서 서울 강남 같은 곳에 비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학부모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재단재정이 탄탄한 대학부설 사립초나 입지가 좋은 대로변 학교의 경우 타격이 덜하지만 규모가 작거나 입지조건이 열악한 학교들은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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